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20〉 두륜산 대흥사 대웅보전

대들보에 가공 않은 무위 자연주의
악기벽화는 유교핵심 예악사상 반영
살미넝쿨, 여덟굽이로 천정 휘감아
칠보문양에 고사리 싹의 생명표현

천정에 장엄된 아홉가지 전통악기와 칠보문양. 장구, 북, 해금의 삼현육각의 일부는 물론이고, 영산재에 사용하는 바라, 태평소 등 다양하다.
서산대사 의발 전한 선교양종 도량

고려시대 불교계의 최고봉이 보조국사 지눌스님이라면, 조선시대 불교계의 최고봉은 청허당 휴정스님, 곧 서산대사일 것이다. 순천 조계산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께서 1200년부터 생의 말년 10여년을 주석하면서 한국불교 조계의 숲을 여신 곳이고, 해남 두륜산 대흥사는 서산대사께서 1604년 임종을 앞두고 가사와 발우를 부촉한 종통귀의처(宗統歸依處)다. 그 법의 인연으로 송광사는 이후 16국사를 배출하여 승보사찰의 법통을 이었고, 대흥사는 근세에 이르기까지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통일(禪敎統一)의 선림교해(禪林敎海)를 이루었다. 서산대사는 대흥사에 법을 부촉하면서 대둔사 터가 전란과 흉년, 돌림병의 삼재가 들지 않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이고, 바다와 산으로 둘러 싸여있고 골짜기는 깊고 그윽하여 만세토록 훼손되지 않을 ‘만년불훼지지(萬年不毁之地)’이며, 뇌묵당 처영스님 등 제자들이 모두 남방에 있고 대사 역시 남쪽에서 출가하였으니 결국은 법통이 원래자리로 돌아가는 ‘종통소귀지처(宗統所歸之處)’라 하여 의발(依鉢)을 대흥사에 전하게 하였다. 서산대사의 저서 〈선가귀감〉에 이르기를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 하였으니 대흥사에 이르러 형성된 선교양종의 대도량의 면모는 인연이 지은 응당의 발현이라 하겠다.

대흥사 대웅전은 석가여래와 아미타여래, 약사여래의 삼세불을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의 일심으로 모신 대웅보전이다. 시방삼세 상주일체의 부처님 세계다. 세 부처님의 존상마다 그에 조응하는 후불탱을 모셨고, 독립성에 가까운 닫집을 갖추었다. 붉은 빛의 후불탱과 하늘 연꽃이 줄지어 내려온 길다란 닫집이 시선을 압도하고, 삼매에 젖은 세 부처님의 열반적정이 거룩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늘에서 힘차게 줄지어 내린 닫집 연봉의 수직성과 그 횡적 반복이 인상주의 작품들의 찰라적 순간처럼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수직의 연봉들은 특별한 공간을 둘러싼 휘장효과와 함께 신성의 위계를 표현하는 결계장치로서의 효능도 발휘함으로써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연봉에 입힌 색채도 각양각색으로 조화롭고, 닫집에 베푼 색채가 후불탱의 색채와 일체를 이루는 덕분에 화면의 크기는 보다 확장되는 느낌이다. 그에 반해 법당을 가로지르는 대들보의 굵직한 선은 용처럼 살아 꿈틀대는 힘찬 곡선의 파동이다. 가공하지 않은 무위의 건축부재에서 자연주의 건축정신이 물씬 풍긴다. 서산 개심사 심검당 벽체의 뼈대들과 안성 청룡사 대웅전 측면기둥 등에서 찾을 수 있는 건축의 자연주의 유산들이다. 한국의 미적 본질이 무위의 자연주의 소박함에 닿아 있음을 우리는 안다.

천정에 조영한 모빌형식의 봉황 탄 동자조형. 대흥사 대웅보전의 봉황과 선학조형은 모두 다섯개체로 드문 양식이다.
모빌형식의 봉황 탄 동자조형

법당의 구조 및 장엄법식은 직지사 대웅전, 구례 화엄사 대웅전에서 익숙히 본 장면이고, 특히 닫집경영과 천정의 봉황장식에서 논산 쌍계사 대웅전과는 여러모로 닮은 데가 많아 비교된다. 대흥사 대웅보전 천정에 모빌(mobile)형식으로 매단 봉황과 선학은 모두 다섯 개체다. 봉황이 3개체, 도교적 선학이 2개체인 모빌형식이지만 움직이지 않게 철사로 고정되어 있다. 모빌조형은 봉황과 선학 저마다에 문수동자처럼 양쪽 머리를 묶은 천동(天童)이 타고 있는 천동비봉(학)조형이다. 천동비봉도는 벽화 형식으로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과 청원 안심사 대웅전, 양산 통도사 대웅전 등에서 나타나지만 조형으로는 매우 드문 양식이다. 새를 타고 있는 동자조형의 모티브는 고구려 벽화고분 오회분 4호묘, 5호묘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데, 봉황과 선학을 타고 양팔을 뻗어 천공의 바람을 가르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천진무구해서 더없이 귀엽고 해맑다. 예경의 긴장공간에 미끄럼 타는 아이들의 신명이 왁자한 느낌이다.

대웅보전의 천정양식은 가장자리 부분은 널판으로 연결한 빗반자이고, 안쪽천정은 2단의 층급을 갖춘 우물천정이다. 기둥에서 뻗어나온 부처님의 갈색 기운이 내출목의 공포부재를 담쟁이 넝쿨처럼 타고 오르면서 천정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공포부재 살미양식을 빌려 내부에 깃든 신성한 에너지가 여덟 굽이로 천정 바닥면까지 휘감아 오른다. 울창한 생명의 숲을 보듯 신령의 기(氣)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놀라운 형국이다. 특히 어칸 기둥의 공포구조는 외부의 용두에 조응해서 몸통과 꼬리부분을 내부로 힘차게 한 바퀴 감아올려 힘과 역동성을 강하게 추동한다. 나선형으로 돌돌 감아 오르는 살미의 중중구조에 휘감아 뻗치는 꼬리의 힘까지 더해서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는 형국이다. 대웅보전의 용꼬리는 사선의 직선으로 뻗친 남원구역의 천불전 용미와 훌륭한 비교의 짝을 이룬다.

중앙 칸 천정장엄.
삼현육각 등 전통악기 9가지 묘사

빗반자의 벽화도상들은 독특한 구성으로 시선을 끈다. 빗반자에 베푼 도상은 두가지다. 하나는 악기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칠보,혹은 팔보장식 그림이다. 정면 빗반자엔 악기벽화를. 좌우측면 빗반자엔 칠보장식을 그려 놓았다. 18, 19세기 낭만주의적 사찰건축에서 일반적으로 빗반자엔 주악비천과 공양비천벽화를 장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대흥사 대웅보전과 내소사 대웅보전 천정처럼 인물 없이 전통악기만 체계적이며 집합적인 형태로 표현한 예는 극히 이례적이다. 내소사엔 11가지의 악기가, 대흥사엔 9가지 악기가 나타나는데 대흥사의 것이 아류격이다. 묘사된 악기들은 장구, 북, 해금의 삼현육각(三絃六角)의 일부는 물론이고, 영산재에서 사용하는 바라, 태평소, 생황, 나각을 비롯하여 종묘제례에 등장하는 편종까지 다양하다. 천정의 악기벽화는 전통악기 교육용 편집교재를 펼쳐놓은 듯이 다분히 교본적이고 시청각적이다. 〈악학궤범〉의 악기 그림들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천정에 펼친 〈악학궤범〉의 자락에 하늘같은 무궁한 생명의 음악, 기악합주곡 ‘수제천 (壽齊天)’이 흐른다. 천정 여백의 텅 빈 공간이 장중한 정악의 선율로 가득하다.

악기벽화의 본질은 법계에 울려퍼지는 천상의 선율이다. 일본 지온인 소장 〈관경16관변상도〉(1465년), 〈은해사염불왕생첩경도〉(1750년), 개심사 대웅보전 후불탱인 〈관경16관변상도〉 (1767년) 등에는 하늘에 그려진 악기그림의 본질을 자내증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것은 부처님의 자비와 대덕에 대한 찬탄과 예경의 음악공양인 것이다. 천의가 휘날리는 악기 그림에서 품격과 정성을 갖춘 예경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여수 흥국사 대웅전에서 꽃 화병을 장엄한 것과 일맥상통하다. 동시에 악기벽화는 유교사상의 핵심인 예악사상(禮樂思想)의 흔적으로도 보인다. 〈예기(禮記)〉의 악기편(樂記篇)에 따르면 ‘예’는 위계와 절제에 의한 질서를 추구하는 분별작용이고, ‘악’은 조화와 화합을 추구하는 동화작용이다. 석가여래께서 행하시는 영산회의 설법은 멈춤없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하니, 그 때 악기벽화는 법회의 성중들이 모두 일승의 삼매에 빠지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미적체험의 장이 될 것이다.

대웅보전 삼존불과 내부장엄.
빗반자에 길상과 복록의 칠보문양

빗반자에 나타나는 칠보문양에도 천의가 휘날리는데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드러낸다. 〈묘법연화경〉 등 불교에서 표현하는 칠보, 혹은 팔보는 금, 은, 마노, 유리 등이지만, 대웅보전 천정에 장엄된 칠보문양은 부채, 무소뿔, 경전 두루마리, 경쇠, 마름모형과 오각형 엮음 등이라 보다 관념적인 특성을 띄고 있다. 물질적인 금은의 보석이 아니라, 지혜와 수명의 연속성 등 시대정신이 반영된 길상과 복록의 칠보문양이다. 이같은 칠보문양의 단청장식은 건축의 현판이나, 외출목의 순각판 등에서 자주 표현하는 것이다. 공주 신원사 중악단 닫집에도 파다하고, 특히 순천 송광사 관음전 천정은 온통 길상과 복록의 칠보문양의 세계라 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인데, 관음보살에 청하는 인간의 욕망이 일정하게 밴 단면이라 하겠다. 관념적인 칠보문양마다 신성한 기운으로 부푼 천의가 펄럭이고, 붉고 노란 기운들이 고사리 싹처럼 돋아나서 기물의 영적인 성격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칠보문양에 생명의 새싹 같은 기운이 피어나는 장면은 유일무이한 극적인 대목이다. 그것은 사군자 묵매도에서 매화가지에 찍어 넣는 짧고 강한 태점처럼 대상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복록과 상서의 시간적 무한성을 예리한 시츄에이션으로 이끌어 간 것이다.

천정의 중앙부분은 하늘의 관념적인 붉은 연꽃으로 장대한 장면을 이루었다. 모든 우물 칸에는 우물반자 내부에 뾰족뾰족 둥근 띠를 이어간 소란반자 틀을 마련했다. 틀의 바탕은 먹빛으로 가물 현(玄)의 바탕을 만들었다. 그 바탕에 붉은 색으로 꽃잎을 바림한 연화문을 무시무종으로 펼쳤다. 천정의 연화문은 처처소소(處處所所) 부처의 자리이고, 사부대중이 우화서(雨花瑞)의 꽃비에 성불하는 환희심의 당처일 것이다. 진리의 꽃, 그 꽃을 일러 묘법연화라 부른다.

어칸기둥 용꼬리와 살미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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