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정각원 토요법회 - 〈승만경〉 강의 -해주 스님(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팔경계는 부처님 사후 500년
정통교단이 위협 받을 때 나온 ‘설’
승만 부인이 일승의 대방편을
사자후하는 내용 〈승만경〉에 실어
여성의 성불 평등함 보여줘

 

▲ 해주 스님은 … 운문사로 출가 동학승가대를 졸업하고 동국대 불교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불교학연구회 회장과 조계종 중앙종회 종회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수미정사 주지, 학교법인 승가학원 법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 정도로만 여겨지던 부처님 당시, 부처님은 여성을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사회제도의 벽을 허무는 일대 혁명을 이루었다.〈승만경〉은 재가자 여성의 사자후를 다룬 경전이다. 해주 스님은 승만경을 통해 ‘비구니 팔경계’와 ‘변성성불론’ 등을 문헌적으로 해석해 남녀의 성불이 평등함을 밝히고 있다. 동국대 정각원 토요법회 승만경 강의 5강 중 그 첫 번째 강의만 요약한 것으로 승만경의 전반적 배경을 이야기 하는 내용을 실었다. 정리=정혜숙 기자

 

오늘은 〈승만경〉의 전반적인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소설에서 육조단경 내용을 읽고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풍동 번동 심동이라고 아시죠? 혜능 스님이 어느 절을 찾아갔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고 두 스님이 법담을 나누고 계셨어요.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라 했고 다른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어요. 그러니 육조혜능 스님께서 “깃발을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바람도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셨다고 하죠.

그 말씀을 중학교 1학년 때 책에서 봤어요. 엄청 충격적이었어요. 어떻게 마음이 움직인다고 할 수 있을까? 스님들은 특별한 삶을 사실 거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부터 마음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죠. 스무 살이 되면 로봇 하나 만들어서 우주 탐험하고 싶었어요. 그러니 저는 두 마음이었어요. 도사 따라 절에 가서 도 닦고 싶고 또 과학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다가 이모가 입원해서 병문안을 갔는데 그때 한 젊은 청년이 음독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쳐서 실려왔어요. 그걸 보고 과학은 우리를 편리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죽고 사는 것은 마음에 달렸다 판단하고 바로 출가를 했어요.

당시는 스승을 찾아다니던 시절이라 동학사에서 졸업을 하게 됐어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출가하고 머리 깎으면 도인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강원을 5년 다녔는데 마음 쓰는 것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러니 혹시 내가 아는 큰 스님은 책에서만 나오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유롭지가 않았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전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데 책 보고 있으면 안 된다 생각했죠. 화두 드는 것만이 마음공부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속 화두 들러 가야지 이 생각만 했어요. 그러다가 화엄반이 됐어요. 〈원각경〉, 〈화엄경〉 등 다양한 경전을 공부했는데 그때 화엄경을 배우면서 부처님의 말씀과 글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전부 마음공부 이야기였는데 딴 데 가려고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문헌으로 글을 더 배우려고 동국대에 왔어요. 제가 전교 수석 졸업한 건 맞아요. 사실, 초중고 대학 전교 수석 안 해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공부 잘한다고 마음 잘 쓰는 거 아니잖아요?(웃음) 지식과 인격, 지혜와 인격이 같이 가는 게 아니니까요. 전교 수석을 해도 아는 게 없더라고요.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요.

석사를 해도 모르는 게 더 많았고 박사 과정에 도달했는데도 그랬어요. 그러고 보면 마음공부가 특별한 장소가 있는 게 아니에요. 수행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죠. 화엄경 때문에 학교 왔기 때문에 계속 화엄을 공부하게 됐어요. 화엄을 통해서 마음을 해결하려고 했어요. 화엄 교학의 바탕은 여래장 사상인데요. 그 여래장 사상의 소의경전이 〈승만경〉이에요.

제가 85년도에 박사를 수료하고 86년도에 비구니 스님으로서는 대학 강단에 처음 섰습니다. 그러니까 강사로도 처음 교수로도 처음 비구니 스님이 강단에 선 거에요. 그때 처음 하게 된 것이 불교여성학이었어요. 당시 선학과 조교를 하면서 학교에서 특별한 과목을 개설하면 좋겠는데 뭐 없냐고 묻길래 ‘불교여성학’을 하나 개설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2학년 과정으로 개설이 됐는데 비구 스님은 강의 할 사람이 없고, 비구니 스님도 하시겠다는 분이 없으셨어요. 결국 제가 하게 됐죠.

제가 박사 과정 때 논문을 두 편 썼는데 하나가 ‘비구니 승단의 성립’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변성성불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 대한 것이었어요. ‘변성성불론’이란 성불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의 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인데 이에 대한 비판론을 논문으로 쓴 거죠.

그 해에 여성학회가 생겼는데 당시 이화여대 총장님이 ‘종교와 여성 문제’로 토론을 주최했는데 제가 불교 관련 파트에 참여해 발표를 하게 됐어요. 이때 발표한 내용이 ‘비구니 팔경계’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여기에는 첫 번째, 마지막번에 ‘비구니는 100세가 됐다 하더라도 처음 출가하신 비구 스님 발 아래에 절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요. 비구니 스님한테는 엄청나게 차별적인 이야기죠. 80년대 한국 여성학회가 생기면서 신학대학에서 여성신학 과목이 필수 과목으로 선정될 때였는데 불교 쪽에서는 승가 재가 모두 남녀 차별이 너무 많은 거 같았어요. 〈승만경〉은 재가여성이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사자후를 하는 경전이라고 해서 재가불교 특히 여성불교에 으뜸가는 경전으로 일컬어지고 있죠.

하지만 제가 논문을 쓸 당시에는 아무도 이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 때여서 여러 문헌을 뒤져서 비판적으로 그냥 썼어요. 제가 비구니니까요. 그 바람에 징계 당할 뻔했어요. 물론 징계를 당한 건 아니에요.

모든 문헌을 통해 재해석 해보니 비구니 ‘팔경계’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말씀이 아니었어요. 이 이야기는 교단이 약해져서 부처님 열반 500년 후에 나왔어요. 교단 내에서도 대승불교가 일어나니 부파불교가 새 교단의 위협받을 때 교단을 정비하면서 나온 것이 비구니 팔경계 문제였던 거 같아요. 이렇게 문헌을 재해석해서 승만부인 이야기를 하니 당시는 모두가 입을 닫았어요. 지금은 비구니 스님도 활동을 많이 하시고 불교여성개발원에서 〈승만경〉 공부를 열심히 하니 승만 부인의 힘이 막 드러나고 있지만 말이죠.

〈승만경〉은 대승경이고 일승경이에요. 대승경전 중에서도 그 이름이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勝?獅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이에요. 승만 부인이 일승의 대방편을 사자후하는 경전이라는 의미죠. 그러니까 대승 이론이 막 일어날 때 그 이념과 사상과 수행 방편을 적어 놓은 게 있어요. 그때 대승경전이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지면 〈승만경〉은 중기 이후에 나온 경전이죠.

대승운동이 막 일어나고 있을 때 정통교단이라고 했던 이십부파 교단이 위협을 받을 때였죠. 바깥으로는 외세침입도 받았겠지만 불교교단 전체로 바라보았을 때는 정통바라문이 다시 재정비를 하면서 인도 전체를 휩쓸고 있는 종교가 재정비 될 때였어요. 이때 여성 출가에 대한 위협이 가해졌죠. 여자는 마구니는 될 수 있어도 마왕도 못되고 전륜성왕도 못 된다는 등의 말이 있었죠. 또한 정법이 천년을 갈 건데 500년 밖에 못가는 것은 여자가 출가해서 비구니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와요. 교단사가 다시 쓰여지고 교단이 재정비 될 때 이런 말이 나온 거 같아요.

그런데 〈승만경〉은 비구도 아니고 여자가, 부인이 사자후를 하는 내용이에요. 재가여성불자가 법사계에서 사자후 한다는 거죠. 〈승만경〉은 436년에 중국에서 번역이 됐고 576년에 전래됐어요. 인도에서는 적어도 중국보다 100년 전에 편찬되었을 거예요. 일승경전은 대승 중에 대승이에요. 그래서 재가자 출가자 모두 좋아하는 경전이에요.

당시 논문에 이렇게 썼어요. ‘부처님이 26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또 만세 천만세가 지나가도 모두가 부처님을 우르러 볼 수 있도록 하려면… 모든 존재들이 평등하다고 부처님이 설하셨지 어디 교단 내에서 차별을 했겠는가’ 이런 맥락으로 논문을 썼죠. 당시는 이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이제는 문제 될 게 없어요. 이렇게 〈승만경〉이 뜨고 있으니 요즘은 괜찮아요.

〈법화경〉에 팔세용녀 성불이야기가 나와요. 용녀가 여덟살 때 성불을 하는데 그때는 잠깐 남자 몸을 바꿨다가 바로 성불하는 얘기죠. 그래서 남자가 성불할 수 있지 여성은 남자 몸으로 바뀌어야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한 마지막 대승경전이 법화경이라고 보면 돼요.

그 이전에는 어떤 경전이 나오느냐 하면 ‘전여신경’이 있어요. 여기에도 여자의 성불 얘기가 막 나올 때 여성의 몸으로 하면 안 되고 남자의 몸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런 이야기는 〈법화경〉이 마지막이고 그 이후의 〈화엄경〉에는 여성 선지식이 21명이 돼요. 21명 모두 각계각층의 여성들로 선재동자의 선지식으로 나와요.

〈승만경〉도 ‘공의 도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여자에게는 여자라는 고정불변의 상이 없고 남자에게는 남자라는 고정불변의 상이 없다는 내용이죠. 그래서 대승의 공사상이 반야바라밀의 대표적인 방편으로 보는 대승 경전에서 볼 때, 남녀문제 출재가자 문제 불평등의 문제는 다 해결이 돼요.

그런데 그 일승이 뭐냐 하니까 〈승만경〉에서 삼원 십대수의 모든 발원이 하나로 모이면 일승이에요. 그 일승은 ‘모든 중생은 여래장 존재다’ 이거에요. ‘여래장’ 이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성이에요. 그러니까 여래가 부처죠.

여래장은 진여와 생멸 둘로 나눌 수 있어요. 진여는 여래, 생멸은 중생 쪽이죠. 마음을 진망화합심(眞妄和合心)으로 본 게 여래장 사상의 내용이에요. 자 그러면 우리가 부처님처럼 된다 이 마음은 진심이겠죠? 참 마음, 청정심이죠. 중생 마음은 번뇌 마음이다 허망한 마음이다 물든 마음이다 하는 것은 ‘망(妄)’으로 봐요. ‘망’이기만 한 게 아니라 진망 화합이다, 부처님 입장에서 대승은 성불 발원한 것이니 부처님처럼 될 수 있는 거는 불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죠. 불성이 여래장이라는 의미에요.

나에게 본래 부처님 씨앗이 있어 부처가 될 수 있잖아요. 이게 여래장 사상이에요. 씨앗이 다 있는데 어떤 건 씨앗으로만 있다가 사라질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싹이 났다가 죽을 수도 있어요. 그걸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승만경〉은 일승의 원을 삼원 십대수, 세가지 원을 다시 일승의 원, 섭수 정법의 원, 정법 올바른 가르침을 거두어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원으로 설명되고 있어요.

오늘은 해제격으로 말씀을 드렸어요.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학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이건 평등한 거예요. 스님은 스님대로 비구는 비구대로 비구니는 비구니대로 보살님은 보살대로 거사님은 거사대로 특징적인 장점을 가지고 불국토 건설에 재역할을 해주는 것은 차별이 아니고 평등하다는 겁니다. 각각의 특징적인 장점을 잘 활용하는 것이 곧 수행의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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