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불교 70년 - 역경불사의 현재와 미래

불교계에서는 교육, 포교, 역경을 3대 불사라고 지칭한다. 이 중 역경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경전을 번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현대까지 한국불교의 경전 대부분이 한문으로 이뤄져 있기에 역경 사업은 중요한 과제로 꼽혀왔다. 이러한 역경은 최근에 들어 디지털 화 등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띄고 있다. 한국불교의 현대화를 통해 불교가 쇠락해 하는 것을 방지하고 다시 그 중흥을 도모한 것이다.
노덕현 기자 noduc@hyunbul.com

통합종단 3대 역점 사업 ‘역경’
1964년 동국역경원 출범, 석학 대거 참여
2000년 〈한글대장경〉 184책 완간 결실
빨리어 경전 번역 초기불교 활성화 계기
개역 및 디지털화, 역경사 양성 과제

2010년 10월 7일 남양주 봉선사에서 열린 <인본욕생경> 시역고 강평회에서 스님들이 번역본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역경에서는 이처럼 한두사람에 의존하는데서 탈피해 교차 검증 등을 통해 정확성을 기하고 있다.

광복과 함께 찾아온 역경사업의 시작
불교는 우리나라에 있어 외래종교가 아닌 우리문화의 뿌리로 작용되는 만큼 우리말 경전을 갖추는 일은 한국불교의 막중한 사명으로 다가왔다. 고구려를 시작으로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래 불전 번역과 해석은 시대에 따라 큰 변화양상을 띄었다.

최초 한글 번역은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로 시작됐으며 세조 당시 〈법화경〉과 〈금강경〉 등으로 이어졌다. 이후 불교 탄압과 함께 선종의 불립문자 선풍으로 역경에 대한 관심이 적어져 역경불사는 일부 스님들에 의해 근근히 진행됐다.

하지만 광복을 전후해 근현대에 들어서며 역경사업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개화 이후 한글이 일반인들에게도 보급되며 말 뿐만이 아닌 문자로도 경전을 읽는 바람이 인 것이다. 이를 인식한 근현대 선지식인 용성 스님, 만해 스님, 탄허 스님 등은 역경불사를 진행했다.

1964년 7월 21일 동국역경원 개원식 당시 모습. 운허, 석주, 법정 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이 대부분 참여했다.
종단 차원의 첫 역경사업
하지만 광복 이후 진행된 개인적인 역경은 대장경과 같은 다양한 분야와 광대한 양을 소화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종단적인 역경불사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50년대 불교정화운동 이후 1962년 출범한 통합종단은 역경을 3대 사업으로 책정하고 이해 역경위원회를 설립했다. 초기 역경위원회는 6개 분과로 나누어졌다. 기획에는 석주 스님, 번역에 운허 스님, 증의에 자운 스님, 윤문에 법정 스님, 운영에 범룡 스님, 유통에 석정 스님 등 당대 내노라 하는 스님들이 참여했다. 이 중에는 이름을 올린 스님뿐만 아니라 활발히 활동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새로 출범한 통합 종단은 만성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때문에 역경사업에 자금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법이 제정되고 역경위원 진용까지 갖추었지만 예산이 편성돼 실제 실행에 들어간 것은 1963년부터다. 종단에서 역경비라는 명목으로 예산이 처음 편성된 것은 1963년 11월 18일 열린 제5회 정기중앙종회에서다.

이런 가운데 1963년 6월 〈우리말 팔만대장경〉이 출간됐다. 이는 일부를 간추린 불교성전 형태였다. 대한불교청년회가 ‘성전발간준비위원회’를 결성해 1962년 4월부터 추진한 불사로 편찬위원 대부분이 역경위원들이었다. 즉, 〈우리말 팔만대장경〉은 근현대 불교계 전체가 역경불사에 나선 결실이었다.

역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며 재원마련을 위한 후원회가 결성된다. 먼저 지리산 묘목을 재배하던 지환 스님의 농원을 재원으로 결성된 법륜회와 울산 종현 스님 등이 후원에 동참했다.

하지만 기구는 만들었지만 분규와 부채에 시달렸던 조계종은 국고지원을 받기 위해 동국대 산하로 역경원을 두기로 했다. 당시 정부지원을 받으려면 법인이어야 하는데 조계종단의 형편으로는 무리였다. 이에 동국대 산하에 기관을 둔 것이다. ‘동국대 부설 역경원’이 아닌 ‘동국역경원’이라고 한 점은 독립법인을 할 때를 기한 것이었다. 그 때 마침 정부에서 고전국역사업에 관심을 갖고 추진 중이었다.

동국역경원의 탄생
역경위원회는 1964년 7월 동국역경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4년 동국대 부설 동국역경원이 설립된다. 초대 원장은 운허 스님이 맡게 된다.

동국역경원이 발족될 당시 역경사업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과 열의는 대단했다. 그 취지문을 보면 동국역경원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간지스 강변에서 장엄하게 울려 퍼지던 부처님의 목소리가 메아리 친지도 아득히 천육백년! 최근에 이르러 역경에 대한 관심이 날로 짙어지고 있음에 따라 몇몇 경전들이 옮겨지고 있으나 그 것은 아무런 계획성도 없는 질서 이전의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간지스 강변에서 메아리치던 그 때의 그 뜻을 귀에 익은 오늘의 우리 목소리로 바꾸어 돌려주자는 것이다. 겨레의 가슴의 이 뜻을 전한다.’

이후 동국역경원에서는 1965년 6월 한글대장경 제1집 〈장아함경〉을 간행한 이래 2001년 해인사 소장 팔만대장경을 한글로 완역했다. 지속적인 역경사업에도 역경불사에 동참한 이들의 생각은 하나로 귀결됐다. 바로 역경인재 양성이었다. 역경을 전담하는 인력을 키워내는 것은 지속적인 역경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선결과제였다.

1972년 11월 발간된 우리말 <불교성전> 관련 기사
역경인재 양성을 위한 노력
당시 역경불사는 고려대장경과 고려대장경에 포함되지 않는 삼장과 한국고승찬술불서를 모두 번역하려면 최소 50년이 걸린다고 보였다. 당시 역경위원들은 대부분 50세를 넘은 상태였다.

조계종은 1966년 수원 용주사에 역장을 설치하고 1967년 5월 22일 제1기 연수생 10명을 선발했다. 연수생들은 30:1이란 경쟁률을 뚫은 수재들이었다. 출가자 5명, 재가자 5명으로 구성된 이들로 무비 스님을 비롯해 성타 스님(불국사 주지), 월인 스님(법주사), 송원 스님(서울 정각사), 주인 스님 이었으며 재가자는 권영대 전 단국대 교수, 이민식 한국학연구원 전문위원, 송성주, 채영일, 이재수 씨 등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역장을 든든히 후원했던 관응 스님이 용주사 주지에서 물러나며 역장은 용주사에서 철거된다. 1969년 종단은 역장을 개운사로 이전토록 결의했으나 개운사 측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1971년 봉은사에 역장이 변경 지정됐고 2기 연수생을 받았지만 얼마못가 문을 닫게 된다. 봉은사가 사찰토지문제로 내홍을 겪으며 역장 운영에 난맥이 생겼기 때문이다. 1년 반의 연수과정을 거친 9명에게는 연수증이 주어졌다.

역경불사의 인재양성을 위한 역장과 마찬가지로 동국역경원도 재정부족으로 난관에 부딪혔다. 국고보조금에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1966년 매년 1300만원씩 72년까지 지원 받기로 결정돼 77년까지 총 75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 기간 동국역경원은 매년 7~8권의 〈한글대장경〉을 번역 출간했다. 하지만 1980년대 지원이 끊키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어 1980년 11월 역경불사의 원을 세웠던 운허 스님이 입적하자 역경원은 위기에 부딪친 것이다.

역경불사에 원을 세운 이들은 법인이 필요하다고 여겼으며 1984년 11월 동국역경사업진흥회가 발족됐다.
이후 1993년 운허 스님의 상좌인 월운 스님이 동국역경원장에 취임하고 1994년부터 4년간 정부가 지원을 하며 다시 활기를 띄었다. 월운 스님이 앞장서 1995년 동국역경원후원회가 만들어져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정부 지원과 함께 94년에 26책의 〈한글대장경〉이 간행됐으며 95년 28책, 96년 32책, 97년 30책 등 4년간 총 116책이 간행됐다. 그럼에도 고려대장경의 번역불사는 큰 일이었다. 정부의 추가지원과 동국대 및 후원회 지원 등으로 총 184책의 〈한글대장경〉이 2000년 36년만에 완결된다.

현재 동국역경원은 동국대 교책연구기관인 불교학술원 산하기관으로 있으며 기획부와 편집부, 상임연구원 등을 두고 있다. 한글대장경을 완간한 현재 역경원은 불교고서 번역을 비롯해 콘텐츠를 인터넷 자료로 제공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역경 예규의 제정과 번역사업
1960년대 이후 역경불사의 가장 큰 성과는 역경예규를 제정한 데 있다. 번역을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하기에 이 규칙에 따라 원고를 정리하고 교정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한글대장경〉을 편찬하며 국어학자인 외솔 최현배, 일석 이희승 박사 등의 동참 하에 운허, 법정, 서경수 교수 등은 역경예규를 제정한다.

‘문장은 구어체 현대문을 사용한다’ ‘문장은 순한글로 쓰되 고유명사나 범어, 번역하기 어려운 술어는 해당 한자를 괄호 안에 표기한다’ 등으로 지금도 범어표기법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차로 한자음을 그대로 따라적는 방법을 취하는 것으로 보아 이당시 표기법은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또 중요불교용어 270개(추후 600개로 늘어남)를 우리말로 풀어썼다. 죽살이(생사), 바퀴돌이(윤회) 등 현재는 사장되어 쓰이지 않는 말들이 많지만 한글화에 대한 제정 당시의 노력과 열정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2012년 11월 열린 4부 니까야 완간 간담회를 연 초기불전연구원의 각묵 스님(왼쪽)과 대림 스님
불교 각계에서의 역경불사
1990년대에 들어 중앙승가대가 역경불사에 뛰어든다. 중앙승가대는 1993년 역경사를 양성하는 불전국역연구원을 설립하였다. 이후 교양강좌에도 역경분야를 도입하고 현재 역경학과를 개설해 인재양성에 나서고 있다.

조계종 차원에서는 지관 스님이 총무원장 재직시절이던 2006년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를 발족시키고 원효, 의상, 지눌 스님 등 한국 대표 고승 문집 90여 종을 선별한 〈한국전통사상총서〉를 편찬했다. 〈한국전통사상총서〉는 한글번역과 함께 영역도 함께 진행됐으며 ‘다자간(多者間) 번역시스템’을 도입해 정확하게 번역하려 노력한 첫 사례였다. 번역자 한두 사람에게 의존하는 기존 관행을 탈피해 공동으로 번역과 교정 작업을 진행했으며, 한글역자와 영역자가 교차 검토하고 검증하면서 국내외 연구성과를 최대한 반영했다. 〈한국전통사상총서〉는 2011년 7월 우리말본으로 13권에 이어 2012년 영역본까지 출간됐다.

이와 함께 〈표준금강경〉 또한 편찬됐다. 1924년 용성 스님이 한글로 번역한 금강경 이후 100여 종이 넘는 한글금강경이 유통되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불학연구소의 주도하에 2년 간의 학술회의와 공청회 등을 거쳐 2009년 1월 20일 편찬됐다. 〈표준금강경〉 편찬은 개인이 아닌 공동번역의 결과물로 번역의 신중을 기하기 위해 여러 번의 윤문 단계를 가졌다는 의의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글경전번역사상 처음으로 운문화를 시도했다는 점은 가장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다양한 곳에서 역경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역경분야에도 발전을 이끌었다. 그동안 자료수집과 번역자료 공유 등에 난항을 겪었던 역경불사에서 인터넷은 큰 힘이 되었다. 역경사업과 함께 1993년에는 대장경의 디지털화를 위해 고려대장경연구소가 발족돼 전산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 빨리어 번역 돌입
한문경전 번역과 함께 초기불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1980년대 이전에는 대부분 일본 불교학자들의 저서를 재번역하는 단계였지만 1987년 선방 수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고요한 소리’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꾸준히번역한 책들을 보급하고 있디. 스리랑카 불자출판회에서 간행되는 〈보리수 잎〉, 〈법륜〉, 〈금구의 말씀〉 등을 펴냈다. 이들 책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제공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인도 등에서 유학했던 스님과 불교학자들이 귀국하였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초기불전 연구에 필요한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등을 습득한 학자들이 동참하며 초기불전 번역이 활기를 띈다.

전재성 박사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도 초기불전 번역의 중심 역할을 했다. 1989년부터 초기불교 원전 번역의 원을 세운 전재성 박사는 1997년 세계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인 리차드 곰브리치 박사의 승인을 받아 한국협회를 열고 10여연간 역경사업에 매달려 빨리 4부 니까야와 함께 빨리 율장 등을 번역했다.

2002년 빨리 삼장의 한글 완역을 발원하고 세워진 초기불전연구원(원장 대림)은 원장 대림 스님과 각묵 스님이 2005년부터 5개년 계획을 3차로 진행하고 있다. 1,2차를 진행해 디가 니까야 등 4부 니까야와 논장 등과 함께 〈아비담마의 길라잡이〉 〈들숨날숨에 마음 챙기는 공부〉 〈네 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을 펴냈다.

2011년 7월 12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한국전통사상총서〉 봉정식. 〈한국전통사상총서〉는 교차검증을 비롯한 공동번역의 산물이었다.
역경의 현대화 과제
한국불교계가 역경불사를 시작한지 50년이 흐르는 동안 시대에 따라 역경의 방식도 변해왔다. 한글대장경 또한 개역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현대시류에 맞는 역경사의 양성, 역경의 디지털화 등이 과제로 꼽히고 있다.

동국역경원에서 완간한 한글대장경은 다시금 현재의 언어로 재구성돼야 한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과제에 앞서 언어 표현을 통일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문을 단순히 한글로 옮기는 데서 벗어나 다양한 현대적 언어로 해석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통일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계종 교육원과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2006년부터 교육협력을 체결해 한국불교융복합학과(일반대학원 과정)과 불교한문아카데미를 신설해 한문불전 번역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또 불교학술원은 ABC사업을 통해 불교기록문화유산을 디지털화 해나가고 있다.

그동안의 역경불사가 국고지원에 의존해온 만큼 동국역경원의 역경후원회 활성화를 비롯해 각종 후원조직을 활성화하고 다양한 법보시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 또한 불교계의 남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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