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정각원 교직원 법회 월호 스님

▲ 월호 스님은 …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를 받고, 쌍계사 조실 고산 큰스님 문하로 출가했다. 쌍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 선원서 정진했으며, 고산 큰스님으로부터 강맥을 전수받았다. 또한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겸 행불선원 원장으로서, 불교 대중화를 위해 경전교실, 힐링캠프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화’ 관찰법… 일어나는 마음에 코멘트를 하라
화 내려고 할때 인지하면 관찰자 될 수 있어
‘화’ 없애고 행복해 지려면 ‘행불수행’ 하자


동국대 정각원 교직원 법회
월호 스님(행불선원장)

현대사회는 ‘분노 조절 장애’라는 말이 생길 만큼 화를 참지 못해 스스로와 상대를 위험에 빠트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화는 삭이면 병이되지만 터트리면 업(業)이 되는 것이다. 행불선원장 월호 스님은 4월 14일 동국대 정각원 교직원 법회에서 ‘화(火)는 화(禍)를 낳는다’는 주제로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강의했다. 월호 스님은 “화는 공덕을 태우는 불과 같다”며 “화를 내기 전에 스스로 화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화가 일어나려고 하는구나!’라는 것을 인지시킬 때 화를 객관화하게 되어 비로소 화를 다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리=박아름 수습기자

화는 화를 낳는다.
요즘에는 ‘화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가 현대인들의 화두입니다. 얼마 전에 MBN <동치미>라는 프로그램에서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 화를 다스리는 법을 기획할 만큼 사회적인 화두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지금 화를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화는 공덕을 태우는 불과 같습니다. 공덕은 쌓기는 어렵지만 까먹기는 쉬운 것입니다. 화는 불과 같아서 매일 쌓은 공덕을 하루아침에 태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기 성질에 안 맞는다고 살인을 하고, 남대문에 불을 지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화를 너무 삭이는 것이 문제이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분노 조절 장애라는 말이 생길 만큼 화를 표출하는 것이 사회적 물의로 번지고 있습니다. 화는 참으면 병이되지만 터트리면 업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화는 관찰하면 사라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근기에 따라서 화를 바라보는 방법을 달리 설하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이가 ‘천당과 지옥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부처님은 하근기의 사람일 경우에는 천당과 지옥이 있으니 열심히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중근기의 사람들에겐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들은 다 공한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라 작용만이 있을 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상근기의 사람에게는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 쓰기에 달렸으니, 마음을 좋게 쓰면 천당의 문이 열리고 나쁘게 쓰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근기에 따라 화를 관찰하는 방법은 일어나는 마음에 스스로 코멘트를 붙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화가 일어나려고 하는 마음 모습을 미리 발견하는 것이며 이것을 초기 관찰형이라고 합니다. 중기 관찰형은 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후기 관찰형은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할 줄 아는 것이며, 말기 후회형은 화를 이미 내 버린 후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의 씨앗을 삼아야합니다. 행복으로 이르는 두 가지 길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복(福) 닦기’와 ‘도(道) 닦기’입니다. 좋은 얘기 듣고 좋은 책 읽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힐링 받았다는 느낌은 들 수 있지만 돌아서면 허황됨을 느끼게 됩니다. 밖에서 오는 모든 것들은 일시적인 마취적 행복을 줄 수는 있으나 내 자신에게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개인에게 진정한 행복은 소유가 늘어나거나 욕망이 줄어들 때 찾아옵니다. 우리는 소유가 늘어날 때 행복을 느끼고, 어떠한 것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릴 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젊은 거사님이 제게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을 다니는 분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기에 이유를 물으니 괴로워서 못 다니겠다고 합니다. 동료 여직원 중에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서 한참 잘 되어가고 있던 와중에 다른 남자 동료가 끼어들어 사이를 훼방 놓고 오히려 둘이 더 잘 지내게 됐다면서, 둘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나서 다닐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 앞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관찰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르쳐줘도 잘 안 되지요. 연습을 한 번도 안하다가 하려니 힘든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평상시에 연습을 충분히 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 갑자기 될 리가 만무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 관찰’이라는 말 자체가 일반적으로 어렵게 다가갈 수가 있습니다. 마음 관찰은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어떻게 닦느냐, 마음을 스스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라본 마음에 스스로 자신의 코멘트를 붙여주는 것입니다. 화가 일어나려고 할 때 “내가 화를 내려고 하는 구나”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 그 순간 화를 객관화하게 되고 내가 관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화가 수그러들 것입니다. 평상시에 연습을 하면 됩니다. ‘숨 보기’ 연습만 해도 됩니다. 손가락을 코 아래 두고 코로 숨을 깊이 쉬고 깊이 내쉽니다. 자기 마음이 코 밑에 있다고 생각하고 집중을 합니다. 들이 쉴 때 들이 쉰다, 내쉴 때 내쉰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이 연습을 하면할수록 호흡이 길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호흡이 길어진다는 것은 마음이 안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연습해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이지요.
마음은 실체가 없습니다. 아지랑이와 같고 물거품 같은 것입니다. 실체가 없고 작용만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마음이 아프다, 괴롭다 하면서도 아무도 마음의 정체를 모릅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종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도 정체를 알아야 잡을 수 있습니다. 마음은 실체가 없으니 정체를 알기도 어렵고, 자신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내가 모으려고 의도하는 곳으로 갑니다. 한 데 집중시키는 것으로 모이는 겁니다. 그러니 코로 숨 쉬며 한 곳으로 모으면 마음이 코 밑으로 모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기본적인 수행법이기도 하지요. 들숨 날숨을 관찰하며 내 마음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으면 외부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즉 자기 마음을 다스리면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이 외부가 아니라 내 안의 욕심 때문이었다, 고통의 근본원인은 내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화를 객관화하면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대승기신론에는 화를 관찰하는 단계가 나옵니다. 마음의 생주이멸(生住異滅)에는 아예 화가 생기지도 않는 구경강, 화가 생기려고 할 때를 아는 수분강, 화가 생겼음을 자각하는 상사강, 화를 이미 낸 후에 깨닫는 것은 범부라고 칭했습니다. 화를 낸 후에 아는 것은 이미 늦습니다. 그러니 화를 내는 첫 번째 단계에서 내 화를 스스로 바라보고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 꽃은 잡화(雜花)다
연꽃은 부처님의 꽃이 아닙니다. 보살의 꽃입니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보살의 꽃입니다. 부처님 꽃은 사실 잡화(雜花)입니다. 모든 꽃이 부처님 꽃인 것이지요. 즉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이 뜻이 바로 화엄의 사상입니다. 이에 따라 잡화엄경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법화경은 연화경입니다. 보살도를 닦는 경이지요. 만물 천지에 부처님 꽃이 아닌 꽃은 없습니다. 민들레는 장미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각각 자기 고유의 성품과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이 세상이 나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약초가 아닌 풀은 없다는 말은 너도 나도 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바로 화엄사상의 실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다시 흥하기 위해서는 화엄사상이 살아나야 합니다. 숭유대불정책 때문에 조선 때 화엄사상이 죽어갔으나,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이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뜻은 모든 사람들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모두 부처행을 수행하는 행불을 행하여야 합니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 아는 만큼 절하고 가진 만큼 베푸는 것이 바로 행불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애플 기업 창시자 스티븐 잡스는 화엄경의 선지식은 아니지만 현대의 선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스티븐 잡스는 출가를 하려고 했습니다. 잡스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의 선원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선사에게 출가하고 싶다 하니, 선사가 사회생활을 하며 선의 이념을 구현하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밖으로 나가 차린 회사가 지금의 애플입니다. 잡스는 선 사상을 제품에 반영 했습니다. “완벽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뺄 것이 없는 것이다”는 애플의 기업 마인드는 바로 선이며, 공(空) 사상인 것입니다.
리셋! 크고 밝고 둥글게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완전하다”고 외쳐보십시오. 달은 항상 보름달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어쩔 때는 초승달로도 보이고, 반달로도 보이지만 보름달은 항상 크고 밝고 둥그렇습니다. 우리마음도 그렇습니다. 본마음은 항상 크고 밝고 둥급니다. 살다보니 어둡고 찌그러질 때도 있긴 하지만, 찌그러진 마음을 리셋(Reset)시키는 연습을 해서 다시 내 마음을 크고 밝고 둥글게 하면 됩니다.
여러분 ‘태평가’라는 노래를 아시지요? 그 노래에는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짜증을 내어서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남들이 나를 즐겁게 해주지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남들을 즐겁게 해주면 됩니다. 친구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면 됩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주인공의 마음입니다. 부처님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구걸하지 말고 내가 먼저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웃으십시오.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웃음으로써 웃을 일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주인공만이 할 수 있습니다. 웃으면 웃을 일이 생깁니다. 자기가 자기를 활기 있게 만드는 것이 인생의 주인공입니다. 구걸하는 마음 연습하면 거지 종이 되고, 베푸는 마음 연습하면 부자 주인이 됩니다. 부처님에게 바라지만 말고 ‘부처님 덕택으로 이렇게 행복하니 부처님에게 이제 갚겠습니다’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피를 받는 방법입니다.
행불 하십시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해보세요. 아는 만큼 잘하고 가진 만큼 베푸십시오. 성불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행불이 바로 성불입니다. 행복해지려면 행복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푸는 것이 ‘복 닦기’의 실천이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바로 ‘도 닦기’의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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