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a in Comic & Ani -린타로의 ‘은하철도 999’

철이의 기계인간 되기 위한 여정
‘화엄경’ 선재동자 구법 순례 유사
“모든 것은 변한다” 진리 깨달아

▲ 선재동자 구법여정이 담긴 〈화엄경〉입법계품과 유사한 ‘은하철도 999’는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기계인간이 되기 위한 철이의 여정을 그린다. 철이의 여정에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며 이를 통한 성찰이 이뤄진다. ‘은하철도 999’는 솔직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보는 것이 맞다.
현재 한국 사회의 30·40대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 한 애니메이션을 꼽자면 ‘은하철도 999’를 들 수 있다. 특히 한국판 오프닝은 가수 김국환 씨가 구성진 목소리로 불렀고, 당시 아이들은 이 노래가 들리면 TV 브라운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은하철도 999’는 일본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의 원작을 1970년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켰던 린타로가 감독한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1978년 9월부터 1981년 3월까지 2년 6개월 간 총 1백13회 TV시리즈로 방영됐고, 이후 ‘안녕, 은하철도 999’·‘은하철도 999- 이터널 환타지’등의 극장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은하철도999’는 주인공 철이(원작명 호시노 테츠로)와 메텔이라는 미모의 여인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안드로메다에 가는 우주여행 모험기이며 장르로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매회 한 행성에 도착해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종착지인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별을 향해 가는 게 ‘은하철도 999’의 주된 플롯이다.

이는 기계인간이 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거듭하는 철이와 메텔의 여정은 마치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의 구도기와 흡사하다.

진리를 얻기 위해 선지식을 찾아나가는 선재동자와 여정을 거듭하면서 아이에서 청년으로 성장해나가는 철이는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길을 떠난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보인다. 둘은 여정을 통해 진리와 인간에 대한 성찰을 이룬다. 실제 1백여 회에 달하는 TV시리즈의 내용은 곳곳에 불교적 코드를 담아내고 있다.

“원래 이 우주에는 물체에 모양이 없는 것이 옳은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별이든 모양 그 자체는 모두 덧없는 것이다. 잠시 동안 가짜 탈을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거울을 보고 탄식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은가!” ‘모양이 없는 혹성 누르바’ 중에서

▲ '은하철도 999'의 포스터
이는 ‘모든 것은 공하기 때문에 어떤 실체이든 하나로 고정된 것은 없다’는 불교의 공(空)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정 불변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는 주제는 ‘은하철도 999’의 전편에서 걸쳐 관통한다. 철이는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무상함’을 깨닫는다. ‘모든 것은 무상할 뿐’이라는 주제 의식은 ‘은하철도 999’의 극장판인 ‘안녕, 은하철도 999’에서 더욱 명징해진다.

메텔의 어머니 프로메슘과 아버지 닥터 반은 영원의 세계인 ‘기계 제국’을 건설해 인간의 불사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인간이 사라진 기계제국이 만들어지자 닥터 반은 깊은 회의에 빠지고, 우주 최고의 전사였던 파우스트(철이의 아버지)는 기계제국의 전사가 된다. 기계제국에 도착한 철이는 기계인간이 되기 직전 스스로 인간이기를 선택한다.

기계인간과 제국은 유한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라도 생의 시간을 연장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따른 산물이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은 또 다른 생명을 앗아가면서 유지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고 알고 있던 기계인간도 인간의 영혼이 담긴 캡슐을 섭취하지 않으면 정지하고 마는 불완전한 존재였다.

기계 몸을 얻어 영원을 소유하려 했던 철이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현실 앞에 분노하고 스스로 레지스탕스가 돼서 기계제국과 싸워 나간다. 결국 철이는 자진해서 기계인간이 된 아버지 파우스트와 마지막 일전을 벌이고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기계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그곳이 가지는 강한 에너지에 이끌려온 소리없는 마녀 ‘사이렌’(블랙홀이라고 보면 된다. 애니메이션 안에서는 강한 에너지원을 찾아 이동하며 별을 통채로 집어삼키는 우주의 무덤으로 상징된다)때문이다. 애초 기계인간이든 인간이든 영원한 존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대목이다.

작가 마츠모토 레이지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해 왔다. 인간은 유한적이나 시간은 영원하다.

결국 철이가 여정의 종착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아버지에게서 자식으로, 자식에게서 그 다음 자식으로 이어지는 계승적인 유대가 바로 영원으로 이어진다는 진리였다.

영원할 것 같았던 여행의 동반자 메텔도 철이를 ‘남자’로 인정하고 홀연히 떠나간다. 메텔은 소년에게 사랑과 모성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 여성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메텔은 철이에게 ‘청춘의 환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와의 작별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언젠가는 꼭 거쳐야할 성장통이면서도 모든 인연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한여름 밤의 소나기와 같이 스쳐 지나가는 청춘이라는 존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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