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中

 적요하고 무심한 모습을 이미지화

맑고 청수한 느낌 전달 받도록 의도

자료 거듭 확인하며 스님 모습 화폭에

여러 의견 듣고 종합… 진영 5점 제작

실존하는 삶의 전형 기록하고자 노력

 

▲ 법정 스님의 눈동자는 새까맣다. 이로 인해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법정 스님 진영2, 종이에 수묵채색, 2012년, 길상사 소장으로 김호석 작가가 제작한 5점 진영 중 하나.

인간은 누구나 온전한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한다. 다만 타인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짐작할 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거울은, 사실 타자의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게 하는 장치다. 우리는 스스로의 판단보다 타자의 시선에 더욱 의미를 두고, 남을 통해 자신을 평가하고 됨됨이를 인정받는다. 그래서 현대인은 거울과 저울의 지배를 받고 살아간다는 말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법정 스님의 말씀은 남의 눈에 비치는 타자의 눈보다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눈이 더욱 진실하다는 점을 알게 하였다. 나는 스님을 통해 자신을 바로보고 성찰하는 내면의 진정성을 확인하였다. 이런 점은 스님의 진영을 그리는데 있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나는 법정 스님 진영 작업을 하면서 출가 전의 모습부터 마지막 절명하는 순간까지의 모습을 샅샅이 살펴보았고 다시 다비식 이후부터 스님을 추모하는 분위기까지를 읽으려 노력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확보한 스님의 생전 모습과 입적 이후 추모 분위기 등의 사진자료를 나의 작업 공간에 빼곡히 붙여, 스님의 정서가 곧 나의 정서와 일상이 되도록 했다. 그러면서 스님만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골똘히 궁구해 보았다. 그렇게 상당기간의 시간이 흐르자 어느 순간 그 분과 내가 마음 속 뿐만 아니라 마음 밖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사진과 책 등 관련 자료를 모두 치웠다. 그리고 붓을 들었다.

나는 나의 눈으로 확인 하고 느낀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형상화하려 했다.

우선 전체적인 형상은 인간이 자신을 성찰 할 때 나타나는 적요하고 무심한 그리하여 몸에 어떤 인위적인 힘이나 긴장조차 없는 모습으로 이미지화 했다. 이는 진영을 보는 자가 그 모습에서 어떤 맑고 청수한 느낌을 전달 받게 하고자 한 의도였다.

또 진영의 얼굴모습은 약간 숙이는 자세로 설정했다. 그것은 스님과 스님을 찾아 온 사람들이 상호 마음의 눈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자 해서이다. 나는 이런 시공간 설정을 위해 스님의 진영 앞에 참배객이 앉아 있다고 가정하고 둘 사이에 교감을 형성할 수 있는 시선의 각도와 교차점을 면밀히 검토하여 현실화 했다. 그러면서 몸과 얼굴의 각도를 약간 틀어 놓아 최소한의 정신적 긴장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내가 스님의 진영에 자세와 눈빛의 각도 이외에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은 동공의 표현이었다.

인물화에서 표현의 중요한 부위중 하나는 눈이다. 눈은 사람의 장기 중 유일하게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대상자의 정신적 깊이와 내면의 삶을 드러내는데 가장 주된 감각기관이기도 한다.

법정 스님의 눈동자와 머리털은 새까맣다. 이로 인해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나는 눈동자에 특징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되어 그 표현에 특히 주의하였다. 동공은 빛이 약할 때 커지고 빛이 강할 때 작아진다. 여기에 비밀이 숨겨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동공은 커진다. 그러나 싫어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물체나 모습을 바라볼 때 동공은 매우 작아진다. 동공이 확대되거나 축소하는 모양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스님의 모습을 그리는데 동공은 크게 그렸다. 그러면서 눈빛은 비스듬히 내려 보는 모습과 조응하도록 했다. 스님께서 바라보는 현상이나 사물이 매우 선하며 긍정적인 힘과 향기로운 눈빛을 주고자 함이었다.

스님은 눈썹이 거의 없었다. 유전적인 요소로 이해된다. 그래서 눈썹 부위가 도드라져 보여 자기 논리와 신념 등이 강한 인상을 만들어 낸다. 눈썹의 주된 기능은 순간적으로 변하는 자신의 심리와 감정 상태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데 있다. 눈썹이 있으면 이마의 피부 움직임을 멀리서도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기능한다. 스님의 경우는 표정과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가 없다보니 다른 인물을 그릴 때 보다 인상의 특징을 잡는데 더 어려웠다.

스님의 진영은 모두 5점 제작했다. 현재 길상사 진영각에 모셔져 있는 초상화와 추모제에 사용하기 위한 전신 초상화 2점 이외에 3점을 더 제작하였다. 이렇게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된 연유는 길상사 주지이신 덕운 스님의 숙제 때문이다. 작은 지적을 반영하다보니 진영만 5점이나 그렸다. 심지어 주지스님께서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조차 다시 그려야 했다. 나는 퇴짜를 맞은 그림에서 스님의 눈을 의심한 적도 있었지만 그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림을 주문하는 자의 의견을 존중하려 했고, 진영을 모시는 일에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저 스님을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으로 모시게 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사실 유사한 모습과 동작으로 한정된 하나의 인물을 여러 장 그린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인내와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또 결국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여러 점의 법정 스님 초상이 남게 되었으니 그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님의 초상화 작업에 매달린 기간은 수행의 과정과 유사했다.

개인적으로 지난하고 팍팍하던 때에 스님을 주제로 한 작업들은 오히려 약이 되었다.

나는 지난 몇 년 힘든 나날을 보냈다. 이런 가운데 분노와 증오, 슬픔도 삶의 중요한 버팀목이며, 헛딛은 발 길 하나도 삶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나의 문제조차 그림 속에 남기고자 했다. 실존하는 삶의 전형을 종이 위에서 살아 숨 쉬게 하고 싶어서다.

 

▲ 절정. 무채색 꽃을 통해 색 없는 색, 맛 없는 맛, 소리 없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유려한 것임을 법정 스님은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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