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타령 ②

깨달음을 ‘쇠꽃’에 비유 해볼까요?

쇠 철자는 변하지 않으니 말이죠

여러분 마음마다 이름을 지어보세요

없어질 것도 없고 속한 것도 아니고

산하대지 나투고 명암 나투지만

그 자리 공한 자리임을 아세요.

 

경우에 따라서 이 글자 쓸 때가 있고 이 글자 쓸 때가 있고 이 글자를 쓸 때가 있겠지만은, 경우에 따라서 우리 성품을 알면은 법을 알아 버려. 마음을 알면은 성품을 알아버려. 법도 알아 버려. 부처를 알면은 마음도 알아버려. 성품도 알아버려, 한문으론 글자 네 개지만 실에 있어서는 한가집니다.

그러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 어즈버야 온 누리는 불가사의라. 사실로 뻔히 육안, 살눈으로 봐서 한계가 많습니다만, 참말로 불가사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제일 첫째 우리 몸뚱이부터 불가사의입니다. 오늘 아침에 잠깐 얘기헸습니다만 몸뚱이부터 불가사의입니다. 내 몸이다 해서 그렇지 사실 이거 내 소유물도 아니고 내 관리물밖에 안 되는 겁니다만, 조직된 이 이치를 보면 팔다리가 있어. 두 손이 있어. 눈이 있어. 코가 있어. 이거 참 불가사의한 겁니다. 그런데 이 불가사의한 것이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이놈이 말이죠 맘대로 이걸 굴려. 손을 들려면 손을 들어. 손 자체가 드는 거 아니거든요. 어디 걸어가고 싶으면 이 발 자체가 걸어가고 싶어서 걸어가는 것 아니거든요.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성품자리 마음자리 법자리 불자리, 이 자리가 이렇게 걸어가도록 만드는 것이거든요.

그러하니 이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한 겁니다. 오늘 아침에도 머리가 아파서 종일 누워 있었습니다만. 지금 괜찮아요. 어제 좀 몸이 불편했었는데 병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도, 지금 나와서 얘기하는 것은 이놈을 빌어서 무정물을 빌어서 얘기하는데, 이 자리도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고, 이 법 자리도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고, 마음자리도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고, 부처자리도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습니다. 아 이거 굉장한 겁니다. 흉악한 겁니다. 이 자리가. 아닌 게 아니라 여기 따라서 우리가 성품은 이렇고 이렇다 법은 이렇고 이렇다 마음은 이렇고 이렇다 부처는 이렇고 이렇다. 이건 깨달은 각자를 뜻하는 건데, 부처라 해도 좋고 깨달은 이, 이래도 좋습니다. 그러하니 이 불가사의한 것을 무엇에 비유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이 불가사의 한 것을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는데 별 도리 없습니다. 이걸 표현하려면 별도리가 없어요. 천 가지 만 가지 말은 가져와도 이 불가사의한 이 자리를 표현 못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의 심성으로 봐서는 지화자 좋을씨고 쇠꽃이랄까. 이걸 갖다 쇠꽃, 꽃은 꽃이라. 쇠는 오래 오래 변하지 않는다 이 의미거든요. 참 좋다 말이죠. 그러하니 이걸 갖다 쇠꽃이라고 할까 이 말입니다. 성품이니 법이니 마음이니 부처니 이런 거 치워 두고, 잠깐 옆에 밀어놓고 이것을 쇠꽃이라고 이름을 지을까 그 말입니다.

여러분 뭐라고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습니까. 여러분들 이름들 하나씩 지어 보세요. 이거 마음씨타령이거든요. 이거 하나씩 지어보면 재미가 있을 겁니다. 그러하니 여러분도 지으려면 얼마라도 있습니다. 이 쇠 철자를 놓은 것은 변치 않는다는 것. 보통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지거든요. 하니까 좀 섭섭해, 그러나 떨어지는 것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피어도 피는 것이 아니겠지마는 참말로 말로 표현할 것 같으면은 쇠꽃이랄까. 이 마음은. 그렇다면 성품은 법이고 마음은 부천데, 그럼 성품이니 법이니 마음이니 부처니 이런 말 싹 치워놓고, 그럼 말을 한 번 해 보자 하는데 있어서는 쇠꽃이다 이 말입니다.

내가 아침에 얘기했습니다만 어떤 스님이 마조대사에게 물었어요. 스님, 열반이 무엇입니까? 열반이란 건 원명하여서 고요적적한 자리거든요. 원적한 자리거든요. 그리고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거든요. 유위법도 아니고 무위법도 아니거든요. 열반 그 자리가. 그대로 텅 틔어서 산하대지를 나투었다 하더라도 역시 모습으로 나투긴 나퉜지만은 텅 트인 성품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 성품자리에서 산하대지를 나툰 것이거든요. 그러하니 그 열반자리를 구하려면 꼭 허공만 걷어잡을 것이 아니라 나무나 돌을 걷어잡아도 나무나 돌 그 자리가 텅 빈 자립니다. 텅 빈 자리에서 그런 형체를 이룬 것인데 그런데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이래 물었단 말이지. 급함이니라 이랬어요. 아니,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물었는데 급한 것이니라 말이 됩니까?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택도 없는 말이라 말이에요. 어떤 것이 성품입니까 어떤 것이 법입니까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쇠꽃이니라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지 않아요? 지금 이렇게 말을 하니까 법성이라든지 성품이라든지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으면서 그야말로 없어질래야 없어질 것도 없고, 있는 데 속한 것도 아니고 없는 데 속한 것도 아니다. 그러하면서 산하대지를 나투고 명암을 나투어. 밝고 어두운 걸 나투어. 선악을 나투어. 범성을 나투어.

그러나 그 자리는 공한 자리다. 이건 대강 아는데. 쇠꽃이라 해도 되거든요. 그 전에 설명을 한 번 했었기 때문에 통하지 않아요? 그런데 열반이 무엇입니까. 급함이니라 이러니 누가 알아듣겠어요. 그러니 어떤 중이 물었는데 이름도 없어요. 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을 보라. 기가 막히죠? 이거 볼 관(觀)잡니다. 볼 견(見)자가 아니고 이 볼 관자는 지나가면서 쓱 한 번 보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이 관자가. 그러니까 본단 말도 볼 관자 볼 시자 살필 찰(察)자, 많습니다. 볼 관자. 이삼십 가지 될 겁니다. 보는 것이. 그러니 우리말이 좀 모자라요. 볼 관자도 본다. 볼 견자도 본다. 볼 시(示)자도 본다. 똘똘 뭉쳐서 넘어가지만 이 글자 다 다릅니다. 좌우간 어쨌든지 슬쩍 보고 지나가는 걸 갖다가 많이 씁니다. 이전 어른들이. 우리도 역시 그렇게 봐야 되겠죠? 물을 한 번 슬쩍 보라. 열반이 무엇입니까. 급한 겁니다. 택도 아닌 것이거든요. 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을 보라.

이거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이 이전 성현들의 말을 이렇고 이렇다 이런 법이 아닙니다. 또 그리 할 수도 없습니다. 이 급할 급자를 갖다가 내가 설명을 해 놨죠? 하지만 마조대사의 뜻과 내 뜻과 틀려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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