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당처가 빈줄 알아야한다 ⑤

몸뚱이를 가지고 있으면

시공간 개념 남아 있어요

생사는 내 권리의 행사

찾는 것도 버리려는 것도

다 허공임을 알아야 해요

 

솔직한 말로 태양이 환하지 않아요?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게 환하기 때문에 태양이 환하게 뵈는 겁니다. 지금 캄캄하지 않아요? 여러분의 마음이 어쨌든지 말이지 지금 캄캄해. 캄캄하기 때문에 그래 뵈는 건데, 그러나 캄캄하다느니 환하다느니 이거 전부 경계놀음입니다. 경계. 그러나 캄캄한 걸 받아들일 수 있고 환한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자리가 여러분에게 있어. 캄캄할 수도 있어. 환할 수도 있어. 이 도리를 여러분들이 알면은 그만 그대롭니다. 그대롭니다. 우리가 더 그거 할 것이 없습니다.

솔직한 말로 공부가 다 됐다 해도 되는 거예요. 앞으로 보림을 하는 것은 별 문제에요. 공부는 다 된 거예요. 그러하기 때문에 이 공부는 공부를 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를 안 하는 공부를 하는 겁니다. 아는 지식을 전부 버려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 하는 공부를 하는 거예요. 공부를 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면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자 지금은 밤이란 말이죠. 여러분이 밤을 받아들일 수 있어. 여러분이 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면은 낮도 못 받아들입니다. 그렇겠지요? 어때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어때요. 성도화보살, 말해보세요. 밤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낮도 받아들이는 것 아니에요? 낮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밤을 받아들인 것이거든요.

그러면은 지금 모든 객관적인 조건, 이것이 낮도 되고 밤도 돼. 인연에 따라서 법연에 따라서 이래 되는데 전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거예요. 전부 다 내가 받아들이는 거예요. 내가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입니다. 그거 고귀한 자립니다. 그 자리 절대의 자립니다. 그 자리가. 그 자리가 무서운 자립니다. 생도 그렇습니다. 그 자리가 나는 걸 받아들이고 죽는 걸 받아 들여.

났다 죽었다 하는 것은 인생의 권리의 행사입니다. 나는 것도 내의 권리의 행사고 죽는 것도 내의 권리의 행사거든요. 권리의 행사라요. 물론 그것이 실다운 것이 아니고 환상놀이겠지만은 환상놀이를 함으로써 인간 생활을 우리가 엮어가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내 권리의 행사라요. 나는 것도 내 권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아, 그만 부모가 났다 그래서 한 다섯 살 여섯 살 열 살 먹어야 난 줄 알거든요. 그러나 본래 그 자리를 이걸 갖다 탁 알아버리면은 나고 죽는 것이 전부 하나의 권리 행사, 장난에 지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가 바로 진심자리, 진심자리를 알면은 그 자리는 그대로 명확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하니 우리는 공부를 이렇게 합시다. 우리는 둘러(돌아) 가지 맙시다. 둘러 가지 말아. 둘러 가도 가기만 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은 둘러 갈라 하면, 시공간이 끊어진 자리라 하지만은 말이죠 아직까지는 몸뚱이를 가지고서 시공간이란 요런 관념이 남아가 있거든요. 있기 때문에 좀 빨리 갑시다. 우리는 둘러 가지 맙시다. 바로 직행을 합시다. 뭐 솔직한 말로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아니 저 뭣이고, 육조대사만 직행한 사람입니까. 직행한 사람 많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그저 업이 많기 때문에 업을 녹일라니까 자연히 고생을 좀 하는 것이지요. 하니 이것은 우리가 고생을 하는 것은 즐거운 고생이지 나쁜 고생은 아니거든요. 모른 사람들에겐 그것이 나쁜 고생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이죠.

그러나 업의 당처가 빈 줄 안다면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업, 그 당처가 전부 빈 거예요. 참 이거 어렵다면 어려운 것입니다. 빈 거예요. 업의 당처가 빈 거예요. 빈 줄만 알아버리면은 아 그만 마음이 탁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이 도리를 모르면은 그만 업에 휘둘려 버립니다. 좋은 업이면 좋은 업에 홀려버리고 나쁜 업이면 나쁜 업에 홀려 버려요. 나 이거 어제 신문 보고 짜증이 나 죽겠습니다. 빌어먹을 부산 살지 맙시다. 부산 놈이 사람 서이나(셋이나) 죽였네. 아이구, 기가 막혀서 죽겠어요. 물론 업연과계이겠지요. 난들 알 턱이 있나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사람을 서이나 죽여서 돈 때문에 죽여서 자기 정원에 파묻었다니 아이고, 나중에 뭣으로 태어나겠습니까?

그러나 저러나 딱 깨놓고 그 사람도 성불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 사람이 묶여서, 물론 사형감이지. 그건 우리가 벌주는 건 아니니까 말할 거 없고. 그 사람이 업의 당처가 빈 줄 안다면은 이 육신, 형무소에 들어앉아 사형집행 할 때까지 성불합니다. 나중에 이거 버리는 거 문제 아닌 거 아니라요? 언제는 우리가 안 버렸어요? 우리가 언제 한 번 두 번만 버려봤나요. 우리가 수 억 천만 번 우리가 몸을 버렸는데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좀체 그 마음을 돌리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요것이 인제 직행코스로 나가는 길인데 내가 말한 거. 그 흉악한 죄 아니에요? 삼도지옥 열 번 천번 만번 면하지 못한 거 아니겠어요? 또 그리 해야 되고 모습으로 봐선 그리 해야 됩니다. 그것이 옳고.

그러나 저러나 그 당처가 빈 줄만 알아버리면은 이 사람도 이 육신 그대로 성불할 도리가 있다는 걸 우리 잊어버리지 맙시다. 그러하니 우리 이래 합시다. 우리 직행으로 갑시다. 직행, 고속버스 타고 갑시다. 벌써 우리가 고속버스가 준비됐습니다. 됐으니 오늘 말이죠 마음의 소재(所在), 난 어디에 있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 찾아보세요. 여기인가 저기인가 거기인가. 허공이 어디 있는가 말이에요. 여기 허공인가, 잡을라 해도 없고 피할라 해도 가도 또 허공이고 가도 허공이니까, 도대체 이거 어느 허공인고 우선 당분간 말이죠 몇 시간 동안 뭐 하겠지만 말이죠. 나중에 가서는 말이죠 아, 이 자리구나. 찾을라 한 것도 전부 헛거로구나. 버릴라 하는 것도 전부 헛거로구나. 마음 찾을라는 것 헛거 아니에요? 마음 버릴라는 거, 탐진치 버릴라는 거 헛거 아니에요? 사량 분별 망상 버릴라는 거 전부 헛거 아니에요?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참 이건 우리가 인간 절대에 속한 문젭니다. 지구덩어리 다 준다 할지라도 이것 버려놓고 이것부터 먼저 가져야 됩니다. 이거는 영원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습니다. 하니까 우리는 인제 직행버스를 타고 가도록 이렇게 노력합시다. 길은 나왔죠? 그 길로만 다니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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