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타령 ④

한결 같은 물은

어디에서도 변함없다.

이 자리는 불변심을 말한다.

악한 것도 착한 것도 아닌

‘열반묘심’이라고도 하는

이 자리가 바로 성품자리

 

여러분들, 낙동강도 보고 한강도 보고 천리강산의 물을 보겠지만 이 물이란 건 끊임이 없어. 언제라도 그대로 흘러가. 인위적으로 강을 이렇게 돌리고 저렇게 돌릴 수도 있겠죠. 그건 유위법이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 해놔도 물 흐르는 것은 매 한가지야. 이래 돌려놔도 결국 물은 흘러. 저리 돌려 놔도 결국 물은 흘러. 한결같아.

그러니 결국 마조대사도 역시 급하다 이 생각 다시 물을 줄 알았겠죠. 또 그 자리에서 알았으면 아 그렇구나 한결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마음자리가 바로 열반이로구나 바로 이렇게 아는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한 번 물을 줄도 알았겠지요. 만약 묻지 않았더라면 나갈 거여. 절하고 갔을 거여. 가면서 물을 봐라.

그 말 한 마디 했을 줄도 모를 거여. 별 문제겠지만. 그러하니 열반자리가 무엇이냐면 열반자리가 역시 이것이거든요. 나는 이걸 쇠꽃이다. 이래 노래해 놨는데 역시 열반자리가 이 자리 떠난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이 자리가 급한 것이거든요. 급해서 한결같이 마음을 가져. 쇠꽃과 이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마음 심자와 이것이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게 잘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물을 봐라.

물이란 건 인위적으로 이렇게 틀어놓고 저렇게 틀어놓고 했더라도 한결 같아. 변한 것이 없어. 이 자리. 이건 불변심을 말해. 이건 악한 것도 아니고 착한 것도 아닌 이 자리, 이 자리를 뜻하는 것이거든. 내가 생각하기는. 그러하니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열반이라고도 하고 열반묘심이라고도 하는데 묘한 마음이라고도 하는데 그 자리가 바로 성품자리 아닌가 말이지. 그 자리가 바로 마음씨 자리거든요. 그런데 우린 그런 말 많이 들었어. 그리고 대중을 깨우치는데 무엇인가 색다른 말 한 마디 해야 탁 들어갈 것이거든요. 그러하기 때문에 노래 부른 것이 쇠꽃이라 한다. 이 말이에요. 참말로 어찌 이 마음자리를 쇠꽃에 비유하겠어요? 그러나 무엇인가 무슨 말이라도 빌려다가 한마디 턱 하게 대중에게 들려주어야 하겠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말이 필요한 것이거든.

그러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성품이 법이라면 마음은 부처란 것은 틀림없고, 이전 어른들도 그렇게 말씀했어요. 부처님도 그래 말씀 했고 우리가 생각한 것도 그래. 절대로 머리털만큼도 이전 어른들의 말씀과 내 그것이 틀리지 않다는 걸 내 단정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전제로 해서 쇠꽃이다 이래 합니다. 그러니까 꽃이란 거 아름다운 거 아니에요? 그러나 이것이 쇠꽃이라 변치 않는 것이라. 그러하기 때문에 지화자 좋을씨고 쇠꽃이랄까. 좋아. 참 지화자자 좋을씨고 쇠꽃이랄까. 이 노래를 만드는데, 서울 대학원생인데 대전에 있을 때 구경을 나갔는데 노래를 해. 그런데 그 노래에 관심이 가. 아하, 노래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 우리의 마음씨, 우리의 마음씨 어떤지 알 수가 없어. 그러나 모르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쇠꽃이로구나, 어즈버야 지화자자 좋을씨고 쇠꽃이로구나. 이러면서 춤이라도 한 번 춰. 마음자리 그 자리를 상상하면서 춤추는 것도 마음이 추지 무정물 어디 이것이 추나요?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강송] 영특스런 슬기라서 의젓한지라.

영특스런 슬기, 여러분이 다 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젓한 자리거든요. 다 의젓한지라.

[강송] 기틀마다 응하면서 씀을굴리니.

기틀마다 응해. 그래서 씀을 굴려. 작용을 해. 어디라도 응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기틀마다 응하면서 씀을 굴리니, 작용을 하니. 작용이라 써도 좋은데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말을 쓰려고 씀을 굴리니 했어요.

[강송] 어즈버야 다함없는 장엄세계다.

마음, 이 장엄세계를 만드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거든요. 그러하니 이 극락세계 여러분이 만들고 이 지옥도 여러분이 만들고 사바세계도 여러분이 만드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의 몸뚱이로서인 여러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허공으로서인 여러분이 만듭니다. 이거 절대로 의심하지 마세요. 이거 의심하면 안 됩니다.

[강송] 어즈버야 다함없는 장엄세계라.

지화자 좋을씨고 돌말이뛴다.

돌말이 뛰어. 아까는 쇠꽃이라 했는데 돌말, 석마, 세상에 돌말이 뛰는 법이 어딨습니까.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고깃덩어린데 왜 걸어다니나? 아, 그건 내 성품이 없기 때문에 그렇지 이렇게 말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은 돌말이 뛴다. 도대체 이거 무슨 말이냐.

어느 것 하나 이름자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전부. 산도 이름자, 지구도 이름자, 나무도 이름자, 돌말도 이름자. 이름자는 내 마음대로 굴릴 수가 있습니다. 재주를 부려서 이걸 걸어가게 만든다는 것보다도 내 마음대로 굴릴 수가 있습니다. 이름자는. 그러하기 때문에 무슨 모습 생겼다고 그래서 거기에만 딱 들어앉아 버리면 한계성이 딱 있습니다. 지금 지구가 돌아.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실은 이거 지구 자체가 도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씨가 도는 겁니다. 알고 보면. 너무 엉뚱한 말이 되서 이건 곧이 안 들을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씨는 그만 허공 전부라 해도 괜찮아요. 그러면 지구나 태양이 어딨나 할 것 같으면 여러분의 마음씨 가운데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그것이 각자 한 가닥의 마음을 나투어서 거기서 모습을 나투어. 그 모습과 모습끼리 타협을 해. 거기 정해진 자리를 도는 건데 돌도록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원인이라면 여러분의 마음씨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돌말, 나무달이라든지 이런 것이 전부 이름자에요. 사람 이것도 이름자에요. 그러면 이름자는 내 마음대로 인정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내 마음대로 지어낼 수가 있는 거예요. 그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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