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대 대강연회 혜국 스님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 혜국 스님은 … 일타 스님을 은사로 13세에 해인사로 출가,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제주 남국선원 ‘무문관’ 및 남국 선원을 개원했으며 부산 홍제사, 충주 석종사를 창건했다. 현재 제주 남국선원장,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으로 주석 중이며 조계종 전국선원 수좌회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생활 속에 천수경〉,〈인연법과 마음공부〉등이 있다.

만물은 우주적 에너지로 움직인다

오늘의 주제는 ‘운명의 논리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불자라면 한번쯤은 생각해 본 내용일 것입니다. 운명은 과연 어떤 세계고 부처님은 그 운명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제일 먼저 운명론부터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운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운명론은 세계관과 인간관으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는 모든 세계, 즉 귀로 들리는 세계, 코로 향기를 맡는 세계 등을 ‘세계관’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을 ‘인간관’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요? 인간들이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인간들에게만 정해져있는 것일까요?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뒷산에 뛰노는 노루들처럼 자연에게 있는 운명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먼저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습니다. 인간의 운명입니다. 남자로 태어나면 평생 남자의 몸으로 살아가야지 바꿀 수 없으며, 여자로 태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 또한 운명론입니다. 그런데 운명론의 구체적인 예로 사주팔자를 살펴보면 타고난 대로 살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대통령과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나 사주가 똑같은 사람들이 수백 명은 될텐데 사주팔자에 따르면 모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과연 사주팔자라는 것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또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사주팔자라는 운명은 과연 신이 만든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까요?

운명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면 유신론을 알아봐야 하고, 부처님은 유신론과 운명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짚어보아야 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운명론 쪽이었습니다. 사람은 타고난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을 가까이하며 운명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과연 어디까지를 운명이라고 할 것이냐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운명을 끌고 나가는 것이라 한다면, 내 안에서 나오는 기운은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이겠습니까. 밤새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가 만든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고, 구름이 만든 물을 마시며,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열의 기운은 인간의 코와 입과 감촉을 통해서 빌려온 기운입니다. 내가 내 기운을 스스로 만든 일이 없습니다. 내 기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내 기운이나 여러분 안에 내재한 기운은 모두 같은 장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자리를 에너지 세계라고 한다면 우리 몸은 사실 한 에너지의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날아다니는 새도, 기어 다니는 지렁이도 똑같은 기운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받아들이는 운명이 다릅니다. 바로 여기서 운명론이 시작된 것입니다.

 

신은 인간이 만든 존재

유신론은 문자 그대로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이론입니다. 저는 가끔 생각하는 것이 대한민국 땅에 유럽식 기독교가 안착했다면 우리나라가 훨씬 풍요로워졌을 텐데 독단적이고 개인적인 미국식 기독교가 안착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제가 기차를 타고 가는데 내 옆자리에 어느 아주머니가 앉더니 “왜 스님은 사탄의 길을 가십니까?” 물으니까 사탄은 악마라며 일체 모든 것을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저를 전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 생각해보니 하느님이 정말 전지전능하여 만물을 창조했다고 하면 악마 또한 하느님이 창조하셨을 것이며 지구상에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만드셨겠지요. 다시 유신론을 얘기해보자면 신은 악마를 왜 만들었을까요? 천지창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는 어디서부터 나온 말일까요? 기독교는 2천 년 전이지만 이미 4천 년 전에 수타니파타에 나온 얘기입니다. 그저 옮겨갔을 뿐이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가 받아들인 미국식 기독교의 배타적인 유신론은 하느님은 악마를 만든 일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천사가 하느님에게 대항하려고 악마가 되어버렸다고 하지요. 유신론에 따라 모든 만물을 하느님이 만들었다는 사상은 사실 거의 인도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가 말한 천지창조 말고 근본으로 돌아가 2천 5백여 년 전에 부처님 시대에 유신론은 전변설이었습니다. 전변설은 인도철학의 우주론으로 하나의 실체가 스스로 변화하여 생성되었다는 학설입니다. 즉 브라만이라고 하는 절대신이 식물과 불과 물을 만들어 그곳으로부터 인간이 탄생하게 되어 모든 인간이 신의 자손이라는 이론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습니다.

유신론에 따르면 최초의 세계는 신이 만들었으며 인류의 역사는 신이 만든 인간이 만들었는데, 신은 그렇다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신이 현존해 지금도 이 우주가 신의 뜻에서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분열을 조장하고, 같은 종교 간에도 전쟁이 발발하는 것 마저 신의 뜻일까요? 과연 그것이 운명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이 경우에 이렇게 묻습니다. ‘절대신’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으며 이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최초에 ‘절대신’을 누가 만들었느냐고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인간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사탄이라면, 이 시대를 유익하게 하고 문명을 창조한 선조들 중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죽어서 지옥을 갔을까요? 운명론과 유신론을 생각하기 전에 도덕이 우선인지 종교가 우선인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덕은 유신론과 운명을 떠나 인간이 근본으로 지켜야할 근본 도덕, 종교와 관계없이 선과 악에 따른 인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종교는 도덕을 보조해주고 도덕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전제를 두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봐야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하기를 “모든 것은 신이 만들었다는 말은 인간이 쓰기 시작했다. 인간이 신을 본 것도 아니요 추측으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신론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세계라는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모든 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말씀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바위를 철썩 때리는 파도를 바라보며 어떤 사람은 인생무상을 느끼기도 하고, 연인이 함께 그 소리를 듣노라면 행복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합니다. 또 파도에 휩쓸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들에게는 마치 통곡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파도소리는 그저 자기 소리를 낼 뿐입니다. 우리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들리는 것입니다. 일체우주 삼라만상은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물상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며,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세계까지 물상이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마음과의 관계는 없습니다. 없어져서 없는 것이 아니라 원래 없는 것입니다. 파도라는 것도 원래 없는 것입니다. 바닷물이 바람에 의해서 변형된 것이 파도입니다. 물상이란 마음의 그림자입니다. 물상이라는 것은 본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유신론 또한 물상과 같은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부처님은 운명론에 대해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하셨습니다. 이단이라는 나쁜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을 달리하여 다른 길을 가는 것이라 받아들이셨습니다. 운명이란 것을 신이 만들었다면 유신론이 되어야 하며 인간이 만들었다면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운명은 ‘한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것

우리는 개척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즘 현대 사회의 모습을 과연 우리 조상들께서 상상이나 했을까요? 자동차가 달리고 KTX가 달리고 비행기가 다니는 요즘 세상을 보면 기염을 토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생명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모든 것은 전부 생명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만물이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기계라고 해서 달리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만물 앞에서 자신이 주인입니다. 운명이라는 것은 한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내 노력에 의해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알콜 중독자, 게임중독자가 되는 것도 내가 그리 의도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 본래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에너지가 가는 방향으로 운명이 따라갑니다.

내 안에 익힌 에너지는 나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어머니가 섭취한 에너지로 나의 눈코귀입몸감정이 만들어집니다. 이를 육근(六根)이라고 합니다. 눈이 만들어진 이유는 바깥에 있는 내 마음에 비친 그림자를 다시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온갖 물상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코로는 모든 냄새, 귀로는 모든 소리, 입으로는 모든 맛, 몸으로는 모든 감촉, 감정으로는 모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육근에 의해서 보고 듣고 향기 맡는 등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세계를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이 육근(六根)을 만든 주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여기에 백합꽃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수많은 철쭉과 목련꽃, 숲 속에 진달래꽃을 보며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는 봄마다 피는 꽃을 볼 때 꽃에게 어디로부터 왔는지 묻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줄기에서 피는 줄 알지요. 그런데 아무리 줄기를 뜯어보고 뿌리를 아무리 헤쳐 봐도 꽃은 없습니다. 따뜻한 봄의 기운, 간지러운 봄비, 얼었던 땅에서 나오는 대지의 기운, 나무가 생명이 되고 지수화풍의 기운을 얻어 온 우주의 에너지가 한 데 몰려 꽃 한 송이를 피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 때가 되면 인연이 끝났구나 하고 꽃은 지고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인연에 의해 피고 지고 인연에 의해 생하고 멸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가지로 말하면 중도(中道)입니다. 이 중도를 다른 말로 하면 연기법, 연기공성이라고 합니다. 19세기 인간에게 가장 큰 병이 폐병이었고, 20세기 가장 큰 병은 암이었습니다. 21세기는 정신병입니다. 많은 사람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을 만큼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 방에는 TV가 없습니다. 우리가 TV에 빠져 그것이 끌어가는 대로 끌려가면 그것이 바로 정신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대사회 문제에 대해 윌리암 제임스나 토인비,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은 해결법이 불교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만물은 하나라고 보는 기운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백합 한 송이가 피기 위해 온 우주의 에너지가 한 데 몰리고,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기 위해 온 우주적 힘이 함께 움직입니다. 세상에 본래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스스로의 에너지를 바른 곳으로 이끌어 늘 밝은 곳으로 걸어가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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