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타령 ⑥

삼계를 벗어나는 단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법의 도리는

당장 이해 안 가도

몇 십년 후에 깨닫는

씨앗이 되니

들어두는 것만으로도

공덕이 된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소화를 하려면은 있다 없다 둘을 다 버려야 해. 있다 없다 살았다 죽었다 몽땅 버려 버리고 나중에 산 거를 굴리고 죽는 거를 굴리고 있는 거를 굴리고 없는 거를 굴리고 이런 식으로 나가면 나중에 차차차차 이것이 납득이 갑니다. 이것이 납득이 가면은 그때는 삼계를 뛰쳐납니다. 이 지구뿐 아니라 욕계 색계 무색계를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탁 벗어나 버려요. 이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마 이렇게 얘기하면 대강 여러분도 아, 그러리라 아실 건데, 실로 이런 얘기는 말로서 이래 저래 안 됩니다. 죽도록 해서 자기 의견을 내서 말을 해봤든 전부 걸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내 말을 들을 땐 내 말을 신용하지 마세요. 그러나 버리지도 마세요 내 말을. 하하하. 왜 그러느냐? 내가 진짜 말을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어떻게 진짜 말을 하겠습니까? 내가 뭣이라고. 그러면 부처님은 하느냐. 부처님도 진짜 말을 못합니다. 죽도록 했자 그 진리의 그 지도리의 그림자를 붙잡고 이렇고 이렇다는 이 정도지, 어째 부처님이라고 해서 진짜 말을 하겠습니까? 만약 부처님이 진짜 말을 하셨더라면, 하실 수가 있었더라면 말 한마디만 딱 하셨을 겁니다. 어째서 팔만대장경이 나왔겠습니까? 그러하니 부처님 말씀 이 곳에 가서 이런 말 하고 저 곳에 가선 저런 말 하고 다 다릅니다.

그러하니 여러분들은 말이죠. 이런 줄 아시고 인생관에 대해서 의심을 가져야 됩니다. 의심을 가지는 것은 의심만 가지기 위해서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큰 공덕을 가져옵니다. 참 이상합니다. 도저히 말이 안 됩니다. 이 얘기를 하는데 여러분들이 못 알아듣는다 합시다. 무슨 말인지 몰라.

그러나 귀에 넣어 놓기만 넣어 놔도 공덕이 됩니다. 공덕이 되면서 언젠가는 여기에 대해서 알 때가 있을 겁니다. 중간에 잊어버려도 좋아요. 잊어버려도 됩니다. 이거 내가 생생한 체험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어떤 기회에 내가 얘길 하죠. 잊어버려서 한 삼십여 년 후에 탁 하게 아이쿠 이건 이거로구나 하고 깨달은 적이 있어요. 전부 내 체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가서 들어봐도 모르겠더라, 그 들으나 마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 마세요. 좌우간 어떻든지 상승설법은 들어놓으면 그것이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공덕이 됩니다. 이거 여러분들 조금도 소홀히 생각하지 마세요. 그 다음에 또

[강송] 앎과 모름 뛰어넘은 본바탕이라

이 자리는 마음씨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뛰어 넘은 본바탕이라

[강송] 지견에다 옳그름을 풀이안하면

지견으로써 이건 옳다 저건 그르다 풀이를 안 하면은, 지견으로써 이건 이렇고 저건 그렇다 풀이를 하지 않아. 지견 그대로만 간직해 둬.

[강송] 어즈버야 모든반연 녹아서가니

지화자자 좋을씨고 물달도밝네

물에 달이 환하게 밝아.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래 이래 하니 이래 이래한 거 아닌가 하는 지견풀이를 절대 금해야 됩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어쩌면 나는 공부가 되겠노? 이래서 여러분들 걱정을 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공부가 되겠노 이렇지만은 그 생각이 말이죠 공부를 짓는데 큰 방해가 됩니다. 나는 어찌하면 부처가 되겠노? 이거 고질병입니다. 나는 어찌하면 공부가 되겠노? 이 자리. 그 자리가 바로 그 자리가 말이죠 바로 대도자리, 열반자리요 보리상인데 보리상을 자기가 턱 일으켜. 나는 어찌하면 공부가 되겠노? 나는 어찌하면 부처가 되겠노? 하는 그 생각, 그 생각 자체가 보리상이라. 그 생각 자체가 바로 열반상이라. 그 생각 자체가 부처라. 부천데 이걸 모르고 다른 방법을 찾는다 말이죠. 내가 나의 앞길을 막는 거나 한가집니다.

물론 이 얘기는 한 고비 넘은 사람들에게 하는 얘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고 나는 어찌하면 나는 공부가 되겠노. 이 생각 가져야 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하는 얘기는 한 고비 넘은 사람들 얘깁니다. 실로 육조같은 그런 분은, 혜능같은 그런 분은 아주 무식쟁이란 말이죠. 무식쟁이고 상놈이고 못나고, 세상에 이 지구에서 나쁜 건 전매특허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어째 슬기자리가 밝았어. 아, 그만 당장 자기 마음씨 알아버렸단 말이죠. 참 이상한 거여. 칠백 명인가 되는 사람들 앞에서 인사를 하거든요. 사람들이 어디서 왔노? 예, 저 남방에서 왔습니다. 남방은 상놈들이 사는 곳이거든요. 너 땅개가 어찌 왔노? 나 부처 되러 왔습니다. 너같은 땅개가 부처가 돼? 스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몸은 스님하고 내 몸하고 다릅니다. 성품자리는 하나 아닙니까? 아, 너 굉장히 날카롭구나. 일어나 나가거라… 그렇게 말할 때는 법은 이 사람에게 전해야겠구나. 그래서 팔 개월 동안이나 방아찧기를 안 했습니까? 설법 한 번도 못 들어 보고 조실 스님이 어느 방에 있는지 그것도 몰라요.

그런 분들은 근기가 좋았던 모양이죠? 전생에도 공부를 했던 모양이죠. 어떤 사람들은 보살의 화신이라고 합니다. 보살의 화신이라 해도 좋고 상관이 없거든요. 전생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죠. 우리는 전생 후생이 없습니다. 이것도 엉뚱한 말이 되는데,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여러분들 몸 나투기 전에는 전생이고 몸 나툰 이것은 현재고 죽고 나서 몸 없어지면 후생이라 하는데, 이거는 껍데기 몸뚱이 이것 파도, 이것이지 참말로 여러분들이 그 몸뚱이, 끄집고 다니는 그 자리에 전생이 어딨습니까? 오늘이 어딨으며 내일이 어딨으면 천 년 전이 어딨으며 만 년 후가 어딨습니까? 알아듣겠나? 말해 봐요. 전생 후생이 있느냐 말이죠. 나 이름을 모르겠다. 한 번 말해보란 말이여.

그러나 이걸로 봐선 있어요. 이걸로 봐서는 내가 이 방에 나올 때 와 지금 내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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