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그 한 구멍에서 나오는 거니 그 한 구멍에 놔라!

▲ 그림 최주현

진짜 자비한 사람은 욕심도 없고
욕심 아닌 것도 없고 다가오는 거 겁내지도 않고
다가오는 거 탐내지도 않고, 그냥 허공과 같아.
그 허공 같은 마음이라야 내가 찰나찰나 나투어 화하고
또 응해 주고 나 아니 되는 생명들이 없이 되지.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3(남) 저는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눈물 질질 흘리면서 34년이 지난 이날, 이제서야 어머니 고향인 이곳

큰스님 앞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간절한 원이 있어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저 푸른 하늘 창공, 눈 없는 눈으로 길 없는 길을 찾아, 발 없는 발과 손 없는 손으로 두둥실 춤을 추며 큰스님 모시고 우주 삼천대천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있는 이 미련한 놈은 엄마 배 속에서 막 나온 눈먼 장님입니다. 큰스님의 대비하심과 위없는 가르침을 엄마의 젖줄로 삼고 유생 무생 만물만생을 도반과 스승으로 삼아 올바르게 탕탕하게 평등한 자비심을 두루 갖추어 큰스님 같은 대장부가 되고 싶습니다.

큰스님께서 가르치시기를 욕심내려면 큰 욕심 내고 도둑놈 되려면 큰 도둑놈 되라고 가르치셨기에 이 미련한 놈이 큰 욕심을 내어서 우주 삼천대천세계를 통째로 집어삼킬 큰 도둑놈이 되려고 왔습니다.
큰스님 되려고 해도 아니 되고 다 집어삼키려고 해도 아니 되고, 또 나하고 같이 한다고 해도 아니 되고 또 아니 한다 해도 아니 되고….
그런 사량은 다 버리고 오직 한마음이, 두 마음이 아니라 한마음이 일체 닥치는 대로 다 집어삼킬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그대로 여여하게 그대로 발을 떼어 놓고 다니다 보면 날아도 다니겠지, 날개가 생겨서. 그리고 또 구석구석 이 자기가 없어야 그것이 일치되는 거지 자기가 있다면, 배울 수 있는 자기 못난 놈이 있다면 아니 되지.

못난 놈도 없고 잘난 놈도 없어야 되겠지. 그 못난 놈이 있다면 어떻게 그게 거기에 해당하는가, 둘이 아니게. 내가 없어야 벌레 하나라도 버리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있다면 벌레 하나뿐만 아니라 모두 미운 거 다 버려야 하고 나쁜 거 다 버려야 하고, 이렇지 않은감? 좋은 것만 차지하고. 그러니 좋은 것을 차지할 때는 나쁜 것도 또 생기게 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이 소리죠.
그러니 모든 일체를, 벌레 하나까지도 다스릴 수는 없게 되지. 그러니 못난 놈까지 버려. 배워야 하겠다는 그놈이 버려. 그냥 버리라는 게 아냐. 죽어야 죽은 세상을 보지 어떻게 살아 가지고 죽은 세상을 다 알 수 있겠나. 안 그런가?

질문자3(남) 예, 옳으십니다.

큰스님 그래서 진짜 욕심이라는 건 욕심을 내지 않고 욕심이…, 욕심이라는 건 말뿐이야. 진짜 자비한 사람은 욕심도 없고 욕심 아닌 것도 없고 다가오는 거 겁내지도 않고 다가오는 거 탐내지도 않고, 그냥 허공과 같아.

그러니까 그 허공 같은 마음이라야 내가 찰나찰나 나투어 화하고 또 응해 주고 나 아니 되는 생명들이 없이 되지. 첫째는 벌써 내 몸 안의 생명들을 나하고 둘 아니게 조복을 받지 못해. 내 안에 있는 생명들을 나하고 둘 아니게 조복을 받아야 상대 모든 거하고도 둘 아니게 되고 역대 조사들 부처님하고도 둘 아닌 자리가, 한자리가 돼 버려. 내가 대천세계니 삼천대천세계니 온통 우주 천지를 다 집어삼키고 싶어도 그건 엉뚱한 생각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러한 생각을 다 놓고, 요만한 거 하나를 조복 받을 수 있어야 그만한 것도 조복 받을 수 있다 이 소리야. 집을 짓더라도 기초가 되지 않았으면 그 집이 무너지게 돼 있어. 알았죠?

질문자3(남)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명심하겠습니다.
큰스님 허허허. 그래서 버리는 사이 없이 버려라. 내가 이런 말을 지난번에 했어요. 우리가 사는 것도, 부처님께서 말씀시기를 ‘공했느니라.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인데 그냥 여여하니라.’ 이런 말씀 그 한마디에 이 세상 돌아가는 걸 다 아셨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 세상에 발자국 떼어 놓고 다니는 것도 한 발 떼어 놓으면 한 발 없어지죠? 보면 본 것이 없어지죠? 들으면 들은 게 없어지죠? 온통 없어지는 것뿐이야. 보이는 것뿐이고 없어지는 것뿐이니, 보는 것대로 없어지고 듣는 것대로 없어지고 움죽거리는 대로 없어지니 어디 붙들 게 있어서 내가 있단 말이오? 응? 하도 이것저것 너무나 할 게 많고 한 게 많아서 아예 했다는 말도 못하고 한 놈도 없어지고 말아 버렸어.
지금 현실이 그러해요. 현실이 그러한 거는 한생각에 백지장을 벗어나질 못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세상에 내 생명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다 버렸다면 뭣이 겁나는 게 있겠소?

하늘이 무너진대도 겁나는 게 없을 거고 나를 마구니가 와서 다 집어간대도 겁날 일이 없고, 칼이나 총이나 가지고 와서 죽인다 하더라도 겁날 일이 없고, 아무것도 겁날 일이 없을 때, 그냥 여여할 때, 언젠가 육조 스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내가 말을 했죠. “내 불성이 있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여여한 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갖추어져 있음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만법을 들이고 내는 걸 어찌 알았으리까.” 하신 말씀 말입니다.
그러니 나를 세워서 그렇게 해 보겠다는 생각이라든가 그런 것들도 다 놓고, 젖줄은 그대로 당신한테 주어져 있으니까 찾을 뿐이지 뭘 욕심내고 그럴 것도 없어요. 그런 엄청난 생각에 잠기면, 망상이 휘몰아치면 오히려 들뜬 미친 사람이 되니까 절대로 안정하고 진짜로 믿어요. 내 뿌리를 진짜로 믿어요. 그 뿌리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만 그냥…. 불성이 바로 뿌리니까.

질문자3(남) 감사합니다.
큰스님 옛날에 어느 조사님들이 죽 앉으셨는데 어느 학인이 들어와서, 그 변재가 유명하더랍니다. 선지의 변재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보게, 자네 차 마실 줄 아나? 차 마실 줄 알걸랑은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 했더랍니다.
차 마실 줄 아는 사람이라야만 되는데 차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이 그 변재를 늘어 놓으니 너무 어이가 없었던 거죠. 그러니 변재를 가지고, 말을 가지고 법을 실천할 수는 없다. 즉 말하자면 공법을 실천할 수는 없다 이 소리죠. 편히 앉아서 해요.

질문자4(남) 스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름이 아니고요, 뭐 말재주도 없고 이런데 지난 촛불재 지낼 적에 말입니다, 첫날은 잘 몰랐는데 둘째 날하고 셋째 날하고 이 속에서 뭉클뭉클한 눈물이 콱 나더라고요. 스님들께 너무너무 감사하고 해서 인사 올릴 겸 그래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런데 그 눈물이 나는 것은 안의 참자기와 이 부처님의 뜻과 동시에 통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통신이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자비의 눈물이죠. 그리고 감사의 눈물이고 또 번뇌 망상, 운명 팔자가 무너지는 눈물이고, 그 세 가지가 다 포함됩니다.

질문자4(남) 그 순간에 그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큰스님 하하하.

질문자4(남) 그리고 그다음에 말입니다, 지나고 난 다음에 책을 다시 보니까 그 줄에 그게 안 띄어요. 처음에 그게 딱 보이더니만 그게 안 보이더라고, 그게요. 나타났다 들어갔다 그러는 모양이죠?
큰스님 그렇게 자꾸 해 나가세요. 자꾸자꾸 그렇게 될 때에는 통신이 되고 문이 열리는 때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자주 있다 보면 문이, 문 아닌 문이 열릴 수가 있는 거죠.
질문자4(남) 감사합니다.

질문자5(남) 생활 속에 있었던 조그만 이야기를 스님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문을 잠그려고 열쇠를 돌리는데 열쇠가 부러지더라고요. 맨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좀 있다 보니까 기분이 좀 나쁜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들의 습관인 것 같습니다.
좋다 나쁘다는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고요. 제가 스님께 묻고 싶은 것은 좋다 나쁘다는 것이 업식에서 나오는 것인지, 근본 자리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서 묻고 싶습니다.
큰스님 자기 마음이 깨이질 못했기 때문에 자기 몸뚱이 속의 의식들에서 나오는, 마음을 통해서 나오는 마음이죠.
그러니까 의식들을 전부 전체 다스리고 가는 중심처는 뭐 좋다 나쁘다 할 것도 없고 움죽거리지도 않고, 힘만 배출해 주는 심봉이니까요. 그러니까 의식 속에서 나오는 거죠. 그러니 모든 것을, 좋다 나쁘다 모든 게 그 한 구멍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 한 구멍에 놔라 이 소립니다.

좋은 것도 그 속에서 나오는 거고 나쁜 것도 그 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 속에다가 놔라 하는 것은 그것을 다, 좋다 나쁘다를 소멸시키고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나는 대로 그냥 하는 게 법이에요. 그 가운데서.

질문자5(남) 예. 감사합니다.

질문자6(남) 감사합니다, 큰스님. 제가 질문을 준비해 왔는데 그 질문이 큰스님께서 법문하시는 중에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다시 확인차 질문드리겠습니다. 마음을 계속 관하고 가다 보니까 믿음이 크게 생기면서 어떤 괴로움이나 즐거움 그리고 욕망, 그런 걸 다 하긴 하되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하긴 하되 하지 않는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는 깨지려야 깨질 수가 없고 어떻게 주려야 줄 수 없는 그 자리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괴로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 괴로움까지도 다 놓고 가니까 환희심이 들었습니다. 제가 만약에 이게 지금 잘못된 공부라면 처음부터 다시 그냥 시작하겠습니다.
큰스님 아니죠. 아주 잘해 나가요. 왜냐하면 지금 여기 걸어올 때에 발자취를 자동적으로 버리면서 지금…, 올라오긴 올라왔죠. 그러니까 걸어오는 사이 없이 걸어왔다, 이 소리나 똑같은 얘기예요. 그러니까 하는 사이 없이 한다.
생각나는 사이 없이 생각이 났다. 그러니 그거를 다 놓고 그냥 갈 줄 알게 된 것도 정말 감사해요. 놓고 그렇게 갈 수 있다면, 진짜로 믿고 놓고 갈 수 있다면 됩니다.

질문자6(남) 감사합니다. 한 가지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공부가 있다고 하시는데 이 속에서는 그것이 전부터 한가지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세 가지 단계가 다 있지만 한 가지라고 느껴 가지고 스님께 다시 한 번 질문드립니다.
큰스님 오, 그래요. 삼천대천세계도 일심으로 돌아가니까요. 미래도 현실이요, 과거도 현실에 그냥 돌아가는 겁니다, 천당 지옥도 따로 없이. 그러니까 그 또한 그럴 테죠. 그러니까 그 원리를 알고 그 뜻을 알고 행한다면 그대로 법이 아니겠어요?
질문자6(남) 감사합니다.

질문자7(여) 스님, 감사합니다. 평소에는 제가 선원에서 질문드릴 기회가 있으면 우주, 상생계나 혹은 우주인들의 생활 모습 또 문화생활 이런 것들이 참 궁금하다는 생각을 해 왔었는데 오늘은 질문을 드리려는 생각 없이 그냥 안양에 공부하러 간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친정 어머니께서 평소에 잘 안 오시는데 오셔서 어젯밤에 저의 집에서 주무셨습니다.
제가 다음 주에 이사를 앞두고 이삿짐도 싸야 되는데 ‘안양에 간다 그러면은 뭐라 그러실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주인공, 그냥 나는 간다.’ 그러고 새벽 한두 시쯤 책상에 앉아 있으니까 어머니께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래서 너 어디 갈 거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예, 어머니. 안양에 공부하러 갑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좀 이상한,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니고 새벽에 돌아가신 네 아버지가 너무 생시같이 나타나서 쩡 울리는 목소리로 “내 옷이 왜 이러하냐. 내 옷이 참 더럽다.” 그러는데, 하얀 두루마기를 입으셨는데 어머니께서 이렇게 보시니까 팔 부분하고 겨드랑 밑에는 곰팡이가 막 슬어 가지고 아주 보기가 흉하셨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놀라 가지고 딱 쳐다보시니까 그 옆에, 밑에는 남색 치마를 입고 위에는 진달래색 저고리를 입은 여자 분인데 얼굴을 보니까 얼굴은 없는 사람이 서 있었다고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내가 그거 고쳐 줄게요.” 그러면서 가위를 가지고 아버지 두루마기의 곰팡이 있는 부분을 다 자르니까 그 옆에 섰던 얼굴이 없는 그 여자 분이 화장실 쪽으로 막 도망을 가더라면서, 그게 뭐냐고 그러시는 겁니다, 저한테.
그래서 “저도 잘 모르지만 어머니, 어머니께서 꿈속에서 나쁜 것을 가위로 탁 제거해 주셨으니까 잘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속으로 ‘주인공, 옷이 더럽다는 건 무슨 뜻이지? 주인공, 주인공이 다 알아서 해 주리라고 믿는다. 주인공, 부탁한다.’고 이렇게 생각을 함과 동시에 마산지원 스님께 여쭤봐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승과 저승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으니까 아마 자식 된 도리로서 제가 해야 되는 어떤 도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냥 오늘 버스를 타고 오다가 내릴 때쯤 됐는데 마산지원장 스님께서 질문 있으신 분은 생각을 한번 하라고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질문을 드리려고는 생각 안 하고 ‘주인공, 질문이 있으면 주인공이 하라.’ 그렇게 관하고 눈을 탁 감고 있는데 갑자기 아침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어머니하고 나누었던 그 얘기가 강력하게 머리를 진동을 하면서 막 떠오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또 그 자리에 놓으면서 주인공이 하는 거라고, 내가 대중들 앞에 좀 나서기가 그렇다고, 주인공 심부름이라면 해야 되고 주인공이 다 하는 거라고 관하니까 제 내면에서 잘 갔다 오라던, 어머니의 두 눈동자가 탁 클로즈업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시기 때문에 이 공부에 대해서 마음을 깊이 나누어 본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제가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하니까 “잘 다녀오너라.” 하는 그 까만 두 눈동자가 가슴에 꽉 메이면서 가슴이 그냥 뭉클한 겁니다.
그래서 아, 어떤 뜻이 있겠다 그래서 제가 아직 어려서 정신세계나 이런 걸 잘 모르니까 스승님 계실 적에 여쭤 뵙고….
큰스님 그러니까요, 아버지는 환생이…, 천도가 됐다고 봐야죠. 왜냐하면 순간에 말입니다, 그 곰팡이 나고 더럽고, 왜 이렇게 추저분하고 더러우냐 그러니까 어머니가 가위로다 곰팡이 난 거를 다 잘라 줬다고 했죠?
그러니까 이제는 아무것도 곰팡이 난 게 없이 환생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환생이라는 것도 차원에 따라서 환생이 돼야 되는 거니까. 얼굴 없는 모습이나 어떠한 얼굴로 나오든지, 여자로 나오든지 뭐, 그 여자로…. 과거 태어나시기 이전에 여자였던 모양이죠. 아버지로 태어나시기 이전에 여자의 영혼이 바로 태어나선 남자가 되고 그랬기 때문에 얼굴이 바뀐, 바로 얼굴 없는 여자죠. 그러니까 전생의 자기가 자기를 그렇게 다 잘라 버려 준 거죠. 그러니까 자기 그 영혼의 근본만이 자기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소생은 됐습니다. 허허허허, 좋으시겠습니다. 어머니가 교회 나가십니까? 성당에, 천주교?

질문자7(여) 어머니께서 선원 이야길 들으시면서 불교에 마음이 있어도 한평생을 성당을 다녔기 때문에 주위 눈을 봐서….
큰스님 아니죠. 그것은 마음이 제일이니까. 무슨 기독교를 나가든지 가톨릭교를 나가든지 불교를 나가든지 그 마음 모이는 자리는 한자리밖엔 없어요, 마음이라는 건. 그러니까 어머니도 좋으시겠습니다. 하하하.
하여튼 오늘 이렇게 진행되고 잠시 잠깐이라도 같이 앉아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도반 여러분! 우리가 몇 생을 지나 내려오면서 인연이 됐던 인연으로 우리가 또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이거는 누가 가라고 발길로 차도 안 가지는 이런 인연이 과거로부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요다음 세세생생까지 우리가 이 공기주머니를 벗어나서, 이 수레바퀴 속에서 같이 벗어나서, 물론 죽고 사는 그 생사윤회에서도 같이 벗어나서 자유권을 얻고 자유자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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