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감사편지 우수상-한주영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네가 무사히 군복무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도한단다.
내가 너의 엄마라는 게
정말 뿌듯하다.
아들로 와 주어 진심으로 고맙다.

 

▲ 그림 강병호

아들아, 잘 지내고 있니?

여긴 개나리, 진달래, 벚꽃 같은 아름다운 꽃들이 봄의 잔치를 벌이고 있단다. 어제는 비가 왔지. 그런데 강원도는 비가 아니고 눈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SNS로 눈쌓인 개나리꽃 사진을 보며, 아름답고 신기하다는 탄성보다 네가 고생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네가 입영날짜를 받고 나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 봤던 때가 생각나는구나. 그때는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아들이 벌써 군대를 갈 만큼 많이 컸구나 하고 뿌듯하기도 했어.

그리고 해군에 입대하기 위해 할머니와 동생들까지 전가족이 함께 진해까지 갔었지, 네가 해군교육사령부에서 입소식을 마치고 부대 안으로 들어갈 때 좀 울컥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난 담담하게 너를 보낼 수 있었어. 그런데 너를 거기에 두고 집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네가 없다는 사실이 확 다가오면서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단다. 네가 없다는 것이 이런것이로구나 실감했지, 그리고 너는 그냥 아들이 아니라 장남이잖아. 장남이라는 말을 실제로 잘 쓰지는 않았었지만 네가 가고 나니 장남이라는 자리가 참 컸다는 것을 알겠더라. 그래서 옛날 엄마들이 장남 장남 했나보다 싶어.

그날 이후 엄마는 매일 기도를 하게 되었단다. 엄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부처님께 뭘 해달라고 빌어본 적이 없단다. 네가 고3 때에도 나는 공부는 네가 하는 것이고, 대학 진학도 네가 잘 알아서 찾아 갈거라 믿고 너에게 전적으로 맡겼잖아. 네가 쓴 자기소개서를 검토해 주고 가끔 너와 대화를 나누는 정도가 내가 해주는 엄마 노릇이었지.

그런데 너를 군에 보내고 나서 엄마는 네가 안전하게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하며 나도 모르게 불보살님께 굽어살펴달라고 기도를 하게 되더라. 나이 탓인가? 그 전까지와는 다른 깊은 애틋하고 그립고 염려하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 같아.

새로이 모성애라는 걸 느끼면서 너를 낳았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네가 태어나고 갓 태어난 너를 품에 안았을 때 그 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건 단지 내가 너를 내 배 아파서 낳았다 뭐 그런 게 아니라, 작고 눈도 못 뜨는 너를 살게 해야 한다는 원초적이고 무조건적인 감정이었지. 그래서 엄마라는 것이 그냥 애기를 낳아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어. 네가 중학교 때 엄마가 학교에 갔을 때 담임선생님이 “민규는 참 특별해요”라고 말했단다. 반에 새로 전학 온 학생이 있는데 성격이 독특해서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선생님이 이 문제로 학급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더구나. 아이들이 그 친구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그 친구가 왕따를 당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할 때 네가 그랬대. ‘그 친구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하고 우리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그 친구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그 때 엄마는 참 기분이 좋았어. 선생님 말씀처럼 너는 참 특별해. 하지만 사실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야. 생김이나 성격이나 소질이 다 다르니까, 모두가 다 특별한 거지. 그런데 우리는 어떤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서열을 매기는 경향이 있어. 너를 특별하게 봐 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구나. 너도 꿈이 선생님이지?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생각해 보니 네 어릴 때 별명이 ‘준비된 괜찮아’였다. 친구들이나 사촌들이 네 장난감을 빼앗거나 한 대 때렸어도 그쪽에서 “미안해”라고 하면 너는 즉시 “괜찮아”라고 해서 부쳐진 별명이지. 너무 순하기만 해서 어쩌나하고 어른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너는 자라면서 네 주장도 분명히 하는 아이였단다.

언젠가 인구주택총조사를 하던 때였는데, 내가 가족들의 종교를 모두 불교라고 표기하자 네가 강하게 “NO"라고 말했지, 너는 불교가 아니라고, 너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고. 그때 유치원 때 꿈이 부처님이었고, 스님이었던 내 아들이 맞나 싶어서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마보이는 절대로 안 될 것이 틀림없어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네가 고3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 유교, 불교, 기독교 등 한국의 주요 종교에 대해서 배웠나봐. 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지. “부처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 같아요. 어떻게 그 옛날에 그런 걸 다 아셨을까요?” 그날 밤 너와 나는 연기, 무아, 공과 같은 불교의 교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러면서 너는 몇 가지 의문을 제기 했다. 어떻게 무아인데 윤회를 하는지 뭐 이런거였는데, 아마도 내가 이렇게 대답을 했던 것 같아.

“네가 알아들었듯이 무아란 것은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가 없어서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뜻이잖아.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에게 집착을 하지. 그 집착을 하는 마음이 죽은 뒤에도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윤회를 하게 된단다. 불교에서는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그것이 태에 찾아와서 임신이 된다고 본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부모의 생식세포만으로 사람이 태어나는 걸까? 그렇다면 너하고 네 동생들하고 셋이 다 왜 그렇게 다른 거지? 너희들을 보며 엄마는 유전자가 아니라 어떤 타고나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단다.”

내 얘기가 와 닿았는지 너는 이렇게 말했어. “저는 오늘부터 불교 신자예요. 어떻게 불교를 믿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기독교를 믿을 수 있겠어요?”

네가 아들로 와 주어서 언제나 고마웠지만 그 어떤 순간보다 그때 그 순간이 엄마는 잊혀지지가 않는구나, 너에게 정말로 고마웠다.

얼마 전에 전화로 네가 보초를 서다가 무료해서 걷기 명상을 하다가 큰일 날뻔 했다는 말을 했었지. 군법당에서 배운대로 ‘들어 올림, 옮김, 내려 놓음’ 이렇게 알아차리며 걷기를 하다가 너무 집중한 나머지 차량이 들어오는 걸 몰라가지고 깜짝 놀랐다고. 그래서 다시는 하면 안 되겠다고. 그 말을 들을 때 엄마도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실은 너무 좋아서 막 자랑하고 싶었어.

네가 보낸 편지를 보니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께 편지를 쓸 때는 그저 잘 있다고만 쓰고 동생한테 쓸 때는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다르게 썼더구나. 네가 어른들 걱정 안하게 하려고 그렇게 편지를 썼구나 싶어 너의 깊은 배려에 또 한번 감동했다. 네가 자대배치를 받고 좋은 선임을 만났다며 나에게 고맙다고 말한 것도 매일 너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를 추어주는 말이라 역시 고마웠다.

이번 주말이면 그리운 아들 첫 면회를 가는 구나. 그때까지 잘 지내고.

엄마는 오늘도, 내일도, 네가 무사히 군복무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도한단다. 내가 너의 엄마라는 게 정말 뿌듯하다. 아들로 와 주어 진심으로 고맙다. 사랑한다.

아들 바보 엄마가 

 

-수상 소감 
가족을 더욱 화목하고 행복하게

한주영
현대불교신문사로부터 이번 감사편지 공모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공모에 낼 때는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설마 될까?’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실제로 당선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감이 나지 않아 몇 번이고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우선 행사를 준비해주신 현대불교와 수효사 효림원 등 관련기관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편지의 주인공 민규에게 고맙다. 또한 첫 번째 손주여서 누구보다 애지중지 키우신 시어머니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돌아가신 시아버님께도 감사드린다. 마침 올해 5월 16일은 아들 민규의 양력생일과 시아버님 기일이 겹치는 날이다.

이번 제사에 상패를 올려 드린다면 시아버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 같다. 역시 우리 아들이 효자란 생각이 든다.

이번 편지 공모전에 응모하면서 편지를 남편과 함께 읽고 고치기를 몇 번을 하였다. 남편과도 함께 자식 키우는 동반자로써 더욱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 같다. 수상 소식을 듣고 남편은 자기가 도와준 덕분이라며 기뻐했다.

이번 기회를 빌어 더 많은 분들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가족을 통해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얻기를 바란다.

다시한번 우리 가족을 더욱 화목하고 행복하게 해준 현대불교사와 사회복지법인 수효사 효림원을 비롯한 동산반야회, 불교여성개발원, 공림공양회, 여여원과 심사를 해 주신 동국대 법산 스님, 불교평론 홍사성 편집인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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