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규 원장(봉화산 정토원)

동국대 불교경영자 최고위 과정 특강 ‘현대 재가불교와 법사의 길’

 

▲ 선진규 원장은 … 1934년생으로 동국대 불교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창원대 환경공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동국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회장단 의장, 대한불교청년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조계종 상임 포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봉화산 정토원 개설, 88올림픽 10만 유등 기획홍보실장, 경상남도 도의원,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동국대 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조계종 포교대상, 청소년 지도자 표창(문화관광부 장관),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청소년 수련 프로그램 경진대회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불교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많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선진규 원장은 재가자를 외면한 스님 중심의 불교가 문제라고 강조한다. 부처님 당시에도 훌륭한 재가자들이 불제자가 되어 전법을 해왔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사찰 내 재가자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 원장은 재가불자들이 불교의 중심에 서서 불교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재가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젊은 불자 없고 기복으로 전락

한국불교 영향력 점점 약해져

스님과 신도 구분하면 위험해

재가자 중심의 인재 양성 필요

 

 

 

역사학자 토인비는 “20세기 인류사에서 제일 큰 변혁은 동양의 불교가 서구로 유입된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랫동안 서구를 지배한 기독교 정신문화는 인간을 유일신에 속박시켜 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를 맞이하니 평등의 불성적 존재 앞에 모두가 스스로 동등함을 알게되고 절대적 인간성의 발견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벨기에의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영국의 피터 힉스는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의 존재를 처음 예견했습니다. 힉스입자 연구와 막 이론은 불교이론에 접근한다며 최첨단 과학자들에 의해 불교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동서의 학자들이 ‘불교이론을 거론해야만 인정을 받는다’라고 할만큼 불교는 서양 학문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불교엔 40대 이하 신도 없어

그렇다면 한국불교는 지금 어떠합니까? 한 외국인 스님께서 우리나라 큰 절에서 몇 년간 수행을 한 후 감상문을 썼는데 “한국에는 불교가 없다”라는 극단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표현을 하셨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으나 동감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불교행사에 가보면 40대 이하의 젊은 신도가 없습니다. 모든 관리 운영 면에서 생산적 불교가 아닌 소비성 불교, 관광에 의지하는 관광불교. 행운과 명복을 비는 기복불교, 모든 불사가 스님 중심의 스님불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20~30년 안에 불교는 존립에 큰 타격이 예상됩니다. “한국에는 불교가 없다”고 말한 스님도 이런 이유에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파고들어가 보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대 국회의원의 지역구 당선자 가운데 개신교 101명(41%), 카톨릭58명(23.6%)인데 불교는 불교 34명(13.8%)입니다. 그만큼 정치권에서 불교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교보문고 등 대형문고에서 불교서적은 기독교 서적의 5분의 1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장자의 아들들, 1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있던 가섭3형제, 빔비사리왕 등의 귀의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불교에 귀의해 불교 발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는 부처님 당시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사회지도층에서 불자가 나오고 그들이 대중들을 포교해서 불교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인재양성이라 생각합니다. 종교가 시대흐름에 호흡을 같이 하지 않으면 모든 분야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승가와 재가 함께하는 불교 절실

불교는 스님 중심의 수행불교와 신도 중심의 생활불교로 엄격히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출가자와 재가불자의 역할과 활동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불교는 출가자만이 존재하고 신도들의 역할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이러한 모순점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한국불교는 장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각 사찰의 신도 대부분은 자율성이 없는 조직으로 사찰운영에 필요한 존재들로만 남아있습니다. 극단적 표현을 쓴다면 일회용 소모품이란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찰에서 소임을 맡은 재가자가 일을 잘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두라고 하면 그날로 그 절과는 인연을 끊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으로 출가자라야 사찰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출가자가 되어야 진리를 깨칠 수 있으며, 출가자라야 불교를 운영관리 할 수 있습니다. 재가불자가 혼신을 다해 돈독한 신심을 가지고 활동하다가도 이러한 환경 속에 한계를 느끼고 할 수 없이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버리는 사례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 열반에 드실 때 까지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일반 신자들의 성향이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재가신도 중 나라의 통치자를 위시하여 거부 장자, 사회에 존경받는 최고 지성인들이 모여 들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부처님을 옹호하고 그의 가르침을 배우며 수행하는 재가불자의 무리가 많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교단은 날로 번성했고 대 사회적으론 신뢰성을 갖춘 교단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불교가 타종교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나약한 원인 중 하나는 사회적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 재가불자가 절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밝힌 것과 같이 지도력을 가진 재가불자가 없는 원인은 불교 내부의 구조적 모순으로 지도력과 영향력을 가진 인재가 설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상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눈 바로 뜬 사람은 이곳에 오면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서도 독자적으로 피나는 노력 끝에 재가불교운동(일명 대중불교운동)이 각 곳에서 일어나 미약하지만 존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귀하고 높이 평가 받아야 할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국대학을 중심으로 불교학문을 개척한 학자는 지금까지 경전의 한글화와 학문적 해설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한 신행단체 결성, 불교교양대학 개설 등 전법활동을 하는 재가불교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신심 하나로 포교에 온 생을 다 바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고맙고 높이 평가 받아야 할 일입니다.

 

재가불자의 조직화 필요

재가불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에 가면 그곳에서 교리를 강설하고 포교 활동을 하는 불자들은 대부분 법사호칭을 받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혹자는 순 속인 신도가 무슨 법사인가 하고 혹평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계종단을 위시해 대부분의 종단에서 포교사 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개별적으로 포교활동 장소를 만들어 활동해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황무지에서 고행의 길인데 부정적인 관념과 표현은 삼가야 합니다.

법사는 인간의 무지를 물리쳐 지혜(自性)를 깨우치게 하는 대자각운동을 일으켜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끝으로, 이 땅의 법사는 불교가 민족사의 순환마다 작용했던 역사의식을 새삼 자각하고, 민족분단의 비극이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 기필코 통일될 수 있게 선도할 책임과 사명을 다시 느껴야 할 것입니다.

<유마경>의 유마힐(維摩詰)은 석가모니의 제자로 중인도 바이리의 대자산가입니다. 그는 재가불자지만 대승불교의 교리에 정통하고 수행이 깊어 승려들이라도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유마거사가 병들어 있을 때 문수보살이 여러 제자들을 데리고 문병하러 와 불법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매우 극적인 형식으로 기술돼 있습니다.

문수보살이 유마힐에게 병든 이유를 묻자 “보살은 본래 병이 없으나 중생이 병들기 때문에 보살도 병이 든다”라고 답함으로써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보살행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재가자로 불교운동에 뛰어든지 꼭 60년이 됐습니다. 1954년 농촌 계몽 운동을 하고자 봉화산으로 들어와 호미든 관음상을 봉안하고 불교정신으로 농촌 계몽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1982년 포교사 조직을 만들어야겠다 마음 먹고 240여 재가불자를 모아 포교사 교육을 시켰습니다. 도선사에서 처음으로 교육을 했는데 교육 이수자 중에 스님들한테 깍듯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혼나기도 하면서 3박 4일의 교육 과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후 법사 의복을 제정하고 포교사들이 전국에서 활동을 해왔습니다. 초반기에는 포교사가 뭐냐 저 옷은 뭐냐 이런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꾸준히 그 제도를 이어와 지금은 45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故노무현 대통령 49재를 끝내는 날 한 스님께서 저한테 “선 법사 이제 머리 깎지?”하셨습니다. 저는 “선 법사가 어찌 머리 깎고 안 깎고에 좌우됩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스님과 신도를 구분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수행을 안 하면 스님의 자격이 없는 거죠.

저는 불자라면 어디가서도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 재가불자들이 결집해 새로운 불교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재가불자들이 이 시대의 부르나 존자가 되어 부처님의 법을 알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재가불자들이 통일운동 같은 사회 운동에 참여해 이 사회의 영향력 있는 조직으로 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5천 명이든 1만명이든 인재를 모아야 합니다. 조직을 만들어 스님도 재가불자도 함께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역할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해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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