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29〉 도솔산 선운사 대웅보전

현존하는 후불벽화 국내 세 곳뿐
관음벽화와 신묘장구다라니 공존
후불벽화, 무위사 후불벽화와 쌍벽
용은 생명력의 물이자, 신성 수호력

천정 가장자리에 장엄한 천룡의 세계 부분. 빗반자와 판벽천정 아홉 칸마다 거대한 적룡, 황룡, 백룡, 흑룡들을 다양한 색채와 형상으로 풀어 하늘의 천정이 가히 천룡(天龍)의 세계다.
무염스님 제작한 비로자나 삼존불

고창 선운사는 꽃절이다. 순천 선암사, 서산 개심사와 함께 사시사철 만화방초로 화엄의 뜨락을 이루는 화장세계(華藏世界)의 대표적인 꽃절이다. 4월의 봄이면 벚꽃과 산벚이 절의 초입을 청사초롱으로 밝히고, 500살 먹은 2,000여 그루 선홍빛 동백이 대웅보전 뒤를 잡화엄식(雜華嚴飾)으로 동백꽃 병풍을 펼친다. 8월의 여름이면 배롱나무꽃이 대웅보전 창호에 붉은 단청빛을 입히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이면 꽃무릇이 붉은 주단을 장대히 펼쳐 선운사로 향하는 처처에 저절로 길이 생길 판이다. 그 길의 중추에 동백꽃처럼 아련한 대웅보전이 그리움처럼 자리 잡았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건물을 1614년에 재건한 17세기 건축이다. 경작지의 근 70%가 황폐화 되고 인적, 물적자원이 완전붕괴된 전란 이후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17세기 전반기의 사찰중건에는 그 모양을 갖추는데 20~30년의 시간이 예사로이 소요되었다. 선운사 대웅보전만 해도 그렇다. 1614년에 법당을 세운 후, 1619년에야 단청의 빛을 입히고, 20년이 지난 1633년에 흙으로 빚은 소조 비로자나 삼존불상을 조성하여 법당에 모셨다. 삼존불상의 조각승은 당대의 명장 무염(無染)스님과 문하승들이셨다. 무염스님은 1630년대에서 1650년대까지 전라도 일원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조각승이다. 어려운 시대상황임에도 대웅보전은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김천 직지사 대웅전, 구례 화엄사 대웅전처럼 정면 5칸, 측면 3칸의 큰 규모를 갖추었다. 법당의 장대한 규모에 맞게 비로자나 삼존불상도 장대한 크기로 조영되었다. 불상대좌 밑면에 묵서명을 통해 비로자나불, 약사여래, 아미타여래의 삼존불상 존명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경주 기림사 삼존불상과 같은 배치다. 무염파의 조성주체와 1633년이라는 조성연대를 정확히 밝히고 있어 불상연구의 양식과 편년연구에 귀중한 비교기준을 제공한다.

천정 중앙 칸에 베푼 하늘꽃. 천정의 꽃은 본질적으로 부처이자, 진리를 표현한 화엄의 꽃이다.
장대한 흙벽에 그린 후불벽화

대웅보전에서 불상과 함께 단연 주목을 끄는 것은 후불탱화다. 얼핏보면 견본채색의 탱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후불벽의 흙벽에 그린 벽화다. 삼존불의 존상에 배대해서 각각의 후불벽화를 배치했다. 후불벽화는 대략적으로 가로 450cm, 세로 320cm 정도 크기의 각각의 흙벽에 회칠을 하고 채색을 넣었다. 벽화에 입힌 주된 색채는 석간주와 양록, 백색의 삼색이다. 비로자나불벽화 하단의 화기에 의하면 후불벽화는 1840년 성찬스님을 화주로 하고, 의겸스님의 맥을 이은 익찬, 내원, 화윤, 도순 등 11명의 화원이 그린 작품이다. 1839년 여름 장마로 법당 오른쪽 2칸이 무너져 1840년 봄, 여름에 걸쳐 보수 및 단청을 하면서 후불벽화의 빛을 넣은 것이다. 붓질은 마치 종이나 비단에 그린 듯이 채색과 필선이 대단히 부드러우며 섬세하다.

수직으로 세워진 장대한 흙벽에 벽화를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견본채색의 후불탱화와 진배없이 사천왕의 터럭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붓질해서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벽화 위에는 두루마리 흰 경전을 펼쳐 놓은 듯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산스크리트어 범자로 세 칸에 나누어 적어 두어서 주목된다. 다라니는 무량한 진리를 담지하고 있는 총지(摠持)의 진언이다. 그 뜻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오묘하여 번역하지 않고 범어 그대로의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천수경>의 핵심요체로서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여 독송하면 모든 죄업이 소멸하고, 반드시 소원을 이루며, 15가지 좋은 복덕을 받는다는 신비한 다라니로 알려져 있다. 장문의 다라니는 망월사본이나 만연사본의 진언집 등에 간간이 전해왔다. 신묘장구대다라니처럼 긴 장문의 다라니를 후불벽, 또는 주불전 내에 사경처럼 범자로 새겨서 장엄한 경우는 선운사 대웅보전이 유일해서 학술적, 불교미술사적 의의를 더한다.

후불탱화가 벽화인 곳은 국내에서 세 곳 뿐이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과 안동 봉정사 대웅전, 그리고 선운사 대웅보전이다. 그런데 봉정사 대웅전의 영산회상 후불벽화는 따로 떼어내어 성보유물 전시관에 보관중인 까닭에 결국 두 곳에만 후불벽화가 제자리에 있는 셈이다. 특히 선운사 대웅보전 후불벽화는 세 칸에 이르는 유례없는 대형벽화인 점을 고려할 때, 유일무이한 국보급 문화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후불벽화의 뒷벽에는 수월관음벽화가 등을 맞대고 있어 하나의 후불벽 양 측면에 불보살벽화가 동시에 그려진 미증유의 사례를 보인다. 이러한 사례는 오직 무위사 극락보전과 선운사 대웅보전에서만 배관할 수 있는 극히 희소한 경우다. 후불벽 뒷벽의 수월관음벽화도 무위사, 내소사, 여수 흥국사, 마곡사, 양산 신흥사, 창녕 관룡사 등 전국에 걸쳐 13곳에서 드물게 있어 그마저도 흔치 않다. 수월관음도는 일렁이는 파도 위를 폭발하듯 힘차게 솟아오른 초대형의 커다란 연잎에 황토색 법의를 차림한 수월관음께서 자애로운 향안으로 나투시는 장면을 그렸다. 삼라만상 가운데 홀연히 출현하신 모습처럼 다가온다.

청색계열의 삼청빛 연잎을 관음보살보다 더 크게 그린 점이 인상적이다. <대지도론> 권8에는 어째서 부처께서는 항상 연꽃 위에 앉으시는가?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연꽃은 더없이 깨끗하며 부드러운 꽃이다. 부드러워 앉으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처가 앉으면 그 부드러운 꽃조차 무너지지 않는다. 부처님의 신통력 때문이다. ...(중략)... 인간세계의 연꽃의 크기는 한 자를 넘지 못한다. 도리천 연못의 연꽃은 수레의 일산만하게 크지만, 가부좌를 틀만한 천상의 연꽃 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부처께서 앉으시는 연꽃은 그보다 백 천만배나 더 크다. 연화좌는 부처님께서 앉으실만한 유일한 크기의 커다란 꽃이면서도 깨끗하고 향기로우며 미묘하니 그만한 꽃이 없다.“ 경전에서 밝힌 하늘 연꽃의 실상을 시각적 도상으로 보여주는데 있어 이만한 벽화가 또 없을 것이다.

대웅보전 후불벽화 세부와 신묘장구대다라니 부분.
살미부재에 베푼 형형색색의 단청
대웅보전 내부는 신령의 미묘한 기운이 스멀거리듯 피부에 와닿는다. 한국의 사찰장엄에서 내부에 흐르는 신성의 기운과 종교적 관념은 건축장치를 응용하거나 회화, 혹은 문양의 패턴으로 표현하면서 일반적인 형태로 점차 정형화 되었다. 건축장치를 이용한 대표적인 방식이 공포구조를 이용한 성스러운 분위기의 연출과 신령의 기운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즉 건축부재에 정신적이며 철학적인 특성을 간직한 전통적인 선과 색채를 부여한 것이다. 건축 공포에서 기둥에서 천정으로 톺아 오르는 살미부재의 중첩적 역학구조는 공간에 정신적 힘을 부여하는데 합목적적으로 유용하게 응용 되었다. 선운사 대웅보전의 살미장치 응용형태는 대단히 심미적이며 인상적이다.

평방의 주두, 혹은 주심기둥으로부터 붉은 색채의 주술적 기운이 뻗어나와서 넝쿨로 용틀임치듯 굽이쳐 오른다. 용틀임의 기운은 첨차의 층급마다 탐스러운 연꽃 봉우리와 새싹을 뻗치며 층층이 형형색색의 구상적 조형으로 분출다가, 종국에는 봉황의 기세로 극적 화생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층급 살미부재의 마무리를 용이나 봉황으로 처리한 것은 내부 공간에 신성한 기운들이 끊임없이 퍼덕이며 꿈틀대고 있다는 생명력의 충만함을 강하게 상징한다. 더욱이 색채 배채에서 주황, 보라, 노랑, 하엽의 순서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규칙적으로 배열하고 있어 무한수열의 수리적 규칙처럼 발산하는 의지를 뚜렷이 담아냈다. 가로로 장대한 살미와 그에 베푼 형형색색의 채색이 구조적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한층 고양한다. 대웅전 기둥 하나 하나는 생명의 나무이면서 우주목으로서 위상을 지닌다.

선운사 대웅보전 내부
거대한 적, 황, 백, 흑룡의 천정

선운사 대웅보전 천정장엄에서 가장 특징적인 대목은 유례없는 거대한 용의 장엄세계에 있다. 천정의 구조는 가장자리가 빗반자이고, 가운데 부분은 우물천정이다. 검단스님의 선운사 창건설화에 의하면 선운사는 원래 용이 살던 큰 못이었다. 못을 메워 절을 세웠다. 마치 연기설화를 입증이라는 하듯 빗반자와 판벽천정 아홉 칸마다 거대한 적룡, 황룡, 백룡, 흑룡들을 다양한 색채와 형상으로 풀어 하늘의 천정이 가히 천룡(天龍)의 세계다. 용은 만유의 생명력과 변화의 근원인 물을 상징하고, 우주에 가득한 기(氣) 에너지이며, 신성을 지키는 수호력의 상징이다. 사찰장엄에서 용의 표현은 목조건축과는 절대상극인 화기를 다스리고, 종교적 신성을 결계하고 호위하는 수호력의 강력한 부적이자, 내적의지의 힘이다.

부안의 개암사 대웅전에서 입체적 용 조형의 반복적 배치를 통해 종교적 신성 수호자로서 용의 집단적 위용을 실감하였다면, 선운사 대웅보전에서는 거대한 용의 평면회화적 반복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광대무변(廣大無邊)의 불국토장엄에 대한 신심을 얻는다. 폭풍우가 몰아치듯 여의보주를 취하려 거세게 용틀임하는 파죽지세의 용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 신성의 불국토에 밤하늘의 별처럼 진리의 꽃, 화엄의 꽃들이 총총히 빛난다. 선(禪)의 구름(雲)에서 취한 진리의 한 맛, 일미(一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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