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석화백의 화폭속 선지식 - 관응 스님

거침없는 우리 아버지 “중이 이렇게 잘 먹어서야”
관응 스님 “손님 덕”이라며 유쾌히 포용

“무문관 8년에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스님은 말없이 등을 보이셨다

▲ 답변, 125X111cm, 종이에 수묵, 2015, 작가소장. 깨달음과 해탈은 무엇인지, 선은 왜 하는지 끝없이 질문하는 내게 스님은 아무 말씀 없이 몸을 돌려 앉으셨다.

스님은 내 가족에게 무척이나 살뜰하셨다. 거침없는 성격의 아버지와도 제법 말이 통하셨던 모양이다. 연락할 때마다 아버지의 안부를 물으셨고 여러 번 동행을 청하셨다. 스님과 아버지와의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난다.

한번은 스님과 아버지가 여느 때처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셨다. 식탁 위에는 정성을 다해 차린 귀한 반찬이 여럿 올라왔다. 송이버섯과 송이버섯 장아찌, 야생 더덕구이, 양해, 송이버섯 미역국, 산초간장 등이 상을 채웠다. 아버지 역시 특별한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조용하던 식사가 끝나갈 때 아버지는 한 마디 던졌다.

“중이 음식을 이렇게 잘 먹어서 어디공부가 되겠어요? 잡념만 생기지...”

아뿔사! 큰 스님 앞에서 중이라니, 나는 순간 무척이나 놀랐다. 아버지께서 왜 그러실까. 그것도 귀한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저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평소에도 엉뚱한 말로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곤 하셨는데 여기서도 거침이 없으셔서 더욱 난처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저도 손님 덕에 모처럼 포식하고 있네요” 라며 웃어넘기시는 게 아닌가. 이윽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중이란 말은 하대의 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간 일화지만 당시 내게는 무척 아찔한 경험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산길을 거니는데 시자스님인 진관 스님은 “큰스님께서 8년 동안 천축산 무문관에서 지내셨다”고 했다. 산책을 마치고 큰스님 말씀을 따라 정자에 올랐다. 햇빛을 역광으로 받은 단풍이 맑고 투명했다. 나는 꼭 초등학교시절 단풍잎을 따서 책갈피에 넣어 놓았던 생각이 나 기분이 상기됐다. 단풍의 맑은 빛에 푹 젖어 있다가 나는 뒤늦게 무문관에 대한 의문을 쏟아냈다.

“스님 무문관에서 8년을 지내셨다 들었습니다. 문을 잠그면 두려움과 공포심이 생기지 않나요? 죽음을 체험하는 순간처럼 어렵지 않았습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공명, 명예, 탐욕, 지식욕 등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못할 텐데.., 무문관에서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그 깨달음이란 것은 무엇인지요. 선은 왜 하며 해탈은 무엇이고 고는 무엇입니까?”

이 말이 끝나자 스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몸을 돌려 내게 등을 보이시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당황했지만, 스님의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돼갔다.

‘스님의 뒤태는 옷 주름으로 어지러운 선들이 난무하지만 스님의 정수리에서는 청수한 빛이 감돌고 있으니 온갖 현실의 벽들을 뒤로 한 채 맑음을 지향하고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현실을 버릴 수도 없고 이상만 추구하기도 어렵고 현실의 지난함을 안고 가되 이상을 꿈꾸는 삶이 아름답지 않은가?’
▲ 관응스님상(유지초본), 100x62cm, 종이에 수묵 채색, 1995, 직지사 중암소장.

꽤 오랜 시간 온갖 이성과 논리를 동원해 스님과 나눴던 말을 생각했다.

선은 왜 하나? 해탈하려고? 왜? 인생이 고니까? 고가 무엇인데? 힘든 것, 얼굴 맞대기 싫은 대상, 그것이 고다. 그럼 인간이 죽으면 고에서 해방되니 죽으면 모든 게 해결 되지 않을까? 아니다. 죽음 뒤에도 또 다른 고가 있다고, 죽은 뒤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증언하잖아... 이건 죽은 뒤의 고가 있다는 증거 아닌가? 뭐 그것은 소수의 특별한 증언 일 뿐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아닌가? 선정에 든 스님은 모든 것을 보셨겠지...고통은 깨달음의 기회를 주는 스승 아닌가? 그렇다면 스님은 그 고통을 통해 자기를 향상 시키고 해탈의 기회를 진정 얻으셨을까? 등 뒤를 보이는 건 그 진리를 설하시는 걸까?

그리고 한참 후 스님께서는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앉으셨다. 나는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들어 스님이 다시 몸을 틀어 나를 보는 순간 홱 돌아앉아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의 방식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답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님께 무례함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스님의 답변을 기다렸고, 때문에 야속함이 컸다.

스님과의 이 무례하고 끝없는 논쟁에는 의문의 과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스님께서는 지혜가 담긴 말과 자상한 설명으로 적극적으로 나를 이해시키셨다. 보잘 것 없이 부족한 화가에게 보여 주신 애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지금도 스님의 그런 말씀을 고맙게 기억한다. 그래서 길이 보이지 않고 캄캄할 때 스님의 안목을 빌려 길을 더듬어 가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스님께서 나의 영적 의식 수준을 높여 주기 위해 여러 방편을 설하신 것으로 생각이 든다. 이 방편들은 내가 현실을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소중한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반성한다. 지금 나는 방편에 잡혀 방편을 최종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방편을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예술이라는 형식은 방편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그리는 것이라 볼 수도 있는데 이것이 과연 도달 할 수 있는 방편인지를 말이다.

나는 스님의 뒷모습에서 깨달음의 빛을 보지 못했다. 아니 전달 받지 못했다. 이는 전적으로 나의 문제다. 스님의 말과 행동을 논리와 이성으로만 해석하려 했다. 그래서 나는 못 보았고 못 알아들었다.

“수초거사, 그대 스스로 뚫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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