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古典 - 한국대표 구전 설화 〈심청전〉

지독한 절망에서 허우적대는
심봉사는 우리와 다르지 않아
화주승의 무리한 시주 권유에도
심청은 낙담않고 서원을 세워

원망·잡념없는 一心의 발원이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 동력

▲ 곡성군에 조성된 심청이야기 마을의 심청의 동상. 심청의 지극한 발원과 효심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원동력이었다.
왜 하필 심청전인가
몇 해 전 판소리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단출한 무대 위에 한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은 소리꾼이 부채 하나를 들고, 고수의 장단에 맞춰 몇 시간에 걸쳐 작품 하나를 들려주는 시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때 우리가 지루하게 혹은 고루하게만 여겼던 작품들을 다시 만났다. 그중에서 판소리 심청전의 충격은 아주 컸다. 가슴이 찡해지고 콧날이 시큰해졌고, 그러다 허리가 꺾이도록 웃기도 했다. 어쩌면 소리꾼의 그 엄청난 연출력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활자가 아닌 소리로 작품을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옛 작품들은 지금 다시 읽혀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청전이라….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열다섯 살 꽃봉오리 소녀 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고, 어찌어찌하여 다시 살아 돌아와 황후가 될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마침내 눈을 뜬다는 사실. 이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재론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모두가 아는 줄거리여서 더 식상하다.

게다가 효녀 심청은 공양미 삼백 석에 제 몸을 팔아버린다. 여기에는 종교가 개입했다. 그 당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공양미 삼백 석 운운하면 욕부터 듣는다. 종교는 아편이라는 그 지긋지긋한 훈계를 또 다시 들어야 한다. 그래서 심청전과 불교는 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로 읽는 고전’이라는 연재물에 원고청탁을 받고 심청전을 가장 먼저 생각해 낸 데에는 이유가 있다.

‘효심’이라는 판에 박은 고정관념을 걷어내 보니 심청이라는 여주인공의 입장이 아니라 어리디 어린 딸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가엾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입장이 보였기 때문이다. 베풀 수 있으면 괜찮다. 하지만 베풀 것 하나 없고 남에게 기대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 적이 있어 보았는가. 심봉사는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 주제에 언감생심 기절초풍할 소망을 품었고, 그로 인해 인생의 나락까지 떨어진 인물이다. 지독한 절망에 빠진 인간의 허우적거림과 헛발길질, 심봉사의 모습이다.

그런데 심청전을 판소리로 듣거나 책으로 보면서 절대선의 경지에 오른 착한 딸보다는 못난 아버지가 더 크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모습에 이 세상을 허겁지겁 살아가는 내 주변 숱한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 작품은 어쩌면 구제불능의 지경에 처한 존재가 가까스로 턱걸이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자기 인생의 난관을 헤쳐 나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불교가 요구하는 덕목들이 떠올랐다.  
 
절망 끝에 붙잡은 지푸라기
무엇보다 내가 심청전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소설 속에 들어 있는 불교적 장치 때문다.  몽은사 화주승이 청이 아버지 심봉사와 마주치는 장면은 정말 극적이다. 어둔 밤에 귀가가 늦은 딸을 마중나간 앞 못 보는 아버지. 그런데 그만 물에 빠지고 만다. 날은 어둡지, 추위는 냉혹하지, 살려달라고 소리쳐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커다란 핸디캡인, 앞을 보지 못하지….

어둠과 추위와 고독과 죽음의 두려움이 그를 엄습한 절체절명의 순간. 바로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몽은사 화주승이다.

그런데 얼음장 같은 강물로 뛰어들어 심봉사를 구해놓은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금강경〉이라도 읊조리며 지나가면 좋았을 터였다. 문제는 이 스님이 ‘떡밥’을 던졌다는 사실이다. 

“우리 절 부처님은 영험이 뛰어나서 빌면 안 되는 일이 없고, 구하면 모두 들어 주신다오.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올리고 지성으로 불공을 드리면 눈을 떠서 완전한 사람이 되어 온갖 세상을 훤하게 볼 것이오.”(현암사 〈심청전〉 41쪽)

몽은사 화주승의 이 제안을 ‘떡밥’이라고 표현한 것을 용서해주시길! 왜냐 하면 바로 이 ‘공양미 삼백석’이, 민중의 아픈 점을 이용해서 제 배만 불린다며 종교가 욕을 먹을 때 (소설이라는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불교 측의 불리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는 원래 그렇지 않은데”라며 아무리 해명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 그 화주승의 이어지는 태도도 의뭉스럽다. 떡밥을 덥석 문 심봉사에게 그는 이렇게까지 말하기 때문이다.

“여보시오. 댁의 가세를 살펴보니 끼니도 잇기 어려운 처진데 삼백 석을 무슨 수로 마련한단 말이오?”
그러지 않아도 자신의 가장 비참한 모습을 고스란히 들킨 심봉사가 아닌가. 화주승의 이 말은 밟힌 지렁이가 얼마나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는지 그 시험대가 되었다. 심봉사는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그는 맹렬한 결기로 이렇게 장담하고 만다.

“여보시오. 어느 쇠아들 놈이 부처님께 적어 놓고 빈말하겠소. 눈뜨려다가 앉은뱅이 되게요. 사람 말을 업수이 여기시오? 염려 말고 적으시오.”
아아, 심봉사여! 어쩔 셈인가! 아무리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확 저질렀다지만 부처님과의 약속은 조금 신중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요, 엎어진 물이다. 화주승은 시주책을 바랑에 넣고 떠나갔다.

청이는 왜 반겼을까
착한 딸 청이가 한발 늦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놀랍다. 아버지에게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놀라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기며 아버지를 달래기까지 한다.

“아버지, 걱정 마시고 진지나 잡수세요. 후회하시면 진심이 못 되십니다. 아버지 어두운 눈을 떠서 밝은 세상을 보신다면 공양미 삼백 석을 어떻게든 준비하여 몽은사로 올리겠습니다.”(현암사 〈심청전〉 44쪽)

그리고 그녀는 그날부터 정한수를 떠놓고 지성으로 빌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첫 번째 궁금증이 들었다. 뭐지, 청이의 이런 태도는?

아버지의 대책 없는 태도에 화를 내지도 않았다. 가난한 집안 사정에 절망하거나 실망하지도 않았고, 화주승의 무모한 권선에 분노하지도 않았다. 심봉사는 전생에 얼마나 나라를 많이 구했기에 이런 딸을 둘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이런 상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동안 청이는 죽을 때까지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아버지의 팔자소관에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그런 팔자를 타고 태어났다는 자괴감에 짓눌린 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무척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는 눈을 뜨고 싶다는 의지를 일으켰다. 청이는 그게 반가웠으리라. 아버지가 소망을 품었다는 사실, 절망의 어둠을 기어 다니던 존재가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는 사실, 좀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일으켰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이리라.

이제 청이와 그 아버지에게는 눈을 뜨겠다는 ‘원(바람)’이 생긴 것이다. 원(願)을 품은 삶과 원이 없는 삶은 그 빛깔이 다르다. 그리고 원을 품은 사람은 안다. 그게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원을 품은 사람은 맹세를 한다.

“모쪼록 이 바람이 이뤄지게만 된다면 뭐라도 하겠습니다.”
맹세(誓)는 원(願)과 늘 짝을 이루며 다닌다. 그래서 불교에는 ‘서원(誓願)’이라는 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원에 겁을 집어먹은 심봉사가 지레 낙담을 하고 만 반면 청이는 맹세를 한다.

“아비 허물을 내 몸으로 대신 하옵고 아비 눈을 밝게 하여 주옵소서. 내 몸을 팔아서라도 아버지 눈을 뜰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하겠습니다.”

맹세를 얼마나 충실하게 지켜내느냐는 원이 이루어지느냐 아니냐가 달린 문제다. 어쩌면 맹세한 내용을 하루하루 지켜가는 과정이 원을 이루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렇게 어린 딸과 눈먼 아비는 하루하루 원을 이루는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부처님 영험을 믿지 못한 청이
소설이야 극적일수록 대중의 반응이 큰 법이다. 하여, 청이가 산 채로 인당수에 빠진다는 설정까지 끌어댔다. 하지만 청이는 옥황상제의 배려로 결국 살아서 꽃봉오리에 실린 채 자기 나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그리하여 황후가 되었다. 그런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청이 가슴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져갔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맹인잔치를 열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문득 고개가 갸웃! 두 번째 궁금증이 도졌다. 청이는 자신의 몸을 팔아서 마련한 공양미 삼백석의 효능을, 결국 몽은사 부처님의 영험을 믿지 못했다는 말일까? 신심이 도타웠다면 자기희생으로 아버지가 눈을 뜨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하거늘 그녀는 아버지가 눈을 뜨지 못했다는 전제 아래 전국의 모든 봉사들을 황성으로 불러 모은다.

청이가 그랬듯이 사람들은 부처님 전에 빌어도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힘없고 빽 없는 이들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부처님에게 기댄다. 민초들은 빌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빌기라도 해본다. 그래야 사바세계를 살아낼 숨이라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님이, 지장보살님이, 아미타부처님이 괜히 계시겠는가. 이분들은 중생의 마지막 보루다. 몽은사 부처님도 그런 분이셨다.

황후 청이는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눈을 뜨셨건 뜨지 못하셨건(이쪽 생각이 더 강하다)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가까이서 모시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 참이었다. 자신과 한 마디 의논도 없이 공양미 삼백 석을 덜커덕 약속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보겠다는 그 간절한 바람으로
청이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졌다. 그 사이 늙고 쇠약해져버린 아버지가 찾아온 것이다. 그 동안 심봉사는 얼마나 고생이 심했던가. 딸이 팔려가면서 마련한 재산은 뺑덕어멈이 홀랑 날려버렸고, 살던 고향을 떠나 떠돌이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앞을 보고 싶다며 몽은사 화주승에게 한 약속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냥 그대로 만족하며 살 것을 어쩌자고 눈을 뜨겠다는 원을 품었단 말인지….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이다. 심봉사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얼마나 확인하고 싶었을까. 정말 내 딸이 맞는지, 손에 잡히지 않는 소리는 그만두고라도 손에 만져지는 이목구비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보자. 어디 한 번 보자.
나 때문에 죽었던 청이가 눈앞에 있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내 딸 청아!

심봉사 인생에서 이 순간보다 더 간절히 눈을 뜨고 싶었던 때가 있을까? 몽은사 화주승에게 공양미 삼백 석을 약속할 때는 자신의 처지에 너무나 낙담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심봉사 심정은 그때와는 달랐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 던진 딸이 지금 눈앞에 있는데 그걸 보지 못하는 심정이다. 원망도, 낙담도 섞이지 않은, 오직 내 딸이 보고 싶다는 그 지독한 원이 심장에 차오르고 목울대를 넘어서서 결국 번쩍하고 두 눈을 열었던 것이다.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 것은 무엇일까?
몽은사 부처님과의 약속이 있었고 외동딸 청이의 효성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눈을 뜨게 하지는 못했다. 이 외부적인 원인은 그로 하여금 ‘보고 싶다’는, 지금까지 품어본 적이 없는 강력한 원을 품게 했다. 제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을 살리려한 딸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자신은 비록 눈 뜨는데 실패했지만 이렇게 버젓하게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는 그 기꺼운 마음, 바로 그것이 그의 눈을 띄어준 것은 아닐까.

▲ 이미령 불광교육원 전임강사
원(願)을 품으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원을 품어야 보살이고, 원을 품어야 부처가 될 수 있다. 성불은 원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장비구는 48가지 원을 품어서 아미타부처님이 되었고, 약사여래는 10대원을, 승만부인도 10대원을 품었다.

그런데 그 원에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나 분노, 비난이 들어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나 낙담이 서려 있어서도 안 된다.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그 마음, 청이를 향한 눈먼 아비의 그 지극하게 느껴운 마음의 원이어야 한다. 그런 마음을 품을 때 범부는 처음으로 나 아닌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될 것이요, 그 사랑의 관계를 알아차린 그의 활짝 뜬 눈 앞에는 중중무진의 법계가 펼쳐져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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