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쌍어, 불보살, 범자의 ‘華藏世界’
용, 쌍어, 불보살, 범자의 ‘華藏世界’
  • 노재학 불교사진작가
  • 승인 2014.11.2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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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의 꽃 절집 천정〈19〉 고흥 금탑사 극락전

천정 빗반자에 장엄된 수중세계. 연꽃, 물고기, 거북 등 조형 소재들을 쌍을 갖춰 좌우대칭의 구도로 조형하였다. 방아 찧는 토끼문양이 시선을 끈다.

불보살 법계와 결계, 심미적 천정
용의 몸통에 숱한 빗방울 빗점
고구려 안악3호분 주두양식과 흡사
물과 생명은 순환, 반복으로 일맥상통


커다란 용의 꼬리 자체가 살미

우주로 향한 꿈을 꾸는 고흥반도에 두 개의 명산명찰이 인문의 고전으로 빛난다. 한 곳은 팔영산 능가사이고, 또 다른 한 곳은 천등산 금탑사이다. 고흥에 빛나는 현대의 금자탑이 나로우주센터라며, 고흥의 고전의 빛은 금탑사 극락전이다. 둘 다 하늘로 가는 꿈을 꾸지만, 하나는 우주선이라는 과학기술을 빌리고, 다른 하나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으로 자신의 마음에서 찾는다. 금탑사 극락전은 옛사람들이 정화된 마음으로 우주법계를 장엄한 불교의 우주선, 피안으로 가는 깨달음의 배, 반야용선(般若龍船)이다.

금탑사 극락전 내부는 온통 벽사와 길상, 상서, 문자기호 상징, 불보살의 세계로 충만하다. 어느 사찰의 내부장엄보다도 불가사의하고 심오하며 아름답기 그지없다. 내부장엄에서 이례적이며 독창적인 요소들로 주목을 끈다. 법당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시선을 낚아채는 것은 어칸의 양쪽 주심기둥과 네 모서리 기둥에 장엄한 독특한 내부 살미장치다. 내부살미 그 자체가 용의 큰 꼬리다. 대흥사 천불전이나 불회사 대웅전, 통도사 용화전 등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심기둥의 살미양식이지만, 고흥사의 경우는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형이면서 율동적이어서 파격에 가깝다. S자로 솟구치는 꼬리의 형상이 내출목의 층급을 따라 꿈틀거리며 오르는 넝쿨과 어울려 강한 생명력을 살려낸다.

특히 네 모서리 귀공포의 내부살미는 지극히 역동적이며 힘이 넘친다. S자로 몸통을 크게 비튼 뒤 꼬리부분은 직선으로 거침없이 힘차게 뻗쳤다. 우주선이 발사된 뒤 추진력을 가속하는 불꽃의 형국이다. 용의 몸통에는 비늘의 형상을 입히거나, 혹은 검은 먹선을 넣고, 숱한 빗방울 같은 흰 색 빗점들을 가득 입혀서 신성한 기운을 부여하고 있다. 마치 용의 본질이 만유의 생명력인 물의 특성임을 조형으로 입증하고 있는 듯 하다.

불보살 및 신성한 법계에 대한 강력한 옹호와 결계의 의지를 신중작법의 형식으로 드러냈다. 벽체 곳곳 용과 범자의 상징체계로 구현했다.
바다 ‘海’자와 용으로 결계의지

용의 꼬리는 크고 힘차며, 여섯 곳에서나 나타날 정도로 장엄의 의지가 보다 분명하다. 그것은 신성한 도량과 법계에 대한 강력한 옹호와 결계(結界)의 의지로 보인다. 무엇보다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결계의지는 강력하다. 바다 ‘海’와 물 ‘水’자를 벽체 여러 곳에 집합적으로 써넣은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다 ‘海’자를 통한 부적같은 주술적 결계양식은 순천 선암사 대웅전에서도 나타난다. 1700년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사찰주변 비자림의 조성도 그같은 화재에 대응한 방화림의 숲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용의 형상을 통한 법계의 신성에 대한 옹호와 결계의 의지는 내부공간 건축장치 곳곳에서 표현하고 있는데, 기둥 위의 주두(柱頭)에서도 확고하다. 주두의 문양은 일반적인 겹녹화가 아닌, 극히 이례적인 용의 정면얼굴이다. 통상적으로 불단의 기단부에서 표현하는 양식을 주두에 과감히 올려 놓았다. 고구려벽화고분 안악3호분 널방입구 기둥의 주두양식과 흡사해서 주목된다. 부안 개암사 대웅전의 연잎문양 주두와 함께 파격적이어서 눈길을 끈다.

더욱이 용의 정면얼굴은 주두 뿐만이 아니라 내4출목 벽체 3단 장여에도 층층이 베풀어서 법계의 신성 수호의지를 결연히 드러냈다. 형형색색 용들의 저마다 눈빛은 살아있으며, 입은 꽉 다물어 결연하다. 법주사 팔상전, 개암사 대웅전 등의 처마 아래에서, 혹은 강화 전등사, 순천 동화사 등의 불단에서 용의 정면얼굴 조형이 조직적으로 간혹 나타나지만, 금탑사 같이 내부공포 장여벽면에 용의 정면얼굴이 집단적인 정형으로 표현한 회화양식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용 얼굴의 회화적 표현도 능수능란하게 묘사해서 탁월하다. 가히 각양각색 용들의 사단이라 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첨자, 살미, 장여 곳곳에 범자

불보살 진리법계의 보장과 결계적 신중작법 양식은 범자종자를 통해 보다 심오함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조형회화적 결계작법이 용이라면, 문자기호적 결계작법은 범자에 내재된 신성한 상징을 빌렸다. 먼저 범자의 구획영역의 다양함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천정의 연화문에는 물론이고 내부첨자 면과 첨자의 마구리, 내출목 위 상벽, 살미부재 단면 등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특히 내부첨자 마구리의 범자표현은 극히 이례적이라 시선을 끈다. 범자의 내용은 그 전모를 파악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진언의 만트라 임에는 분명해보이고, 그 중 몇 몇 해독되는 내용은 ‘옴 마니 빠드메 훔’으로 적은 육자진언과 ‘나모佛法’의 삼보귀의, ‘옴아훔’ 등이다. 육자진언은 귀공포의 부재 끝에 낱낱의 해체를 통해 집합형식으로 읽게 표현하기도 하고, 세로 체본을 써서 가로로 눕혀 두기도 해서 독특하다. ‘옴아훔’의 범자종자는 밀교에서 아주 중요한 기호상징체계인데, 모든 진언의 기본음임과 동시에 부처님의 身(몸), 口(말), 意(뜻) 삼업의 선근으로 행하신 공덕의 총체로서 각각 부처님의 법신, 보신, 화신을 상징하는 심오한 종자불(種子佛)이다.

그런데 주목을 끄는 것은 향우측 귀공포와 상벽에서 한자를 통해 ‘나무 비로자나불’과 ‘화장세계(華藏世界)’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상벽에서는 통도사 영산전 천정에서처럼 ‘묘법연화경’의 경전세계임을 드러내고 있다. 즉 극락전 내부세계는 무량수의 불보살께서 상주하시는 법계이고, 청정과 광명이 충만한 연화장세계이며, 진리법의 세계인고로 ‘나모불법’, 부처님과 법에 귀의함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찰천정은 단순히 아름답기만한 심미적 표현공간인 것은 아니다.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한 부처님의 거시세계를 조형언어로 구현한 세계이며, 연기법의 화엄세계를 상징적 조형을 통해 관상학적인 방편으로 드러내고 있는 심오한 세계인 것이다.

천정 중앙부분 문양장엄
빗반자에 물고기, 거북, 게 수중생물

천정은 빗반자와 우물천정이 결합된 양식이다. 빗반자에는 물고기, 거북, 게 등 수중생물들이 공생하는 물의 세계다. 대흥사 천불전, 나주 불회사 등 서남해안지역의 사찰에서 종종 나타나는 조형 모티브다. 화재에 대한 결계적 의미도 포함된 다중적이며, 다의적인 장엄이다. 조형의 오브제들은 대체로 쌍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연꽃도, 물고기도, 거북도 쌍으로 배치한 좌우대칭의 구도다. 일종의 일란성 쌍둥이들의 집합성이다. 닮음의 반복을 통해 거시와 확장, 순환, 무한의 속성들을 드러낸다.

그것은 순환하며 상즉입하는 대생명력의 상징적 표현이다. 물과 생명력은 순환과 반복을 내재된 자기운동성으로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 물은 자비의 감로수이므로 곧 관음보살의 대자대비다. 물의 상징 내면에는 자비를 갖춘 중의적 구조가 통일되어 있다. 뾰족한 연꽃 봉오리는 생명력을 담지한 붉은 기운으로 뻗치고 있어, 정언명령 같은 불멸의 수태고지를 강하게 시사한다. 미켈란첼로의 <아담의 창조>에서 아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가이없이 뻗치는 하느님의 손길을 연상하게 된다.

토끼가 방아 찧는 동화적 장면

수중세계의 극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연잎과 연꽃줄기의 우아한 곡선으로 마련된 공간에서 난데없는 토끼 한 쌍이 출현해서 방아를 찧고 있는 장면이 될 듯 하다. 구애받지 않는 파격적인 발상이 다분히 전래동화적이고, 천진난만해서 미소가 절로 흐른다. 토끼가 방아 찧는 장면은 미황사 부도밭 조형에도 나타나고, 선암사 원통전 창호 궁창에서도 보이지만, 이렇게 사찰천정의 수중세계에서는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양 변의 경계가 없는 창의적 발상이 썩 유쾌할 따름이다. 방아 찧는 토끼벽화는 모티브를 찾아 민족회화의 맥을 거슬러 오르면 1500여년전 고구려고분벽화에 닿을 것인데, 덕화리 1호분과 2호분, 개마총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사실 금탑사 극락전 곳곳에 고구려 고분벽화적 요소가 발견되고 있어 대단히 놀랍다. 후불벽 뒷벽 주심기둥과 순각판 문양 등에서 진파리 1호분, 강서대묘 벽화문양, 그리고 안악2호분 넝쿨문양과 오버랩 되어서 감탄이 멈추지 않는다.

아미타 삼존불과 후불탱
천정의 중앙부분은 전형적인 우물천정이지만, 그 크기가 큼직큼직해서 시원하고, 우물반자 내부의 원형 소란반자 틀이 천은사와 미황사, 내소사 형태와 마찬가지로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천도가지를 입에 문 선학(仙鶴)과 범자가 새겨진 8엽연화문, 붉은 끈으로 묶은 모란 꽃다지, 구름을 열치며 나래를 펼친 봉황, 씨방이 드러나도록 활짝 핀 하늘꽃 등 5가지 문양을 따스한 채도의 남도 토양색으로 구현했다. 결국 금탑사 극락전은 불보살 법계와 그 수호의지를 담은 신중작법의 결계, 그리고 심미적 아름다움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남해안 토양의 붉은 황톳빛의 주술적 색감에서 생기와 신성이 고요히 흐른다. 문양은 보다 세련되고, 우아하며 보다 깊은 정신적인 암시를 남기고 있다. 우리는 사찰장엄의 조형예술 아래서 진리법의 세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예술가의 내면과 숨결을 읽는데 진지함을 갖추어야 한다. 보이는 것을 세심히 관찰하면 보이지 않는 경계 너머의 것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떡갈나무 숲의 전체도 도토리 하나에 깃들어 있듯이, 천정장엄의 문양 하나, 기호 하나에도 불보살과 진리법의 경전이 가득 담지되어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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