금정중학교 봉축법회 선래 스님(부산 법륜사 회주)

▲ 선래 스님은 … 1958년 출가해 1960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70년대에는 총무원 재정국장과 사회국장 및 의성 고운사 주지를 역임한 바 있으며 1981년부터 1997년까지 범어사 동래포교당 주지를 거쳐 현재는 부산 법륜사 회주로 주석 중이다.
부처님 탄생의 의미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가장 존귀하다.”

부처님께서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시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문자대로 해석을 하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의미를 해석해보면 모든 중생들이 부처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는 유심조라. 모든 것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가지 가르침을 연계해보면 모든 중생들에게는 참 마음 자리라는 근본 불성이 있어 모두의 마음 바탕에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불성의 존재는 가장 높고 귀한 것입니다. 불성은 생로병사도 없고 괴롭고 슬프고 남을 해치는 악한 마음도 없습니다. 본래가 원만해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맞이하는 부처님 오신 날은 그저 연중행사로만 축하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마음속에 일깨워 불성을 개발하고 그 속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모두가 부처님입니다. 자신이 불행할 것도 없고 남을 불행하게 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대자대비 크게 사랑하고 크게 연민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요즘 시대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학교 폭력입니다. 선생님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우고 익힘으로써 모두가 아무런 문제없이 서로 사랑하고 돕고 응원해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2639년 전 인도 카필라국 정반왕궁에서 싯타르타 태자로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의 본생담인 전생이야기를 살펴보면, 모든 부처가 부처님이 되기 전에 보살이 되는 시기를 도솔천에서 맞이하셨습니다. 보살은 우리가 알다시피 중생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지요. 또한 도솔천은 모든 보살이 마지막 큰 깨달음을 얻기 전에 머무르는 하늘 세계입니다. 부처님은 과거 무수한 생을 다양한 보살의 모습으로 살아오시면서 한없는 원력으로 수행을 쌓다가 도솔천이란 하늘 세계에서 호명보살로 탄생하셨습니다. 이때에 장차 큰 깨달음을 이룰 인연을 찾다가 제석천왕에게 하생할 곳을 살펴보라 일러 인도 정반왕궁에 태어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어머니 마야 왕비는 싯다르타를 잉태할 때 6개의 이를 가진 흰 코끼리가 왕비의 우측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마야 왕비는 얼마 후 출산할 달이 되어 그 나라의 풍습대로 친정인 콜리성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 룸비니동산이라는 곳에서 쉬려고 하니 무수 꽃이 향기를 품고 있는 나뭇가지를 잡는 순간 옆구리에서 싯타르타 태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겠습니까? 부처님은 신이 아니라 우리 세상에 역사적 인물로 실존하신 분입니다. 중생들이 훌륭한 근본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서로 싸우고 원망하고 다투며 사는 것이 안타까워 중생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부처님께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귀의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활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는 여섯 가지의 바라밀이 있습니다. 일생동안 살아가며 그것만 지키면서 살아간다면 나와 남을 이롭게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보시·지게·인욕·정진·선정·지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진리 추구에 절실하라

오늘날 우리 불자들은 스스로 많은 모순을 낳고 또 안고 있습니다. 대단한 자신감과 넘치는 환희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채 방황하고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부처님은 잘못알고 부처님을 잘못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처님을 신격화 하지 말고 그 근본을 바로 알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생활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수행을 쌓아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설산동자’로 수행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오로지 깨달음만을 위해 정진하셨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욕심을 따라가는 생각만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지면 안된다 등 탐욕에 젖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곤 합니다. 하지만 설산동자는 항상 깨달음에 대해서만 생각하셨습니다.

하루는 설산동자께서 누군가 게송을 읊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게송의 내용은 ‘제행이 무상이라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다. 한 가지도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생로병사로 변해가며, 무생물체는 만들어지고 사용된 후에 허물어져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무상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불자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진리입니다. 설산동자가 이 게송을 누가 읊었나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아주 험하게 생긴 나찰귀신(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귀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에게 게송을 끝까지 마무리해주기를 청하니 나찰 귀신은 배고파서 할 수 없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내 식량으로 가져오면 게송을 마저 들려주겠다하여 설산동자는 “마저 게송을 읊어주면 내가 내 몸을 주겠다” 했습니다. 설산동자의 목적은 단지 깨달음일 뿐이니, 오직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목숨도 기꺼이 바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나찰 귀신이 나머지 게송을 읊기를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나고 죽음이 다 사라지고 나면 정멸이 낙이라 고요한 열반의 기쁨을 누리리라”하였습니다. 모든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참 마음 자리로 돌아가면 죽음이 사라지고 비로소 생로병사 없는 고요한 열반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설산동자는 이 게송을 다 듣고 후대에 이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 바위에 피로 새겼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나찰 귀신에게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몸을 던지는 순간 나찰귀신이 부처님을 섬기는 ‘제석천’으로 변하였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며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졌고 이 광경을 지켜본 모든 천신과 대중들이 설산동자의 지극한 구도정신에 감동하여 그 발아래에 엎드려 공경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하나의 경전 구절으로 흘려들을 것이 아니라 항상 머릿속에 ‘제행은 무상하다, 모든 것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법을 구하는 간절함과 절절함을 통해 자신을 비춰봐야 합니다. ‘나는 이 여덟 글자와 내 몸을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소중한 내 몸이 헌신짝처럼 버려진대도 깨달음을 갈구할 수 있을까?’를 자신에게 되물어 보십시오. 요즘은 가만히 앉아서도 많은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행복을 위해 진리를 찾는데 한 순간도 소홀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고 멸하는 것이 모두 없어진 후에 자신의 마음속에 근본 불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게송 한 구절만 배우고 알고 실천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성불 원력은 극락세계를 만든다

연등 부처님이 탄생한 당시에 부처님께서 오신 것을 축하하기 위해 온 나라가 등불을 켜고 부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난한 여인이 등불을 켜서 부처님 오심을 함께 축복하고자 하였으나 가진 것이 없어 등불을 켤 기름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냥으로 얻은 동전 세 닢을 가지고 기름 가게에 가서 기름을 구하려고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의 사정을 들은 그 기름장수가 여인의 마음에 감동을 하여 기름 한 종지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오실 때 비로소 등을 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아난 존자가 부처님이 주무셔야 하기 때문에 등불을 모두 끄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른 등불을 다 끄고 마침내 여인의 등을 입으로 불어 끄려고 했으나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말씀하기를 “그 등불은 대단한 원력으로 켜진 것이기 때문에 입으로 끌 수 있는 등이 아니다. 이 등불의 주인은 다음 생에 성불을 할 것이다”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오신 날 등불을 켜며 우리의 소원을 빌지만 그에 앞서 성불하고자 하는 커다란 원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살기 좋은 아름다운 극락세계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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