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a in Comic & Ani -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

사람 사이의 관계·거리를
‘속도’의 개념으로 성찰해
사랑은 곧 ‘일념즉무량겁’

지구의 중력에서 이탈하기 위해 우주 로켓은 초속 11㎞로 하늘을 질주한다. 풍경을 뚫고 지상을 달리는 KTX의 경우 3백㎞의 속도로 사람을 실어 나른다. 굉장히 빠른 속도도 벚꽃의 낙화 같이 천천히 흐르는 인상적인 순간이 있다. 이들을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에 둔 채 원경(遠景)에서 바라본다면 말이다. 사람이 누구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만큼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여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예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이런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각화된 시간의 관념으로 표현해 냈다. 바로 2007년 극장 개봉작인 〈초속 5㎝〉가 그의 작품이다. ‘앵화초(벚꽃 무리)’‘코스모나우트’‘초속 5㎝’총 세 편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한 소년과 소녀의 첫 사랑을 냉정할 정도로 중립적이면서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너무 중립적이다 보니 줄거리도 간단하다.

1화인 ‘앵화초’는 타카키와 아카리의 아련한 첫사랑을 다룬다, 타카키와 아카리는 내성적인 성격과 좋아하는 것이 서로 같은 친구이자 연인이다. 하지만 벚꽃비가 내리는 봄날,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카리가 전학을 가면서 그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진다. 편지만 주고받은 지 반년이 지나고, 더 먼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된 타카키는 아카리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고 그녀를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2화 ‘코스모나우트’에서는 타네가시마 섬에 이사 온 타카키와 그를 좋아하는 동급생 카나에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카나에는 등하교를 함께 하고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멀리 있음을 느낀다. 고백하려고 한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다. 3화 ‘초속 5㎝’에서는 이제는 어른이 돼 버린 타카키가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빛의 연금술사·아날로그적 감수성 등 감독의 수식어는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를 이해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키워드다. 소녀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그의 작품세계는 특별한 사건이나 굴곡이 없다. 소위 말해 서사라고 할 만한 요소가 그의 작품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초속 5㎝〉는 산카이 감독의 전작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과 마찬가지로 어긋나는 사랑에 아파하고 견뎌내는 성장통의 또 다른 버전이자 오메가이다. 전작과 달리 SF요소를 배제한 것도 인간의 관계를 중립적이며 객관적으로 성찰하려 한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 〈초속 5cm〉의 한 장면. 사람과의 관계를 속도로 성찰해 냈다. 감독은 상충의 이미지를 통해 감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람과 사람사이의 속도를 느끼게 해준다.
실제 〈초속 5㎝〉는 인생사가 설명이 불가능한 것처럼 인물이 정확히 어디로 떠나는지, 그들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비중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전차의 창문 위로 흘러가는 풍경이나 봄날 벚꽃 무리와 겨울 눈꽃의 이미지를 대칭시키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관통하는 마음의 속도와 시간·거리의 관계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상충의 이미지를 통해 감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람과 사람사이의 속도를 느끼게 해준다. 실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작품의 부제도 이를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또한, 〈초속 5㎝〉에서 보여지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인 ‘초속 5㎝’와 우주선이 발사장으로 가는 ‘시속 5㎞’·타카키의 헤어진 여자친구 문자에 쓰여진 ‘당신과의 거리 1㎝’라는 독백은 사람의 마음이 가지는 속도에 대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다.

아직 어렸을 적의 타카키와 아카리는 초속 5㎝라는 속도로 서로를 바라보며, 언제까지나 같은 것을 바라보며 살아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1편 에피소드 말미 멀어진 타카키와 아카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초속 5㎝는 빠르면서도 느린 속도다. 유일하게 서사가 존재하는 1편의 주된 플롯은 소년이 소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폭설이 내려 멈춰진 전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소녀를 생각하며 “악의적인 시간이 나를 지나고 있다”고 독백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만나러 가는 1분이 조마조마하면서도 길게 느껴진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몸의 속도가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속도는 결국 시간과 직결된다. 사랑이라는 인연은 피고 지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면서 ‘일념즉무량겁(一念卽無量劫)’인 것이다.

불교사상을 도식화해서 보면 인생의 고달픔(四苦)을 깨닫고, 그 고달픔의 번뇌 끝에 삶이 공(空)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리하여 세상만물에 대해 애틋한 마음(慈悲心)을 갖는다는 것이다.

다시 겨울이 지나 벚꽃이 만개한 봄 그녀와 놀던 전찻길에서 다시 그녀와 스쳐지나간다. 타카키는 지나가는 전차들을 보며 서 있다. 왠지 그녀도 돌아 봐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전에도 그랬듯이. 하지만 그녀는 자리를 떠나고 없다.

그녀와 자신과의 시간은 지나간 전차처럼 빠르게, 멀리 흘러갔기 때문이다. 타카키는 미소를 보이며 길을 걸어간다. 이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되살아났음을 의미한다. 흩날리는 벗꽃사이로 모든 추억과 감정들이 녹아든다.

흔히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사라지고 만 것은 본디 없던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하고.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추억이 되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그 시간 안에는 ‘내’가 있고, ‘네’가 존재한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인연은 가슴 뛰는 기적 같은 나날과 달콤한 아픔이 함께 영원히 빙글빙글 돌아가는 끝나지 않는 관람차가 아닐까. 우리는 평생 사랑하며 살아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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