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불이 있는 사찰을 찾아서③ 의왕 청계사

신라시대 창건된 고찰로 추정
1997년 자갈로 야외에 와불 조성
경허 스님 등 근대 선지식 정진처
보물 동종과 형태 다른 부도탑 볼거리

청계사 와불의 모습. 높이 2m에 길이 15m규모로 자갈을 붙여 만든것이 특징이다. 2011년까지는 채색을 하지 않아 자연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하단에는 인등부처님을 함께 모셔서 화엄의세계를 표현했다.
겨울의 산사는 화려함이 없어 좋다. 눈이 내린 청계산 속에 자리한 천년고찰 청계사에는 조용함만이 흘렀다. 불공 소리나 기도행렬의 번잡함이 없어서일까. 공기는 차지만 상쾌했고, 흙냄새도 코끝에 느껴졌다.
청계사에 가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는 듯 한 와불 때문이다. 신라 말 창건돼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청계사에는 다양한 문화재와 볼거리가 있지만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사찰 뒤편에 자리한 거대한 와불이다.

모나고 각지지 않은 동글동글한 돌들로 이어 붙여 만든 청계사 와불은 1997년부터 2년간 청계사 신도들의 십시일반 불사를 통해 완성된 것이다. 높이 2m에 길이 15m 규모로 2011년까지만 해도 채색을 하지 않아 자연스러운 돌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현재는 풍화 등의 문제로 금색, 갈색 칠을 한 상태다.
청계사를 둘러보고 있으면 시선의 끝은 자연스레 이 누워있는 불상으로 향하게 된다. 처음 청계사에 와본 이들은 지장전 옆으로 언뜻 보이는 와불의 거대한 불두를 보고 놀라움과 함께 절로 이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어느 와불이나 마찬가지로 청계사 와불은 발바닥이 크게 부각돼 있다. 부처님이 열반 당시 가섭존자가 슬퍼하자 관 밖으로 두발을 내보였다는 일화, 가섭에게 두발을 보였다는 ‘곽씨쌍부(槨示雙趺)’에 의한 것이다. 와불의 몸 아래와 뒤편에는 인등을 넣는 곳이 마련돼 자연스럽게 작은 부처님들이 큰 부처님을 구성하는 화엄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편안한 자세를 취한 독특한 관음보살상
와불 앞에는 다리 한쪽을 걸치고 있는 보살상이 있다. 천편일률적인 보살상이 아니라 우리네 인간이 고뇌하듯 편안한 자세로 있는 것이 더욱 정겨워 보인다.

영험함이 전해지는 청계산 기운 느껴

와불이 내려다보고 있는 청계산은 관악산과 함께 서울 인근의 명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청계’라는 이름은 맑을 청(淸), 시내 계(溪) 곧 ‘맑은 시내’라는 뜻이지만 불교에서는 흔히 불법을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맑은 물에 비유하기에 불법이 맑게 흐르는 곳이란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청계사로 향하는 동안에는 저절로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의 기운이 맑고 깨끗하기에 청계사에는 예로부터 많은 고승들이 득도를 위해 찾았다. 1503년 연산군이 도성 내 모든 사찰을 없애자 청계사가 봉은사 대신 선종본찰의 기능을 맡기도 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청계사의 선풍이 널리 펼쳐졌는데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평가받는 경허 선사가 바로 이곳에서 출가하면서 부터다.

이후 만공·월산 선사 등 여러 고승들이 청계사에서 정진했다. 경허 선사의 승려로서의 삶이 청계사에서 출발했기에, 청계사는 경내에 선중흥조 오대선사를 모셔놓는 탑을 세워놓았다. 이들 오대선사의 사상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을 지닌 탑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의왕 청계사 전경
청계사 동종… 독창성 돋보여

이처럼 맑고 수승한 기운이 전해지는 청계사는 신라시대 창건되었다. 봉은사가 관장한 사찰의 기록을 담은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 따르면 청계사는 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나오며 사찰에 남아 있는 석등과 부도 일부가 신라 때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외의 기록은 없는 상태다.

청계사에서 중심건물은 극락보전인데 경내 중심부 뒤쪽에 위치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다. 극락보전 처마에 살짝 남은 눈이 추위 속에서도 매우 운치가 있게 느껴진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여래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특히 이 불상은 조선 후기 조성된 불상으로는 드물게 절제미가 드러나 있다.

극락보전에서 나와 마당 왼편으로는 참선기도를 하는 선불장이, 오른편으로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가 있다. 극락보전과 삼성각 등에선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천년고찰의 면모를 느끼게 하는 반면, 선불장과 요사는 최근에 지어져 현재를 느끼게 하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청계사에서 또 볼거리는 청계사 신도들이 가져다 놓은 조그만 불상들과 동자상들이다. 극락보전 뒤에서 삼성각까지에는 작은 인형가게에 온 듯 길게 불상과 동자상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각각 다른 자세와 표정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중 몇몇은 사람들이 올려놓고 간 동전을 머리에 이고 있다.

극락보전과 지장전 앞쪽에는 보물 제11-7호로 지정된 청계사 동종이 있다. 1701년(숙종 27)에 만든 동종은 높이 110㎝, 지름 76㎝의 크기로,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감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종은 조선 숙종 때 승려인 사인 스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종을 만드는 장인이었던 사인 스님은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더한 것으로 유명했다.

종의 꼭대기 부분은 보통의 종과 달리 수평으로 펑퍼짐하지 않고 약간 둥그스름하게 불러 있다. 그 한가운데에 서로 반대쪽을 향해 있으면서 몸이 엉켜 있는 쌍룡의 용뉴가 돌출해 있어 여기에 쇠고리를 꿰어 종을 매달았다.

경허·만공·보월·금오·월산 선사의 부도탑
우담바라, 불자들 마음 하나로 모으는 계기

청계사는 2000년 10월 극락보전의 관음보살상 왼쪽 눈썹 주변에 3000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가 핀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매일 5000여 명의 불자들이 청계사를 다녀갔다. 생물학자들이 ‘풀잠자리 알’이라고도 주장했지만, 불자들에게는 여전히 상서로운 우담바라로 여겨지고 있다.

진위 논란이 있지만, 청계사에서 우담바라가 핀 해에는 국가적으로 경사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2000년에는 최초로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남북 간에 긴장감이 해소되고 통일에 대한 기운이 무르익었으며, IMF로 인한 피해를 조기 졸업하는 등 국민들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끼는 해이기도 했다. 청계사는 이 당시 ‘우담바라 108일 무차전진대법회’를 열고 불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도 했다.

청계사는 이제 지역사회로 다가가는 사찰이 되고 있다. 의왕지역의 유일한 장애인 복지관인 ‘희망나래장애인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청계종합사회복지관 장애인주간보호시설 및 치료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2008년부터는 매년 청계사 신도단체 20여 곳이 참여하는 자비바자회를 열고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뒤돌아 나오는 길, 청계사의 와불은 자비와 나눔의 마음을 알리는 듯 지긋이 사하의 마을을 보고 있었다.
 

주변 가볼만 한 곳
▲백운 호수

청계사와 청계산을 중심으로 마주보고 있는 의왕 학의동의 백운 호수는 1953년에 준공한 인공 호수이다.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북동쪽의 청계산과 남동쪽의 백운산, 그리고 서쪽의 모락산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백운호수에서는 라이브 카페, 수상스키, 각종전문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의왕문화예술길
의왕문화예술길은 청계사 입구에서 계원예술대학으로 향한 뒤 백운호수에 이르는 약 1km 길이의 도로공원을 칭한다.
2007년 5월 3일 개장했으며 조각광장, 경관공원 등이 설치돼 있다. 의왕시 중심에 있는 모락산 산행의 기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과 전시회 등이 개최된다. 의왕시에서 지정한 도시경관 ‘의왕8경’ 중 하나다.

찾아가는 길
안양시 인덕원 4거리에서 청계동(지방도 342번)으로 향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사당전철역에서 9504번, 9502번 좌석버스를 타고 안양 인덕원에서 하차한다. 전철 4호선 인덕원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오면 청계사 가는 셔틀버스가 있다. 인덕원 4거리에서 청계사 입구까지는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마을버스 1번을 이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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