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불교 - 불교와 복잡계의 과학 그리고 원형사관

상호작용의 자기조직화로 집단 생존
민족문화 근간 형성… 유식 사상
원형사관 바탕하에 새분야 개척

종교적 개념과 수학의 발상

뉴턴의 ‘신의 의도를 밝히는 마음으로 그의 창조물, 자연을 연구를 한다’는 말이 상징하는 것처럼 근대과학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신앙이며 유일신에 대한 믿음이 과학으로 이름만을 바꾼 것이었다. 또한 그의『프린키피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공리, 정의에서 출발하는 유클리드의 엄격한 논리체계『원론』을 본으로 삼고 있다. 서양근대과학은 헤브라이즘의 일원적 사고와 헬레니즘의 논리주의사상의 효과적 결합으로 가능했다.

근대과학은 그동안 신비적으로 여겨온 혜성의 주기성, 조수간만과 달 운동의 관계, 행성의 불규칙운동, … 천체의 비밀을 밝히고 특히 천왕성의 발견은 미래의 천체현상까지도 예언할 수 있음을 믿게 한다. 그러나 눈부시게 발전해 온 근대과학은 한계를 드러낸다. 20세기 최대의 과학업적으로 일컬어지는 상대성원리, 불확정성원리, 불완전성원리의 삼대원리는 한결같이 과학적 진리가 절대적이 아니며 결정론적 철학을 부정한다. 뉴턴해석학은 변수가 제한적인 단순계에서만 유효했으며 삼체문제에선 무력을 드러내고 드디어 푸앵카레는 “수학적 진리가 가설에 불과하다”고 선언한다.

불교는 기독교의 절대주의와 헬레니즘적 논리주의와는 판이한 사상적 기반에서 출발한 업과 윤회의 시간관을 갖는다. 윤회사상은 기독교가 천지창조에서 최후의 심판까지 일직선상으로 흐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며 공(空)의 사상에 중심을 둔 불교사상은 절대성을 부정한 상대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간과 세계의 시작에 관한 물음은 답이 없는 형이상학, 무기(無記)의 대상이며 처음과 끝이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불교철학과 공통의 발상에서 출발한 복잡계의 과학은 근대과학과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과학의 돌파구를 모색한다.

복잡계의 수학

20세기말, 수학은 종전의 수학의 범위를 넘어 결정론과 확률론도 아닌 제3의 수학, 복잡계를 개척하고 카오스적 현상을 대상으로 삼는다. 인간은 수많은 요인으로 구성되는 전형적인 복잡계이며 특히 불교적 업, 윤회, 자기닮음(一卽多, 多卽一) 등의 개념은 복잡계의 발상, 즉 되먹임, 무시무종, 나비효과, 프랙털, 자기조직 등과 공통의 철학을 지닌다. 복잡계의 수학은 불교와는 전혀 관계없이 독자적 발전 경로에 따라 많은 성과를 얻었으며 결과적으로 불교의 중요 핵심사상의 과학화 가능성을 입증한다.

단순계와 복잡계의 시간관은 각각 고유의 역사관을 등장시켰다. 기독교사상이 결정론적 사고가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낳고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마르크스사관에 대응하는 원형사관은 복잡계의 수학과 같은 발상으로 출발했으며 근대과학과 복잡계 과학은 다음의 〈표1〉과 같은 평행구도가 있다.

유식론의 되먹임사상

식(識)은 인식과 마음이며 유식론은 심층의식을 논한다. 오감(눈, 코, 귀, 혀, 피부)으로 감지되는 별개의 정보를 통합하는 마음은 의식이다. 인간이 희로애락을 갖는 것은 의식 다음 단계인 제7식에 해당하는 말나식(末那識) 때문이며 그 뒤에 무의식의 세계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다. 유식론은 프로이드가 말한 억압의 흔적을 종자(種子)로 표현하고 그 의식의 표면에 나올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의 행위의 결과가 종자가 되어 아뢰야식에 흡수되어 다시 현행에 나타난다(종자생현행, 種子生現行). 또한 유식론의 훈습은 향냄새가 옷에 스며드는 양상을 뜻하며 이들 많은 종자가 하나의 성격, 패턴으로 자기조직화하게 됨을 말한다.

집단과 개(個)-되먹임은 간단한 것을 복잡화시킨다

‘자기조직화’는 개(個)와 다(多)의 관계에 관한 복잡계의 개념이다. 가령, 인간의 신체기관 중 눈의 구조는 DNA분자가 수백, 수천 세대에 걸쳐 같은 것을 복제해 온 과정에서 사소한 진화가 누적되어 만들어 낸 기계적인 결과이다. 사소한 조건이 단순한 되풀이의 결과로 기적을 이룬 것이다. 개(個)의 현상이 다(多)에서 카오스를 일으키고 하나의 질서가 자기조직화된 것이다.

수많은 철새나, 질주하는 들소 떼의 움직임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다. 이들 구성요소는 저마다 단순한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전체적인 질서를 이룬다. ‘떼 지어간다’, ‘서로 부딪쳐서는 안 된다’는 욕구가 한결같이 이들 구성원 모두에게 작용하고 있다. 즉 집단에 작용하는 인력(引力, 당기는 힘)과 척력(斥力, 밀어내는 힘) 두 개의 요인에 되먹임이 작용하면서 자기조직화가 된 것이다.

이 현상은 나무의 성장에서도 나타난다.〈그림A〉 개개의 가지는 ① 두 개로 분리된다. ② 나무 가지는 겹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는 나무를 효과적으로 성장시킨다.

구성원의 상호작용, 반복작용(되먹임)이 작동할 때 단순한 개개의 행동이 전체차원에서 하나의 질서를 자기조직화해서 집단의 생존을 유지케 한다. 사회구성원의 단순한 의식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상의 집단행동으로 자기조직화된 것이다.

A. 스미스는 사회복지와 같은 것을 전혀 생각지 않은 ‘낱낱의 경제인의 이기심’이 아무도 생각 못했던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를 부유하게 만든 것을 “보이지 않은 신의 손”에 귀착시켰다. 또한 헤겔은 ‘낱낱의 개인의 합리적 활동’의 결과가 세계정신, 객관적 정신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스미스와 헤겔 등 세계적 지성은 한결같이 개(個)의 단순한 행동이 차원을 달리하는 집단질서의 자기조직화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낱낱의 새, 들소의 단순한 행동이 무리 전체에 차원이 다른 질서를 가져오는 것처럼 개인의 단순한 무의식적 행동?사고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복잡계 이론은 마르크스의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가 된다.”의 명제를 자기조직의 개념으로 과학화한다.

개(個)와 집단의 관계는 개인의 아라야식과 민족적 집단 아뢰야식에도 확대시킬 수 있다. 민족사에 풍토와 지정학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뢰야식이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기 때문이다. 원형론은 민족구성원의 무의식이 민족원형으로 결집되어 역사에 관통되는 에너지가 되어 민족의지를 형성함을 설명한다.(『풍수화』, 김용운) 과거의 역사적 경험은 민족의 업이며 집단차원에서 원형으로 자기조직화 되어 민족의 행로를 생각하는 미래학의 기반을 제공한다. 필자는 복잡계의 수학과 불교철학의 공통기반에서 원형사관을 구상했다.

민족은 생명체, 집단무의식의 전승

세포가 죽음과 탄생을 거듭하면서 생명체를 유지하는 것처럼 민족구성원이 세포가 되어 탄생과 죽음을 거듭하면서 언어와 역사를 공유해가는 민족공동체를 이룬다. 원형의 불교적 표현은 민족차원의 아뢰야식이다. 원형사관은 개인의 아뢰야식(집단무의식)을 민족원형에 확대하여 오늘의 현실에서 역사를 관찰하고 미래를 설정해간다.

민족적 체험의 결과가 민족원형의 종자가 되어 온갖 문화현상을 야기하고 그 결과가 다시 아뢰야에 흡수되는 일이 되풀이된다. 개인 차원의 아뢰야식의 훈습과도 같은 작용으로 원형은 민족문화를 전개한 것이다. 역사적 체험의 결과가 종자이며 훈습됨으로써 원형을 형성하고 그 뿌리에서 오늘의 사회·문화가 꽃핀다. 문화는 원형의 기반 위에 나타나므로 민족 고유의 종교, 예술, 과학, 문학 등이 형성되며 이들 사이에는 공통의 가치 기준이 있다.

원형사관으로 보는 문화사는 끊임없는 되먹임에 의한 변화가 프랙털 구도(一卽多)로 전개된 것이며 저마다 민족은 각 시대의 문화를 마치 꽃송이처럼 만다라적으로 전개해 간다.〈그림B〉 복잡계 수학의 프랙털은 자기닮음이며 불교적 ‘일즉다, 다즉일’과도 같다.

原型(ethno-core)과 元型(archetype) 차이

원형(原型)은 민족의 집단무의식이자 혼이 되어 이를 통해 전통과 문화가 대대로 이어져 간다.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겪은 역사적 충격은 각 시대의 원형의 종자로 각인되어 미래의 역사적 패턴형성에 영향을 준다. 원형 형성과정과 그 잠재력을 밝힌다면 민족 간의 원형충돌 가능성도 예측해볼 수도 있다.

민족이 생명체를 이루고 원형의 자기조직으로 개인의 무의식과는 차원이 다른 문화의지를 갖게 되는 현상은 구체적이다. 필자는 원형(原型)의 개념을 한·일의 수학적 발상 차이에 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민족의 초기조건과 자연환경, 역사적 체험 등과 집단무의식과의 관련성을 밝혔다. (『풍수화』) 원형은 시대마다 고유의 성격(시대원형)을 지니며 유동적이지만 변화하지 않는 부분(초기조건의 충격)도 간직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도 있다.

‘원형’은 민족 의지 결정에 개입하고 그 진로의 결정적 요인으로서 특히 민족 형성시 구성원의 공통경험인 초기조건에 큰 영향을 받는다. 각 시대의 역사체험의 충격이 이전 원형에 가미됨으로서 시대마다 특수성을 지니고 민족어와 함께 되먹임적으로 변화해간다.

원형(原型, ethno-core)은 민족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므로 현실적이며 가변성을 지니므로 이데아적 원형(元型, archetype)과는 전혀 별개의 내용이다.

한편, J. 라캉은 정신분석을 “정신의 변화이론”으로 보고 융의 이데아론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것이 대상을 집단 차원으로 일반화하면 가변성을 지닌 원형(原型)과 교차할 가능성이 있다. 원형사관은 원형(原型)에 관한 변화이론으로서 민족차원의 정신분석이다. 〈표2〉 참조

원형사관은 현실적인 외교, 정치문제 등에 관한 정신분석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최근 한국은 일본에 대해서 역사인식과 위안부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동방예의지국’의 자긍심과 식민지시대의 심적 갈등, 니체가 말하는 원한(resentiment)을 보상받으려는 원형적 욕구이며 외교분쟁이 아닌 원형충돌의 문제다.

원형과 역사전개의 관계

전세대의 민족체험(역사와 문화)은 오늘의 업으로서 현세대의 원형으로 이어지고, 현대의 민족체험(문화 포함)은 종자가 되어 미래의 원형이 된다. 오늘을 사는 한국인은 모두가 미래 민족원형에 책임을 지니며 그 구도가 또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그림C〉

민족문화는 원형의 문화의지에 의한 결과이며 개인의 차원의 교양에 해당한다. 시대마다 문화는 새로운 업을 야기하며 어김없이 새로운 원형의 외피를 쌓아가는 되풀이를 계속한다. 민족신화에 나타나는 초월적인 존재, 인간성은 민족공통의 성격이 초기조건을 반영한 것이다. 원형의 구도는 몇 겹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는 만다라 적이다.〈그림D〉

또한 수시로 동심원의 다중 구조를 뚫고 전, 전, 전 … 세대의 원형이 번득인다. 먼 옛날 마을에서 형성된 원형에 지난날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개입되고 고대의 한국인상을 드러내며 원형과 개인의 업의 구도는 대조적인 대응을 이룬다.

불교철학, 곧 복잡계의 사고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결합시키는 중요한 공통계통개념을 제공한다. 불교가 역사를 외면한 것은 개인의 해탈을 목적을 하는 인류차원의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며 현실적으로 오늘날 이 나라의 불자는 한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존재다. ‘중생의 병은 번뇌에서 나오고 보살의 아픔은 중생이 병들 때 아파한다.(〈유마경〉)’ 다시 말해 중생의 병은 원형의 아픔에서 나오고 보살은 그것을 치유하는 자비심(慈悲心)을 발휘해야 한다. 한국인이 병을 앓을 때 원형사관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원인을 규명하고 불자의 길을 고민한다. 원형론은 불교철학과 함께 민족학의 과학화 등 새로운 지적 분야의 개척을 시도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