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불교로 본 양
아미타불 우측 ‘대세지보살’양의 화신
모든 중생 선악 다스리고 격려 ‘상징’
양과 관련된 설화… 백양사 대표적
을미(乙未)년인 올해는 양의 해다. 양(未)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로서 시각으로는 오후 1시에서 3시, 달(月)로는 6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며,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방위신이다.
양의 성격이 순박하고 부드러운 것처럼 양띠도 온화하고 온순하여 이 해에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는 식의 속설이 많이 있다. 양하면 곧 평화를 연상하듯 성격이 순박하고 온화하여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다. 양은 무리를 지어 군집생활을 하면서도 동료 간의 우위다툼이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갖지 않는다. 또,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습성도 있다. 성격이 부드러워 좀체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 성질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多血質)이기도 하다.
불교와 양이야기
십이지신장(十二支神將)이 언제부터 불교와 관련이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십이지라는 개념은 중국 은대에서 시작됐으나 이를 방위나 시간에 대응시킨 것은 대체로 중국 한대 중기의 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12가지 동물과 대응시킨 것은 훨씬 후대의 일로, 불교 전래 이후로 알려져 있다.
즉 부처님이 약사여래의 본원공덕에 대해 설할 때 12야차대장이 크게 감명을 받아 12대원을 행할 것을 서원하였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설명이다. 말이 아미타불의 좌측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의 6현신 중 하나라면 양은 아미타불의 우측 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화신이다.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보살로, 이 넓은 우주의 모든 별들과 인간 세상을 빠짐없이 살펴서 모든 중생들의 선악을 아미타불에게 보고한다. 보고하는 것으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것은 고쳐주고, 잘하는 것은 격려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별마다 중생들의 마음과 생활이 다르고 그곳에 살고 있는 중생들도 달라서 그 일은 여간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별들 가운데 인간들이 사는 사바세계는 너무나 복잡다단하고 일이 많았기에 직접 내려와 가까이서 관찰하고 파악하기로 하였다. 잠시도 쉴 새 없는 바쁜 몸이어서 항상 분주하였고, 잠시도 한곳에 오래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대세지보살의 지혜와 한량없는 권위는 그 복잡하고 힘든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경전 속에 등장하는 양
경전 속에 양이 등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승불교 경전인 〈법화경〉이나 초기불교의 〈장아함경〉 정도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법화경〉 ‘비유품’에 나오는 유명한 비유인 ‘화택의 비유’에는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등장한다. 양거·녹거·우거는 각각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의 3승(三乘) 을 비유한 것이다.
〈장아함경〉 ‘세기경(世紀經) 지옥품’ 에는 지옥의 10가지 종류를 설하면서 양명(羊鳴)지옥의 예를 들고 있다. 이 지옥에서 죄를 받는 중생은 고통이 몸을 끊을 때 소리를 내어 말하고자 하나 혀가 돌아가지 않아서 마치 염소가 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양명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부처님 전생 이야기인 〈자타카〉에는 ‘영양의 전생 이야기’가 나오고 아흔여덟 가지 우화를 모은 〈백유경〉에서는 ‘양 치는 사람의 어리석음’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에는 조계종 제18교구본사인 백양사에 양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온다. 백제 무왕때 창건된 백양사는 1034년 중연(中延) 스님이 중창하면서 ‘정토사’라고 이름을 고쳤다. 조선 선조때 환성(喚醒)스님이 중건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흰양이몰려와서 경 읽는 소리를 듣고 갔다고 해서 절 이름을 백양사(白羊寺)라 바꾸고 스님의 법명도 환양(喚羊)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국인과 양
한자 羊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상형문자들(善,美,義) 상형문자인 양(羊)은 맛있음(味), 아름다움(美), 상서로움(祥), 착함(善), 좋음 등으로 이어진다. 즉, 큰 양이란 ‘大羊’ 두 글자가 붙어서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아(我)의 좋은 점(羊)이 옳을 의(義)자가 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양의 습성과 특징에서 착하고(善), 의롭고(義), 아름다움(美)을 상징하는 동물로 양을 인식했다.
즉 양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념은 순하고 어질고 착하며 참을성 있는 동물,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수렴된다.
또한 양이 등장하는 일화로 태조 이성계의 꿈이 있다. 초야에 묻혀 지내던 이성계가 양을 잡으려는데 양의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들은 무학대사는 양이라는 한자에서 양의 뿔과 꼬리가 떨어지면 ‘왕’자만 남게 되니 임금이 되리라 해몽했다. 후에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되었고, 양 꿈은 길몽으로 해석됐다. 그리고 양의 글자 자체에서도 좋은 의미만 담고 있다. 착할 ‘선’, 아름다울 ‘미’, 의로울 ‘의’ 이와 같은 글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양은 유순하고 상서로운 의미를 담고 있는 긍정적 동물인 것이다.
양은 또한 정직과 정의의 상징이다. 양은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이 있다.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양처럼 양띠 사람은 너무 정직하여 부정을 못보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천성이 착한 탓에 해로움을 끼칠 줄도 모르면서 오직 희생돼야 하는 양들을 어떤 이는 우리 민족사에 비견하기도 한다. 구한말 지사(志士) 김종학 선생은 양의 슬픈 운명을 우리 민족사에 찾는 듯이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 “흰빛을 좋아하는 우리 선조들은 심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산양 떼를 빼어 닮아 오직 인내와 순종으로 주어진 운명에 거역할 줄 모르고 남으로, 남으로 강자에게 쫓기여 더 갈 수 없는 곳까지 밀려왔건만 동서의 강자들은 또다시 이빨을 가니 슬프다 양떼들이어! 또다시 얼마만한 곤욕을 치러야하고 못 참을 치욕을 사위어야한다는 말이냐! 뿔을 갈자.
그리고 행진을 멈추자 끝간 데까지 왔으니 예서 더 갈 곳도 없지 않는가. 군장(群長)만 따라 가며 허약한 뒤를 보일 것이 아니라 군장을 중심으로 좀더 둥글게 뭉쳐 날카로운 뿔로 울타리를 치자. 아무리 사나운 이리떼라도 어찌 감히 넘볼 수 있겠는가!” 물론 개화기 우리나라의 무력함과 열강국의 지나친 간섭에 대한 통탄을 토로한 울분이었지만 양과 우리 민족사를 비유한 한 면을 살필 수 있다. 양(羊)은 글자형태로는 ‘상(祥)’과 음(音)으로는 ‘양(陽)’과 서로 통하여 길상의 의미로 일찍부터 한국 문화 속에서 등장한다.
양띠해 불교소사
균여·원묘 스님 양띠해 출생
영조 때 스님들 한양서 쫓겨나기도
조선 때 사찰에 위패 봉안 금지도
▲623년 백제승려관륵(觀勒), 일본에서 첫 승정(僧正)의 자리에 올랐다.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던 고구려승려 혜자(惠慈) 입적하다.
▲923년(고려 태조 6) 화엄종을 통합한 원통(圓通)수좌 균여(均如)가 태어나다. 윤질(尹質)이 후량(後梁)에서 오백나한 화상(畵像)을 가지고 귀국해 왕에게 바치니 왕건은 이를 해주 숭산사에 봉안토록 지시.
▲1163년(고려 의종 17) 백련사 결사운동을 일으키고 천태종을 크게 중흥시킨 원묘요세(圓妙了世)가 태어났다. 의종은 명인전에 장경도량을 베풀어 분향하고 홍원사에서 화엄도량을 크게 열었다.
▲1223년(고려 고종 10) 최우가 황금으로 13층탑과 꽃병을 만들어 흥왕사에 봉안했는데 무게가 2백 근이나 나갔다고 한다. 고종은 내전에서 담론법석(談論法席)을 베풀고, 수문전에서 불정도량, 제석도량, 소재도량을 베풀었다.
▲1283년(고려 충렬왕 9)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이 국존(國尊)에 책봉. 왕이 염승익·공유에게 명하여 현화사를 보수하고 남계원과 왕륜사의 석탑을 수리하게 했다.
▲1343년(고려 충혜왕 복위 4년) 오교양종 일곱 절의 토지와 선대의 공신전을 내고(內庫)에 귀속시켰다.
▲1403년(조선 태종 3) 의정부의 건의로 절에 속한 노비의 수를 대폭 감축했다.
▲1463년(조선 세조 9) 간경도감에서 〈묘법연화경언해〉 7권을 간행하여 왕에게 바침.
12월에는 승니(僧尼)가 죄를 범하면 먼저 보고한 뒤에 형을 가하게 하고, 관리가 출가자를 능멸하면 죄가 크다는 것을 널리 알렸다.
▲1763년(조선 영조 39) 한양에 있는 승려들을 내쫓고 각 도의 절에 위패 봉안을 금지했다.
▲1883년(조선 고종 20) 한국불교태고종을 창종하여 초대 종정에 취임한 법운 박대련 스님이 태어났다.
▲1943년 범어사 금정불교전문강원이 원장이던 김법린이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강제 폐원 당함.
▲1955년 현오·이종익 등,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신도회 창립.
▲1967년 동국대, 달라이라마 기증 서장대장경 봉수식 거행.
▲1979년 쌍룡사서 중앙승가학원 설립 발기
▲2003년 조계종 총무원 비구니 스님 첫 임명. 공무원 불자회 창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