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上

스님이 마지막으로

떨쳐 버렸어야 할 것이

세상의 명예욕이었는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한계나

인연의 또 다른 모습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면 스님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 놓은

숙제였는지도 모르겠다.

 

▲ 법정스님 진영2(부분), 164x140cm, 종이에 수묵채색, 2014. 스님의 정제된 문학 작품은 나에게 문학이 아니라 법문이었고 화두였으며 미학이었다. 불교를 설파한 방편이었다.

나는 최근 직지사 중암에서 거행된 관응 큰스님 추모비 제막식에 다녀왔다. 운문사 회주 명성 스님께서 제막식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나를 추모비 뒤쪽으로 부르시더니 관응스님과 나와의 인연을 이야기 하셨다. 스님께서 가리키는 내용은 법정 스님이 2008년 지은 글로서 “…김호석 화백이 그린 진영(眞影)에 스님은 이런 글을 남겼다…”는 글귀였다. 법정 스님께서 김호석 이라는 이름을 기록하신 것을 보는 순간 스님에 대한 생각과 인연이 다시금 생각났다.

 

나는 대학 청년 시절 법정 스님을 만났고 스님을 통해 불교를 알아갔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식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고상함, 존엄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스님의 글은 문학적 감염력이 컸다. 감동을 자아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스님에 대해 세상에 전언하는 바는 많다. 그러나 나는 스님을 생각하면 차와 글이라는 측면이 먼저 떠오른다. 우선 스님은 차를 좋아하는 분으로 불교문화에 차가 얼마나 중요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중생들을 일깨우셨다. 다음으로 스님은 불교의 정신을 설하면서 교리보다 이미지를 통해 많이 알리는 역할을 하셨다. 계율을 지키는 승려로서 삶은 깐깐했고 깔끔했다. 스스로 청빈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스님의 말은 힘이 있었고 진실했다.

 

그 후 스님을 본 것은 그분이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 길상사에서 스님의 법구가 운구 되는 모습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스님은 관이 아닌 기다란 판 위에 누운 상태에서 가사만을 덮은 채 몸의 윤곽이 그대로 돌출된 형상이셨다. 무소유를 주창하신 분이 마지막으로 세상과 인연을 정리하며 회향하는 모습에 욕심을 낼 수도 있었으나 훌훌 털어 버리는 파격의 모습을 보였다. 이런 식의 장례가 역사 속에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매우 충격적이었고 그 잔상은 오랫동안 지워지지를 않았다.

 

스님께서 입적하신지 1년이 지날 즈음 법정 스님 문도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길상사 진영각에 모실 스님의 진영을 그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진영과 추모제에 사용할 전신상을 제작하면서 스님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의 그림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전보다 더 많이 스님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법정 스님께 작품을 통해 우리사회를 구제할 메시지는 없는지 물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나는 진영 작업과 별도로 법정 스님을 주제로 한 대규모 전시를 하고 싶었다. 그만큼 스님의 존재는 우리사회에 희망이었고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전시는 광주시립미술관 측이 수용한 기획 초대전(전시제목은 김호석- ‘묻다’였다)으로 2014년 5월 1일~6월 18일까지 한 달 간 열렸다. 전시는 스님의 말씀을 예술 형식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스님의 말씀을 기초로 스님께 법을 구하고 싶은 의미와 내용을 담고자 준비 했다. 그리고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아래와 같이 그림을 그린 화가로서 소회와 목적을 밝힌 바 있다.

 

몇 해 전, 법정 스님의 진영 제작을 의뢰 받았다.

언제나 그렇듯 진영 제작에 앞서 먼저 스님께서 남긴 글들을 찾아 읽었다.

스님의 정제된 문학 작품은 나에게 문학이 아니라 법문이었고 화두였으며 미학이었다. 불교를 설파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은 인간과 자연을 찾아보았다.

이들을 만나면서 불교의 핵심은 나 자신과 사회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발고여락(拔苦與樂)이었다. 그러면서 근본토대가 자정기의(自淨其意)에 있음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초상화 제작에 앞서 먼저 대상자의 면면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과정을 경험한다.

생명의 감동과 실감을 느끼는 것, 그것은 대상자의 본 모습과 전신을 추구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법정 스님을 그리는 과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은 또 다른 대선사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화가로서의 삶이 아닌 수행자의 검박함을 체득할 수 있었다.

수묵화로 스님을 그리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들었다.

선과 그림의 정신적 일치점은 어떤 것인가?

초월적인 무아의 세계는 무엇이며 가능할까?

대자연의 순수한 미감으로부터 초탈할 수 있을까?

화의와 선심이 하나일 수 있는가?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며 하나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그림은 그림대로 진행하도록 하는데 힘과 용기를 주었다.

이번에 내놓는 그림들은 이런 번민과 좌절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놓아 둔 작업 과정의 편린들이다.

나에게 수묵은 간결 명쾌한 해방이었다. 속박이 아니라 자유였다.

작업을 하면서 선과 그림의 극단적 상충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초감각적 세계를 표현하는데 감각적 극단이었다.

형상를 떠나 마음속의 뜻을 기리기란 쉽지 않았다.

선사의 물음에 화의로 답하는 방식이 아닌 그림으로 선사께 묻고 싶었다.

 

나는 그림을 통해 스님이 생각하는 무소유가 어떤 것인지,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면 무소유가 되는 건지,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스님에게서 부드러움을 찾으려 무척 애를 썼다. 그것이 스님이 마지막으로 떨쳐 버렸어야 할 세상의 명예욕이었는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한계나 인연의 또 다른 모습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면 스님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 놓은 숙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누구에게나 갈등은 있다. 그 갈등이 어떤 집단에게는 반목을 조장하기도 하지만 대척을 조화 시키면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나는 법정 스님을 그리면서 스님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보았다. 아울러 그 갈등조차 조화와 균형 그리고 힘의 순기능으로 바뀌는 선한 기운도 읽을 수 있었다.

 

▲ 헌화가(부분), 140x70cm, 종이에 수묵채색,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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