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향기롭게 밑반찬 자원봉사자들

맑고향기롭게의 밑반찬 봉사활동은 … 1998년 외환위기에서부터 시작했다. 노숙자 쉼터와 무료급식소를 마련한 이후 가정에 남겨진 소년소녀가장과 독거어르신 돕기로 확장됐다. 서울 본부의 반찬봉사팀은 서울 성북구 뿐만 아니라 강서구 등 전역에 반찬을 전달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 끼니 거르지 않는 사랑
IMF 노숙인 급식서 시작해
60가구서 현재 450가구로
독거어르신 가정으로 봉사확대
봉사자 대부분 10년 넘은 베테랑
무종교인·이웃종교인 많아
2009년부터 목요일도 봉사 시행


넘치는 사랑 목욕봉사 등에 이어져
청소년-독거어르신 결연 진행
지체장애인 목욕봉사 등 활발
“윗 세대 이해하는 계기돼” 후기


전국 각지서 법정 스님 가르침 실천
광주 ‘공양나눔’ ‘무소유 까페’
부산 5000여 회원 활동, 국내 최다
각계 각층에서 조용한 활동 특징

지난 3월 27일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는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일주문 옆 주차장에 자리한 작은 조리장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였다. 법정 스님의 입적 5주기와 맑고향기롭게 창립 21주년을 맞은 3월, 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에 소속된 자원봉사자들은 여전히 스님의 무소유와 나눔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들은 손을 바삐 놀리며 음식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도움을 기다리는 결식가정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반찬 메뉴는 장조림과 마늘쫑볶음, 결식가정 450가구에 밑반찬으로 제공될 음식들이었다.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들이세요. 교회다니시는 분들도 있구요. 목요일과 금요일이면 자발적으로 모여서 홀로 계신 어르신 가정을 비롯해 소년소녀 가장 가정 등을 찾아 반찬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예진 맑고향기롭게 세상사업 간사는 반찬봉사팀에 대해 소개했다. 맑고향기롭게의 결식 이웃을 위한 ‘밑반찬 조리 및 전달’ 봉사 활동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시작됐다. 당시 법정 스님과 회원들은 실업자가 된 노숙자들을 위해 쉼터와 무료 급식소를 마련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가장의 실업으로 인해 남겨진 아이들과 노부모들의 결식 문제였다. 결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찬봉사를 결심했다. 처음에 60여 가구였던 밑반찬 지원은 점점 수요가 늘어나며 현재 450여 가구를 넘었다.

이 간사는 최근에는 독거어르신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예진 간사는 “고령화로 인해 홀로 계시면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많이 늘었어요. 이분들은 먹거리 걱정이 제일 많습니다. 일주일 분량이 아닌데도 일주일치 반찬으로 놓고 먹는다고 하실 때 많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죠”라고 말했다.

‘맑고 향기롭게’의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이 10년 넘게 꾸준히 자비보시행을 이어왔다. 특히 밑반찬 지원 자원봉사자들은 40대 초반에서 70대 초반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주부들로 구성돼있다. 법정 스님도 생전에 밑반찬 자원봉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 항상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다. 직접 농사지은 감자나 옥수수를 들고 조리장을 방문하거나 자신의 저서에 자원봉사자가 보낸 편지를 소개할 정도였다.

3월 27일 길상사 조리장에서 만든 장조림 반찬을 담고 있는 봉사자들
이날 유난히 바삐 몸을 움직이고 있던 최두리 모둠장은 “법정 스님 생전에는 길상사보다 우리 ‘맑고 향기롭게’ 밑반찬 조리장을 더 아끼셨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최 모둠장은 “어른 스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 한다”며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바쁜 손을 잠시도 쉬게 하지 않았다.

최 모둠장은 “대부분 꾸준히 활동하신 분들이고 주부들이라 솜씨가 베테랑급”이라며 “다들 살림에는 일가견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웃었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장조림 반찬을 조리하던 다른 봉사자는 “바쁜 일이 생기면 못 오기도 하고 가끔 늦기도 하지만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다”며 “우리 같은 주부들이 부담 갖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라며 웃었다.

맑고향기롭게의 밑반찬 자원봉사에서는 종교의 벽도 넘어섰다. 법정 스님의 책을 읽고 길상사를 찾았다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다른 종교인이나 인근 주민도 적지 않다.

2014년 진행된 KTX봉사팀의 김장 도움
13년 넘게 밑반찬 봉사를 해 온 김자현 씨는 “법정 스님의 글을 접하고 다른 이들을 돕고 싶어 길상사를 찾았다. 길상사에서 맑고향기롭게를 알게 됐고 밑반찬 봉사를 하게 됐다”며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봉사자 분들 중에는 불자가 아닌 분들도 많은데 종교를 떠나 함께 어울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반찬봉사 현장에는 멀리 성남시, 용인 등지에서 온 봉사자들이 많았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조리일정에 맞추기 위해 7시에 집에서 나선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이틀씩 아침마다 나서다 보니 처음에는 가족들이 반대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나눔의 기쁨을 알고 함께 좋아합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과 함께 아침에 같이 나서고 있어요.”

장조림 반찬에 들어갈 삶은 계란의 껍질을 열심히 벗기는 한 보살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홍현아 반찬봉사 팀장은 특별한 강요는 없지만 일손이 부족해 조리장 운영이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한명, 두명씩 자원봉사자들이 늘어 지원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맑고향기롭게 밑반찬 봉사는 2009년부터는 목요일에도 진행하고 있다. 홍 팀장은 “우리의 밑반찬 봉사도 하다가 쉬어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건 오히려 스님의 뜻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맑고향기롭게 광주지부의 공양나눔 봉사 모습
각 지역에서 봉사활동 활발
맑고향기롭게는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법정 스님이 1993년 우리 사회에 맑고 향기로운 마음의 연꽃을 피워보자는 뜻으로 종교와 종파를 떠나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주창했다.

1994년 3월 26일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발족 강연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대구, 경남, 광주, 대전 등지에서 뜻 있는 이들의 모임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자발적인 모임이기에 자비보시행은 밑반찬 봉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동물사랑캠페인과 새집 달기, 동물 모이주기, 자연보호활동 등 생태환경운동을 비롯해 독거어르신 말벗봉사, 지체장애아 목욕봉사 치매어르신 도우미, 길상화 장학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맑고향기롭게는 이러한 사업을 세상사업이라 부르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봉사의 기쁨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매월 1회 독거어르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르신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외로움을 달래고 청소년들은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기회를 얻고 있다.

2월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김규은 학생은 어르신들의 삶을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고 후기를 남겼다.

“어르신께서는 말할 사람이 없어 텔레비전을 보며 대화를 하신다고 하셔요. 이 이야기를 듣고 문득 어르신께 필요한 것은 물론 경제적인 지원이나 의료지원등등 형식적인 것들이겠지만, 가장 필요하고 원하시는 것은 외로움을 달랠수있는 우리같은 자원봉사자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람이 그리웠다는 어르신의 말씀에 비록 한달에 한번이지만 진심을 다해 할머니께 내 마음을 전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모임 중 이 같은 활동이 가장 활발히 진행되는 곳은 광주지부다. 1997년 결성된 광주지부는 광주지부는 광주지방법원 인근에 ‘공양나눔의 집’을 마련해 매일 노인과 결식계층을 위한 1000원 밥상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양나눔의 집에서는 매일 1식 3찬이 제공되며 이를 먹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1000원을 기부한다.

이금지 광주지부 운영위원장은 “백반 값은 법정 스님이 생전 어려운 사람을 돕더라도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3월 27일 광주에 개원한 무소유 까페
이들은 16년간 매일 새벽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해 4인 1조로 총 20여 명이 도시락을 마련해 각 복지관의 소외계층에게 전달한다. 광주지부에는 현재 매월 4000kg의 쌀과 반찬이 260여명의 회원과 단체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무소유 까페를 개소하기도 했다. 이 까페서는 간단한 다과와 함께 법정 스님의 책을 조용히 볼 수 있다. 까페 수익금은 공양나눔의 집을 비롯한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된다.

부산 지부의 경우 총 5천 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어 최대 규모다. 현재까지 어려운 이웃 돕기와 자연 보존,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 1천20여 명에게 매달 10만~20만 원의 생활보조금과 함께 밑반찬을 지원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꿈을 키우는 학생 1천4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청소년 자원봉사 활동 활성화도 적극 추진해 있다. 지난 1998년부터 해마다 여름방학 기간동안 중고등학생 1천 명을 모집해 사회복지시설 봉사 활동 등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원봉사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부산청소년자원봉사상을 제정, 매년 시상하고 있다.

활발한 활동 속에서 자원봉사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말한다. 자원봉사자 김용덕 씨는 “얼마 전 돌아가신 지원대상 어르신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갑니다’고 말을 남기셨을때 감동을 받았다”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좀 더 우리사회를 밝게 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말했다.

2014년 열린 맑고향기롭게 20주년 법회
법정 스님의 5주기를 맞은 맑고향기롭게 봉사회원들은 언론이 그저 ‘무소유’만을 강조하는 것 같아 아쉽다는 반응이다. 맑고향기롭게 회원 이유호 씨는 “불교적 깨달음의 사회적 실천 모델이 맑고향기롭게다”며 “깨달음이 사회적 메아리가 되어서 이웃과 나누고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법정 스님의 진짜 정신”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종교인으로서 사회현실에 대해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사회화’를 위해, 산속에만 있지 않고 사회에 나와서 참여하고 나누어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이들은 묵묵히 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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