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古典 - 이능화의 〈백교회통〉

한학, 영어 능통한 근대학자 이능화
기독교 등 11개 韓·세계 종교 비교한
불교 호교론 중심 〈백교회통〉 저술

종교 진화, ‘무교-유교 기독교-불교’
다원주의·비교종교적 관점서 설파
근대종교로서 불교 책무 고민

〈백교회통(百敎會通)〉은 근대 한국학 연구의 초석을 닦은 상현(尙玄) 이능화(李能和, 1869-1943) 선생이 1912년에 펴낸 책이다. 이 책은 비교종교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것으로 동서고금의 11개 종교와 불교의 교리를 비교 설명하면서 불교의 우수성과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전통시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이루어지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는 기존의 유교, 불교, 민간신앙 등과 더불어 천주교, 개신교, 천도교 등 외래 서양종교와 신흥 민족종교가 혼재하면서 서로 각축을 벌여나가던 종교 경쟁의 시대였다. 더욱이 이 책이 나온 때는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 직후의 암울한 상황에서 종교적 염원과 바람을 통한 정신적 치유와 삶의 안정이 현실도피의 탈출구로 부각되던 시기였다.

저자인 이능화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는 한편 불교에 큰 매력을 느꼈고 20세 때인 1889년에 고향 충청도 괴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이후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배우고 서양의 문물과 종교, 풍속 등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수학 경험이었는데 타고난 어학 소질과 학습 능력 덕분에 여러 외국어를 마스터한 그는 한성 외국어학교의 교관이 되었고 1906년에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한성 법어학교의 교장, 1909년 한성 외국어학교 학감으로 부임하였다. 그가 특히 서양 언어와 종교, 신식 교육에 일찍부터 눈을 뜨고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부친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부친인 이원긍은 유학자 관료 출신으로 1894년 갑오개혁 이후 법부협판을 지내다가 독립협회에 가담하면서 옥고를 치렀다. 그때 미국 선교사의 교화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어 성경의 〈마태복음〉을 최초로 한글로 번역하는 한편 애국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인물이다. 이능화 선생은 기독교를 믿게 된 부친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불교를 좋아하고 신앙했다는 점에서 종교의 선택지는 달랐지만 종교적 지향과 서양문명에 대한 관심은 부친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능화 선생은 불교의 근대적 교육과 대중화의 중요성을 직감하고 활발히 활동하였다. 1907년 명진학교의 교장이 되어 어학과 종교사를 강의하였는데 명진학교는 1906년 서울 동대문 밖 원흥사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식 불교학교로 현재 동국대의 기원이 된다.

또한 그는 1912년에는 불교 계통의 신식학교인 능인보통학교를 설립하여 3년간 교장을 맡았다. 이능화 선생은 일제의 강제병합이 있던 1910년 무렵부터 불교에 완전히 귀의하였고 이후 불교 잡지 간행과 학술연구에 전념하였다. 1910년대 중반부터 불교잡지 〈불교진흥회월보〉와 〈조선불교총보〉의 편집 및 발행을 맡았고 1918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조선불교통사〉를 간행하였다.

▲ 근대 한국학자인 이능화. 그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백교회통>은 근대 서구 종교와 신종교의 도래가 빈번해지는 것을 보면서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종교들을 비교한 연구서이다. 불교 호교론적 입장이 주로 대변돼 있기도 하며 이를 통해 근대 종교로 불교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1920년대 이후에도 학술연구 활동, 교육과 저술에 매진하였다. 우선 1922년부터 약 15년간 총독부가 조직한 조선사편수회에서 최남선 등과 함께 총35권의 〈조선사〉 편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원고를 집필하였다.

그의 대부분의 저서는 이 기간 동안 집필되었는데 조선사편수회를 통한 문헌기록의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능화 선생은 1930년부터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조선종교사를 강의하였고 조선학 연구 학회인 청구학회, 총독부의 보물고적보존회 등에서도 활동하였다.

그는 문헌자료의 집성과 불교를 비롯한 종교학, 한국학 연구에 평생을 매진하였는데, 저술 또한 〈백교회통〉, 〈조선불교통사〉, 〈조선종교사〉, 〈조선무속고〉, 〈조선기독교급외교사〉, 〈조선여속고〉, 〈조선해어화사〉 등 종교와 민속 관련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

이처럼 이능화 선생은 근대기의 대표적 한국학자로서 한학과 외국어에도 능통하였고 불교를 비롯한 종교와 민속 분야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의 많은 저작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조선불교통사〉는 한국의 전통 사유이자 종교로서 일찍부터 자리 잡은 불교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집대성한 개설적 통사이자 방대한 자료집이다.

유교와 함께 한국적 전통의 주축을 형성한 불교의 지분과 위상을 고려할 때, 근대기 학술 영역에서 이루어진 인식으로서의 ‘전통의 형성’ 과정에서 불교와 종교를 대상으로 한 이능화 선생의 연구 업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불교를 중심으로 그의 다종교 이해와 인식을 종합해 놓은 〈백교회통〉은 경성의 조선불교월보사에서 1912년에 98쪽의 분량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에서는 도교, 무교, 신선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교, 브라만교, 태극교, 대종교, 천도교 등 한국과 세계의 11개 종교와 불교의 교리를 비교 설명하고 불교의 장점을 부각시켰다. 책의 구성은 모두 14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1-12장은 각 종교를 불교와 비교 대조한 후 논의를 종합한 것이다.

제1장 도교와 불교, 제2장 귀신술수의 교와 불교, 제3장 신선교와 불교, 제4장 유교와 불교, 제5장 기독교와 불교, 제6장 회회교와 불교, 제7장 바라문교와 불교, 제8장 태극교와 불교, 제9장 대종교(大倧敎)와 불교, 제10장 대종교(大宗敎)와 불교, 제11장 천도교와 불교에 이어 제12장은 총합 제교와 불교이다.

다음 제13장 불교요령은 불교의 교리를 요약, 소개한 것이고 제14장에서는 세간의 불교 비판론을 들어 그에 대한 변론을 서술하고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제14장은 다시 11개의 절로 구성하였는데, 불교를 허무적멸이나 염세적 종교로 비판하는 것부터 참선, 결혼과 육식, 우상숭배 문제 등을 둘러싸고 불교를 비난하는 주장을 소개하고 반론을 펼치면서 이는 불교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단견이라고 반박하였다.

끝의 제11절은 천국과 지옥, 세계와 우주, 중생이 곧 부처, 신통한 이적 등 일반인들이 불교에 대해 품을 수 있는 의문이나 소박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능화 선생은 당시 유행하던 진화론적 방법론에 의해 종교의 단계를 설정하였는데 아래로부터 신교(무교)-도교-유교-기독교-불교의 순이었다. 그는 종교나 교리 면에서 불교가 가장 우수하다고 본 반면 조선적 전통의 주류였던 유교에 대해서는 조선 몰락의 책임을 전가시켜 매우 비판적인 인식을 가졌다.

한편 신의 존재 여부를 기준으로 종교를 다신교, 일신교, 무신교로 나누고 각각의 대표로 유교, 기독교, 불교를 들었고, 결혼양태를 기준으로 다처교, 일처교, 무처교로 구분하여 각각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의 교리와 현상을 통해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여러 종교들을 종합할 수 있는 근거로 하늘(天)에 주목하였는데 하늘을 형체, 주재, 명운, 의리로 구별하여 유교는 넷 모두를 말하고 기독교, 이슬람교, 브라만교, 대종교, 천도교 등 대다수 종교는 두 번째 주재의 하늘에 해당하며 불교는 이 넷의 범주를 모두 뛰어 넘는 차원 높은 것이라고 보았다.

이능화 선생은 부친의 영향, 그리고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매개로 한 선교사 및 외교관과의 교류 때문인지 기독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기독교가 한국의 문명개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그의 인식은 〈조선기독교급외교사〉에서도 보인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한국의 토착적 종교에 대해서도 신교(神敎)라고 이름 붙이면서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신교의 기원을 환웅과 단군으로 보았고 민족의 신앙과 사상의 변천이라는 관점에서 고유의 민간신앙에 많은 의미를 두었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인이 근대에 새로 만든 신종교를 별도로 유형화하여 태극교, 대종교, 천도교 등의 항목을 설정하고 교리를 소개하였다. 즉 태극교는 유교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고 대종교(大倧敎)는 환인, 환웅, 단군에서 기원한 것이며 대종교(大宗敎)는 정역(正易)사상을 주창한 김일부가 창종한 것이었는데 동학과 대비하여 남학이라고도 칭해졌다. 천도교는 서학(천주교)에 대응해 일어난 동학의 후신으로 최제우가 유불도의 사상을 종합하여 가르침을 연 것인데, 천도교의 교리가 불교와 가장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능화 선생은 당시의 종교 상황에 대해 다양한 세계종교와 민족종교가 공존하는 신교자유의 시대로 규정하였다. 그러면서 유교는 형식만 남았고 신교와 구교의 기독교, 동학과 남학의 토산 종교, 대종교와 같은 고유의 신도가 수백만의 신자를 가졌지만 조선인 중 1천만 명은 무종교 상태이며 결국 미래에는 불교가 그 정신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그는 비록 호교론적 관점의 불교 우위론에 서 있었지만 모든 종교를 회통한다는 본서의 제목처럼 종교의 자유와 공존을 인정하고 배타성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종교다원주의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이 책에서도 각 종교는 하나의 근본에서 나뉜 것이며 서로 모순되거나 대립되지 않으므로 회통할 수 있다고 밝히고 여러 종교들의 교리와 경전 내용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소개하였다.

〈백교회통〉은 동서 문명의 교차와 치열한 종교 경쟁의 각축기에 불교가 근대종교로서 살아남고 또 어떻게 스스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인지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배태된 지적 고뇌의 산물이다.
불교는 전통종교로서 지분을 가졌지만 서구문명의 후광을 등에 업은 기독교나 민족정서에 부합한 천도교 등의 약진에 맞서 종교적 존립을 모색해야 했다. 근대기 불교 지식인의 상당수는 문명개화의 신시대를 맞아 불교의 근대화와 발전이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한다는 호교론적 지향을 가졌다.

이 책도 당시 교세를 가졌던 제반 종교에 대한 관심과 비교종교학적 이해 수준을 잘 보여주며, 불교적 관점에서 여타 종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20세기 초는 근대성의 추구, 근대종교로의 존립이라는 과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적 화두였다. 한용운의 유명한 〈조선불교유신론〉(1913) 또한 전통 불교가 아닌 불교 안의 근대성을 지향한 것으로 철학과 종교를 겸비한 보편사유이자 평등주의와 대중주의를 포괄한 근대적 가치로서 불교를 내세웠다.

▲ 김용태/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즉 불교야말로 근대문명의 특성에 부합하고 근대성을 담보하며 따라서 사회진화와 종교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같은 시기 백용성의 〈귀원정종〉(1913)도 기독교와 같은 외래 종교에 대응하여 불교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그리고 불교 전통을 어떻게 계승해야 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한용운과 백용성은 근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이들이며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던 만큼 본서 〈백교회통〉과 함께 이들의 불교관과 종교 이해, 시대 인식 등을 통해 당시 지식인의 문제의식과 고뇌의 길을 탐방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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