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 〈16〉 비슬산 용연사 극락전

꽃잎에서 보주 터져나오는 연속화면
연꽃은 우주이며, 태극이고, 一心

연화문, 신라 보상화 문양전 닮아
현묘한 고차원적 연화머리초 단청


천정에 나타나는 모든 문양을 앞, 중간, 뒤의 순으로 압축해서 차례로 나타냈다. 천정 가운데에 금니를 입힌 모란 형태의 꽃을 장엄했다. 좌우협칸의 문양이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천정에 나타나는 모든 문양을 앞, 중간, 뒤의 순으로 압축해서 차례로 나타냈다. 천정 가운데에 금니를 입힌 모란 형태의 꽃을 장엄했다. 좌우협칸의 문양이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내부 벽면과 대들보, 후불벽 뒷면, 포벽에 베푼 벽화와 단청이다. 대들보 하나에는 시주자 인적을 밝혀 두었다.용연사 극락전 천정 중심부의 전체모습(사진 왼쪽). 닫집 내림기둥(허주)이 용으로 변화신하는 놀라운 장면이다(사진 오른쪽).

 

용연사 계단과 장엄, 통도사와 인연

대구의 진산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팔공산이고, 다른 하나는 비슬산(琵瑟山)이다. 대구 앞산의 주맥이 비슬산에 닿아 있다. 일찍이 두 산 처처에 절집이 들어서서 전등의 불을 밝히고 향을 피워올려 불국토의 인연이 깊다. 서남으로 뻗어 내리는 비슬산엔 유가사, 소재사, 용연사 등이 주맥을 따라 불법을 경영했다. 대구 달성 용연사의 주산이 비슬산이다. 비슬산의 옛이름은 포산(包山)이다. 종교와 인문, 자연을 두루 감싸안고 품은 산이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생애 35년을 이 두리에서 보냈다.

『삼국유사』〈피은(避隱)〉 제8 ‘포산의 두 성인’에 나오는 관기와 도성 두 스님의 이야기 무대가 바로 이곳, 비슬산(포산) 자락이다. 비슬산 용연사엔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 용연사는 통도사 금강계단처럼 석조계단을 갖추고 있다. 그 계단에 1673년에 세운 석가여래비가 있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게 된 경위를 전한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통도사 진신사리 탑을 무너뜨리고 진신사리 2과씩 든 두 사리함을 탈취해 간 것을 사명대사께서 격문을 보내 도로 온전히 찾아와서는 서산대사께서 함 하나는 태백산 보현사에 보내고, 다른 하나는 원래 자리 통도사로 돌려보내던 중 당시 영남지방이 다시 병화에 휩싸여 지체되면서 1과는 용연사에 인연을 풀고, 또 1과는 사명, 서산대사의 뜻대로 통도사 금강계단에 보내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인연설화의 내면을 접하면 용연사의 석조계단과 극락전 내부장엄 앞에서 옷 매무새를 돌아보고 숙연함을 갖추게 된다.

내부 벽면과 대들보, 후불벽 뒷면, 포벽에 베푼 벽화와 단청이다. 대들보 하나에는 시주자 인적을 밝혀 두었다.
석씨원류응화사적과 팔상도 벽화

그런데 용연사의 주불전은 대웅전이 아닌 극락전이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치고는 의외다. 실상 내부로 들어서면 장엄세계는 대웅전이나 영산전의 법계다. 특히 75점에 이르는 내부벽화를 보면 통도사 영산전이나 용화전의 데자뷰 같다. 용연사 극락전에서 뜻밖에 만나는 기쁨은 고색창연한 벽화에서 얻는 예술적, 종교적 신심이다. 아담한 규모의 맞배지붕 건축에서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고혹적인 색채와 이토록 풍부하고 다채로운 벽화를 만날 수 있는 건물은 그리 흔하지 않다.

벽면 곳곳에는 도상적 요소를 두루 갖춘 수월관음도와 팔금강의 호법신장상을 비롯해서 쌍림열반상, 설산수도상 등의 〈팔상도〉 내용도 눈에 띈다. 팔상도를 묘사한 벽화는 양산 신흥사 대광전에서 이례적으로 나타나는 벽화로 한국사찰벽화에서는 보기 드문 진귀한 장면이다. 장륙사 대웅전이나 제천 신륵사 극락전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필치로 현현하는 코끼리 탄 문수보살상도 창방에 담담히 장엄하였고, 〈서유기〉의 손오공도 벽화로 등장한다. 부처님의 생애와 전법제자들의 행적을 담은 〈석씨원류응화사적〉 내용의 43점 벽화는 벽면 곳곳에 예불자들의 신심을 불러 일으키는 시각적 교재를 펼쳐놓은 듯 하다. 벽화의 조영내용과 구도, 필선 등 색채와 조형원리 전반에서 통도사 용화전이나 영산전 장엄벽화와 겹쳐진다. 금강계단과 석조계단의 불연(佛緣)을 떠올려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의 법계장엄이 하나의 교감신경으로 이어졌을 듯 하다.

닫집기둥의 넝쿨이 용으로 변화신

극락전은 3×3칸에 내4출목을 갖춘 18세기 맞배지붕 건물이다. 천정은 2개층의 층급우물천정이다. 천정 중앙 칸엔 닫집을 경영했다. 닫집에서 주목되는 것은 ‘허주(虛柱)’라고 부르는 공중에 내린 기둥이다. 일반적으로 허주는 닫집의 네 모서리에서 연꽃 봉오리가 달린 내림기둥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용연사 닫집의 허주는 통상적인 연꽃줄기 형태가 아니어서 눈길을 끈다. 닫집의 내림기둥 따라 넝쿨이 뻗어내리고, 생명의 새싹들이 붉은 촉수를 내밀고 있다. 촉수는 녹청의 잎사귀 사이에서 붉은 색으로 강조하고 있다. 신성의 주술로 생명을 불어 넣으며 생동감과 입체감을 살려낸다. 약동하는 생명과 자비의 기운들은 내림기둥의 끝자락에서 극적으로 용의 형상으로 변화신(變化身)한다. 허주를 용의 몸통으로 대범하게 구사했다. 넝쿨의 파동적 힘을 용의 몸통으로 극적으로 변화신하는 건축장치는 내부공포에서 종종 나타나지만, 닫집의 허주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이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소한 장엄부재일지언정 용의 본질을 조형적 직관으로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용의 본질은 생명의, 신성의 기운을 담지한 추상적 파동에너지의 구상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용연사 극락전 천정 중심부의 전체모습.
우아하고 섬세한 율동적 연화문

천정에 장엄된 주된 문양들은 다섯 가지다. 연화문과 모란문, 그리고 구름문양의 외형적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신성과 차원의 깊이를 추구하면서 불가사의한 관념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찰천정을 볼 때마다 칸칸이 반복되는 문양으로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조화롭게 완성한 짜임을 보면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천정 전체가 불국토이며, 조형언어로 된 경전이며, 화엄의 만다라다. 우리는 자주 그 사실을 잊는다. 좌우 협칸의 우물천정에 베푼 문양은 마치 통일신라 보상화 문양전을 보는 듯 하다. 우아한 율동감과 선율이 통일신라 문양전이나 고려불화 의습에 표현된 문양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준다.

불교 장엄문양에서 전통과 혁신의 흔적이 조선의 사찰천정에서 고요히 구현되고 있다. 붉은 바탕에 금니로 백묘로 그려나간 선들은 마치 고려시대 〈묘법연화경〉의 금니 변상도처럼 부드럽고 섬세하며 율동적이라 아름답기 그지없다. 부드러움의 화면은 온통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천지간에 보이지 않는 형성의 기운이 가득하고, 그 한가운데서 연꽃의 형상들이 극적으로 피어난다. 연꽃에는 다시 메트릭스 밖으로 내미는 아기의 손처럼 새싹의 기운이 뻗친다. 연꽃의 형상은 불생불멸 무생법인(不生不滅 無生法忍)의 진리이자 부처다. 그 세계를 관(觀)함으로써 예불자는 은연중 진리의 세계에 젖어드는 훈습(薰習)의 향기 속에 있게 될 터이다.

천정 종자불은 아미타불과 육자진언

중앙의 양 협칸은 위 금니백묘에다 색을 입혀, 백묘단계를 회화로 완성시켜 놓은 것처럼 보인다. 색채는 단청기법에서 위는 녹청색, 아래는 붉은색을 입히는 상록하단(上綠下丹)을 역으로 취했다. 문양이 나무가 아니라 꽃줄기 형태를 취한 까닭이다. 생명의 기운들이 초록의 기세로 요동치는 바탕에서 붉은 연꽃 네 송이가 한가운데로 모여 종자불을 극적으로 탄생시킨다. 종자불(種子佛)은 칸칸이 한 자씩 나투지만 전체적으로 문자종자들을 이어보면 한자는 ‘나무아미타불’이고, 범자는 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이다. 여기서 조형을 이룬 승장, 또는 예술가의 분명한 조형의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연꽃이라는 자연의 형태를 빌려 형이상학적 처염상정의 불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천정장엄에 함장한 은밀하고 거룩한 뜻이 풀려 나간다. 신령한 기운이 흐르는 바탕의 질에서 본성의 진리를 구현한, ‘문질빈빈(文質彬彬)’의 고차원적 정신세계의 전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절집천정이나 단청에서 보이는 연꽃은 단순한 연꽃이 아니라, 모든 우주적 기운과 생명 태동의 거대한 메트릭스다. 즉 연꽃 하나가 우주이며, 태극이고, 일심(一心)이다. 용연사 극락전 대들보에 입힌 소위 ‘연화머리초’ 문양을 보면 연화의 형상이 얼마나 고차원적이며 불가설불가설의 세계인지 현묘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 표현이 마음에 환희심을 일으키도록 아름답다. 신묘한 기운으로 가득한 연꽃에서 커다란 보주가 순차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꽃잎에서 터져나오는 장면을 슬로우비디오처럼 연속화면으로 보여준다. 돈오의 극적 깨침이니 연화는 동시에 불성의 여래장이다.

서쪽 벽면의 8금강역사상과 닫집 내림기둥. 내림기둥(허주)가 용으로 변화신하는 놀라운 장면이다.
수적(垂迹)으로 현현하신 부처님 자리

천정의 꽃 형상들은 한결같이 씨방을 품고 있고, 꽃잎은 회전하며, 초록의 새로운 기운들이 뻗치고 있다. 때때로 연꽃의 형상을 빌리고, 때로는 모란으로, 때로는 국화로, 아니면 관념적 기하문 형태로 나타난다. 형태가 자연의 어떤 패턴을 빌려왔든, 그 꽃들은 궁극의 지향점인 불성을 품고 있으면서 부처님의 묘법연화와 자비의 향기를 온 세상에 퍼뜨려 중생의 옷자락에 향기를 묻힌다.

비슬산은 인도 흰두교의 신인 비슈누에서 음차한 것이라고도 한다. 흰두교 경전〈바가바드 기타〉나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보면 절대신 비슈누는 마부, 목동 뿐만 아니라, 물고기, 난장이, 심지어는 아홉번째 화신으로 붓다로 화현한다. 비슈누는 원래 "확장되며 모든 곳에 스며든다"는 의미이고 보면 그 변신이 원력과 방편에 따라 자유자재다. 대승불교에서도 영원불멸의 법신은 삼천대천세계에 헤아릴 수 없는 부처와 보살로 화현하신다. 법신이신 부처께서 화신으로 변화해서 보살의 모습을 하고 중생 속으로 나투시는 것을 '수적(垂迹)'이라 한다. 발자국을 드리우다는 뜻인데, '권화權化'도 같은 말이다. 용연사 극락전 사찰천정이 온통 수적(垂迹)으로 현현하신 부처님의 자리다. 옷깃에 가피훈습의 향기가 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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