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보리’ 구하고 아래로 중생제도
위로 ‘보리’ 구하고 아래로 중생제도
  • 최범술 스님
  • 승인 2014.11.14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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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사홍서원(四弘誓願)

육안·천안·혜안·법안·불안

융통 무애하게 잘 가지면

바른 믿음의 생활이 된다

위로는 어떤 지위라도

구하여 판단할 수 있고

아래로는 어떠한 부류,

어떠한 사회 계층이라도

섭수하고 교화해 나갈 수 있다.  

예술이라도 그것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철학과 과학의 배경을 갖고, 또 현실을 조형하는 것이라야 진정한 예술이지 그렇지 않다면, 부질없는 환각에 그치고 말 것이 아닐까? 또 현실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 현실 자체에서 유리되어 있다든지 정치철학의 이념을 상실하였다든지, 문화일반의 교양이 부족하다든지 하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나쁜 의미에서 직업화되어 있고 부질없는 전문의식과 딴 분야에서 담을 쌓고 서로 벽창호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육안이나 법안이나 혜안이나 천안이나 그 때 경우에 따라서 이들을 자재로이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한 인격을 창조해 가지는 것 그것은 불안이다.

그러므로 진정 자유자재하고 툭 트인, 간이 트인 사람이라고 하는 지경이며 완성된 인격의 소유자로서 숭고한 행동을 때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위로 보리를 구한다는 상구보리라는 것이 그런 견해를 가져야 되는 것이며, 한편 이러한 지경에서 모든 사람을 접해 나가는 것을 하화중생이라 하는 것이다.

주체가 되려고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뭇 사람을 건진다고 하지만 그것이 필경 우리의 눈이나 귀라 해도 되고 아무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 이런 것을 융통 무애하게 잘 가지면 그것이 바른 믿음의 생활이 되며 바른 행동이 되고 이런 확신이야말로 알뜰한 것이고 이를 얻은 다음에는 위로 어떤 지위라도 구하여 판단 할 수 있고 아래로 어떠한 부류, 어떠한 사회 계층이라도 섭수하고 교화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이 지경에 들어가야 한다.

이제 여기 행원례(行願禮)의 마지막으로 회향게(回向偈)를 얘기할 차례가 되었다.

 

17. 회향게(回向偈)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當生極樂國 同見無量壽 皆共成佛道

 

회향(回向)에 대한 것은 앞에 나온 그 대목에서 많은 것을 얘기했으므로 여기서는 이 게송만 설명한다.

‘원컨대 이 공덕으로서’ 우리가 육시행원례(六時行願禮)에 의한 일상생활을 해 오면서, 이를테면 정삼업진언(淨三業眞言)으로부터 사홍서원(四弘誓願)에 이르기까지, 독경 지송(持誦)하는 이런 공덕으로서.

‘일체의 모든 사람에게 널리 미치도록 하여’ 우리가 아직 깨친 것은 아니지만 이 잠시 동안의 공덕을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뭇 사람에 영향이 미치도록 퍼뜨린다.

우리는 뭇 사람들과 더불어 안태한 극락의 나라로 가야한다. 우리와 뭇 사람들은 다 함께 마땅히 안태한 극락세계로 가서 삶을 영위한다. 아미타불을 함께 보아, 우리 다 부처님의 대도(大道)를 이룩한다.

무량수불(無量壽佛), 즉 아미타불을 우리와 뭇 사람들이 다 함께 뵈옵고 똑같이 대사회(大社會)의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이라거나, 대자대비의 사랑을 깨치고 나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증득할 수 있는 최고의 성자가 되자. 우리 모두 다 부처님의 대도를 성취하기 바란다. 대강 이런 뜻이다.

이리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언뜻 생각하기엔 그저 평범하게 밥 먹고 살면 그만이지 하겠지만 사람이 참으로 사람다운 생활을 한다는 것이 단지 그런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보은 감사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줄로 안다.

보은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삶의 희열을 아는 사람이다. 이러한 희열이라는 것은 그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공동 재산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간단하게 나무아미타불을 외면서 염불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이상으로 육시행원예참문의 강을 일단 다 끝낸 셈이다.

좀 더 여러 가지 하고 싶었으나 못 다한 얘기도 있고 두서없는 말이 엉성하게 나열되었지만 그런데로 정삼업진언에서 시작하여 회향게(回向偈)의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에 이르기까지 모자라는 설명으로나마 가까스로 이끌어 끝을 맺게 되었다.

이 강이 모자라는 설명이라 하더라도 밑바닥에 흐르는 진의는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며, 설사 완전한 해설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무엇 할 것인가?

아무리 완전하고 완벽한 것이라 한들 결국엔 내버려지고 마는 것이다. 이 언덕에서 강을 건너 저 언덕으로 다다른 다음에는 제 아무리 좋은 배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버리고 그냥 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 아무런 애착도 있을 수는 없다. 다만 이 강을 듣는 동안에 제가끔 어떤 확신이 서고, 발심하고, 또 그것이 성취된다면 우리는 이것이 무한히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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