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타령 ③

우리는 진리 속에 살면서도

진리의 고마움을 몰라

진리의 나툼은 ‘열반묘심’

‘보리’ 모습은 자리에 얽매지 않아

화두참선 이치와 바로 똑같아

 

이 말마디에 있어서 나는 이렇게 본다 내가 쓰는 건 그겁니다. 마조대사가 이렇다 이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강론을 다는데 있어서는 마조대사가 와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와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나는 그런 자신 밑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급하니라.

아 어찌 열반이 급함입니까? 열반이라는 것은 편안하다든지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라고 해야 아, 그렇구나 할 건데 급함이니라 했거든요. 이거하고 연결 시켜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됩니다. 우리가 급할 때에, 좋은 일로 급할 때도 있겠고 나쁜 일로 급할 때도 있겠어요. 급하다는 것은 나쁘다든지 좋은 일을 떠나서 급하다고 하는 것인데, 이제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열반의 성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급하다는 이 말마디부터 알아야 됩니다. 급하다 해도 좋고 늦다 해도 좋은데 말마디는 틀림없이 말마디거든요.

그 말마디는 이거 불가사의한 거라. 이거 쇠꽃에서 나온 거여. 마음에서 나온 것이거든요. 성품에서 나온 거거든요. 말마디가. 그러하면 말마디는 무엇이냐 할 것 같으면은 이것이 하나의 보리상입니다. 보리상, 보리는 깨달은 각자에요. 보리상, 보리의 모습입니다. 실에 있어서는. 좋은 말로 하나 나쁜 말로 하나 그것은 보리의 모습이거든요. 진리의 나툼이거든요.

무슨 말을 했든지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됐는데, 이 무정물인 혓바닥을 굴려서, 혓바닥은 성품이 없거든요. 하기 때문에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그 자리가 생각하는 대로 혓바닥을 굴려서 말마디가 나오는데 이거 굉장한 자립니다. 이 말마디가. 그러니까 말마디는 제일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은 진리의 나툼이라 해도 좋습니다. 지도리의 나툼이라 해도 좋습니다.

진리 하면 가리(진리의 반대)가 있으니까 상대성이라 말이죠. 상대성을 떠나서 지도리라 해도 좋습니다. 상대성을 진리라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건 진리의 나툼입니다. 우리가 진리 속에 살면서 이 말 저 말 하고 서로 싸우고 잘 못 쓴다 뿐이지 실은 진리의 나툼이거든요. 진리를 잘 못 쓴다 그 뿐이지 진리의 나툼이거든요. 열반이 무엇입니까. 급함이니라 벌써 말마디 하나 떨어졌거든요. 무슨 말이든지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진리의 나툼으로 이 말마디가 하나 떨어지긴 떨어졌어. 떨어졌는데 대화하는데 있어서 시절이 다르다 말이죠. 경우가 달라. 장소가 달라. 하기 때문에 더욱 말마디에 대해서 관심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데, 급하다 해놨으니 보리상은 보리상이라. 말마디야 좋게 했든지 나쁘게 했든지 보리의 모습은 보리의 모습이라. 진리의 나툼은 틀림없이 진리의 나툼이라. 여러분들 얘기하고 있죠?

여러분이 무관심해서 그렇지 참 진리의 나툼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고기가 물속에 있으면서도 물이 고마운 줄을 몰라.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진리 속에 살면서도 진리의 고마운 줄을 몰라. 그러나 말마디는 하나 진리의 나툼이거든요. 진리의 나툼. 다시 말하자면 보리상이거든요. 보리의 모습, 보리의 모습은 무엇이냐. 열반묘심… 보리 이 자리를 곧 열반이라 해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아무 상관이 없어. 그러하니 급하다. 마 대사의 혓바닥을 빌려서 뚝 떨어졌어. 이거 진리의 나툼이라 말이지. 보리의 모습이라 말이여. 보리의 모습은 바로 그 자리가 열반자리거든. 어떻든지 무슨 지견을 세워서 거기 얽붙으면 안 됩니다. 그런 생각하는 것도 좋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떠나서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보리상이다 보리의 모습이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하지 않아도 그런 생각이 딱하게 자리가 잡혀져 있거든요. 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생각을 한다 안 한다 할 필요도 없어요. 그러면 진리다 뭣이다 그런 생각 없이 급하다 할 때 어떤 것이 여기 갖추어져 있느냐. 평상시에 이거 할까 저거 할까 하는 잡념, 급한 일이 있으면 급하다는 생각 하나뿐이지 잡념은 하나도 안없어져. 화두 가지고 참선하는 이치가 그 이치입니다.

이것이 뭣꼬 하면 그래도 잡념이 생겨. 잡념 생기더라도 거기 상관하지 말고 이것이 뭣꼬 하고 들어가면 말이죠 일념이 돼버려요. 잡념이 저절로 죽어 나가. 급한 일이 탁 있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면은 평상시 같으면 이걸 어쩔고 저걸 어쩔고 하겠는데, 급한 일이 있으면 잡념이 탁 하게 없어져 버려. 그런 의미도 여기 있어요. 그 의미가 여기서 나타나거든요. 그러니까 급하다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한결같은 마음이 있어. 급하든지 뭣이든지, 급하긴 급한 일이 있는데 자기의 마음 일으키는 것이 한결같아. 이런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급한 일 있으면 다른 일, 어쩔 땐 집안일도 생각 안 나죠? 급한 일 있으면 그것만 딱 생각해서 쫓아간다든지 급한 일 있을 때 그것만 자꾸 생각해. 그때 다른 잡념이 없어져 버려. 마조대사가 그리 생각 안 해도 나는 그리 생각해요. 마조 대사는 다른 의미가 설혹 있다 하더라도 그건 여기서 나타납니다. 급하다. 화두를 가져. 화두를 턱 가지면 다른 생각이 나타나질 않아. 꼭 급한 거나 한가집니다. 무엇인고, 이것이 뭣꼬. 아무래도 내가 이걸 해야 되겠는데 그래야 내가 생사를 초월하겠는데, 이것이 뭣꼬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급해. 급한 일이 있어. 아 이걸 해야 되겠구나 하면 다른 생각이 싹 없어져버려.

그러니 중이 물을 수밖에. 급하다 해놓았으니 고요적적한 자리라든지 휘영청한 자리라든지 무색 무상한 자리라든지 가고 오는 것이 없다든지 열반을 그렇게 설명을 해 주면 될 것인데 그렇지는 않고 급함이니라 해놨으니 중이 알아들을 수가 있나요? 물을 봐라. 물을 봐도 그걸 들여다보지 말고 잠깐 봐라. 여러분들 우리가 물의 공덕을 말하자는 건 아니에요. 마조대사도 뜻이, 물의 공덕을 말하면 책이라도 한 권 될 거요. 농사도 짓고 사람 먹기도 하고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고 걸레도 빨고 그 공덕으로 말하자면 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닙니다. 마조대사의 자리에서는 화와 복을 뛰어넘은 자립니다. 공덕이니 뭣이니 다 뛰어넘은 자립니다. 뛰어넘어서 어떤 경우에 가서는 시절을 만나서 그걸 굴릴지언정 그걸 뛰어넘은 자리거든요. 물을 봐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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