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31〉 토함산 불국사 대웅전

다보탑, 석가탑 등 비대칭적 대칭
천정감실에 학, 거북, 물고기, 비천

화엄경-비로자나불-화장세계 구현
국화문양 씨방자리에 ‘佛’자 베풀어

대웅전 천정 전체 개요. 향우측의 천정엔 사자와 용이, 향좌측의 천정엔 횃대를 입에 문 코끼리와 용을 조영했다. 천정에 넣은 문양은 모두 여섯 가지다. ‘불법승’ 삼보귀의의 천정문양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천정에 베푼 여섯 가지 문양 세부. ‘佛’자를 입힌 국화문양은 천정에 장엄한 꽃의 정체성을 확연히 일깨워 준다. 천정의 꽃은 화엄법계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존불상과 마하가섭, 아난존자. 사천왕 그림은 탱화가 아니라, 250년 된 후불벽화다.
대웅전 내부천정. 3개 층위의 층급 우물천정이다. 천정감실 벽면에 학, 거북, 물고기 등의 조형을 베풀었다.
다보탑과 석가탑, 대웅전 전경. 법화경 경전의 세계다.

불국사는 화엄불국토의 연화장세계

불국사(佛國寺)는 고운 최치원선생의 ‘화엄불국사 아미타불화상찬’의 제목처럼 ‘화엄불국사’다. 화엄불국(華嚴佛國)이라는 네 자 속에 깊고도 오묘한 뜻이 내포되어 있다. 신라 사람들의 시대정신과 세계관이 반영된 화엄불국토가 불국사다. 화엄세계는 형상도, 음성도 없고 오직 진리 그 자체로 두루 빛을 비추는 광명편조(光明遍照)의 비로자나 법신을 온갖 꽃으로 장엄한 화장세계(華藏世界)다.

그 세계는 언어의 형용이 끊어진 언어도단의 불가설(不可說) 세계이므로 꽃의 방편으로 표현할 따름인데,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처염상정의 연꽃으로 장엄한 ‘연화장세계’다. 일체 번뇌의 불이 꺼지고, 고요의 수면에 우주만유의 실상이 본면목으로 현현하는 해인삼매의 세계가 곧 화엄세계다. 보리수 나무 아래서 무상정등각을 성취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 순간 비로자나 부처님과 일체를 이루셨다. 즉 진리 그 자체의 법신이 되신 것이다. 거룩한 석불사(석굴암) 조형은 그 정각의 극적이며, 위대한 불멸의 종교예술적 구현이다.

모든 불보살은 비로자나불의 원력과 광명에 의한 현현이시다. 석불사에 일체지(一切智)의 진리와 해인삼매 적정을 구현하고는, 산등성이 너머엔 장대한 기단과 석축, 회랑을 통해 세간과 출세간에 출현하신 부처님의 불국토를 조영하였으니, 그곳이 화엄불국사다.

1200여년전 신라인들이 국가적인 역량을 쏟아 부으며 불교사상의 근본인 화엄사상을 토대로 화엄불국을 건축적, 예술적 조형으로 집대성한 부처님의 나라가 불국사인 까닭에 불국사는 화엄경-비로자나불-해인삼매-화장세계의 불교세계관이 거시적으로 통합된 화엄불국의 만다라다. 비로전-비로자나불-화엄경으로 구축한 연화장세계를 비롯하여, 대웅전-석가모니불-법화경으로 연결되는 사바세계, 극락전-아미타불-무량수경의 체계를 갖춘 극락정토 등 80여동 2,000여 칸에 이르는 불국 대가람을 경영한 것이다.

대웅전영역은 법화경의 건축적 해석

대웅전 영역은 법화경 경전의 미묘한 변상으로 경영되었다. 다보탑, 석가탑, 대웅전의 건축집합은 석가모니불께서 영산회에서 설하신 〈묘법연화경〉을 토대로 구축한 현세의 사바세계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법화경 경전내용을 압축한 경이로운 인류유산으로 그 조형이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법화경〉 제 11품 ‘견보탑품(見寶塔品)’에는 석가여래께서 영산회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실 때 ,다보여래께서 칠보로 장엄한 다보탑으로 땅에서 솟아올라 "석가여래의 말씀은 진리이시다"라 증명하고, "거룩하시다, 또 거룩하시다"고 찬탄하는 극적인 장면을 나타냈다. 석가탑은 원래 이름이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고, 다보탑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이다. 두 건축은 진리의 상주설법과 상주증명의 경전내용을 표현한 통상적인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의 양식을 초월한 사상 유례없는 경전해석과 종교예술이 아닐 수 없다.

대웅전 건물은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임진왜란때 왜구에 의해 소실된 지 150여년이 지난 1765년에 중창되었다. 통일신라의 석축기단 위에 조선후기 목조건축을 올렸다. 내부의 불단을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불단이 화강암 석조 받침 위에 조성되어 있는 까닭이다. 통일신라시대 유구 위에 불단을 얹어 두었다. 두 층위에서 1,000년의 시간 단층이 형성되어 있다. 단청은 2년후인 1767년에 입혔다. 대웅전에는 천백억화신 석가모니께서 과거불 갈라보살과 미래불 미륵불의 협시를 받으며, 상수제자 마하가섭과 아난존자를 거느린 채 결가부좌로 상주해 계신다.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염화미소로 전수받은 상수제자이시고,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경청한 다문제일이신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는 경전구절의 주인공이시다.

즉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였고,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지혜를 전한 것이니, 한 분은 불교의 선(禪)을, 또 한 분은 팔만대장경의 교(敎)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은 대비적 배치가 아니라, 다보탑과 석가탑 배치처럼 비대칭적 대칭의 불이(不二)의 통일성이라 봄이 마땅하다. 대웅전 공간에는 이러한 비대칭적 대칭을 통한 통일성의 추구가 보다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차이를 배려한 조화와 균형감각이 탁월하다. 청운교와 백운교, 다보탑과 석가탑, 좌경루 기단과 범종루 수미단, 과거 갈라보살과 미래 미륵보살, 선의 가섭과 교의 아난, 문수보살의 사자와 보현보살의 코끼리, 좌우 사천왕 후불벽화 등 원융의 화엄철학이 장엄세계 곳곳에 녹아 들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대웅전 내부장엄과 단청에는 250년동안 켜켜이 쌓인 시간의 더께가 물씬 묻어난다. 고색창연한 내부단청이 적멸의 깊이를 심화시키고, 벽화, 조형, 문양들은 사찰 천정장엄의 정수를 보여주듯 다채롭고 소재도 풍부하다. 사찰 천정장엄에서 나타나는 거의 모든 조형원리, 제작기법, 소재 등이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운궁형 닫집 대신 위로 한껏 밀어올린 감실천정을 경영한 점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아쉬울 뿐이다. 그럼에도 감실의 벽면에는 연속하는 드림 주의초(柱衣草)를 내렸으며, 널판의 판벽에는 비천과 학, 거북, 물고기 등 수중생명과 날 것을 통해 깨달음을 통한 자유자재의 무애열반 의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대웅전 내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소재는 크기와 형상, 표정들이 다채로운 길상 혹은 법계수호 동물들의 인상이다. 그 조형 표현들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 대범하게 실현된 까닭에 후기인상파의 화폭처럼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다.

코끼리, 사자, 전위적인 설치예술

퇴칸 들보 위에 얹은 코끼리와 사자조형은 특히 강렬하다. 코끼리는 자비행의 보현보살을, 사자는 반야의 문수보살을 상징한다. 불전 내부에서는 일반적으로 벽화로 표현하지만, 불국사 대웅전에서는 두 앞발은 들보 위에 직각으로 얹고, 뒷발은 건축공포 포작의 끄트머리에 걸친 파격적인 배치의 입체조형으로 표현해서 놀랍다.

충량의 표현방식에서 한 쌍의 용으로 결구하던 통상적인 양식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어 아방가르드적인 설치예술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성스러운 상아 뿔을 가진 흰색 코끼리는 용 몸뚱이 형상의 횃대를 입에 물고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등사, 불영사, 환성사, 운문사, 은해사 백흥암, 직지사 등의 일반적인 양식과는 상이하다.

또 횃대의 몸통에는 10개의 금동종을 매달아 가장 많은 개체 수로 손꼽히고, 횃대의 가운데는 솟대의 기러기처럼 청색과 초록의 깃털을 가진 파랑새가 앉아 이채롭다. 용과 종의 결합, 파랑새는 부처께서 설하신 진리법의 일승원음의 상징일 것이고, 코끼리의 입에 매달아 둔 것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실천방편으로 짐작된다. 사자조형 역시 예사롭지 않다. 언뜻 보면 북청사자탈을 연상하게 하는데 흰색 몸통에 초록과 붉은 색 반점을 입혀 생동감을 살려냈다. 얼굴은 몸체에 비해 과장되었고, 툭 튀어나온 왕방울의 눈과 주먹코가 대단히 해학적이다. 민화에서 호랑이를 익살로 비튼 조선민중의 재치와 해학성이 엿보인다.

그런데 앞 뒤 내부고주(高柱)에서 또 다시 사자, 코끼리 조형을 작은 액센트로 변주해 놓아 눈길이 미친다. 이곳 사자와 코끼리는 신령한 구름의 기운 속에 나투는 천상의 길상이며 결계적 수호자로 보인다. 몸통에 붉은 주술적 서기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까닭이다. 앞줄 고주의 사자는 특이하게도 등에 죄업을 비추는 업경대를 얹었다. 업경대의 상징은 거울을 통한 반성과 성찰에 있다. 불전에 들어와 자신을 돌아보라는 교훈적 암시를 던진다.

희귀한 ‘불법승’ 삼보귀의 문양

대웅전 천정은 3단의 층급 우물천정으로 경영한 덕분에 공간의 깊이감이 심층적이며 중층적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널찍한 평면적 규모와 결합해서 내부공간의 텅빈 충만감이 크게 느껴진다. 가장자리 널판천정엔 장고, 생황, 태평소, 당비파 등을 연주하는 남성적 주악비천과 생기가 묻어나는 여의보주를 공양 올리는 공양비천이 천의를 휘날려 예경과 찬탄의 거룩함을 드러냈다.

우물천정에 베푼 문양은 여섯 가지로 다채롭고, 고색의 차분함이 침묵의 두터움을 더한다. 문양 저마다는 강한 개성을 드러낸다. 그 중 단연 눈길을 끄는 문양은 석가모니불을 상징하는 범자 ‘옴’, 또는 ‘卍’자에서 폭발하듯 에너지가 팔방으로 퍼져나가 각 방위마다 화엄의 꽃이 피어나는 장면이다.

화엄의 꽃은 범자 종자불로 화현하여 무진법계의 불국토를 이루거나 ‘나무아미타불법승(南無阿彌陀佛法僧)’ 여덟 한자로 현현한다. 나무아미타불과 불법승(佛法僧) 삼귀의(三歸依)를 동시적으로 보인 매우 희귀한 문양이다. 천정에 삼보귀의를 천명한 희유의 사례로 주목된다.

신심이 흐르는 천정은 중중무진의 법계이자, 불국토를 이룬다. 우물천정 칸칸이 화엄불국의 모듈(module)이다. 한 칸 한 칸이 부처께서 상주하시는 당처(當處)다. 국화문양의 씨방 자리에 ‘佛’ 한 자가 별처럼 빛난다. 천정에 새긴 무시무종의 세계도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처럼 ‘佛’로 삼회일귀(三會一歸)한다. 불국사 대웅전 천정에 불멸의 꽃이 피었다, 그 화엄의 꽃.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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