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古典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강의〉

인간 무의식의 작동 원리 규명
신경증은 억압된 무의식이 원인

무의식을 의식의 영토로 넓혀
자신을 바로 보는 게 정신분석
불교 수행과 구조적으로 맞닿아

▲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의 사진.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였던 그는 정신분석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히스테리환자를 관찰하고 최면술을 행하며, 인간의 마음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꿈 ·착각·해학과 같은 정상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하여 심층심리학을 확립했다.
프로이트와 무의식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니체, 마르크스와 함께 20세기 이후의 서구 정신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칭송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인간 의식 저변의 무의식(無意識)의 존재와 그 작동원리를 설득력 있게 밝혀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생동안 인간의 본성을 집요하게 분석하면서 자신의 이론적 견해를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해 나갔기 때문에, 그의 무의식이론의 전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또한 정신의학과 정신분석의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프로이트의 저술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일반 교양인으로서 프로이트 무의식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강의(1917)〉만한 책이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책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난해한 이론을 일반 교양인들에게 쉽게 이해시킬 목적으로 행했던 강연의 원고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또한 이 저술의 속편으로 말년에 내 놓은 〈새로운 정신분석강의(1932)〉는 〈정신분석강의〉 이후에 이루어진 프로이트의 이론적 입장의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그의 이론을 균형있게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프로이트의 마음이론
주지하다시피, 프로이트에 있어서 마음의 구조와 작동원리는 무의식(無意識)과 전의식(前意識), 의식(意識), 그리고 이드(Id)와 자아(Ego), 초자아(Super Ego)의 개념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무의식’, ‘전의식’, ‘의식’의 구분은 그의 심리학 발전의 두 번째 단계에 주로 사용되었으며(〈정신분석강의〉의 입장), ‘이드’와 ‘자아’, ‘초자아’의 구분은 세 번째 단계에 나타난 것이다(〈새로운 정신분석강의〉의 입장).

‘의식’이란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의식이며, ‘무의식’이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의식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행동이나 의식활동의 숨은 동기로 간주되는 감추어진 의식이며, 주로 맹목적인 소원충동(所願衝動)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의식(前意識)’도 평소에는 의식되지 않으나, 필요에 따라서 ‘의식’에 떠오를 수 있는 의식의 영역이다. 반면에 ‘무의식’은 절대로 의식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지 못하도록 억압(抑壓)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용원리를 프로이트는 우선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으로 설명한다.

‘무의식’은 쾌락원칙에 따라 활동하는 반면, ‘의식’은 현실원칙에 따라 활동한다. 무의식의 소원충동은 맹목적인데, 이것이 현실세계의 질서나 가치, 실현가능성 등에 배치되는 경우, ‘현실원칙’에 따른 의식의 ‘검열(Zensur)’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고, 의식의 검열에 퇴짜를 맡은 소원충동은 ‘억압’되어 의식의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된다.

억압된 소원충동들은 어떤 식으로든 소원의 충족을 얻고자 활동을 계속하다가 검열을 피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서 의식의 영역으로 표출된다. 이와 같이 맹목적인 소원충동(=리비도)이 현실사회에 용인될 수 있는 형태로 바뀌는 과정을 ‘승화(昇華)’라고 한다. 억압된 리비도가 표출될 기회를 계속 얻지 못하거나 비정상적 형태로 표출되면 여러 가지의 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의식, 무의식, 전의식은 일종의 지형학적(地形學的)인 개념 구분인 반면, ‘이드’, ‘자아’, ‘초자아’는 입체적으로 구조화된 개념이다.

‘이드’에는 지형학적 구분에서 무의식이 차지하던 영역이 대체로 속하며,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충동에너지가 비등(沸騰)하고 있는 곳이다. 이드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논리적 사고 법칙이나, 가치, 선악, 도덕 등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자아’는 원초적으로 볼 때, 외부세계에 대해서 이드를 대표하고, 이드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드로부터 변형된 부분이다. 자아는 지각-의식체계(知覺-意識體系)를 발달시켜서 이드의 소망추구활동을 도우며, 또한 이드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드의 소망추구에 대한 현실성검사(검열)를 행하면서 현실원칙에 맞지 않는 이드의 활동을 억제하고자 노력한다. ‘초자아’는 문명생활의 결과 생겨난 규범, 도덕, 양심의 의식으로써 자아와 이드를 검열한다.

따라서 ‘자아’는 한편으로는 ‘이드’를 제어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자아’의 통제에 따르면서, 그 비난을 피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처럼 자아는 다루기 힘든 세 명의 상대(외부세계, 이드, 초자아)를 가지고 있으므로 갈등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자아가 약하면 한편으로는 이드(본능적 충동)에 지배당하기 쉽고, 다른 편으로는 이에 대한 초자아의 비난과 징벌을 받아 죄책감, 열등감, 우울, 불안에 빠지기 쉽다. 초자아가 너무 강해도 자아와 이드가 지나치게 억압, 위축되어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해롭다. 따라서 자아가 이드와 초자아를 조절하여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자아가 충분히 강하게 발달되어야 한다.

정신분석의 작업
프로이트는 정신과의사로서 특히 신경증의 연구에 집중한 결과, 신경증의 원인이 ―주로 환자의 유년기에 일어났던―본능충동의 억압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런데 본능충동만 억압된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감정적 반응도 억압되어 환자의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는 신경증의 원인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정신분석가는 환자의 무의식을 분석하여 신경증의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환자 자신이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분석을 위해 환자의 꿈에 대한 분석에 많이 의지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분석가가 제시한 신경증의 원인을 환자가 이해하고 수용하면 신경증이 해소되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카타르시스’(catharsis: ‘배출’ 또는 ‘정화’를 의미함)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어둠속에 쌓여있던 신경증의 무의식적인 원인을 밝혀보니 실제로는 허구적인 신념이어서 문제삼을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며, 이것은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 위로 떠올라 정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 소녀가 부모의 성행위를 목격하고 느꼈던 충격, 공포, 불안이 무의식적인 트라우마(상처)로 남아서 성인이 되어서도 성행동에 장애요인이 되는 경우, 분석가가 이러한 무의식적 원인을 밝혀주고 환자가 이를 인정하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무의식이 의식으로 전환되는 것인데, 이것은 비단 신경증환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 모두가 억압되어 감추어져 있는 광대한 무의식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 모두가 잠재적 신경증 환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겉으로 표출되는 사고와 행동의 뿌리인 무의식적 동기들을 하나씩 밝혀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광대한 영토를 간척하여 점차로 의식의 영토로 편입해 갈 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의식의 영토, 자아의 영토를 늘리는 또 하나의 길은 승화(昇華: sublimation)이다. 승화란 ‘이드’의 맹목적 소원충동(욕망)을 문명사회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드’의 맹목적 동기(動機)는 ‘자아’의 현실원칙에 부합하는 합리적 동기로 바뀌어져야 한다. 프로이트는 개인과 문명에 있어서 비합리적 근원을 지닌 무의식적 동기를 밝혀내고, 이러한 무의식적 동기를 합리적 동기로 대체해 나가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자아와 초자아의 기능이라고 볼 수 있는 논리적 사고력, 즉 ‘이성(理性)’이 다시 빛을 발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새로운 형태의 합리주의자, 이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이성은 더 이상 전통적 이성개념과 같은 독립자존의 자율적 이성이 아니다. 그러나 자아는 이제 이성의 힘을 통하여 이드에 속수무책으로 지배당하는 종속적 지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사(소망)를 지속적으로 이드에게 일러주고 설득함으로써 처음에는 확고하지 못했던 자아의 소망이 반복적으로 이드에 입력되어 종국에는 자아의 소망이 이드의 소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자아는 이드를 자신의 강력한 협력자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증대시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드 자체도 이성의 빛으로 개명(開明)되어감으로써 점점 더 이성화(理性化) 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하겠다.

무의식이론과 불교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은 특히 불교의 유식론과의 유사성을 보인다.  전오식(前五識)과 육식(六識= 意識)은 프로이트에 있어서 대체로 ‘의식’에 해당하고, 칠식(七識)과 팔식(八識)은 ‘무의식(無意識)’에 해당한다. 특히 프로이트가 “정신생활의 모든 과정은 절대로 유실되는 일이 없이, 무의식에 고스란히 저장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무의식은 함장식(含藏識)인 팔식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다만 프로이트의 마음이론에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무명업식(無明業識)에 가려져 있으면서도 업식에 물듦이 없는 청정한 본원자성(本願自性)은 설 자리가 없다. 위에서 살펴본 ‘카타르시스’와 ‘승화’도 질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불교적 수행과 유사점이 없지 않다.

카타르시스는 무의식에 들어 있는 불합리한 신념의 허구성을 자각함으로써 그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므로 돈오(頓悟)와 유사한 측면이 있으며, 승화는 무의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는 과정이므로 훈습(薰習)을 통한 점수(漸修)의 과정과 유사한 면이 있다.

▲ 김영래 고려대 연구교수
거시적으로 볼 때, 정신분석은 무의식의 영토를 간척하여 의식의 영토로 바꾸는 원대한 작업이라고 하는 프로이트의 입장은 여덟 가지 식(識)을 돌려 깨달음의 지혜를 이룬다고 하신 육조대사(六祖大師)의 말씀과, 현재의식과 잠재의식(=무의식)이 합일되어야 도(道)를 이룬다고 하신 대행선사(大行禪師)의 말씀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이러한 불교의 근원적인 통찰과 유사한 결과를 임상경험과 실험을 통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밝혀냈다는 데에 프로이트의 위대성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프로이트 저술들을 불교적 관점에서, 그리고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것은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 대화의 폭을 넓히는 데에 기여할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하여 불교의 우주적 진리가 서구사회와 서구화 되어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지성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파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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