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기 상생의 우분투 운동을 일으키자

韓사회, 함께사는 공생의식 희박
일체만물은 연기상생의 존재
상생정신 담긴 ‘우분투’ 배우자

“우분투(Ubuntu)” 이는 남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코사족과 졸루족 등 수 백개의 부족들이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 인터넷의 어느 카페에서 공개한 말인데 이에 얽힌 사연이 감동적이어서 여기 소개해 본다.

서양의 어떤 한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마을의 한 부족 아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그는 근처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달아 놓고, 뛰어 가서 거기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시작”이라고 외쳤다. 음식을 놓고 아이들에게 경쟁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가 기대한 것처럼 서로 뛰어가면서 경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다 같이 가서 그 음식을 나무에서 내려다 함께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중 한명이 먼저 가면 그 먼저 간 사람이 음식을 다 차지 할 수 있는데 왜 모두 같이 갔지?” 라고 묻자 아이들은 “우분투(Ubuntu)”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한 사람만 행복 할 수 있나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분투’는 아프리카 코사(Xhosa)어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 “함께 있어 내가 있다(I am because we are)”라는 뜻이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뜻이 깊고 우주의 철리(哲理)를 담고 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람과 사람’ 모두 서로가 한 뿌리로 얽히고 맞대어 있어 존재 할 수 있음이다.

아프리카에서 ‘우분투’, 이 말을 쓰는 많은 부족들은 언제나 서로 만날 때면 인사말로 이를 쓴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은 나 한사람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용인 하지 않는다. 위의 아이들 예에서 보듯이 적더라도 다 같이 고른 행복을 그들은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에게 나무에 음식을 걸어 놓고, 먼저 갖는 사람이 임자라고 해보자. 과연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서로 손잡고 함께 걸어 갈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서로 먼저 독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제쳐가며 피나는 경쟁을 벌일 것이고, 마침내 승자는 의기양양하게 모든 것을 독식하려 들것이다. 바로 어른들의 문화가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에게 불행을 초래하면서 나의 행복을 찾는 사회다.

무한경쟁의 현대사회는 정말로 불행의 사회다. 우분투는 공생의식(共生意識)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공생의식은 우리가 다 같이 연기(緣起)의 존재임을 깨우칠 때, 다시 소생할 수 있다. 연기란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 “모든 존재는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이 없어진다(此滅故彼滅)”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요약해 말하면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 이것이 있다’ ‘자연이 있어 인간이 있고, 인간이 있어 자연이 있다’와 같은 것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그물의 망(網)처럼 서로 붙어서 떨어져 있지 않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 우분투는 바로 이처럼 너와 내가 둘 아닌(不二) 존재임을 깨우친다. 우리도 ‘우분투(Ubuntu)’운동을 일으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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