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25〉 태화산 마곡사 대광보전

나한도, 화조도에 생명력의 민화풍
약효, 문성스님 등 佛母들의 숲
석존, 아미타, 약사불 모신 천정
교상판석 경전 담은 희유의 장엄

대광보전에 장엄된 문양 세부. 선학, 모란, 연화문양은 내소사 대웅전, 대원사 극락전 장엄과 매우 유사하다. 육엽연화문에 부처와 경전의 세계를 함장하고 있어 놀랍다.

숱한 화승 배출한 경산화소 중심

마곡사(麻谷寺)는 태화산 능선들과 희지천 물길이 서로를 S자형으로 감아도는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의 태극형 길지에 입지해 있다. <택리지>, <정감록> 등에서 ‘유마지간 십승지지(維麻之間 十勝之地)’라 하여 공주 서쪽 유곡과 마곡 사이의 땅이 전란이나 흉년, 전염병 등의 삼재가 침범하지 않는 전국 10대 명당 중의 한 곳으로 손꼽아 왔다. 그러다 보니 마곡사 인근은 변동의 시대에 생명과 안전을 의탁하여 찾아드는 사람들로 붐볐고, 후천개벽을 실현하려한 허균의 홍길동전 서사와 동학교도들, 민족독립을 위한 백범 김구선생에 이르기까지 두루 발길이 닿아,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천 사람의 목숨을 살릴만한 ‘가활천인지명(可活千人之命)’의 땅으로 뿌리 깊게 인식되어 온 것이다.

불교회화사에서 마곡사가 차지하는 위치 또한 특별하다. 사찰에서 불상을 조성하거나, 단청을 입히고 불화를 그리는 장인을 ‘불모(佛母)’라 한다. ‘불모’는 부처님을 나투시게 한 어머니라는 의미다. 불모 중에는 스님도 있고, 속인도 있다. 불모인 스님을 화승(畵僧), 또는 ‘금어(金魚)’라 부른다. 조선불화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금어가 17세기 충청지역의 신겸, 팔공산 동화사 권역의 의균, 지리산 일대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기며 조선 최고의 금어로 불리웠던 의겸스님, 그리고 임한, 상겸, 축연, 철유스님을 거쳐 근대의 약효스님에 이르기까지 당대에 이름을 떨쳤던 화승들이다.

화승들을 전문적으로 기르고 배출하는 사찰이 ‘화소사찰(畵所寺刹)’이다. 조선후기 대표적 화소가 경산화소, 북방화소, 남방화소다. 경산화소는 서울경기지역 화소로 남양주 흥국사가 중심이었고, 북방화소는 금강산 일대로 유점사가 중심에 있었다. 남방화소는 공주 계룡산을 권역으로 해서 ‘계룡산화파’로도 불리웠는데, 태화산 마곡사가 중심이었다. 남방화소는 의겸스님의 제자 금호당 약효스님으로부터 근대의 보응당 문성, 일섭을 거쳐 현대의 석정스님에 이르는 불모의 계보로 이어져 조선불화사의 큰 맥을 이어왔다. 빛과 그림자의 음영을 통한 대비, 파격적인 구도운용, 원근법의 도입 등으로 현실감과 대상의 실체감을 드러내는 화풍을 진작시켰다.

조선말 마곡사에 상주한 스님이 300여명에 이를 무렵 불화를 배우는 스님만도 80여명에 이르렀다는 불모비의 기록에서 마곡사 남방화소의 위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조선불화사의 흐름에서 마곡사의 위상을 반영하듯 영산전, 대광보전, 대웅보전, 응진전 등 여러 불전에 장엄된 단청과 벽화, 불화, 천정장엄 등은 곳곳에서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한 사찰에서 이만큼 다양한 고전의 천정장엄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은 양산 통도사, 순천 선암사, 구례 화엄사 등 몇 몇에 지나지 않는다. 파랑새 불모들의 흔적이 삼밭의 삼대처럼 빼곡한 마곡(麻谷)의 숲을 이루었다.

천정 가장자리와 중앙부의 장엄. 가장자리에는 결계를 치듯 빙둘러 선학을 배치했고, 중앙부 핵심 세 우물반자에는 화엄경, 법화경 등 교상판석한 경전을 모셔 주목된다.
사방벽면 벽화 가득한 박물관
대광보전은 마곡사 북원 영역의 금당이다. 남향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이지만, 법당에 모신 비로자나불은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부처님처럼 서쪽에 결좌해서 동쪽으로 보고 계신다. 교리에 따른 건축적 해석의 산물이 아니라, 많은 대중을 수용하고, 충분한 예경공간확보를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같은 사실은 대광보전 내부에서 상부의 하중을 받치는 큰 기둥이 5개뿐이다는 점, 특히 예경의 중심영역인 불단 앞에는 고주가 하나도 없으며, 그 다음 칸에도 1개뿐인 사실은 통도사 대웅전에서처럼 의례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의도임을 유추할 수 있다. 내부공간의 사방벽면은 벽화의 세계다. 긴 건물에 내부 열주가 세워져 있고 사방벽면에 벽화와 불화 등이 가득하니 대광보전 자체가 하나의 불화 갤러리이자 박물관 같다. 불교미술의 훌륭한 미적체험 공간으로 손색없다.

벽화소재의 모티브들은 나한과 고사인물도, 화조도, 백의수월관음도 등이다. 벽면 가득 큼직하게 그린 나한과 고사인물들이 취한 자세와 지물들이 특이하고, 특히 배경이 되는 바위 등의 묘사에서 19세기 민화풍의 형태가 다분해서 주목을 끈다. 평방에 베푼 화조도는 영락없는 민화다. 오리를 닮은 조류의 머리에 공작의 깃을 닮은 깃털을 뿔처럼 그려 넣는 등 발상이 대단히 창의적인데, 후불벽 뒷칸의 천정판벽의 구름문양 역시 규범을 벗어난 파격적인 형태를 보인다. 구름을 사자, 코끼리 형상을 취하여 법당에 충만한 신령한 기운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구름의 형태를 빌렸지만 구름이 자연의 구름이 아닌, 미묘한 에너지임을 조형언어로 자신의 뜻을 분명히 드러내는 사의적(寫意的)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기법은 민화의 화조도, 또는 모란 그림에서 바위를 여러 동물의 형상을 취해서 바위에 깃든 애니미즘(animism)적 신령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원리와 다르지 않고, 동아시아 장엄예술에서 공간에 뻗치는 신령의 에너지를 용의 역동적인 용틀임으로 표현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벽면 가득 장엄한 벽화들. 수월관음도는 흙벽에 그린 벽화가 아니라 한지에 그려 겹겹이 바른 종이벽에 붙인 것이다.
학→ 연꽃→ 모란→ 범자문의 전개
대광보전의 천정은 상하층을 갖춘 층급 우물천정이다. 천정문양의 소재들은 선학, 쌍학, 모란, 육엽연화문과 범자문양으로 서남해안지역, 이를테면 내소사, 미황사, 선암사 대웅전과 대원사 극락전 등의 모티브들과 매우 유사한 패턴이다. 결계를 치듯 선학(仙鶴)을 천정 가장자리에 빙 둘러 배치하고, 선학→ 연화문→ 모란문→ 범자(한자)연화문 순으로 점차 개체 수를 줄여 나가면서 겹겹이 중중의 중심부로 향하는 방식이다. 선학과 직립 연화문, 모란문은 어느 절의 문양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 이러한 문양양식의 유사성의 접근을 통해 마곡사를 중심으로 한 남방화소의 화맥이 어느 지역까지 미쳤으며, 활동중심지역까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이든 고전의 원형은 다양한 해석과 융합 등을 통하여 지평이 보다 확대되고 재해석되기 마련인 까닭이다.

그런데 대광보전의 천정장엄에서 가장 주목되는 문양은 중앙 핵심부 범자연화문이다. 6엽연화문의 한가운데에 범자 ‘옴’을 넣고 여섯 잎엔 한자(漢子)를 넣어 문양 내부에 불어넣은 예술가 내면의 의지를 신비감보다는 보다 대중적인 계몽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먼저 어칸과 닫집칸 천정의 한자연화문은 천정의 꽃이 부처의 세계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여섯 꽃잎에 각각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문불’(나무석가모니불 일곱자를 여섯 꽃잎에 맞추어 ‘모니’ 대신 ‘文’을 넣었다), ‘나무약사존불’을 새겼다. 일반적으로 대웅보전에 모시는 삼존불의 존상이다.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대광보전의 성격과 합치되지 않아 의아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화엄교리적 측면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빛도 없고, 형체도 없는 법신 그 자체다. 법신이라는 말도 진여의 인격화에 다름 아니다. 오직 진리 그 자체다. 단지 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자재력(自在力)으로 여러 불보살로 나투신다. 석가모니불은 법신불의 일체이시다. 가장 정중앙의 핵심 자리에 석가모니불의 명호를 모신 것도 그 까닭일 터이다. 결국 천정장엄을 통해 부처님의 자비와 진리의 광명이 가득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조형들은 꽃으로 장엄된 천정의 화엄세계가 본질적으로 부처의 세계임을 우리의 인식을 거듭 환기시켜 준다.

충량에 그린 용 탄 동자상과 평방에 베푼 민화풍의 화조도. 대상에 대한 묘사력과 색채운영능력이 상당히 훌륭하다.
천정에 화엄경, 법화경 등 경전 모셔
그런데 우리의 안일한 인식을 일깨우는 더욱 놀랄만한 천정문양은 어칸 바로 옆 천정에 베푼 범자 육엽연화문이다. 이 협칸의 천정중앙에도 동일한 문양의 세 한자연화문이 있다. 어칸의 한자연화문이 부처의 세계라면. 이 협칸의 연화문은 경전의 세계를 드러낸다. 여섯 꽃잎에 각각 ‘대화엄경원교(圓敎)’, ‘대법화경종교(終敎)’, ‘대반야경시교(始敎)’의 한자를 입혔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의 성격을 고려한 듯 화엄경을 가장 중앙에 배치했다. ‘원교(圓敎)’, ‘시교(始敎)’, ‘종교(終敎)’의 개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간적 순서, 내용 등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한 소위 ‘교상판석(敎相判釋)’과정에서 정립된 용어들이다. 마치 피카소의 화풍을 크게 청색시대, 장밋빛시대, 입체주의 시대로 구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처님께서 행하신 설법 시간순서에 따라 가르침을 다섯가지로 분류한 중국 천태 지의스님의 ‘5시8교’가 대표적이고, 이후 화엄학자들에 의해 5교판석이 이루지면서 아함경-소승교, 반야경-대승시교, 법화경과 열반경-대승종교, 능엄경과 원각경-대승돈교, 화엄경-대승원교로 교판하였던 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화엄경, 법화경, 반야경을 천정에 보장한 것이니 미증유의 장엄세계가 아닐 수 없다. 통도사 영산전이나 금탑사 극락전에서 ‘묘법연화경’의 진리를 천정에 갈무리한 사례는 있지만 교상판석의 대강으로 팔만대장경의 진리를 압축하고 있는 경우는 유일한 사례에 해당한다.

특히 통도사 영산전과 마곡사 대광보전은 사찰천정이 불보살과 경전을 담은 진리의 세계이자 불국토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와 문화재적 희소성의 가치에 무게를 더한다. 마곡사 대광보전의 천정이 부처와 팔만대장경의 삼밭이다.

마곡사 대광보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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