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古典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군자의 유교적 마음 수양 방법을
10개 그림으로 해설한 ‘성학십도’

핵심 사상 ‘敬’, 마음의 집중 의미
평정심 유지 강조… 명상과 유사
佛·儒 관통한 명상문화 뿌리 체감


▲ 퇴계 이황(1501~1570)의 영정. 조선 성리학자로 주리론(主理論) 전통의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조로 숭앙된다. 그는 도덕적 수양을 학문의 최고 목표로 삼았으며, 특히 경(敬)을 강조했다. 〈성학십도〉는 이황만의 독특한 ‘경’ 사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지금부터 730여 년 전 고려시대에 일연 선사는 그 유명한 〈삼국유사〉를 출간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삼국유사〉 기이(紀異)편 고조선(古朝鮮)장에 ‘단군신화’가 들어있는데, 그 내용은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정서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단군신화’에는 곰이 사람 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도 우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사람이 된다는 말은 주민등록이 되어있느냐를 따지는 얘기가 아닌 것을 한국인이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또 하나의 예는 삶의 방식으로 제시된 ‘홍익인간’ 사상은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념이 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외에 한국인의 공통적인 사상 기반인 ‘천지인 삼재’ 사상도 ‘단군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단군신화’ 만큼 우리 민족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 고전은 어디에도 없다는 결론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 5천년 역사를 관통하면서 여러모로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학자로 퇴계 이황 선생을 꼽을 수 있다. 선생이 남긴 대표 저술은 〈성학십도〉인데, 찬찬히 살펴보면 일연 선사의 ‘단군신화’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에는 ‘사람은 하늘에서 왔으며, 따라서 하늘답게 살아야 한다.’는 사상이 들어있는데, 그 사상은 퇴계 이황 선생의 핵심사상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단군신화’에는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잡념을 갖지 말고 오직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집중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성학십도〉의 내용을 한 단어로 말하라면 ‘경(敬)’인데 그것은 집중을 통한 자기 수양의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단군신화’와 〈성학십도〉는 시대를 뛰어넘는 정신적 연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학십도〉는 퇴계 선생이 68세 되던 1568년에 선조에게 올린 글로서, 성인 또는 성군이 되기 위한 유학의 수양철학을 열 가지 그림과 해설로 작성한 명저이다. 서문에 해당하는 ‘성학십도를 올리는 글’로 시작해, ‘태극도’에서 ‘숙흥야매잠도’까지 10개의 그림과 해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의 마음과 수양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퇴계 사상을 ‘경’ 사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성학십도〉의 핵심적인 내용이 주로 ‘경’에 대한 설명으로 다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스스로 “십도는 모두 ‘경’으로써 주를 삼았습니다(十圖皆以敬爲主焉).”라고 밝혔고, 그 내용 또한 그러하다. ‘경(敬)’의 일반적인 의미는 ‘공경’이지만 선생은 그것을 ‘집중’의 의미로 썼다.

“경(敬)을 하는 방법은, 마음을 반드시 깨끗하고 엄숙하게 한곳에 집중하여 보존하고,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이치를 궁구해야 합니다.”

‘경’은 기본적으로 집중 명상법을 뜻하는데 학습의 모든 과정에 빠짐없이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또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남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경우에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그때 더욱 엄숙하고 더욱 ‘경’을 해야 하기 때문이며, 은미하게 혼자 있는 곳에서 자신을 살펴야 하는 것은 그때 더욱 집중하고 더욱 고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학습을 함에 있어 ‘경’으로 집중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그것을 일상생활에도 지속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그림을 볼 때는 마땅히 그 그림에 오로지 집중하여 마치 다른 그림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한 가지 일을 잡아 실천할 때도 마땅히 그 일에 오로지 집중하여 마치 다른 일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늘 그렇게 하고 오늘도 내일도 계속 이어서 해야 하며, 새벽에 정신이 맑을 때에 그 뜻을 풀어서 깊이 음미하기도 하고, 평소 사람을 대할 때에도 몸에 배도록 길러 나가야 합니다.”

그림 얘기가 나오는 것은 〈성학십도〉가 열 개의 그림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그림 ‘태극도’를 볼 때는 나머지 아홉 개의 그림에는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그 그림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여덟 번째 그림인 ‘심학도’의 설명에서 ‘경’의 원리와 목표를 언급한 부분을 살펴보자.

“배우는 자는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흐트러짐이 없게 하고, 몸가짐을 가지런하고 엄숙하게 하며, 그 마음을 늘 고요하게 수렴하는 일이 최대한 익숙해지면, 그 공부가 극진해져서 성인의 경지에 여유 있게 들어가는 것도 역시 어렵지 않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경’ 명상이 비단 정좌를 통해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상의 일거수일투족이 ‘경’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병이다.”

이 말은 〈성학십도〉에 나오지만 퇴계 선생이 처음 한 말은 아니고, 주자가 임천 오씨의 말을 인용한 것을 강조하여 옮긴 것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을 ‘주일(主一)’이라 하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을 ‘무적(無適)’이라 하는데, 이 둘을 모아 ‘주일무적’이라 한다. 이는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다른 곳에 가지 않도록 하는 ‘경’, 즉 집중 명상법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면 ‘경’의 궁극적인 비전은 무엇일까? 퇴계 선생은 그것을 ‘천인합일’로 설명한다.

“경을 하는 태도가 일상생활에서 떠나지 않으면 중화위육(中和位育)의 공이 이루어지고, 덕행이 떳떳한 윤리에 벗어나지 않아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미묘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중화위육’이라는 말은 〈중용〉에서 “‘중(中)’과 ‘화(和)’를 이루면 온 세상이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길러진다.”고 한 말을 축약한 것이다. 즉, “치중화(致中和)면 천지위언(天地位焉)하며 만물육언(萬物育焉)하니라”에서 네 글자를 따서 ‘중화위육’이라 한 것이다. ‘천인합일’의 비전을 말한 것은 ‘경’을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면 곧 하늘마음이 되고, 하늘사람이 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퇴계의 사상이 ‘단군신화’에 제시된 ‘사람이 하늘과 하나’라는 천인일체(天人一體) 사상과 통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유학의 근원이 원래 요·순 임금을 비롯한 동이인의 사상이기 때문에 ‘단군신화’와 한국 유학이 일맥상통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학이 중국에서 체계화되고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기한 점은 유학이 조선에서 독특한 사상으로 재정립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유학의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의 그것을 뛰어넘어 더욱 독창적이고 새로운 시각으로 유학을 재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몇 가지 근거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의 유학은 ‘경’을 중심으로 사상이 전개된다. 유학은 공자의 핵심사상인 인(仁)이 중심이다. ‘인’은 5천년 한국사상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홍익인간’과 동의어이며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퇴계, 율곡 등 조선의 대표적 유학자들은 ‘인’이 아닌 ‘경(敬)’을 중심으로 유학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율곡 선생은 〈성학집요〉에서 자기 수양뿐만 아니라 가정을 바로잡고, 정치를 바르게 하는 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율곡 또한 자기 수양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였고, 자기 수양 방법으로서 ‘경’에 가장 큰 방점을 찍고 있다. 그는 ‘경’을 “성인이 되는 학문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표현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경’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다운 사람으로의 변화 방법’을 가장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하늘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꿈이었다면 그 꿈은 조선시대를 지나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둘째, 조선의 유학은 성선설(性善說)을 당연하게 여긴다. 중국 유학에는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 유학에서는 성선설을 옹호한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사상의 원뿌리인 ‘단군신화’에서 천인일체의 원리를 규정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이 5천년을 이어 우리의 얼이 되었다.

셋째, 조선 유학의 자기 수양 프로세스는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 되는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퇴계의 〈성학십도〉와 율곡의 〈성학집요〉를 보면 자기 수양의 과정이 대체로 다음의 3단계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1단계 : 입지(立志) - ‘도’를 이루겠다는 뜻을 세운다.
2단계 : 경(敬) - 현재에 집중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가꾼다.
3단계 : 덕인(德人) - ‘경’의 결과 내면의 변화를 실현하여 ‘덕’을 갖춘다.

이 3단계가 ‘단군신화’에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 있는지 살펴보자.

1단계 :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원(願)을 세운다.
2단계 : 사람이 되는 방법으로 ‘불견일광백일’이 제시된다.
3단계 : 곰이 여자의 몸을 얻는다.

‘불견일광백일(不見日光百日)’, 즉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는 것은 일념 집중 명상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곰이 사람이 된 것은 곧 사람다운 사람, 하늘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조선 유학의 자기 수양 과정과 비교해 보면 그 단계와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웅녀가 환웅과 결혼을 하는 과정을 퇴계의 천인합일에 비유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웅녀는 땅의 사람이며, 환웅은 하늘의 사람이니 둘의 교합은 천인합일이 아니겠는가? 단군신화의 곰 이야기는 모두가 은유로 되어 있고, 퇴계를 비롯한 조선의 유학자들이 유학 사상을 전개하는 방식은 보다 직접적이다. 그런데도 3단계 자기 수양 프로세스는 맞춘 듯이 일치성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인의 ‘얼’은 그렇게 5천년을 이어왔다. 천인일체나 홍익인간 사상은 그렇게 한국 사상 전반에 깊게 투영되어 있다.

‘단군신화’ 자체가 일연 선사의 저술에 포함된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에 이미 한국 유학과 불교의 접점을 밝힌 셈이다. 나아가 불교의 명상법과 그 목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또 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불교의 명상법은 아주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체계적이며 구체적이다. 〈안반수의경〉은 불교의 명상 수행법을 가장 체계적으로 설명해 놓은 경전일 것이다. 경전에는 명상에 대한 구체적 방법으로 수식(數息) - 상수(相隨) - 지관(止觀) - 환(還) - 정(淨)으로 이어지는 5단계를 제시한다.

첫 단계의 수식(數息)에서 세 번째 단계인 지관(止觀)까지는 그 내용은 다르지만 ‘집중’의 방식이 적용되는 명상법이라는 점에서는 퇴계 선생의 ‘경(敬)’과 근본 원리가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불교의 명상법은 ‘환’과 ‘정’에 이르러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모든 경계가 사라져, 지혜와 열반에 이르는 것이 그 목표다. 달리 말하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퇴계 선생이 ‘경’의 궁극 목표로 제시한 말한 ‘천인합일’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다.

부처가 되는 방법이나 하늘이 되는 방법이나 결국 하나로 통한다. ‘단군신화’와 〈성학십도〉와 불교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한국인의 명상법을 중심으로 불교, 유교, 단군신화 삼자를 비교하면 별첨의 표〈표1 참조〉와 같다.   

이쯤 되면 5천년 한국인의 삶이 명상과 함께 이어져 왔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국의 문화와 정신 등 깊은 뿌리를 들여다보면 그 근원이 명상으로 통한다. 일연 선사, 원효 대사, 퇴계 선생, 율곡 선생 등 귀중한 유산을 우리에게 전해준 선현들의 삶과 뜻을 생각해 보면 옷깃이 절로 여며진다. 후손에게 대대손손 소중한 우리의 얼을 계승·발전시켜 전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한다면 그분들의 사상에서 그 과제의 키워드를 찾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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