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아름다운 사찰 ② 양산 천태사

고즈넉한 천태사 대웅전과 경내모습
원효대사 창건, 경봉 스님 등 당대 고승 주석
16m 크기 초대형 마애석불 감탄사 ‘연발’
병풍처럼 펼쳐진 암벽아래 위치, 웅연폭포 일품
천수천안 관음보살 굴 불사 한창, 5월 완공법회

해마다 3월말이면 매서운 추위를 이겨낸 매화나무가 곱게 꽃망울을 시샘하듯 앞다퉈 터뜨린다. 매화는 춘화중 봄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 전령사다. 겨우내 모진 삭풍과 한설(寒雪)을 견디며 꽃망울을 부풀린 매화나무는 봄기운이 퍼지는 3월 초부터 하나 둘씩 꽃부리를 펼친다. 사람들은 꽃샘바람 속에서 피어난 매화의 절개와 그윽한 향을 느껴야 비로소 상춘을 실감한다. 이를 사진에 담기 위해 몰려드는 사진가들과 상춘객도 적지 않다.

매화의 명소는 전국에 꽤 있다. 그중 낙동강변 한 작은 마을은 이맘때쯤 눈부신 화엄법계로 탈바꿈한다. 흔히 ‘원동 매화마을’이라 불리는 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리가 그곳이다. 뒤로는 토곡산(855m)에 등을 대고, 앞으로는 낙동강 도도한 물길을 굽어본다.

이 마을 주변의 산비탈과 강 언덕, 논두렁과 밭둑, 민가와 기찻길 옆은 매화가 만개할 때면 흰 눈이 내린 듯 온통 새하얗다. 낙동강 바람이 매화나무 가지를 흔들 때마다 때아닌 눈이 흩날리곤 한다.

원동면 원리 일대 매화밭은 70여 년 전인 일제강점기에 처음 조성됐다. 날씨가 따뜻하고 햇볕이 잘 드는 양지가 대부분이라 매화나무를 재배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한다. 원리에 속한 여러 자연부락 중에서도 원동, 관사, 삼정지 마을에 매화밭이 많다. 특히 바로 옆에 낙동강 물길과 KTX 열차가 질주하는 경부선 철길을 끼고 있는 삼정지마을의 순매원 풍광이 가장 인상적이다. 순매원 뒤쪽의 1022번 지방도변에서는 매화밭, 경부선 철도, 낙동강 물길이 하나로 어우러진 진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오랜 옛날의 원동은 신라와 가락국의 국경에 자리했다. 당시 육로와 뱃길을 감독, 관리하는 작원관원(鵲院關院)이 자리잡고 있어 ‘원이 자리한 마을(洞)’이라는 뜻의 ‘원동’으로 불리게 됐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한양-충주-문경새재-청도 등을 거쳐 부산 동래까지 이어지는 영남대로 길목에 자리잡은 교통의 요지였다. 최근 옛 모습으로 복원된 작원관 건물은 원래 관리들의 숙소 겸 검문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낙동강변의 작원나루를 오가는 사람과 화물에 대한 검문도 여기서 했다. 유사시에는 낙동강을 거슬러오는 왜군을 방어하는 요새로도 활용됐다고 한다.

16m크기의 초대형 마애아미타대불이 웅장하다.
밀양시 삼랑진읍과 양산시 원동면에 걸친 천태산(630.9m)은 천태호를 품고 있으며, 이 곳에 천년고찰이 계곡을 끼고 둥지를 틀고 있다. 바로 천태사이다. 이 사찰은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경보·대휘·경봉 스님 등 당대 고승들이 주석했던 유서깊은 곳이다. 특히 천태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밀양부사 박진이 이 일대에서 왜적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퇴각한 슬픈 역사가 전해진다.

고갯길 중간 병풍처럼 펼쳐진 암벽 아래에 위치한 천태사는 고풍스런 멋은 그리 느껴지지 않지만, 주변 암봉과 여러 건물이 조화를 이뤄 풍광이 수려하다.

또한 절집 위쪽 암벽서 40m 높이로 떨어지는 웅연폭포의 물줄기는 가슴을 뻥 뚫리게 할 만큼 시원스럽다. 천태사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량수궁에 있는 16m 크기의 대형 마애불인 아미타대불이다. 자연 암벽인 20m에 새겨진 천태사의 대표적 성보다.

그 옆에 협시보살로 왼쪽에는 관세음보살님이, 오른쪽에는 지장 보살상이 있다. 특히 무량수궁 왼편 바로 아래에는 ‘소원 석굴’이 있는데, 중창주인 주지 진우 스님이 천일 기도(하루 16시간 기도) 정진중 현몽 중에 발견한 자연불이라고 한다. 3월 30일 기자가 방문했을때는 무량수궁 오른편 아래에 천수천안 관음보살 굴을 만들기 위한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양산 천태사 대웅전 전경. 멀리 무량수궁 마애불이 보인다.
한달 뒤에 완공 기념법회를 연다고 한다. 무량수궁도 2009년 6월 28일 점안법회를 했으며, 2004년에 시작해 5년에 걸쳐 완공됐다. 그 앞에 가지런히 줄지어 펼쳐진 영탑도 장엄함을 연출한다.

무량수궁 불사에 대해 주지 진우 스님은 “먹고 즐기는데만 관심이 높은 중생들을 위해 방편적인 방안으로 마련했다. 불교는 상품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하지만 상품화 할 줄을 모른다. 무량수궁도 불자들에게는 기도처로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불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절벽을 파서 조성된 전각은 존자 독성각으로 독성존자, 나반 존자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매화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 전령사다. 천태사 경내는 매화를 비롯해 벚꽃, 동백 등 온통 화엄법계를 이루고 있다.

 

주변 가볼만한 곳

▲양산 관사마을
관사마을은 원동역을 조금 지나 토곡산(해발 855m) 끝자락에 터를 잡고 낙동강을 굽어본다. 포인트는 관사마을 강변에 자리 잡은 ‘순매원’. 토곡산 자락 끄트머리를 휘돌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S자형 기찻길, 순백의 매화나무가 한 몸처럼 어우러진 풍광은 이 땅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절경이다. 낙동강과 마을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기찻길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경전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우리나라 기찻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았다. 이곳을 오가는 열차는 KTX, 무궁화호, 새마을호, 화물열차 등 하루 245편. 이중 원동역에는 무궁화호만이 19회 정차할 뿐, 나머지는 강바람과 꽃향기를 흩날리며 그대로 내달린다.

▲원동 매화마을 설중매
3만3058㎡(1만평)에 조성된 농장은 100년생 매화나무 50여 그루를 비롯해 총 800여 그루가 순백의 꽃을 피워 외지인을 불러 모은다. 토종매실을 유기농으로 재배한 후 전통 옹기에서 숙성시켜 만든 각종 매실제품은 그 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음력 설날을 전후해 방문하면 제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꽃을 피우는 이곳 유일의 ‘오리지널 설중매’도 볼 수 있다.

순매원
▲순매원
원동마을 삼정지에 자리 잡은 순매원은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매실농장이다. 삼정지란 과거 세 그루의 정자나무와 세 곳의 인가가 있다고 해서 얻은 이름. 순매원서 매화의 진가를 경험하려면 매화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어야 한다. 백매화, 홍매화가 무릉의 화원인 양 아름답다. 매화 송이를 곁에 두니 매혹적이다. 그 속에서 바람에 날리는 꽃비를 맞아야 매화 숲의 참 진가를 경험하게 된다. 구석구석 화려한 향기가 퍼진다. 꽃구름처럼 황홀한 자태도, 가슴 깊이 스며드는 향이 더해지니 비로소 빛이 난다. 강바람이 실어다 준 매화 향이 코끝에 와 닿으니 고혹적인 향기에 온몸이 아찔해진다. 빨리 걷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한 걸음 옮겨 사진을 찍고 또 한 걸음 옮기면 매화가 유혹하는 탓이다. 순매원에서는 매화 아래 앉아 국수 한 그릇, 막걸리 한 사발에 파전 한 조각을 음미하며 봄날의 정취를 즐겨야 한다. 특히 갖은 고명과 함께 양푼에 말아 내는 잔치국수를 먹는 것은 순매원의 필수 코스다. 맛보다는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다.

▲오봉산 임경대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녀(전지현 분)가 “견우야 미안해. 나 정말 어쩔 수가 없나 봐” 하고 외치던 장소가 순매원 가까이에 있다. 순매원에서 물금읍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오봉산 임경대가 그곳이다. 오봉산 제1봉의 7부 능선에 위치해 낙동강과 그 건너편의 산, 들과 어울려 수려한 산천을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신라시대에 고운 최치원이 낙동강 물에 비친 산 모습을 보고 마치 거울 같다며 시를 읊은 것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순매원에 가면 낙동강의 유장한 물길과 하얀매화, 그 사이를 질주하는 기차의 역동적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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