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28〉 영광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에 용이 떠받친 보주탑
보주는 광명편조의 화엄의 빛
용은 무한한 변화능력 갖춘 힘
민화풍 별지화에 시대흐름 배여

천정에 장엄된 세 가지 문양. 육엽 범자연화문과 태극 넝쿨문, 붉은 바탕 백묘 넝쿨문 셋이다. 넝쿨문의 한가운데는 생성과 순환의 근원인 태극과 보주 덩어리가 있다.
법성포-영광-불갑사의 불연(佛緣)

한국불교사에서 바다를 통한 남방불교 전래지로 거론되는 곳이 몇 있다. 해남 미황사, 나주 불회사, 영광 불갑사 등이 대표적이다. 영광의 ‘영’은 ‘신령 령(靈)’이다. 예사롭지 않은 지명이다. 영광(靈光)은 ‘신령의 빛이 머문 땅’이다. 그 땅을 접어드는 포구가 법성포(法聖浦)다. 법성포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진리가 전해진 포구’라는 의미다. 법성포에서 22번 국도로 내륙을 가로지르면 불갑사(佛甲寺)에 이른다. 불갑사는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성포-영광-불갑사에 이르는 일관된 흐름의 지명에서 불국토의 인연과 불교전래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진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똑같이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남중국 동진에서 들어와 백제땅에 최초로 불교를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어느 지역으로 들어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단지 인도승 마라난타가 영광 법성포로 들어와 백제땅 최초의 사찰 불갑사를 세웠다고 구전될 따름이다. 기이한 지역명의 인연들이 근거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리라.

대웅전에 모신 삼존불과 닫집
건축과 예배 축이 직교하는 가람

불갑사 대웅전은 영조 40년, 1764년에 중건된 건물이다. 2002년 대웅전 해체 수리공사 중에 종도리에서 상량문 묵서가 발견되었다. 묵서에 의하면, 1764년의 중창은 여섯 번째에 이르는 ‘제 6중창’으로, 건축을 총괄지휘한 도편수는 구례 화엄사 승장(僧匠)이었던 쾌연이고, 26명의 목수가 참여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불갑사 가람의 진입축은 동서방향이다. 대웅전은 동쪽에 앉아 서쪽을 향한 서향건물이다. 그런데 법당에 모신 삼존불은 법당의 정면이 아닌 측면방향으로 모셔져 있다. 불상은 북쪽에 앉아 남쪽을 보고 계신다.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마곡사 대광보전, 통도사 영산전, 대웅전처럼 건축의 중심축과 불상을 향한 예배축이 서로 직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배치는 제 6중창 이듬해인 1765년에 단청채색을 입히면서 불상을 지금처럼 남향으로 봉안하였다고 상량문은 밝히고 있다. 지형적 특성에 의해 가람의 중심축은 동서로 전개시켰지만, 법당내부 불상의 배치는 대웅전 남향배치의 일반성을 추구한 산물로 보인다. 그것은 마치 청도 운문사 건축들이 지형구조 따라 산을 등진 모습으로 앉아있지만, 실제로는 산을 바라보는 남향인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의 건물에 두 개의 중심축을 동시에 갖춘 까닭에 7짝이나 되는 많은 창호를 갖추고 있다.

대웅전 외형에서 풍부한 창호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이 지붕 용마루의 보탑 구조물이다. 용마루의 보탑은 용의 정면 얼굴조형에 석탑의 몸체 한 층을 올리고, 그 위에 보주(寶珠)를 얹은 유례없는 독특한 형태이다. 김제 금산사 대장전 용마루에서 이와 비슷한 조형을 볼 수 있고, 청동보주 장엄은 양산 통도사 적멸보궁과 밀양 표충사 대광전 용마루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상징이며, 심오한 불교철학을 담고 있다. 법당은 법의 집이다. 법은 부처님의 말씀, 곧 연기법의 진리다. 용마루의 보주는 우주만유에 비추이는 광대무변의 진리의 빛, 곧 광명편조(光明遍照)의 비로자나 법신에 다름 아니다. 거룩한 법신의 상징인 까닭에 커다란 용이 받치고 있다. 법당 자체가 우주의 축소판인데, 그 중심 용마루에 법신의 빛인 보주를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바다의 수평선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성스러운 장면이다. 부처님의 자비와 말씀이 태양처럼 법당 용마루에 솟구쳐 올라 찬연히 빛나고 있는 것이다.

기둥에서 내려오는 용, 용마루의 보주탑, 용수판을 닮은 충량의 용, 포벽과 판벽에 장엄된 벽화들.
태극과 보주, 생성과 순환의 근원

대웅전 천정에도 온통 보주들이 미어 터지고 있어 놀랍다. 대웅전 천정에 베푼 문양은 세 종류다. 육엽 범자연화문과 태극 넝쿨문, 그리고 붉은 바탕의 백묘 넝쿨문 셋이다. 육엽 연화문의 한가운데 씨방자리엔 비로자나불 법신을 상징하는 ‘옴’ 종자불이 있다. 법신 종자불에서 여섯 줄기가 뻗쳐 새로운 범자불이 탄생한다. 여섯 종자불은 붉은 색 계열의 장단-주홍-다자로 이어지는 초빛, 이빛, 삼빛으로 층단 바림을 풀었고, 그 바깥으로 다시 꽃잎 형태로 백록-양록으로 이어지는 초빛, 이빛의 바림을 입혀 부처님의 공덕세계를 무한히 확산시키고 있다. 검은 바탕의 천공에는 다시 대단히 개략화한 흰빛의 육엽연화문을 빼곡이 베풀어 중중무진의 화엄세계를 고도의 압축적 상징체계로 드러냈다. 주홍과 양록의 색감이 조화로운 그 종자불의 세계는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대칭으로 끝없이 펼쳐진다. 한마디로 대방광불의 화엄세계다.

천정장엄에서 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태극 넝쿨문양이다. 중앙천정에 베푼 붉은 바탕의 백묘 넝쿨문도 태극 넝쿨문양과 위상수학적으로 연결상태가 동일한 모티프의 문양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태극문은 태극에서 에너지가 나와 발산하는 구조이고, 백묘 넝쿨문은 중앙으로 수렴하는 구조로 대비를 이룬다. 하나가 연역적이라면, 다른 하나는 귀납적이다. 그럼에도 수렴하고 발산하는 생명력의 에너지는 대단히 힘차고 역동적이며, 폭발적이다. 태극은 본질적으로 우주만물이 생성하고 순환하는 거대한 원리이자 근원이다. 우주생성의 시원이면서, 만유의 근원이 태극이다. 문양의 한가운데는 백-청-적색의 삼택극이 유기적으로 순환하며 통일을 이루고 있다. 삼태극으로부터 양록과 주홍의 바림으로 에너지가 퍼져나가 여섯 꽃잎 사이로 보주가 미어터져 나온다. 동양철학적 우주생성의 원리가 담긴 심오한 메트릭스다.

이 장면들은 불교와 도가의 습합이라 할 것이며, 인도 불교철학과 동양의 도가, 혹은 유가철학의 경이로운 결합장면이 아닐 수 없다. 도가사상을 통해 불교의 화엄세계를 비추고, 화장세계를 통해 도가철학의 정신세계를 비추이고 있는 경이로운 모멘트다. 태극에서 보주가 나와 강력한 생명력의 자성을 띄고 있는 장면은 마치 우라늄 원자핵의 모형을 보는 듯 하다. 태극과 보주로 이루어진 원자핵으로부터 강력한 생명력의 에너지가 분출해서 나선형으로 법계에 뻗치는 경이로운 도상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기운생동한 오방색의 태극문양은 양산 통도사 대웅전과 기장 장안사 대웅전 등에서 드물게 나타날 뿐이다. 역으로 백묘 넝쿨문에서는 모든 에너지가 보주로 응축되고, 그 보주는 연화의 씨방자리에 입체적 형상을 취했다. 일종의 보주꽃의 형상이다. 연화좌의 보주이니, 보주는 곧 부처의 압축된 상징이다. 불보살의 존상을 상징하는 일종의 삼매야형(三昧耶形)으로 조형화한 것이다. 보주 주위로 빛과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국토에 놓으신 부처님의 광명에 다름 아니다.

대웅전 천정 전체 모습. 대들보에 얹혀있고, 용의 몸통으로 응용된 부재가 충량이다. 충량의 끝 단면에 용수판을 닮은 용을 붙였다.
기둥 타고 내려오는 장난기의 용

불갑사 대웅전 내부에서 심층적인 보주장엄과 함께 더불어 주목을 끄는 장엄은 용의 구상세계다. 연꽃과 보주와 용은 외형적 구상에서 서로 다른 듯 하지만, 변화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모티프다. 연꽃과 보주는 씨앗, 혹은 자궁 같은 생명의 원천력과 밀접한 상징구조라 한다면, 용이나 봉황, 넝쿨 등은 신령한 기(氣), 혹은 생명 에너지에 보다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용은 무한한 변화능력을 갖춘 신령한 힘, 또는 에너지 그 자체다.

불갑사 대웅전 내부엔 곳곳이 용의 장엄이다. 대들보나 평방에 베푼 평면회화의 용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입체조형으로도 베풀었다. 귀공포에서 살미공포의 에너지로 나툰 용을 비롯해서 율동감 있게 굽이친 충량부재를 그대로 용의 몸통으로 극대화 하기도 했다. 충량을 이용한 용은 흔히 접하는 충량 단면 마구리에 용 얼굴을 그려 넣은 형식이 아니라, 망자의 상여 앞뒤에 붙이는 용수판(龍首板)처럼 용 얼굴을 조각한 판재를 붙인 독특한 형태다. 닫집의 내림기둥에 장치한 용 조형도 그 응용력이 대단히 극적이고, 심미적이다. 짧은 내림기둥에 아름다운 오색의 구름을 공모양으로 사뭇 풍성하게 조형한 후, 용의 머리부분만 살짝 얹어서 신령한 기운 속에 용이 나투는 형상으로 재치있게 표현했다.

닫집 칸의 고주(高柱)에 장엄한 용은 재치를 넘어 익살과 해학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수달, 혹은 다람쥐처럼 생긴 동물을 쫓아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 용의 형상에서 미소가 절로 흐른다.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에서도 비슷한 조형을 만날 수 있다. 용의 표정엔 신성 대신 장난기가 가득 발동해 있다. 익살의 문양을 보니 낭만주의 단계를 지나 근세로 향하는 시대적 흐름이 눈에 아른거린다. 상벽의 판벽에 베푼 별지화 속에도 변화하는 시대의 바람이 배여 있는 듯 하다. 병풍그림의 소재인 포도 넝쿨이 우아한 율동으로 바람을 타고 있고, 바위와 함께 그린 모란도는 19세기 민화와 매우 흡사하다. 바위에는 명암을 풀어 입체감을 살려내고 있다. 시나브로 ‘중세의 가을’을 넘어 근세의 시대정신이 조금씩 배여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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