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타령 ⑦

부처님 지혜 알려줄 뿐

지옥행 막지는 못해

절대 누리의 주인공인

자신이 지옥도 천당도

만들어 낸다.

내 마음이 하는 일이니

누구한테 의논할 수 없다

 

지금으로 봐서 이 방에 나올 때는 이거 전생입니다. 적혈구 백혈구 세포가 많이 달라졌어. 지금도 달라지고 있어, 말하는 중에도 달라지고 있어. 이 방에 있을 때는 전생, 지금은 당장, 조금 있으면 후생입니다. 또 크게 봐서 이 몸 죽어지면 죽으면 후생, 지금은 현재, 또 내가 나기 전에는 전생. 이거 사실로 전생 후생 미래 해 봤든. 삼세 삼세 삼세.. 지금 내가 말하는 중에도 과거 현재 미래 계속입니다. 우리가 우리 몸뚱이를 못 봐서 그렇지 만약 이것이 현미경쯤 되는 안력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변하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삼세라 하는데 삼세 삼세 삼세 죽 연속입니다. 이 몸으로 봐서는. 그러나 이거를 굴려. 끄집고 다니는 그 자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절대로 없기 때문에 삼세가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나중에 인제 그 자리에서 다시 헛것을 나투어. 자꾸 변하는 삼세 삼세 삼세 변해 나가는 헛것을 나투어요. 나투긴 나투지만은 그러나 나투는 그 당처는 이 지구가 생기기 전 이 지구가 깨진 후에라도 의젓하게 있는 거예요.

사실로 우리가 이 도리만 알면 구차스럽게 이 몸뚱이에 들어앉아서 아이고 나는 어쩌나. 내가 죽으면 어디 가나. 그러나 다시 몸을 받아. 이 세상에 우리가 어머니한테 몸을 받은 후에도 자꾸 몸이 변하는데 후세상에 받는 몸뚱이도 변해지는 거예요. 될 수 있는 대로 이 세상에 좋은 몸 받으려면 좋은 몸 받을 수 있는 인을 심어놔야 돼. 안 심어도 무엇이라도 받아. 짐승의 몸이라도 받아. 그건 별 문제로 하고. 그러나 화분에 꽃도 좋은 흙에 심는 거와 나쁜 흙에 심는 거와 돌자갈 위에 심는 거와 다르지 않습니까? 그거 다 진리의 나툼입니다. 그러하니 우리는 다 공중의 달도 밝은데 이거는 원래 밝은 것인데, 공중의 달이 있기 때문에 물달이 환한 것인데 이 육신 물달이나 한가집니다. 본래의 우리의 법신 자리가 휘영청하기 때문에 이런 번듯한 이런 육신을 나퉜어요. 육신을 나퉈도 물론 이건 변하는 거죠. 이걸 갖다가 우리는 물달로 보면 됩니다. 수중월, 그러하니 물달로 보면 돼요. 앞으로 있어서는 우리가 자꾸 물달을 나툴 거예요. 물달을 나투는데 있어서는 될 수 있으면 깨끗한 데 물달을 나투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그런 줄 아시고. 마음씨타령이 좀 깁니다. 내일 하도록 하겠는데 하나만 더 할까요? 어떤 때는 설법 간단하게 하라는 말 듣습니다. 그래야 대중이 모여든다 이럽디다. 여러분이 좀 귀찮더라도 나는 생각에 한 마디라도 더 넣어주려는 내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마음이 편해요. 그래서 자꾸 내가 설법 시간이 늦는 겁니다. 조금 여러분들이 귀찮더라도 자꾸 좀 더 들으면 어딘가 써먹어. 나중에 그 공덕 자리에 가. 그러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환심 사려면 깨끗하게 간단히 합니다. 여러분 아주 깨끗하고 좋다. 이래할 겁니다. 나는 그런 깨끗하고 좋은 것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런 겁니다.

[강송] 한생각의 굴림새로 나고죽어서

나고 죽는 거는 한 생각 굴림새거든요. 이거 이상하죠. 전부 나고 죽어. 난다 죽는다. 우리가 모습을 나투는 건데 한 생각입니다. 한 생각 좋게 가지면 훌륭한 몸을 나투어. 한 생각을 좋게 못 가지면 훌륭한 몸을 못 나투어. 이래 되는 겁니다. 이건 과학적입니다.

[강송] 천당지옥 제가 짓고 울고웃으나

어즈버야 꼭두임을 이에깨칠새

지화자자 좋을씨고 장승은 뛴다

돌장승이 뛰어. 왜 그러냐. 돌장승 아닌 게 아니라 내 몸이나 한가집니다. 천당 지옥, 나고 죽는 거 내 마음대로 합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부처님이 이렇게 너는 슬기가 좋게 얼굴도 좋게 이러는 거 아닙니다. 천당 지옥도 누가 만들었는데 내가 쑥 들어가는 거 아닙니다. 내 천당 내가 지어서 가는 겁니다. 지옥도 내 지옥 내가 지어서 가는 겁니다. 지옥을 짓든 천당을 짓든 그건 내 마음이 하는 거니까 그건 누구한테 의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하니까 부처님은 이러이러하니까 네가 마음씨를 이래 이래 가져라 가르쳐 주셨지 지옥으로 가는 걸 너 못 간다 이래 못합니다. 해서도 안 됩니다. 그만 자비심으로써 통탄만 할 뿐입니다. 전부 지가 지어서 지가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누리의 주인공입니다. 누리의 주인공이 살림살이를 어떤 때는 나쁘게도 해. 어떤 때는 좋게도 해. 이것이 다를 뿐이지 나쁘게 해도 누리의 주인공이고 좋게 해도 누리의 주인공인데 우리는 천당과 지옥 다시 말해서 지옥과 극락세계 누가 짓느냐. 경에도 아미타불 극락세계 많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이거 전부 방편입니다. 다른 거 아닙니다. 집도 내가 돈이 있으면 내가 좋은 집을 지어서 내가 들어가는 거예요. 옷도 돈 있으면 좋은 옷을 내가 지어 입는 것이지, 남 지어 놓은 걸 내 몸에 입지 못합니다. 입었든 치수가 안 맞아. 그러하니 이 마음씨가 쇠꽃, 이 자리, 돌말자리, 이 자리가 참 불가사의한 겁니다. 그러하니 전부 내가 지어서 이래 가는 건데, 산하대지가 다르지 않은 몸이라. 전부 내 몸이라. 지구도 내 몸뚱어리의 연장이라. 그러니 돌장승이 어찌 내 몸뚱어리의 연장이 아니겠어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무변법신인데 무변법신 속에 나타난 그거 아니에요? 내 옷이나 한가지에요. 내 수족이나 한 가지거든요. 내가 뛰는데 어찌 돌장승이 안 뛰겠어요? 돌말이 뛰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러하니 우리가 무정물은 무정물대로 봐. 나는 나대로 봐. 둘로 보면 그런데 둘로 보지 않고 원리원칙대로 그대로 딱 보면 하나거든요. 내 마음이 뛴다 하면 뛰는 것이지 안 뛰는 거 뭐 있습니까. 뛰어도 뛰는 것이 아니고 안 뛰어도 안 뛰는 것이 아니겠지만은 뛰는 거나 한가지다 이런 결론이 있습니다. 이거 좀 어렵지만 들어 놓으시면 나중에 쓸 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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