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감사편지 대상- 강희숙 씨

백 권의 책보다 만 마디 격언보다
아버지 모습이 더 큰 가르침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깊은 고마움 다 표현 할 수 없어
그저 엎드려 큰 절 올립니다.

 

▲ 그림 박구원

아버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의 옛 모습이 더 자주 떠오릅니다. 높은 지붕 위에 서서 페인트칠을 하던 모습, 무거운 짐을 나르던 모습, 사시사철 페인트가 묻은 작업복을 입고 계시던 모습, 까맣게 탄 얼굴,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고 남아있던 손톱과 손등의 페인트 흔적들…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한때는 이 모습들이 싫어서 외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자식들을 위한 아버지의 헌신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때였지요. 그 때는 일만 하는 아버지를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대학 입학 때문에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성적은 시원치 않았고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굳이 학부모 상담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 전체 학부모가 거의 다 상담을 하러 온 터라 저도 어쩔 수 없이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지요.
“선생님께서 진학 상담해야 한다고 학교에 오래요.”
제가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습니다.
“다른 애들 부모님들은 다 온대요.”
저는 날카로운 말투로 아버지께 쏘아붙였습니다. ‘꼭 와야 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씀드릴 생각이었는데 괜히 딴 소리가 나오고 만 것이었습니다.
“바쁘면 오지 마세요. 자식보다 일이 더 중요하잖아요. 대학이고 뭐고 안 가면 되니까요.”
쾅! 저는 그대로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무리 기를 써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몹시 초조해하고 있던 저는 제 자신에게 해야 할 화풀이를 아버지께 쏟아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참 햇빛이 쨍쨍한 날이었습니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2층 교실 창문에서 봤습니다. 아버지… 부르려던 제 입을 막은 것은 같은 반 친구들의 수군거림이었습니다.
“저기 봐. 누구야? 누구 아버지야?”
“흑인 아냐? 얼굴이 진짜 까맣다!”
“어디? 어디?”

창가에 몰려 든 같은 반 친구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아버지를 보면서 조잘댔습니다. 쨍쨍한 햇살을 받으며 운동장을 걸어오는 아버지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양복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고 계셨지요. 항상 봤던 페인트가 묻은 작업복 차림이 아니었습니다. 그 낯선 하얀 셔츠 때문이었을까요? 아버지의 얼굴은 정말이지 새까맣게 보였습니다.
학부모 상담이 한창이던 때라 그 즈음에는 학교에 학부모들이 많이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제 부모가 보이면 창가로 달려가 엄마, 아빠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아니 친구들의 수군대는 말을 들은 순간, 창가에서 얼른 옆으로 숨어버렸습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제 얼굴을 확인하고 손이라도 흔들까봐서요.
교무실 창문으로 담임선생님 옆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봤습니다. 아버지는 들고 온 음료수를 선생님께 건네셨지요. 하얀 페인트가 점점이 묻은 아버지의 까만 손. 저는 눈을 돌려버렸습니다. 일을 하다가 급히 옷을 갈아입고 오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차라리 오지 말든가, 올 거면 손이라도 좀 씻고 오지.’ 저는 속으로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깨끗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온 친구들의 아버지를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교무실에 들어가려던 저는 그대로 돌아서서 교실로 가 버렸습니다. 그 날 학교에서 저는 한 번도 아버지를 아는 척 하지 않았습니다. 두리번거리며 저를 찾는 아버지를 봤지만 저는 문 뒤에 숨어서 아버지가 교문을 나설 때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어리석고 못난 자식을 용서해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아버지가 얼굴을 새까맣게 태우면서 일했던 그 노력이 아니었다면 저희 자식들은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앞으로 딱 일 년만 살다가 죽게 된다면 당신은 당신의 꿈을 이루겠느냐, 1억을 받겠느냐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꿈을 이루겠다, 하더군요. 내 인생이 일 년밖에 안 남았다면 세상에 내 이름 석 자 남기고 죽고 싶다, 하고 싶은 것 해 보고 죽어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 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들의 답이 나왔습니다. 젊은 사람들과는 반대로 아버지들 대부분은 1억을 받겠다, 라고 답했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저는 텔레비전을 뚫어지게 쳐다봤습니다. ‘나이가 들면 꿈을 이루는 것보다 돈을 더 좋아하게 되는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저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죽으면서 처자식들한테 뭐라도 남겨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 돈으로 자식들이 저 하고 싶은 것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1억이라도 남겨주고 갈 수 있다면 웃으면서 죽을 수 있겠다, 라는 아버지들의 대답을 듣고 말이지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부모의 마음자세를 한 치도 갖추지 못한 철부지였던 것입니다. 앞으로 일 년밖에 못 산다면 당연히 꿈을 이루어야지, 하고 속으로 답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가족을 위한 마음보다 제 자신을 위한 마음이 더 큰 것을 확인하고 보니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늘 자식이 먼저였던 아버지의 모습이… 누군가 아버지께 이런 질문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버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으셨겠죠? 주저 없이 돈을 택하셨을 것입니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킬 수 있는 그 귀한 돈을 말이지요. 돈이라는 이름의 희생을 말이지요.
머리가 하얗게 센 지금도 아버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는 좀 편히 쉬시라고, 맛있는 것 드시고 좋은 데 구경도 다니시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고개만 젓지요. 지금도 아침이면 일터로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시는 아버지. 묵묵히 일에 몰두하는 아버지를 보면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백 권의 책보다 만 마디 격언보다 아버지의 모습이 더 큰 가르침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아버지처럼 살아가리라,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리라,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아버지!
무슨 말로도 아버지에 대한 깊은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아버지 앞에 엎드려 큰 절 올립니다.
아버지의 못난 자식 올림 


수상 소감
내 반성문…‘아버지처럼 살자’ 다짐

 

강희숙

5월이면 유독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부모와 친구뿐만 아니라 난처한 일을 당했을 때 말없이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얼굴까지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그 때 자신이 했던 그 일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하겠지요. 이번에 편지를 쓰는 시간들은 오롯이 그런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편지란 것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쓰는 반성문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쓰는 동안 내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으니까요.
이번에 이 편지도 아버지께 직접 배달이 된다고 했다면 어쩌면 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의 그 못된 마음,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말로 뭔가를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쑥스러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더욱 이 편지는 아버지께 전하는 글이 아니라 제 자신의 깊은 반성이 담긴 글이자 앞으로 아버지처럼 살겠다는 각오가 담긴 글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큰 바람이 하나 생겼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밤을 새워 쓴 편지의 수신인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는 바람. 그렇게 되려면 아버지처럼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이런 좋은 대회를 마련해서, 저에게 이토록 큰 깨달음의 시간을 갖게 해 주신 현대불교신문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너무나 큰 상을 주신 것에 뭐라고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주최 측과 심사위원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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