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생 중생을 조복받는다면

보살로 화해서

천백억화신으로서 응신(應身)이 돼서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응해 주시느니라.

 

▲ 그림 최주현

 칠포세대가 되었는데

질문 얼마 전에 국립국어원 추가 신조어에 삼포, 오포세대에 이어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 구매 포기에 더해서 꿈과 희망까지도 버린 칠포세대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기가 힘든 젊은이들에게 이 마음 법을 전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마음을 내야 그들을 이끌어 줄 수 있을는지요.

답변 어떤 분들은 와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스님! 지금 당장 몸이 아파서 죽겠고 가환이 들끓는데 무슨 공부를 하라고 그러십니까? 그리고 주인공에 맡기라고 그러십니까.” 이럽니다. 주인공에 맡기는 일이 바로 그런 고통을 없애는 일이라고 수없이 말을 해 줬는데도 말입니다. 자기가 엎드러졌으면 자기에게 일어날 힘도 있는 거지 일어날 힘이 없다면 엎드러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마음으로 사랑, 의리, 도의 이런 것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항상 같이해 주는 그 마음, 어찌 그것을 여러분이 모르십니까?

여러분 중에는 지금 그 참된 도리를 의심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겠죠. ‘당신은 그렇게 했으니까 그럴 테지만….’ 하는 사람도 있겠고 ‘당신은 그렇게 하면서, 정말 그러면서 저런 말을 하는 건가.’ 하고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겠고, 무조건 알지 못하면서 믿는 사람도 있겠고, 아주 다양할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호히 거짓이 아닙니다. 일가친척이나 동네 사람이 만약에 극단에 처해서 고통을 받고 있을 때에도 스스로 한생각을 낼 수 있다면 그대로 그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를 해 줄 수 있는 여건이 됩니다. 여러분이 깨치면 무주상 보시를 할 수 있지만 깨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주상 보시를 못합니다. 무주상 보시란 한생각에 보시가 되는 것이죠. 굶는다 할 때 쌀 한 됫박 쌀 한 가마 갖다 주는 것보다 무주상 보시를 해 준다면 그 집이 저절로 펴져서 밥을 먹게 될 때 영원히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할 말을 다 못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그건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 도리를 다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는 분들도 계시겠지마는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지금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다는 거 여러분이 아시죠? 경제난에 허덕이고 가정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고만 있을 게 아닙니다. 걱정할 게 없어요. 왜? 여러분이 여러분의 참주인공을 믿기 때문에 거기다가 다 놔 버리고 여기에서는 진정코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믿고 들어갈 때 비로소 해결이 될 테니까요. 각자 걱정할 게 없고 한생각 던지면 던지는 대로 그대로 물바퀴 돌아가듯 슬슬 돌아가면서 그것이 다 자연스럽게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 가정과 사회와 내 몸, 내 아들 딸 다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산 사람만 이끌어 나가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생명들도, 지옥에 있는 것도 다 건질 수 있는 그런 여건을 여러분이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이 돈을 많이 들여서 잘 차려 놓는다고 해서 영혼들이 잘 차려 놔서 잘 먹었다고 그러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이 물 한 컵 가지고도 우주 삼라만상을 대처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떡 하나 가지고 유생(有生) 무생(無生)을 다 먹이고도 또 그 떡 하나는 되남을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번뇌심과 보리심이 둘이 아닌지

질문 한생각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는 그 마음을 이름 붙여서 생멸심이라고 한다면은 그 생멸심과 적멸심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번뇌심과 보리심이 둘이 아니라고 이렇게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까?

답변 그 관습에 의해서 본래심이 번뇌심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 생각 저 생각이 나지 않으면 광대하게 발전을 할 수가 없어요. 고정된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돌아갑니까? 이 마음 저 마음, 이 생각 저 생각이 나기 때문에 광대하게 부처를 이룰 수도 있고 광대하게 창조를 해낼 수도 있고, 창조력을 기를 수도 있고 계발을 할 수도 있고 발전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선도 있고 악도 있고요. 그러니까 번뇌가 아니라 그냥 내 마음에서 그냥 그저 수행하는 데 발전하게 하기 위한 재료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재료. 나를 발전시키기 위한 재료.

항상 내가 그런 말을 하죠.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겁니다. 동짓날 팥죽을 쑤는데 팥죽 방울이 수없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죠? 주걱으로다가 요것도 문수! 요것도 문수! 요것도 문수! 하고 쳤더라. 이건 무슨 까닭인가 했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말로만 그렇게 하지 그 까닭을 모른단 말입니다. 내 몸뚱이가 팥죽 솥이라면 팥죽 방울이 일어나는 대로 그걸 번뇌라고 하는데, 번뇌라고 하기 이전에 모든 게 그 속에서, 한 속에서 화해서 나오는 업식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재료로 알아야죠.

속지 말고 모든 건 한군데서 나온 거 한군데에 제대로 되놔라 하는 소립니다, 그게. 이것도 문수, 이것도 문수 하고 친 게 자기 마음의 주장자로서 자기한테서 나오는 것마다 거기다가 놓으라고 그런 방편을 쓴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는 자리이며 일어나는 그 마음 번뇌도 망상도, 또는 도라는 이름도 없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이 그대로 여여하게 걸어오듯이,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걸어오듯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레공법이죠. 우리 마음과 마음이 서로 합해서 불이 들어와서 가정이 밝게 살고 사회가 밝게 살 수 있는 것이니 바로 한마음에 밝게 불이 켜졌을 뿐입니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질문 평생의 꿈인 내 집 장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집을 고르려면 방향도 봐야 하고 수맥도 봐야 하고 이사를 가려면 날짜도 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겁을 줍니다. 스님, 이런 것들이 모두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을 하는데 마음이 불안합니다.

답변 마음이 모든 작용을 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생명의 근본, 이 자체가 영원한 씨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작용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마음대로 마음을 쓸 수 있는 건데 그 습으로 인해 얽매여서 살아요.

어떤 사람이 “스님! 집을 지어야 할 텐데 굴왕신이 내렸답니다. 집을 못 짓겠는데요.” 이런단 말이에요. “이 사람아, 당신이 태어나고부터 이 세상이 있고 집도 짓는 거지 누가 굴왕신이 내렸다고 못 짓게 하던가? 굴왕신이 내렸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굴왕신을 내리게 하는 거다. 그러니까 네 마음이 굴왕신을 내리게 할 수 있는 귀신이야! 네 마음이 귀신 노릇을 하니 어찌 귀신이 안 덤빌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네 마음이 귀신이 아니라면 그대로 지을 것이고 네 마음이 바로 굴왕신이라면 못 지을 것이다.” 그랬죠. 그랬더니 그 해에 집을 짓고도 아무 일 없이, 탈 없이 잘 지냈다고, 고맙다고 하더군요.

마음 하나에 그렇게 엄청난 문제가 생깁니다. 마음으로 발발발발 떨면서 삼재가 들었으니까 부적을 해다 붙여야지, 또 물어봐야지 하면서 온통 난리를 치고 또 살림을 해 나가면서도 잘못될까 봐 겁이 덜컥덜컥 나고, 꿈만 조금 잘못 꿔도 온통 난리가 나죠. 마음으로 말입니다. 지금 먹고살기도 바빠서 죽겠는 세상에 종교마저도 그렇게 허덕지덕 하고 괴로움이 많으니,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그렇게 사니 그게 바로 감옥이지요. 그게 바로 지옥이지 딴 데 지옥이 있고 감옥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신네들 마음을 마음대로 못해서 창살 없는 감옥에다가 쳐 넣어 놓고 산하대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이 만들어 놓는 것에 바로 귀신들이 있는 것이지 아니, 누굽니까? 누가 귀신을 만듭니까? 여러분이 귀신을 만들고 귀신을 섬기고 또 귀신한테 말리고 이러는 거죠. 하늘이나 땅이나 산하대지의 일체 만물만생이 여러분한테 그렇게 살라고 했습니까? 누가 그렇게 살라고 강요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49년 설하시면서 여러분한테 그렇게 말씀하셨던 겁니다. 삼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때도 여러분이 계셨고 지금도 여러분이 계신 겁니다. 그러니 마음을 너희 맘대로 하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알고 몸뚱이로 부딪치는 걸 알고, 육근 육진 육식을 다 알아서 모든 물질세계나 정신세계에 둘이 아니게끔 다 돌아가면서 잘 생각을 해서 너에게 이익 하도록 해라. 이익 하도록 생각하지 이익 하지 않도록 생각하지 말라. 남을 이익 하게 생각하면 내게 이익 하게 돌아오고 내가 이익 하게 생각하면 남도 이익 하게 생각해 주고,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바로 그 지혜로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산하대지의 일체 만물만생의,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해서 돌아가는 이 마음이 그대로 지혜로운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불국토가 될 것이고, 악한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바로 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말세 말입니다. 말세가 된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가정의 화목을 지키고 마음의 계발을 숭상함으로써 마음의 발전을 해서 우리가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악행이 벌어지지 않고 모든 애고가 벌어지지 않고, 유전성 영계성이 벌어지지 않게끔 여러분의 마음이 진짜 그렇게 발전만 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정말이지 감사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체 만물만생이 내 스승 아님이 없음을 알게 되고 일체 만물만생의 아픔이 내 아픔 아님이 없음을 알게 되는 거죠. 그래서 높이 보지도 말고 낮게 보지도 말고 자기같이만 본다면 바로 우리가 중용을 하는 것입니다. 정신계와 물질계를 둘로 보지 않는 중용 말입니다.

 

참나와 거짓 나에 대해서

질문 저는 큰스님 책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 너무 와 닿아서 진짜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내가 찾아야 될 나, 참나와 맡기고 놓아야 될 이 가아(假我)와의 차이가 많이 혼동이 옵니다.

답변 가아(假我)도 없고 참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은 안 됩니다. 항상 얘기하듯이 기둥 하나가 이렇게 방편으로 있다면 굴레가, 거기에 끼고 돌아가는 굴레가 있습니다. 기둥은 움죽거리지 않지만 그 굴레는 그냥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돌아가고 있는 그 수레가 역시 댁에서 지금 살고 있는 그거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거를 일일이 가짜 나가 믿고 찾는 거, 또는 진짜 참나가 하는 거 이렇게 따로따로 찾지 마세요. 주인공 했으면요, 그 기둥째 수레째, 내가 찾는 나와 더불어 같이, 지금 여러분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수레에서 굴러 나오는 거와 같습니다. 수레에서 자꾸자꾸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꾸 수레에서 나오는 대로 그 수레에다 다시 집어넣는 겁니다, 지금. 아시겠어요?

그러니 우리가 참선을 하고 또는 참나를 찾으면서 절을 하고 이러는 것만 그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평상시에 앉고 싶으면 앉고, 서고 싶으면 서고,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뭐 똥 누고 싶으면 똥 누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이럴 때 그냥 그 용도에 따라서 내 앞에 닥치는 대로 가는 그 자체가 바로 참선이자 그냥 도예요. 그러니까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그대로 하시란 말입니다, 그대로. 우리가 앉아서 참선 할 사이가 없는데도, 시간이 없는데도 참선 한답시고 시간을 내서 앉았다면 그건 참선이 아니에요. 진짜 참선이라는 것은, 똥 누면서도 진짜 진실히 돌아간다면 이거는 참선이 돼서 그게 공덕이 되는 거고요, 공심(共心)으로 돌아가는 게 공덕이에요. 공심으로,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한마음으로 움죽거리고, 한마음으로 먹고, 한마음으로 살고, 한마음으로 용을 하고, 모두 이러는 것이 그대로 공덕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저것 따지고 이렇게 살고 이런다면 자기를 보기까지, 참자기가 자유스럽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참 힘듭니다. 그러니까 직선적으로 들어가세요. ‘그냥 생활 자체가 당신이 보고 듣고 하고 만나고, 식구들하고 같이 어울리고 사랑하고 돈 벌고 하는 그 자체가, 바로 그 당신 주인공 뿌리에서 나오는 거니깐.’ 하고 거기다가 다 맡기고 믿고 일임하고, 그리고 꺼내 쓸 때는 거기서 또 꺼내 쓰고 이렇게 하세요. 그래서 어느 분이 ‘아드님을 꼭 만나고 돌아가시게 하는 것도 주인공 너밖에 없다.’고 했을 때 감옥에 있던 아드님이 나와서 사흘을 지내고 난 뒤에야, 같이 계시다 돌아가셨다고요. 어때요? 이것이 우연 같죠? 우연이라는 건 없어요. 내가 그냥 생각하고 사는 게 그대로 법이죠.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을 못 하시는 것 같아요.

옛날에도 얘기했죠. 아, 이성계가 꿈을 다섯 가지를 꿨죠. 너무나 기막힌 꿈을 꿨죠. 색경이 그냥 와르르르 깨지는 거와, 꽃이 그냥 활짝 폈다 활짝 지는 거와, 대문에다가 허수아비를 매달아 놓은 꿈과, 까마귀가 까옥까옥하고 짖고 가는 꿈, 이렇게 모두 꿈을 꿨을 때에 기가 막힌 거 아닙니까, 그게. 그럴 때에 무학 대사한테 가서 물어봤어요. 그런 얘긴 다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하자면 말이에요.

그러니까 무학 대사가 어떻게 꿈 해몽을 해 줬는지 아십니까? “당신 생각에 달려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꿈이요, 꿈 꾼 것도 꿈이라. 그런데 그 가운데서 당신 생각하기에 달려 있으니까 당신 마음대로 생각해.” 하고 나서 잠자코 있으니까 야, 까옥까옥 짖는 그 까마귀는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요, 가옥이니까, 색경이 와르르르 깨지는 거는 주변의 백성들이 모두 일어나는 꿈이요, 또 그 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는 것은 열매가 맺는 꿈이요, 또 허수아비를 쳐다보는 거는 백성들이 다 쳐다보고 우러러보는 것이요. 아, 요렇게 딱 말씀을 해 주니까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하하. 그래서 임금 노릇을 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활하는 데 한생각에 생활이 왔다 갔다 해요. 정말입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래서 한생각을 해서 거기다가 맡겨 놓으면은 이 원자에서 입자가 나가서 모두 사람들 그 마음속에 들어가서 조절을 하게 돼 있죠. 아, 이런 비밀도 내가 얘기를 하니 이거 야단났죠. 하하하.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자생 중생을 항복을 받는다면은, 조복을 받는다면 보살로 화해서 천백억화신으로서 응신(應身)이 돼서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응해 주시느니라, 이랬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모든 걸 이 한마음으로서 조복을 받아야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그 이치를 우리가 실천하는 겁니다, 지금.

 

이것이 정말 좋은 징조인지요

질문 오랜 기간을 다리가 근육이 풀려 힘이 없어지는 그런 병을 앓았습니다. 그런데 선원 다니면서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양쪽 발 엄지발가락에 발톱이 나오기만 하면 바스러졌는데 이유를 몰랐죠. 지금도 불편은 합니다마는 어느 날 목욕탕을 가서 보았더니 발톱이 말짱하게 원형을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는 발톱 양쪽이 전부 나와서 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좋은 징조인지요? 저는 남편을 일찍 사별하고 자식들 키우느라 제 개인을 위해서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어서 오직 주인공만 믿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안심하고 자식들을 키울 수 있도록 희망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아, 그거야 물론이죠. 그거야 물론이고말고요. 그래서요, 이 공부라는 게 너무도 좋아서 부처님이 여북하면 ‘세세생생에 내 몸뚱이 고깃덩어리가 없어도 너희가 있다면 내가 있는 것이니까 열심히 그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러라.’ 하고 가르쳤습니다. 이 몸속에 있는 모든 것이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는데 마음은 선장이고 마음내는 거는 제멋대로 내는 겁니다. 도둑질을 하려면 도둑질을 하고 사기질을 하려면 사기질을 하고 좋은 일을 하려면 좋은 일을 하고 마음내는 거는 멋대로예요.

그런데 그 선장이 되는 마음이란 놈은 그 멋대로 내는 마음이 나쁘고 좋고 잘되고 못되고 하는 걸 아는 놈이란 말입니다, 요 마음이라는 놈이. 마음내는 놈이 그렇게 마음대로 내니까 마음이란 놈이 선장이 돼야죠. 알고 있으니까. 그 마음이란 놈이 선장이 돼라, 선장이 돼서 다스려라 이겁니다. 다스려 나가되 그 다스리는 마음이 있다면 이 마음을 이것저것 내게 하는 것은 업식입니다. 즉 말하자면 내 몸뚱이 속에 헤아릴 수 없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입력이 돼 가지고 업식이 돼서 내 몸 안에 잔뜩 들어 있는 거죠. 들어 있으면서 이거 내보내고 저거 내보내고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이렇게 만들거든요.

그런데 내 마음 근본 선장은 요놈이 나쁘게 생각을 하는지 좋게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는 놈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거를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 하고 다스려서 되돌려 놔라 이런 겁니다. 되돌려 놔라 이런다면 어떻게 좋은 일이 생기느냐? 되돌려 놓는다면 업식인 그 마음 의식에 통신이 돼 가지고 ‘아, 이런 거로구나.’ 하고선 그 선장의 뜻에 다 따라 주게 돼 있죠. 이 선장의 마음에 다 따라 주게 돼 있으니까 모자라는 건 채우면서 작용을 자꾸 해 가니까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예전에는 그런 일도 많이 있었어요. 소아마비에 걸려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고 또 뇌염 환자가 많이 성행했을 때 그것을 가르쳐 주었더니 그대로 공부해서 가는 다리가 제대로 되고 지금 성장해서 아주 모 회사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한 사람뿐이 아닙니다. 그렇게 잘 다니고 잘 사니 나 좋고 그 사람 좋고, 세세생생에 좋은 거 아닙니까?

그러니 그거를 본보기로 하고 또 마음을 발전시켜서 자기라는 놈이 그렇게 선장으로 있다는 것도 알았고, 선장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 또 자생 중생들이 다 따라 준다는 것도 알았고, 따라서 행해 준다는 것도 알았으니 점차적으로 가다 보면은 다 자생 중생들한테 항복을 받는 거죠. 예? 항복을 받는다는 그 말 자체가 바로 말일 뿐이지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가 돼서 없어지니까 이거는 항복을 다 받았느니라 이러는 거거든. 나중에는 항복받았기 때문에 항복받은 것도 없고 안 받은 것도 없느니라. 그대로 여여하니라.

그러니 이것이 빨리빨리 안 되는 사람은 ‘저렇게 빨리 되는 사람은 빨리 되는데 난 왜 이렇게 빨리 안 되나?’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공부를 빨리빨리 해야 할 텐데 하는 것도 그냥 놓고 가십시오. 이제 공부를 하다 보면 빛도 보일 수가 있고 어떤 땐 들릴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올 수도 있고 이런 경지가 다가옵니다. 그럴 때 ‘아, 나를 이렇게 이끌어 주고 공부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보이고 들리고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되돌려놔야 합니다, 또. 오신통(五神通)도 벗어 놔야 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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