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박스트롤’

박스트롤 제거에 나선 빨간모자

목적 달성 위해 맹목적 악행 거듭

살인마 앙굴라마라의 삶과 닮아

 

▲ 애니메이션 영화 박스트롤의 빨간 모자는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앙굴라마라의 삶과 닮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목표의 설정과 성취의 반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목표라는 것이 크건 작건 높건 낮건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좌절하지만 또다시 도전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 중생의 삶인지 모른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생의 삶은 지극히 당연할 수도 있지만 그 목표의 방향이 개인의 과도한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일 때 세상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박스트롤은 치즈브릿지 마을 지하에 살고 있는 박스트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네모반듯한 박스를 입고 다니는 귀여운 몬스터, 또 그와 함께 살고 있는 박스를 쓴 인간 소년 에그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날 평화롭게만 지내던 박스트롤들에게 큰 위험이 닥친다. 빨간모자 일당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빨간모자의 목표는 귀족만이 쓸 수 있는 하얀모자를 갖는 것. 그는 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빨간모자는 박스트롤을 이용한다. 마을의 아이가 사라지고 있는데 그 아이를 데려가는 이들이 바로 박스트롤이라는 거짓 정보를 퍼트리는 것이다. 박스트롤을 악마로 몰아가면서 빨간모자는 그들을 제거하는 영웅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렇게 빨간모자는 치즈마을의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하얀모자를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빨간모자는 앙굴라마라와 닮아 있다.

앙굴라마라는 사위성 출신으로 북인도 쪽에서 한 스승을 모시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지혜롭기는 물론이고 용모까지 수려했으며 수행을 아주 열심히 하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스승의 아내는 스승이 집을 비운 사이 앙굴라마라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자 스승의 아내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꼈고 자신의 행동을 남편에게 이를까봐 두려워졌다.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는 앙굴라마라가 자신을 강제로 욕 보였다고 거짓말을 했다. 괘씸한 마음이 든 스승은 알굴라마라에게 100명의 사람을 죽여 시체의 손가락 뼈 100개를 목에 걸면 공부를 마칠 수 있다고 말한다.

스승의 말을 무조건 믿은 앙굴라마라는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이며 손가락 목걸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행의 마지막 단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99명을 죽이고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았다. 앙굴라마라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희생해 100명을 채우고자 길을 나선다. 그때 부처님이 앙굴라마라 앞에 나서게 된다. 부처님이 걷기 시작하자 앙굴라마라는 부처님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부처님은 평소처럼 걸었지만 앙굴라마라는 부처님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는 ‘제발 걸음을 멈추라’고 소리친다. 부처님은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앙굴라마라여! 나는 이미 멈춘지가 오래 되었다. 멈추지 않은 것은 바로 너다. 나는 번뇌와 고뇌와 경계의 끄달림을 멈춘 지 오래 되었으나 너는 멈추질 못하고 있구나!”

이 말을 들은 앙굴라마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참회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앙굴라마라의 모습은 하얀모자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빨간모자의 행보와 닮아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표를 향한 질주, 정당성이 결여된 목표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물론 어둠이 걷히면 아침이 오고 비가 온 뒤에 날씨가 맑게 개듯 영화는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벌을 받을 자는 벌을 받고 행복을 누릴 자는 행복을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명암이 뚜렷한 애니메이션 영화와는 달리 부처님의 제자로 귀의한 앙굴라마라의 행보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살인을 멈추고 비구가 된 그가 탁발을 나서자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돌팔매를 가했다. 힘으로 제압할 수 있었지만 그는 돌팔매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을 선택했다. ‘부처님! 저는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미움도 없습니다. 평온합니다.’ 자신이 지은 업보를 기꺼이 받는 길을 선택했다. 과오를 뉘우치고 기꺼이 참회한 앙굴라마라의 마지막은 처참했지만 평온했다.

끊임없이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스처럼 중생의 삶은 목표를 향해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탐진치로 또다른 업을 쌓기 마련이다.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삶들에게 묻고 싶다. 이제는 멈추어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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