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로 가는 길에 禪의 길 있다
茶로 가는 길에 禪의 길 있다
  • 최범술 스님
  • 승인 2014.12.1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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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선이란 무엇인가?

속마음을 정관하는 ‘선’

소우주 마음속에 키우고

나와 우주 호흡하는 힘 기른다 

고요히 사물을 관찰하고

몸가짐을 이성적으로 하며

침착하고 슬기로운 마음가짐의

경지로 가는 지름길이 ‘차와 선’

 

바로 수행의 방법 그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불가에서는 이를 두고 좌선또는 수선이라고도 한다. 심지어 이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종파까지 생겨나게 되었으니 곧 선종이 그것이며, 이의 종조를 대사라 이른다.

‘선(禪)’이란 인도의 말로서 선나(禪那)라는 한자화한 말의 약칭이다. 일찍이 인도에서는 그 백성들이 수행하는 방도로서 선나 또는 요가, 사마디, 삼매(三昧) 등으로 불리는 수행을 즐겼는데 설혹 그 방법은 서로 각양한 것일지언정 내용은 같은 뜻을 지닌다.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등이 그 방법이다.

그러면 이를 통해 무엇을 얻는가? 이러한 행동을 통해 흐트러짐이 없이 침착하고 고요한 가운데 모든 사물이나 자기 속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것을 정관(靜觀)하는 일이다.

이 정관이 소우주를 자기 마음에 키우는 것이야말로 바로 동양의 지혜요 동양다움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선도(禪道)나 차도(茶道)를 통해, 자기가 없어도 우주, 인생이 있을 수 있고, 자기도 없고 우주도 없는 마침내는 인생 또한 없이 하여 주는 경지 곧 자기와 전 우주인생이 함께 호흡하고 같이 움직이는 힘을 얻는다.

드디어 때로는 한 생각으로 마음을 모으기도 하고, 그 모아진 한 생각까지를 없이 하기도 한다. 이러한 동안에 그 심경은 맑아진다. 마치 고인 물이 흐르는 물로 말미암아 드디어 맑은 여울을 이루는 것과도 같은 경지다. 그러한 까닭으로 차와 선을 익힌 사람은 그 마음이 맑고, 고요하기 때문에 남의 눈에는 자연 거룩하게 비치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그것은 모든 사물에 달관(達觀)되었으므로 그 인간은 이 욕락(欲樂)의 먼지 땅을 떨쳐나 있기 때문이다. 고요히 사물을 관찰하고 그로써 일상의 모든 몸가짐을 이성적으로 하고, 그 행동에 있어 조용하고 침착하고 부드럽고 슬기롭게 하는 일이 어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바로 ‘차와 선’은 그러한 경지를 가는 지름길이다. 우리 육신과 심정을 가볍고 쾌하고 편안하고 부드럽게 하는 길이 곧 이 ‘茶와 禪’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차성(茶聖) 초의(草衣)는 이 선의 길을 선이라 부르는 것보다 지관(止觀)이라고 즐겨 말하고 있다. 이 지관이라는 말은 지(止)라는 뜻과 관(觀)이라는 뜻을 가진 합성어로서 된 것인데, 쉽게 말하면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한 경지에 이르렀을 경우를 지라 하고, 관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시시각각으로 객관적이건 주관적이건 간에 일어나는 현상을 어떠한 올바른 인식으로서 처리해야 하는 깨우침의 생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는 어디까지나 관행의 과정인 것이며, 이 경지의 지가 숙련된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 어떠한 때를 막론하고 올바른 판단 하에서 생활하여 나가게 되므로, 이것을 깨친 견해, 깨친 행동이라는 뜻에서 관행(觀行)이라고도 말한다.

이것을 원효대사는 그 〈금강삼매론〉중에서 크게 밝힌 바이며, 그 이전 중국의 천태지자대사도 밝힌 바이요, 또 보조선사(普照禪師)도 정혜쌍수라고 말하고 있는 바이다.

어쨌든 이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다시 말해서 불을 피워서 물을 익혀 먹는 인생생활의 그 어느 지경도 차생활의 전부인 것이므로, 차는 모든 것을 그대로 그 특성을 살려가면서 생활한다는 뜻으로 우리들은 이것을 ‘살림살이’라는 말로서 즐거이 쓰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중국의 조주선사는 그 제자들이 불도의 대의를 그에게 물을 때나 혹은 조사의 깨친 지경을 물을 때마다 언제나 똑같은 말로서 “차 한잔 마시게나” 하는 대답을 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을 후인들은 그냥 선문답이라는 공안이라 하여 알기 어려운 의심의 표적이 되는 화두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주선사가 묻는 제자들에게 복잡한 문제거리를 제시한 것이 아니요, 우리의 각성생활(覺醒生活)이라는 것은 일상생활의 평상심이 곧 도라는 것을 지적한 것에 있다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차생활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우리의 생활주변 즉 살림살이하는 데 있고, 이것이 선의 편에서 볼 때는 그것이 곧 선의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초의선사 같은 이는 ‘무시선무처선(無時禪無處禪)’이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이요, 완당 선생은 “정좌처차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라고도 하고 “묘용시수유화개(妙用時水流花開)”라는 자연스럽고 평범한 지경을 우리들에게 일러주고 있다.

또 한편 차는 일상 우리 인간이 나면서부터 물기를 먹고 마시며 살아온 인간의 본능적인 식생활과 계절 따라 입어야 하는 입성생활, 그리고 집을 지어 거처하며 그 주택의 주변인 정원을 꾸며 꾸려나가는 생활의 영위를 하는 데 있어, 그 어느 것이나 살림살이 않고는 못 배기는 현실에서 크게 착안한 것임을 볼 때 차도의 너르고 너른 광장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반하여 선은 그 자체가 현실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광범위하게 말하는 한편 너무 범박하고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추상적일 수도 있으므로 이 방면을 치중하여 가는 선객들이 구두선(口頭禪) 또는 야호선(野狐禪) 에 떨어져 한갓 공상에 빠져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것을 때로는 보게 된다.

이러한 뜻에서 우리는 선이 조주선사나 초의차성의 편에 서서 그 실다운 힘과 생생한 화로가 열렸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차로 가는 길에 선의 길이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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