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古典 - 김만중의 〈구운몽〉

수행승 성진의 꿈 이야기
양소유라는 인물로 태어나
부귀영화 누리다 불교 귀의
성공보다 내면 수행에 주목

작품 곳곳에 ‘空’ 사상 내포
분별심 끊고 ‘자아찾기’ 여정

▲ 조선 후기 문인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도상화 한 〈구운몽도〉. 경기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승려 성진이 꿈속에서 양소유로 다시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다 불도 귀의하며 다시 승려로 돌아오는 〈구운몽〉은 불교의 공(空) 사상을 만날 수 있는 고전이다.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사씨남정기〉, 〈구운몽〉 등의 소설로 널리 알려졌다. 소설(小說)을 “시중에 떠도는 자질구레한 이야기(街談巷語 道聽塗說)” 정도로 낮게 평가했던 조선조에서 사대부가 소설을 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김만중은 두 편의 소설을 썼고, 그 두 편의 소설은 박지원의 작품과 함께 한국소설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 그는 〈서포만필〉에서 “마을의 나무하는 아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 비록 상스럽다 하지만, 그 참됨을 논한다면 사대부들의 시부(詩賦)보다 낫다(閭巷間樵童汲婦?啞而相和者 雖曰鄙俚 若論眞? 則固不可與學士大夫所謂詩賦者)”거나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제 말을 버리고 남의 나라 말을 배우고 있는데, 비록 그것이 아무리 비슷하더라도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데 지나지 않는다(今我國詩文 捨其言而學他國之言 設令十分相似 只是鸚鵡之人言)”는 등 조선 사람은 조선의 말로 글을 써야 한다는 주체적 문학론을 주장하였다.

그의 소설은 모두 창작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맞아들인 숙종의 총명을 일깨우고자 〈사씨남정기〉를 지었다거나, 귀양지에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구운몽〉을 창작했다는 속설이 그것이다. 그의 시호(諡號)가 ‘문효(文孝)’인 것만으로도 그의 효성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구운몽(九雲夢)〉은 성진(性眞)이란 승려가 꿈에 양소유(楊少遊)란 인물로 태어나 온갖 부귀향락을 누리다가 그것이 허망함을 깨닫는 순간 다시 성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흥미로운 서사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의 주제에 대해서는 ‘일장춘몽’, ‘삼교융합(三敎融合)’, ‘불교의 공(空)사상’, ‘사대부 이념과 욕망의 표현’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거니와, 이 작품을 ‘음란·불효소설’로 보는 과격한 주장도 대두된 적이 있다.

그것은 양소유란 작중인물이 여덟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결혼을 할 때도 어머니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이해조가 “〈춘향전〉은 음탕교과서, 〈심청전〉은 처량교과서, 〈홍길동전〉은 허황교과서”라 평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양소유가 여덟 부인을 둔 것은 그가 음탕해서가 아니라 남녀 사이의 사랑과 이해에 기반한 결과이고, 한 나라의 재상이 되어 이름을 널리 떨친 것은 유교 사회에서 가장 큰 효도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구운몽〉의 내용 파악이 불교적 관점에서의 해석과 유교적 측면에서의 견해로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은 이 작품의 액자식 구성과 관련된다. 이 소설은 중국 남악 형산 연화봉에서 수행하는 성진의 번뇌와 각성이 앞뒤로 배치되고, 속세에서 여러 명의 부인을 두고 승상(丞相)으로 출세한 양소유의 삶이 중심서사를 이루고 있는데, 이 중 어느 부분에 더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작품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대부의 이념과 욕망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관점은 액자 속이야기인 양소유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액자소설의 경우, 겉이야기와 속이야기는 상반된 내용으로 구성되기보다 유기적 연관을 맺으며 하나의 통합 서사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액자틀과 속 내용을 분리해도 그림을 감상하는 데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회화의 예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러므로 〈구운몽〉은 성진의 수행담과 양소유의 성공담이 각각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두 이야기가 합쳐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구성하는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이때 〈구운몽〉은 세속에서의 화려한 성공보다 불교적 수행이 더 값진 삶이란 주제로 나아간다.

〈구운몽〉은 제목을 이해하는 것부터 간단하지 않다. 제목의 첫 글자인 ‘구(九)’가 ‘한 명의 남성 주인공과 여덟 명의 여성 주인공’을 뜻하는 것이란 해석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구름(雲)’과 ‘꿈(夢)’의 상징 의미에 대해서는 해석이 구구하기 때문이다. ‘구름’은 흔히 ‘정처 없고, 덧없으며 허무한 것’의 객관적 상관물로 쓰이고, ‘꿈’ 또한 현실과 상반되는 이상이나 환상을 의미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금강경〉의 “온갖 망상으로 일으킨 차별현상은 마치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는 구절은 ‘꿈’의 본질을 적확하게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규봉 종밀(圭峯 宗密)은 이를 더 세분하여 “온갖 망상으로 일으킨 차별현상은 마치 별, 무지개, 등불, 환영, 이슬, 물거품, 꿈, 번개, 구름 같다(一切有爲法 如星霓燈 露泡夢電雲)”고 설명한다. 여기서 물거품이나 그림자, 또는 이슬이나 번개는 생겼는가 하면 곧바로 사라지는 것, 혹은 만지거나 소유할 수 없는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처럼 〈구운몽〉은 그 제목부터 〈금강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설 속 육관대사는 〈금강경〉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미몽에서 깨어난 성진에게 이 경전을 강독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육관대사는 성진에게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말라고 강조하는데, 이런 관점에 따르면 〈구운몽〉은 소설 속 인물이 일으킨 망상 또는 분별심이란 의미로 해독할 수 있고, 그것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구운몽〉은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팔선녀를 본 뒤 미혹에 빠져 스승에게 쫓겨난 뒤 양소유란 인물이 되어 부귀영달을 누리다 꿈에서 깨어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이 소설의 배경은 중국이지만, 꿈과 현실, 천상과 지상을 넘나드는 상상력은 대단히 웅장하고 드라마틱하다.

이 소설에서 양소유는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한 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란 승상(丞相)의 지위에 오르고, 아름답고 현숙한 여덟 여성을 처첩(妻妾)으로 거느리면서도 불화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성공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의 일대기는 입신양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유교 사회에서 남성이 도달할 수 있는 성공의 극대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동시대 사대부들의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란 해석이 공감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노년에 이른 양소유가 유불선 삼교 중 불도(佛道)가 최고라 여겨 밤마다 참선하고 스스로 불가(佛家)에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런 해석은 설득력이 반감된다.

이 소설의 태반을 차지하는 것이 양소유의 화려하고 극적인 성공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성진의 출가와 수행이 전생의 연기(緣起)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서사적 구성일 뿐이다. 다시 말해 성진이 잠깐 미혹에 빠져 관(觀)한 영웅의 장대한 삶은 그의 전생(前生)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여 양소유의 삶을 성진의 내생(來生)으로 보는 관점도 있으나, 현생의 수행자가 내생에 세속적 성공을 거두고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이야기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오히려 양소유가 말년에 참선하는 것은 미래의 삶(來生)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성진이 꿈속에 본 양소유의 삶이 한 인간의 평생이란 긴 세월 같아도 실제로는 짧은 시간의 소풍과 같은 찰나적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꿈속 인물의 이름이 ‘소유(少遊)’, 즉 ‘잠깐 동안의 나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로 명명된 데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양소유의 삶은 길지만 짧고, 성진은 잠시 미혹에 빠지되 마침내 참된 본성을 깨닫는다(性眞)는 작품의 주제가 작중인물의 이름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성진이 동정호 용왕 위부인을 만나러 갔다가 술을 마시고 팔선녀의 미색에 현혹되는 것은 출가자의 수행에 가장 큰 장애가 주색(酒色)임을 강조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청정비구인 성진이 처음으로 주색을 경험하자 온갖 잡념이 그의 수행을 방해하는데, 양소유의 삶은 인간의 세속적 욕망과 망상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극단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양소유는 소년급제한 뒤 단 한 번의 굴절이나 부침(浮沈) 없이 승상의 지위에 오르고, 여덟 명의 부인을 두고도 처첩 혹은 부부 관계가 평등하여 집안은 늘 화평하다. 현실에 불만이 많은 사람일수록 망상과 번뇌에 깊이 빠져드는데, 그 속에서는 모든 욕망을 성취하고 쾌락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속의 암중모색과 이전투구의 삶을 경험하지 못한 출가 수행승 성진은 망상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한껏 확장시킨 것인데, 모든 것을 다 이룬 순간 그 허망함을 깨닫는다는 사건의 전개는 전형적인 불교 서사의 구조를 따른 것이다.

양소유가 불교에 귀의할 것을 결심한 순간 다시 성진으로 돌아오는 결말 부분은 성진과 양소유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력히 암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성진’/‘꿈(망상)-양소유’의 관계가 대립적이기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 즉 현실이 꿈이며 꿈이 곧 현실이라는 불교적 진실을 함축한다.

호승(胡僧)이 석장을 휘두르자 구름이 일어나 주위를 분간하기 어렵게 되매 양소유는 “사부는 정도(正道)로 인도하지 않고 왜 환술로 희롱하느냐”고 항의하는데, 바로 그 순간 모든 환영이 사라지고 성진이 나타난다. 여기서 ‘구름’이 일어나고 걷힌다는 것은 성진이 ‘망상’ 또는 ‘꿈’에 들었다가 제정신을 찾는다는 뜻으로, 소설 제목의 ‘운몽(雲夢)’이 동어반복의 의미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망상에서 깨어난 성진은 인간세상과 꿈을 분별하여 말함으로써 육관대사에게 “성진과 소유가 누가 꿈이고 누가 꿈이 아니냐”는 호된 질책을 받는다. 성진이 “꿈과 참된 것을 알지 못하니, 깨닫게 하소서”라고 거듭 간청하자 육관대사는 성진과 팔선녀에게 〈금강경〉과 〈장자〉의 ‘호접몽’을 설한다. 그의 설법은 결국 꿈과 현실이 다른 게 아니라는 것(不二?不異),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내용이었을 터이다. 존재하는 것은 공하며 공한 것은 존재한다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사상이야말로 성진과 양소유의 서로 다른 삶이 보여준 가장 분명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구운몽〉의 주제를 ‘일장춘몽’이나 ‘공(空)’으로 요약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일반적으로 ‘일장춘몽’·‘공(空)’의 주제는 삶에 대한 허무와 체념으로 축소해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운몽〉은 성진이 양소유의 몸을 빌어 세속의 향락과 영예를 누린 뒤 불가에 귀의하는 것으로 그려져 어느 한 편의 삶을 부정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다만 양소유는 유불선(儒彿仙) 가운데 불도가 가장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성진이 선택한 수행적 삶과 연결되어 작품의 대주제를 형성하는 것이다. 성진이 주색에 미혹되어 체험한 양소유의 삶은 그의 전생이었고, 그러한 전생의 인연 때문에 팔선녀를 만나는 순간 미혹에 빠졌으나 곧 본래의 청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진에게 양소유의 삶은 참이면서 거짓이고, 거짓이면서 참이다. 불교적 관점에 따르면 현생의 우리는 전생의 연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현생의 연기로 내생이 만들어진다.

양소유가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린 뒤 불가에 귀의하는 서사구조는 싯다르타 태자가 궁성을 나와 출가하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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