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불교사회정책연구소 법응 스님

‘해인삼매(海印三昧)’, 단어 자체만으로도 번뇌가 일거에 소멸되는 듯하다. 고요한 해면(海面)이 만상(萬象)을 비추듯 타오르던 번뇌의 불꽃을 깨끗이 잠재우고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깨달은 부처의 경지를 의미한다.

이 ‘해인삼매’의 의미를 구족한 사찰이 해인사다. 여기에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어서 ‘법보종찰’이라 불리는 영광까지 누리고 있다.

해인사의 존재 이유는, 안으로는 고요하고 고요한 해인삼매로 불일증휘 법륜상전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며, 밖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연구해서 병든 세상을 치유할 처방과 예방책을 내고 실천하여 구세대비의 본분을 잘 구현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근자 해인사가 방장을 새로 모시면서 고요함이 아닌 번뇌의 파랑으로 출렁거린다. 방장은 총림의 최고 권위이다. 사부대중의 큰 스승을 모시는 과정이 이렇게 번잡스러워서야 해인사의 위상이 어떻게 될까?

지난 2월 23일 대원 스님을 방장으로 추천하는 세민, 종진, 원융 스님이 긴급 호소문을 발표했다. 24일에는 원학, 성법, 향적, 여연 스님이 원각 스님이 해인사 방장이 되어야 한다며 기자회견을 했다.

불교가 위기라는 말이 연일 회자되는 현실에서 대중을 이끄는 해인사의 지도층 승려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세속적인 행보다. 해인사를 놓고서 주도권 경쟁을 하거나 사중운영을 독단적으로 취하려 해서는 안 된다. 동당 서당이 고양이 한 마리를 갖고 다투니 남전 스님은 그 고양이를 베었다(南泉斬猫). 남전 스님과 같은 선지식이 해인사에 있어서 작금의 현실을 목도하셨다면 어찌 하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기왕에 말이 나와서 짚고 넘어가자면, 해인사는 세속적 가치와 그러한 방편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언제부터인가 “해인사” 하면 해인삼매니, 법(法)의 구심점이니, 하는 것보다는 천도재니, 납골당이니, 위패니 하는 말들이 더 많이 수식되고 회자되기 시작했다. 불교 또한 종교의 형식을 갖추고 오랜 세월 그 생명을 유지해 왔으므로 그러한 종교적 의례나 일반 대중의 욕구 또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인사라면 이러한 것들에 천착해서는 안 되며 수행과 지혜의 본질에서 방편을 구사해야 한다고 본다. “해인사마저”라는 소리가 나서야 되겠는가?

해인사가 시끄러운 것은 분명 사람의 문제다. 사람의 문제를 깊게 파고들면 그 뿌리가 결국 최고 어른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중은 가람을 이끄는 최고 어른의 수행력, 권위, 판단력, 위의 등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의 방장 추대세력 또한 이전투구의 양상이니, 어느 스님이 방장으로 추대된다 한들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 자명하다. 

이번 사단은 일면 종헌 종법상 방장 추대에 대한 규정과 해인사 관습의 충돌일 수도 있다. 총림법 제6조에 의하면 방장은 산중총회에서 추천하며 임기가 10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동안 합의 추대로 했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하자며, 몇몇에 의해 거론되어온 세 분이 방장직의 재임기간을 임의로 조정했다. 향후 3대 방장까지 미리 정하고자 했다 하니 여법하지 못할뿐더러 대중의 의견은 무시되었다.

미래의 방장을 미리 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과 부조리를 잉태하는 것이다. 산중공의를 내세우는 절집에서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전 합의가 필요했다 하더라도 임회나 각 문중의 대표격 스님들이 한 날 한 시에 한 장소에서 순차 없이 거론했어야 했다.

이대로 각각을 지지하는 사중 스님들의 폭로와 대립의 구도를 해인사는 과연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가? 방장이 되고자 하거나 현재 추대의 대상인 된 스님들에 대한 현재 종법에 명시된 대로의 그 자격에 대한 심사가 최종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 문제에 대해 당사자 스님들이 직접 의견을 밝히고 질서를 잡아서 더 이상 파란이 없기를 바란다. 왜 자신이 방장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과, 현재 해인사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찌 해결할 것인지, 또 총림의 위상을 어찌 회복할 것인지, 법보종찰의 해인사가 시대와 종단, 사회를 위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각자 당신들의 견해를 밝혀서 대중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 이와는 별도로 사중을 이끄는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흩어진 대중의 화합을 위해 무엇을 어찌할 것인지도 아울러 밝혀야 할 것이다. 현 시점은 ‘하는 척’의 권위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라 하는 현실 증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총림의 최고 권위이자 위엄인 방장마저도 완장이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거대한 먹구름이 한국불교계를 뒤덮고 있다.

<법응 스님/불교사회정책연구소>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