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타령 ①

과거·현재·미래의 마음

얻지 못할 때 허공 생각해야

바닷물에서 파도가 일지만

중생들은 파도에만 얽매인다

생사와 생사 없는 것 딱 하나

마음은 부처자리 곧 하나의 법

마음이 마음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비심이다. 비심인데 이걸 이름하여서 마음이라 한다. 이러하니 실로 이것이 마음은 마음인데 마음이라 해 봤든 무엇을 걷어잡고 우리가 마음이라 하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한 것인데 그러나 사실 이 말씀은 또 마음이 없단 말이 절대로 아니거든요. 이 자리가 아주 불가사의한 자리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으면서 매일 써. 쓰는 이 마음씨가 지극히 불가사의한 자리다. 그러하기 때문에 과거심도 얻지 못하고 지나간 마음도 얻지 못하고 현재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미래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 이 말씀이거든요. 주 골자라.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마음씨를 매일 써. 이 마음씨를 알긴 알아야겠는데 알아 봤든 알려고 하는 그 놈이거든. 내 마음씨가 어떤 것인고 알려고 하는 바로 그 놈이라요. 그러기 때문에 과거심도 얻지 못하고 현재심도 얻지 못하고 미래심도 얻지 못하는 것인데 이때는 언제라도 허공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걸 아는 데 있어서 들어가는 첩경의 길이 될 겁니다.

허공, 사실 아닌 게 아니라 허공은 있어요. 틀림없이 있어. 허공이 틀림없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지구도 나투고 태양도 나오는데, 나와서 의지하고 있는데 그러나 허공 찾으려야 찾을 길이 없어. 참 막연해. 사실로 이거 아주 드높은 고갭니다. 실로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와 공부하는 것도 이 자리 알려고 공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 하나 알아 버리면 여기는 죽고 사는 것이 딱 끊어진 자립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죽고 사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것을 나투어. 착하고 악한 것이 없기 때문에 착하고 악한 것도 나투어. 밝고 어두운 것도 없기 때문에 밝고 어두운 것도 나투어.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하면 나중에는 말이지 생사와 생사 없는 것이 딱 하나라는 것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두말할 것 없이 파도나 한가집니다. 바닷물이 있기 때문에 파도가 생기는데 중생들은 파도 이놈에만 얽매어 있거든요. 이 파도도 역시 하나의 물인데 파도라 해서 물 아닌 것도 아니거든요. 바다는 안 보인단 말이죠. 파도만 보여. 그래서 이러한 설법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 마음씨타령을 하나 붙여 봤거든요. 마음씨타령. 우리나라 말로 타령이란 말이 있거든요. 우리나라 말로 소리, 노래, 타령. 마음씨타령이라 했는데 이걸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강송] 두렷하게 맑은생각 법이라하면

휘영청히 밝은마음 부처아니냐.

만약 두렷한 생각이 마음이라 말이죠. 마음이란 것도 없는데 부처님 말씀대로 마음은 비심이라. 이름뿐인 마음이라. 그러나 이름뿐인 마음이라 할지라도 그 말입니다. 이름뿐인 마음이라 하면 좀 섭섭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그 자리가 너무나 맑아. 그러하기 때문에 도저히 이름을 붙일 수가 없어. 그러하기 때문에 아닌 마음이다. 마음이 아니다. 우리 보림선원에서 새기는 것은 아닌 마음이다 이렇게 새기고 있죠. 비심하면 아닐 비자거든요. 아닌 마음이다. 보통 마음이 아니라고 새기지만 우리는 아닌 마음이다 이런 식으로 새기거든요. 아닌 마음이라 하면 아니라도 좋아요. 아닌 마음이라 하는 이놈은 있거든. 마음이 아니다. 마음이 아니다라는 이것은 있다 말이죠.

이렇게 생각해 봐요. 마음이 아니라고 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이 말이 아니거든요. 마음이 아닌데 마음이 아닌 그것은 있단 말이죠. 그럼 그것이 뭣꼬. 왜 이런 복잡한 한문을 썼을고? 한문이 아주 좋아요. 다른 의미가 다 포함되거든요. 이런 좋은 글 가지고서 비심이라 했느냐. 마음이 아니라 이렇게 새기는데 우리는 아닌 마음이다 바로 이래 버렸거든요. 그럼 아닌 마음 그 놈는 있거든. 또 마음이 아닌 그 놈은 또 있거든요. 이건 무엇인가. 이거 한 번 생각해 봐요. 그럼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이 마음자리가 참 불가사의하거든요. 불가사의하면서도 마음을 써. 웃기도 하고 화도 내고. 이걸 써. 그러하니 이거 기막힌 자리 아니에요? 결국은 이 자리 하나 알려고 다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강송] 두렷하게 밝은성품 법이라하면

휘영청히 밝은마음 부처아니냐.

성품, 이래 하면 하나의 법이거든요. 밝은 마음이 바로 성품이거든요. 그러하니

[강송] 어즈버야 온누리는 불가사의니

지화자자 좋을씨고 쇠꽃이랄까.

쇠꽃, 철화, 그러니 두렷하게 밝은 성품을 보자면 바로 허공입니다. 두렷하다고 써 놨지만 두렷한 것도 또 아니에요. 그렇다고 모난 것도 아니에요. 그러하니 천상 두렷하단 말을 부처님도 이 말을 빌려서 많이 썼습니다. 두렷하다는 것은 우리의 눈동자가 둥글둥글하기 때문에 두렷하게 봬. 하지만 두렷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두렷 안 한 것도 아니에요. 이 누리는 두렷한 데 속한 것도 아니고 두렷 안 한데 속한 것도 아니에요. 모난 데 속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 마음씨가 그렇단 말이에요. 마음씨를 말마디로써 표현한다면 그렇게 그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하니 휘영청한 마음씨가 물건 사고 싶으면 물건을 사. 장사하고 싶으면 장사를 해. 밥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어. 휘영청하기 때문에 생각나는 대로 탁탁 일어나거든요. 그 마음이 어찌 부처가 아니냔 말이에요. 성품이 법이라면은 마음은 부처다 이 말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내 마음을 여의어서 절대로 부처 찾지 못합니다. 만약 마음을 여의어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면은 이건 외도고 사도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이 부처자리, 네 글자가 있는데 부처라 해도 좋고 마음이라 해도 좋고, 또 부처니 마음이니 하나의 법이거든요. 법이라 해도 좋고 성품이라 해도 좋고 뭣을 갖다 써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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