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 교수, 법정 스님 5주기 추모전

30년 법정 스님의 인연 화폭에

5월 18일~26일 길상사 설법전서

회고집 〈법정을 추억하다〉도 출간

 

▲ 고현 교수
불교에 심취해 있던 20대 후반의 미술학도였던 청년은 전람회에 부처님 수인과 발자국을 그린 작품을 연 2회 출품했다. 전람회장에서 만난 기독교인 선배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 어디 아픈가? 작년에는 부처님 손바닥을 내놓더니 올해는 발바닥을 내놓네.” 그의 말에 청년은 화가 끓어올랐고 결국 다툼이 일었다. 이후 청년은 결심했다. 작가 혼자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넘어 불교미술의 대중화를 이루어야겠다고. 하지만 그의 마음 안에는 여전히 자신을 비난한 선배에 대한 미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법정 스님은 어느날 그에게 물었다. “자네 아직도 그 선배가 미운가?” 청년은 아무말 하지 않았다. “자네 20대에 일찍이 한소식 했구만. 그 선배야말로 자네 눈을 키워준 선지식인이네. 미워하지 말게”

스님의 말씀에 청년의 마음속에는 일대 의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그리고 청년은 결심했다. ‘불교 미술의 현대화, 불교디자인의 개척화’를 이루어야겠다고.

고현 교수(조선대 디자인학부·맑고 향기롭게 광주 본부장)〈사진〉가 5월 18일~26일 길상사 설법전에서 법정 스님 5주기 추모 전시 ‘불일암 추억’을 연다. (사)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와 길상사 주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법정 스님 5주기 추모 전시로 30년 동안 스님을 모셔온 고현 교수의 추억을 담아냈다.

작가는 1981년 봄 법정 스님과 불일암에서 인연을 맺었다. 법정 스님의 속가 조카 현장 스님(보성 대원사 회주)의 소개로 법정 스님의 불일암을 찾게 된 고현 교수는 스님에게 “자주 찾아 뵈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스님은 “3대 1”이라고 답했다. 세 번 찾아가면 한번 정도밖에 만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개의치 않았다. 작가는 결제 기간을 피해 불일암을 찾았다. 스님의 말씀처럼 세 번 찾아가면 한번 정도 스님을 뵐 수 있었지만 불일암을 찾는 것만으로 그의 삶에도 작품에도 변화가 일었다.

▲ ‘법정 스님의 의자’를 소재로 한 ‘향월’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일깨워준다.
인기척이 없으면 없는 대로 주인 없는 암자에서 한 두 시간씩 적요의 뜨락을 서성거리곤 했다. 산죽이 바람을 만나 대잎끼리 부비는 소리도 지켜보고, 후박나무 가지 사이로 떠오른 창백한 달빛도 만져보고, 풍경소리 아득하게 점을 찍으며 멀어져 가는 여운도 담아 오면서 갈 때마다 몇 점의 스케치는 꼭 건져오곤 했다.

그러한 화상들이 그대로 화폭으로 옮겨졌다. 늦은 봄 진달래 속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로, 물안개 호수 위에 그림자 같은 여름날의 조계산 자락으로, 텅 빈 암자의 뜨락에 이리저리 날려가는 만추의 낙엽들로 표현 되고, 얼음 달 사이로 계절보다 앞서 떠나는 철새들의 여운도 함께 하면서, 차 한 잔의 향으로 사유의 뜰을 넓혀가던 침묵의 방으로 탄생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법정 스님의 의자’를 소재로 ‘삼매향’과 ‘향월’은 법정 스님을 추억하기에 충분하다. “스님께서는 늘 머리 깎고 중이 되지 않았으면 목공 일을 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스님은 점심공양을 끝내고 나무를 가지고 뚝딱거리며 무언가를 만들어 내곤 하셨죠. 두벌 잠 즉 낮잠을 쫓기 위해서라고 하셨어요. 이 의자도 스님이 장작을 가져다가 손수 만드셨죠. 늘 달맞이 꽃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 감상하셨어요. 스님의 의자는 당신의 무소유적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불일암의 4계절을 작품속에 고스란히 담아내며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일깨워줄 것이다.

한편, 고현 교수는 이번 전시와 함께 30년 회고집 〈법정을 추억하다〉를 펴낸다. 30년 가까이 법정 스님을 모시면서 느낀 개인적인 소회를 정리해 놓은 이 책은 스님의 유지를 지키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냈다. 5월 18일 전시 오프닝과 함께 출판 기념회를 갖는다. (02)741-4696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