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반야바라밀 염송으로 내 운명 주인 되자”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으로 내 운명 주인 되자”
  • 이나은 기자
  • 승인 2014.11.21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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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사 일요법회 혜담 스님(불광사 선덕)
▲ 혜담 스님은 … 울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하면서 불교에 입문했다. 1969년 광덕스님을 은사로 범어사에서 출가했다. 동국대 승가학과 1기생으로 입학했다. 지리산 칠불암 해인사 퇴설당 등에서 수행정진하다 군승 10기로 임관했다. 경북 포항의 해병대 1사단에서 군법사로 활동했다. 1986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나서 반야심경을 연구했다. 1992년 〈대품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번역해 출간했다. 이후 반야사상을 바탕으로 신행활동을 하는 〈반야불교 신행론〉 〈신(新) 반야심경 강의〉 〈방거사 어록 강설〉 등을 저술했다. 1994년 개혁 종단에서 해종특위 위원을 지냈으며 호법부장도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재심호계위원, 각화사 주지, 불광사 선덕(先德)을 맡고 있다.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은
번뇌 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닌
내 생명은 영원 청정하고
있는 그대로 완벽하며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그대로 반야임을 깨닫는 것

불광사 선덕 혜담 스님은 우리들의 운명을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려면, ‘내 생명은 본래 영원 청정하고 원만구족하다’는 것을 아는 운명의 원형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이 말하는 원형의 형성이란 말(言語)의 중요성을 아는데 있다. 즉 말이 생각을 움직이고 생각은 바로 마음에 깊은 영향을 주고 깊은 마음의 움직임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특히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의 위력을 강조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는 완벽하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그대로 반야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11월 16일 불광사 일요법회에서 혜담 스님이 법문한 내용이다.
 
운명을 이끄는 말의 중요성
우리가 생각을 일으켜 움직이는 가운데 우리 운명의 원형이 형성된다 했습니다. 이 운명의 원형이라는 것은 주물을 부어서 틀을 만드는 개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쇳덩이를 바로 갖다가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틀을 만들고 그 속에 쇳물을 부으면 금속제품이 만들어집니다. 이 원형의 틀을 잘 만들어야 모든 제품들이 잘 만들어 지듯, 우리들의 운명을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또 항상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 원형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내 생명은 본래 영원 청정하고 원만구족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내 생명의 원형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좋고 훌륭하고 선한 것들로 내 원형을 만들어야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이 일체 모든 것을 원만히 아는 일체의 마음을 내면적으로 일으킵니다. 외면적으로는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말 자체가 위력을 발휘해서 우리들의 운명을 끌고 나갑니다. 그래서 말이란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말은 창조력이 있기 때문에 살면서 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염송하는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이 생각을 움직이고, 생각은 바로 마음에 깊은 영향을 주고, 깊은 마음의 움직임은 바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이것은 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이 지니는 신비한 힘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반야경에서는 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의 위력을 두 가지 방향에서 설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내면에 작용해 모든 것을 전부 아는 지혜[一切智] 등의 이익을 주는 것이고, 둘째는 외측에 작용해 위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대품반야경〉 권지품 제34에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교시가(제석천)야, 자네는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남을 위하여 설하고 바르게 사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아수라가 욕심을 내어서 삼십삼천과 싸우고자 하면 교시가야, 자네는 이때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송념(誦念)해야 하고, 그러면 모든 아수라의 나쁜 마음이 바로 소멸되고 다시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교시가야, 만약 모든 천자나 천녀(天女)에게 다섯 가지 죽음의 모양[五死相]이 나타날 때는 반드시 나쁜 곳에 떨어지게 된다. 그때 자네는 반드시 그들 앞에서 반야바라밀을 송독(誦讀)해야 하니, 이 모든 천자나 천녀가 반야바라밀을 들은 공덕에 의해서 다시 제자리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을 들음에 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시가야, 어떤 선남자·선여인이나 혹은 모든 천자나 천녀가 이 반야바라밀경을 들은 것만으로도, 이 공덕에 의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은 도리천을 해치려 하는 아수라의 무리가 왔을 때 그들 앞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쁜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는 생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아수라에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억한 심정을 갖고 내게 트집을 잡거나 골탕을 먹이는 그런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함으로써 분노와 증오의 마음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하반야바라밀이 모든 분쟁을 없애고 악한 이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없애게 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가르쳐지지 않죠. 불교에서는 이를 우이독경(牛耳讀經)이라고 합니다.
뉴스를 봐도 세상 사람들이 참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치인들, 권력·재력을 가진 이들은 국민의 말을 듣질 않습니다. 우이독경이죠.
어떤 비구니 스님이 소나 말을 볼때마다 ‘보리심을 발해라’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발보리심’이라는 말 자체가 이근(耳根)에 남는다는 겁니다.

어느 조사 스님께서 견성 후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 스님은 무슨 인연으로 견성을 했는지 몇 겁생을 돌이켜 봤습니다. 알고 보니 부처님이 설법을 하던 당시 그 현장 옆에 있던 배추밭에 붙어있던 배추벌레였다는 것입니다. 배추벌레로 있으면서 부처님 법문을 들은 것이고, 그것이 이근에 그쳐 생을 거듭해 견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연화색 비구니’라고 경전에 나오는 비구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표현되는 비구니 스님이 있습니다. 그 스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출가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제자가 어느 날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 왜 연화식 비구니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출가하라고 합니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전생에 기생으로 있던 연화식 비구니는 어느 날 한 스님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벗어놓은 가사를 걸치고 술에 취한 채 춤을 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과보로 지옥에 태어난 연화식은 지옥고를 다 마친 뒤 가사를 걸친 인연으로 출가를 하게 됐고, 아라한이 됐습니다. 연화식은 ‘가사를 걸치고 출가를 했다는 말만으로도 내가 아라한이 되고 견성이 되는 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출가하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귀 뿌리(이근)에 출가·견성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공덕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수라가 도리천에 침입했을 때 일단 그 앞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고 한 것도 이 같은 이야기와 상통하는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의 위력
두 번째가 역시 권지품 말씀인데, 제석천왕은 천상에 사는 이들에게 죽음의 상이 나타나면 그 앞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시 죽어서 그 자리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천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다섯 가지의 큰 공덕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몸에서 광명이 나오고, 머리에 화관의 꽃이 시들지 않고, 몸에서 땀이나 냄새가 나지 않고, 항상 편안하고 기쁘고 몸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상에서 태어나도 죽습니다. 극락세계에 가야 죽지 않는 삶을 삽니다. 불교에서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즐겨 하지 않습니다. 왕생극락해서 생사를 벗어나는 삶을 살기를 바라죠.
수명이 길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죽습니다. 교리 상으로는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안죽는다고 하지만 태어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죽는 것이 있습니다.

천상세계에 태어난 사람이 죽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제일 먼저 꽃이 시듭니다. 그리고 몸에서는 땀과 냄새가 나서 파리가 앉게 됩니다. 그리고 옷에 때가 묻습니다.
천상사람들의 생활자체가 즐겁고 기쁘다고 했는데, 그 마음이 없어지면 사는 것이 별로 즐겁지 않게 되고, 기쁘지 않으면 ‘죽을 때가 다 돼 가는구나’ 하고 안다고 합니다. 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즐겁지 않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기뻐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즐겁기 위해서 태어났죠. 즐겁고 행복한 것은 의무이지 권리가 아닙니다. 천상 사람들은 항상 행복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상이 나타나면 죽어야 하죠. 그때 부처님께서는 천상의 사람들에게 “너의 백성 가운데 죽음의 상이 나타나면 그 앞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해라. 그러면 그 힘으로 사람이 죽어서 바로 그 자리에 태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는 말은 화(化)해서 태어나는 겁니다. 다른 물건에 기생하지 않고 스스로 업력에 의하여 갑자기 변화로 태어나는 것이 화생(化生)입니다.

즉 바로 막 죽을 때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면 바로 화생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반야바라밀이 지니고 있는 위력입니다.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사루어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은 크게 밝은 주문[大明呪]이고, 위없이 밝은 주문[無上明呪]이며, 비교할 수 없이 밝은 주문[無等等明呪]입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능히 일체의 좋지 않는 법[不善法]을 없애고, 능히 일체의 훌륭한 법[善法]을 더하기 때문입니다.”
경에서는 반야바라밀의 송념에 의해서 상대방의 악심(惡心)이 소멸되고 다시는 생기지 않으며, 반야바라밀의 송독에 의해서 상대방이 선처(善處)에 태어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을 들음에 큰 이익이 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선남자·선여인 혹은 모든 천자나 천녀가 이 반야바라밀경을 들은 것만으로도, 이 공덕에 의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왜 반야바라밀이라는 말에 이러한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일까요. 경에서는 그 이유를 반야바라밀이 주문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럼 무엇이 명주(明呪)일까요.

〈대지도론〉권58에는 “보살이 삼매자재를 획득해서 이 자재에 의해 중생의 재환을 없애는 주문에 가피를 입히면, 그러한 주문이 신령스러운 영험, 최고여서 허무하지 않는 영험을 나타내어 모든 재난을 없앤다. 이것이 보살의 주문이다”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뇌는 본래 없는 것
우리가 보통 수행을 한다고 하면 번뇌를 없애기 위해 한다고 합니다. 참선이든 기도든 어떤 수행을 하면서 온갖 잡념과 번뇌망상들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으로 합니다.
하지만 마하반야바라밀 수행은 그게 아닙니다. 번뇌망상을 없애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내 본래의 생명이 마하반야바라밀 생명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번뇌가 본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내 생명은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심에서 생겨났습니다. 내 생명은 영원하고 청정하고 원만구족 한 것이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49재를 지낼 때 사바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주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만들어 태워 보냈습니다.
사바세계에서 저 언덕을 갈 때 반야용선을 탄다는 의미를 많이 씁니다. 극락세계를 간다고 할 때도, 이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반야에서는 그게 아닙니다.
반야에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저 언덕입니다. 극락세계라는 거죠. 반야바라밀이라는 말 자체를 두 가지로 해석하면 큰 지혜의 완성이고, 큰 지혜로 저 언덕으로 건너간 상태입니다. 저 언덕으로 건너가기 위해 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 것이 아니라 반야바라밀이 바로 건너간 상태라는 겁니다.

그 건너간 상태를 내가 염송함으로써 그 자리를 확인하는 것이죠. ‘아 내 생명이 한량없는 공덕생명이구나, 나는 완벽한, 아무런 하자가 없는 그런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내 원형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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