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화랑 ‘이중섭의 사랑, 가족’展
작은 종이에 담아낸 커다란 가족愛
소와 은지화로 한국인 심장 깨워줘
‘새로운 부처님’ ‘연꽃을…’ 눈길
소의 작가 이중섭의 가족 사랑이 또다시 대중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展은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전시다. 끼니를 이을 수 없을 만큼 가난했기에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야했고 그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기에 관람객들은 이 작품들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채 채색화 드로잉은 물론이고 유학시절 글을 대신해 사랑을 전했던 엽서화, 가족들에게 보냈던 편지화, 답뱃갑 속 은지에 새긴 은지화 등이 선보인다. 여기에는 ‘새로운 부처님’과 ‘연꽃을 쥔 아이’ 등 불교 관련 작품도 눈에 들어온다. 특히 ‘새로운 부처님’은 아기부처와 불상을 나체로 표현한 은박지 그림으로,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파격적이고 불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해온 이중섭의 작품세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희화적 표정과 동작들이 흥미롭기만 하다.
물론 이번 전시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긴 작품이 대부분이다. 아들에게 그림을 그려 보낸 편지가 다수 전시되었고, 먹을 것이 없어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먹었던 기억을 해학적으로 그린 ‘그리운 제주도 풍경’도 인상적이다. 그의 소망이 가장 간절하게 담긴 작품은 ‘가족, 따뜻한 남쪽 나라로’로 보인다. 소달구지에 가족들을 태우고 아버지가 앞에서 황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는듯한 이 그림은 희망적이고도 역동적이다. 여기에도 작가의 대표 소재인 소가 등장한다. 이중섭의 소는 작가의 격렬함과 집념, 우직함과 자연스러움, 야만성과 고뇌와 연민, 환상과 방랑성, 갈망과 광기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불교에서 소는 구도의 상징이다. ‘심우도’는 방황하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데 비유해 10단계로 그려냈다. 여기에서는 불성을 소에 비유해 표현하고 있는데, 동자가 소의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검은 소를 발견하니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 소의 코에 코뚜레를 뚫고 삼독의 때를 벗겨내면 흰색이 된다. 이렇게 길들여진 소를 타고 마음의 본향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번뇌와 망상 욕망이 끊긴 상태가 되면 어느새 소는 사라진다. 소는 심원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 이제 자기자신도 잊어야 하니 이것이 곧 공(空)이며 완전한 깨달음이다. 산은 산 물은 물, 티끌 같은 번뇌도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어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고 중생제도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불우한 시대를 살아내며 예술혼을 불태웠던 작가 이중섭. 그를 버티게 해주었던 것은 가족이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는 전시가 끝나면 가족들을 만날 날을 기대하며 그린 그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전시를 끝낸 이듬해 정신병원으로 실려 갔고 간염판정을 받고 다시 서대문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졌다가 41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예술과 일상의 삶 사이에서 예술을 택했던 작가 이중섭. 가족과 함께하고자 했던 극락을 꿈꾸었던 작가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다 결국 불혹의 초입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고통 속에서 연꽃 같은 예술의 결정체를 만들어 냈던 작가의 다음 생은 마음의 소를 만나 고통도 분노도 광기도 잊고 평온의 상태에 들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