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여 스님(축서사 회주)-불광사 선지식 초청법회

‘선, 행복으로 가는 길’
 

책에서 얻은 지식도 번뇌망상
참선으로 순일한 상태 이르면
가정과 사회에도 행복 찾아와
현대사회는 수행법의 홍수시대
스승의 지도 무엇보다 ‘중요’

▲ 무여 스님은 … 경북 김천 출생으로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1966년부터 상원사 동화사 해인사 관음사 칠불사 망월사 등 제방선원에서 20여년 동안 수선안거하며 칠불사 망원사 선원장을 역임했다. 1988년 이후부터는 축서사에 주석하면서 불자들을 만나고 있으며 조계종 초대 기초선원 운영위원장을 역임하고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돈과 명예에 있지 않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 그래서 어떤 경계에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는 그 경지를 행복이라 한다. 이런 행복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축서사 회주 무여 스님은 참선 수행을 하라고 권유한다. 참선을 잘하면 늘 순일한 상태가 되고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져 행복이 찾아온다. 그래서 늘 화두를 놓지 말고 공부하라고 스님은 법문한다.   
 

오늘 법문은 불교적인 수행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주제로 합니다. ‘행복’ 사실은 말만 들어도 설레는 말이죠. 일상생활 속에 누구나 바라는 말이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나그네에 비유하기도 하고 여우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일생동안 행복을 찾아 나서는 나그네이기도 하고, 또 행복을 찾기 위해 여우처럼 온갖 잔꾀를 부리는 존재라고도 해요. 진정한 행복은 내면에서 찾을 수 있죠.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야 합니다. 행복을 찾는 가장 좋은 마음은 마음을 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쉰다 비운다 놓는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옛 어른께서는 마음을 천 번 쉬고 만 번 쉬라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쉬고 쉬고 또 쉬고 하면 바로 깨닫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쉬면 곧 깨닫는다 하셨고 유명한 임제 스님께서도 쉬면 곧 청정법신이다 하셨습니다. 쉬기만 하면 부처님처럼 청정한 법신을 갖는다 하셨습니다.


달마대사께서는 마음은 벽 같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쉬고 쉬어서 벽과 같이 꿈쩍하지 않아야 진정한 도에 든다는 말이죠. 마음에 있는 것을 일시에 놓아버리는 것이 참된 공부입니다. 놓아도 참으로 놓고 쉬어도 참으로 쉬고 비워도 무섭게 비워야 합니다. 쉬고 쉬어서 쉰다는 생각까지도 일체 쉬어서 망상과 집착이 사라져 자신의 참모습이 저절로 드러나야 됩니다. 그것은 마치 해가 허공에 떠올라 사방을 바로 비추어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쉬어버리면 허공계와 법계가 자기 게 아닌 것이 없고 본래부터 그대로 열반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책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 지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죠.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지식이니 지식이 판을 치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지식도 마음공부에서는 번뇌망상이고 불행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지식 때문에 괴로워지고 불행해지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일수록 더 수행을 많이 해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옛날에 중국의 한 납자가 20여년간 이 절 저 절 다니면서 나름 공부하느라 애썼는데 진정한 공부가 못 됐어요. 쉰을 바라보는데 육체도 쇠잔해지니 망상이 들었어요. ‘금생에는 인연이 없는가 보다. 몸을 바꾸어야겠다’하고 강물에 빠져 죽기로 결심을 했어요. 그래서 나룻배를 타고 몸을 던지려는 순간 뱃사공이 뒷덜미를 잡아 버렸어요.
뱃사공은 “보아하니 산중 스님인데 공부함네 말만 번지르르했지 얼마나 애써봤소? 출가까지 해서 못난 짓거리하지 말고 한번 애써 공부해 봐라. 이렇게 죽으면 당신 고기는 물고기도 피할 거요.” 하면서 호통을 쳤어요.
납승은 부끄럽고 괴롭고 앞이 캄캄했어요. 그런데 이게 발심이 되는 거였어요. “죽자 사자 애써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으며 “여기서 깨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뭐꼬 이뭐꼬 이뭐꼬” 하면서 애를 쓰니 20년 안 되던 공부가 불과 몇 십분만 되면서 화두가 성성하더랍니다. 그러니 3일만에 깨치게 되었죠. 어찌나 좋든지 춤을 덩실덩실 췄다고 합니다.
화두 공부는 진심으로 발심해서 간절하게 참구하게 해야 함을 뱃사공이 가르쳐준 거죠. 당신처럼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망상이나 피우고 졸리면 자고 그러니 안 된다고 가르쳐 준 거에요. 화두 참구의 요령은 수행을 진심으로 하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발심해라 발심해라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발심은 발보리심의 준말입니다. 그 보리란 ‘아뇩다라삼먁샴보리’ ‘무상정등각’ 꼭 깨닫고야 말겠다는 마음입니다. 대단한 마음을 내는 것이 발심이고 이 마음이 여래를 만듭니다. 일체 모든 것은 마음의 조작이니 마음만 제대로 내면 제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큰 마음을 내면 발심이 보리요 열반이 될 수 있다 흔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위양종을 창종한 앙산선사는 9살에 출가를 했다가 부모가 14살에 다시 데려와 장가를 보내려고 했어요. 그러자 어린 나이에 손가락 두개를 잘라 부모에게 바치며 “부모님의 은혜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고 수행해 불도를 이루겠다”고 간청해 뜻을 이루고 큰스님이 됐습니다.
그렇게 발심하는 사람은 이 공부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화두가 안된다, 화두 공부하기 어렵다 하지 말고 발심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발심 있는 곳에 화두가 있고 화두 있는 곳에 발심이 있습니다. 발심을 하셔서 이 공부에 대한 진정한 마음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럼 화두 참선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오직 간절하게 해야 참으로 잘할 수 있다 합니다. 며칠 굶은 사람이 밥 생각 하듯이 화두를 챙기라는 거지요. 물론 염불하는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터에 나간 외아들을 걱정하듯이, 두세살 먹은 아이가 가출한 어머니 생각하듯 해야 합니다. 화두를 간절하게 해야 참으로 이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참선하시는 분 염불하시는 분은 생사문제를 늘 생각하면서 해야 이 공부에 대해 진정한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참선은 하는둥마는둥 성의 없이 하면 어렵습니다. 오직 이 공부뿐인듯 애써야 제대로 하기 쉽고 공부에 자신을 바치고 올인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란 도대체 누구인가’ 참선 수행자는 자기의 화두에 대해 대단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화두뿐입니다. 한마음을 내야 대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두는 어떤 화두를 하든지 ‘이뭐꼬’ 하면서 의심이 나야 돼요. 보통은 염불하듯이 해야하는데 간절하게 하고 성심성의껏 하면서 아주 진한 의심을 지속적으로 내야 합니다. 놓을 수가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절절한 상태가 되면 화두에 대한 진정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수행을 잘하면 마음이 고요해져요.
사시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오는 대로 느끼는 대로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안과 공포도 생기고 노여움과 화도 생길 수 있습니다. 화두가 되는 상태가 되면 그런 복잡함과 번뇌망상이 다 없어져요. 그러면서 마음이 아주 편안합니다. 몇 년 전에 〈화〉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아마 여기도 읽은 분이 계실 겁니다. 〈화〉라는 책 자체도 화두가 성성하게 들리는 상태가 되면 없어져요. 화뿐만 아니라 불안과 공포가 사라져요.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되면 고요해집니다.


오래 사시다 보면 부부간도 서로 미워하게 되고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꼴도 보기 싫다 정이 떨어진다 그런 말도 할 수 있을 거예요. 한국은 OECD 국가 중에 이혼률이 가장 높습니다. 가정의 만족도도 최하위라고 합니다. 우리 가정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수행을 잘하면 화두가 잘 돼서 늘 순일한 상태가 되고 새벽에 일어나도 들리는 상태 꿈에도 들리는 그런 상태가 되면, 보기 싫던 남편 얼굴이 부처님의 얼굴처럼 보여요. 그렇게 싫어 보이던 아내의 얼굴이 환한 달덩이 같은 보살의 얼굴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어요. 미워한다는 말 자체가 없어지게 됩니다. 상대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공경하고 모시는 부처님처럼 아내 남편을 모신다는 말이죠. 신도님들 중에서 남편이 출근할 때 부부가 정성껏 3배를 하는 분이 계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 가서 열심히 하루를 보내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 경외심이 자연스럽게 생겨서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 세상도 부정부패 전쟁, 패륜아 파렴치범 등 사회악 일체가 사라져요. 핵을 쓰겠다 그런 생각도 사라집니다. 그러니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참선 잘하고 염불을 잘하면 아주 살만한 지구촌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정도만 되면 몸이 아주 가벼워지고 구름 위에 떠다니고 걸어다니는 것도 사뿐사뿐 유리 위를 다니는 듯한 그런 느낌까지도 듭니다. 이 정도가 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합니다. 괴롭다 힘들다 그런 생각이 다 사라져 편안하고 고요해집니다. 몸과 마음이 편하면 됐지 돈 그거 있어 뭐하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 있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것이 행복이구나 이 이상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겠느냐 하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 마음의 평화만 느껴도 온 몸에 기운이 돌듯이 온 몸에 즐거움까지 느끼고 오묘한 그런 기분을 느낍니다. 즐겁다고 할 수도 있고 기쁘다 할 수도 있는 기분입니다. 이런 정도까지 사시면 참으로 잘 사는 것입니다. 이정도만 되면 불교 수행한다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면 머리가 맑아집니다. 즉 부처님 말씀에는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과 같은 근본 자성을 가졌다고 한다. 선수행으로 얻은 지혜는 태양과 같아 학문으로 얻은 지혜와는 비교가 안됩니다. 그래서 참선은 젊은 사람, 머리 쓰는 직업일수록 해야 합니다.
수행은 화두나 염불로도 가능하지만 화두가 가장 빠르다 합니다. 참선을 잘하면 둔재가 천재 되고 무능한 사람이 능력자가 되고 범부가 부처가 되고 도인이 되기 때문에, 인간 개조법 인간 재생법이 참선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 정도가 되면 몸은 저절로 좋아져요. 어디가 아프다 괴롭다 힘들다 그런 증세가 다 없어지고 아주 건강하게 돼요.


물론 선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여러 가지 효능은 그 길로 가는 과정에서 얻는 이익이죠. 참선의 목적은 스스로 자기의 성품을 깨달아 부처가 되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는 스님들처럼 늘 하지 못하더라도 아침저녁 주말 등 할 수 있는 시간에 수행에 푹 빠져 보세요. 그러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정·염불 삼매를 떠나지 않아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항상 맑고 깨끗해야 돼요. 잘 사느냐 못 사느냐 행복하냐 불행하냐는 여러분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요즘은 수행법의 홍수 속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번뇌망상을 피우기 쉬운 때가 요즘이기도 하죠. 수행은 바른 수행을 하고 스승에게 안내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깨칠 때까지 꾸준히 의지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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