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13〉 논산 쌍계사 대웅전

대웅전 내진영역의 우물천정. 총 108칸의 우물반자에 넝쿨형 영기문을 베풀었다. 천정의 봉황조형은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에도 나타난다.

17,18세기 낭만주의적 장식화 경향
대흥사, 직지사 등 불전양식 비슷
독립된 아(亞)자형 보궁의 중층닫집
연판 둘레 여섯 곳에서 여의보주 나와


불전 장식화… 자유와 다채로움 추구
논산 쌍계사 대웅전은 영조 14년(1738년)에 중건된 조선후기 건물이다. 1970년대 대웅전 보수공사 때, 1738년의 상량문 기록인 〈은진쌍계사중창기〉가 발견 되었다. “사방 산이 헐벗어 민둥산이다. 대웅전은 본시 2층이었으나, 지금은 높은 기둥이 될만한 목재가 없어 단층으로 고쳐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주(高柱)로 삼을 재목이 없어 2층 건물을 단층으로 고쳐 지었다는 것이다. 건물의 칸 수와 평면규모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17, 18세기 조선 중후기 불전양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낭만주의적 장식화가 고스란히 수용되었다.

불전건물의 장식화의 경향은 원당사찰 등에서 나타나는 절제와 규범보다는 자유분방하고 명랑하며 다채로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서남해안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서민의 경제력이 사찰조영에 유입되었으며, 수륙재, 천도재, 기복신앙 등 민중적 토착요소가 불교에 수용되었다. 건축내부의 변화도 그에 상응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불공간으로 전환되었다. 변화의 중심은 예불공간의 확대와 유용성 확보, 그리고 장식화라는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졌다. 후불벽은 뒤로 밀려나고, 내부바닥은 전돌에서 마루바닥으로 바뀌었다. 작은 불탁은 여러 공양물을 동시에 올릴 수 있는 높고 길다란 불단으로 나타났으며, 창호는 내부를 보다 밝게 하기위해 섬세한 장식물을 갖춘 전면 창호의 분합문으로 변화했다.

사진 왼쪽부터 아미타여래, 석가여래, 약사여래세계의 천정과 닫집, 후불탱의 모습. 보궁의 이름을 차례로 칠보궁, 적멸궁, 만월궁으로 밝히고 있다. 전등사 약사전에서도 그 사례가 보인다.
중심불전에 건축역량 집중
사회전반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은 사찰의 중심불전에 여러 불보살의 세계를 통합시켰고,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관음전 등이 횡으로, 종으로 한 불전에 결합되어 나타났다. 그러면서 그 중심불전에 건축역량을 쏟아 부었다. 일종의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졌다. 불전의 내부는 회화와 조형 등으로 빈틈없이 섬세하고 거룩하게 장엄된 보궁의 형태로 탄생되었다.

쇠멸하는 ‘중세의 가을’에서,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의 더미에서 불국토의 염원이 한 떨기 종교예술의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핍박받는 민중에게서 불전은 극락정토였고, 연화장세계 였다. 내소사 대웅보전, 미황사 대웅보전, 대흥사 대웅보전, 선운사 대웅보전, 논산 쌍계사 대웅전 등에서 그 시대의 불전 전형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속에는 시대정신과 한 시대의 짙은 고뇌가 담겨있다. 17,18세기 조선시대 불전건축은 시대의 고통을 뛰어넘은 ‘정화된’ 건축물들이다. 한 시대 마음의 자내증으로 구현되었다.

쌍계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양식으로 내5출목을 갖추었다. 첫 시선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색과 형태의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창호의 꽃살문이다. 10분합문에 6가지 꽃문양을 경영한 무궁무진한 화엄의 꽃이다. 연속과 반복, 대칭으로 불국토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모란, 연꽃, 국화라 하지만 실상은 분별 밖의 마음의 꽃이다. 그것은 법의 진리를 드러낸 묘법연화이며, 영산회의 환희심의 꽃이며, 지심귀명례로 공양한 세세생생의 헌화다. 꽃이 아니라, 진리의 묘법이고, 마음이다. 꽃 너머에 부처께서 상주하신다.

어칸과 양협칸은 내진주 영역이고, 좌우 끝자락의 양퇴칸은 외진주 영역이다. 3칸의 내진주 영역에 고주를 세우고, 길다란 불단을 마련해서 후불벽 세 칸 칸칸에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의 세 부처님을 모셨다. 세 부처님은 각각의 칸에 독립된 후불탱화와 아(亞)자형 보궁의 중층닫집을 갖추었다. 이렇게 삼존불에 독립된 닫집을 따로 갖춘 형식은 구례 화엄사 대웅전과 김천 직지사 대웅전,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쌍계사의 경우 독립된 보궁의 세계를 별칭으로 밝혀두어 주목을 끈다. 향좌측에서부터, 아미타여래-아미타불회도-칠보궁, 석가여래-영산회상도-적멸궁, 약사여래-약사불회도-만월궁의 형식을 갖춰 한 중심불전에 세 불보살의 세계를 통합하고 있다.

불상과 후불탱화, 불보살의 세계를 일치시킨 분명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한 불전에 대웅전, 극락전, 약사전을 통합경영한 셈이다. 이것은 선(禪)과 현재, 내세의 기복이 결합된, 조선후기 시대상을 반영한 대승불교적 부응이라 할 것이다. 저마다의 불보살의 세계에는 신령의 기운을 내뿜는 용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태세고, 천계에는 봉황과 극락조가 상서의 서기를 북돋우고 있다. 현대적 건축오브제의 모빌양식까지 구사되었다. 불보살의 집단성에 웅장하고도 드라마틱한 건축장치를 결합해서 종교적 엄숙함과 거룩함을 극적으로 고조시키고 있다. 이것은 언어예술이 표현할 수 없는 건축조형예술의 힘이다.

내진주 영역 세 곳에 조영된 천정장엄 세부
내5출목 중중의 연꽃 봉오리, 연화장

내5출목의 자유로운 변주는 내부공간의 거대한 운궁형태로의 조영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한다. 기둥은 나무이자, 숲이다. 나무에서 줄기가 뻗치고 꽃이 피듯 건축의 가구구조에서도 생명력을 경영한다. 서양건축의 기둥에 나타나는 코린트 양식과 같은 이치다. 우리나라 목조건축에서 특히 발달한 공포(空包)구조는 위에서 누르는 힘을 분산시키는 역학적인 구조체임과 동시에 생명력의 숲이자, 우주목의 덕목을 갖추고 있다. 내5출목의 풍부한 뼈대를 통하여 생명력은 넝쿨처럼 중중(重重)으로 톺아오르고 확산되어 생명력의 숲, 곧 자비가 충만한 운궁을 이룬다. 살미의 끝자락엔 온통 붉은 연꽃 봉우리가 맺혔다. 천계에 장엄된 연화의 숲, 연화장세계다. 그 연봉오리는 자연의 연꽃이 아니다. 정화된 불성이자, 자비이다.

포작의 제공이 끝나는 곳에 빗반자 천정이 가설되었다. 검은 바탕의 천공에서 노란 빛을 띈 신령의 기운들이 용의 기세로 꿈틀대고 있다. 넝쿨의 모티브로 엉킨 영기문의 곡선들이 이슬람 미술의 아라베스크 문양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텅 비어 있는데 생명력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미묘하고 불가사의의 힘으로 충만하다. 현묘한 동양적 우주법계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언어와 문자는 이분법적이다. 언어로 대상을 드러내는 순간, 대상은 둘로 나누어진다. 분별하고 차별한다. 궁극은 문자와 언어의 경계 밖이다. 불교범자와 조형언어는 그 상징성으로 인해 침묵한 내면의 힘을 지닌다. 빗반자에 법계의 적멸이 깃들어 있다. 블랙홀의 어둠처럼 불가사의하고 아스라한 깊이의 세계다.

내진주 영역의 우물천정은 어칸과 좌우협칸 세 칸, 좌우 퇴칸 일부에 경영했다. 이 세계는 증득된 자내증의 세계다. 퇴칸의 우물반자에 베푼 문양은 씨방부분에 범자종자(梵字種字) ‘옴’과 ‘니’ 등의 한 자(字)를 새겨넣은 연화문이다. 그 범자들은 천수경의 육자대명왕진언의 부분들이다. 한 자 한 자가 불보살의 세계이고 미묘본심이다. 그런데 연판 둘레의 여섯 곳에서 여의보주가 나와 연화에 담긴 관념적 깊이를 심화시키고 있다. 청정마음에서 무위의 침묵으로 홀연히 드러낸 진리,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연기법계가 아닐 수 없다.

좌우퇴칸 천정의 빗반자 영기문과 범자연화문
천정뚫고 나오는 용, 파격적 표현
내진주영역의 우물천정은 밀교적 오대오불(五大五佛)의 세계를 영기문넝쿨로 표현하고 있다. 오대오불은 금강계만다라의 세계다. 방위에 따른 불보살의 공덕이 총섭된 세계다. 중앙과 사방위에 불보살을 상징하는 연화문이 배치되어 있다. 양협칸의 연화문은 정사각형 우물반자틀 안에 그렸지만, 중앙칸의 연화문은 우물반자 안에 다시 원형의 소란반자를 가설한 후, 문양을 베풀어 조영의 중심을 밝히고 있다.

채색원리는 붉은색과 청색계열의 보색효과를 견지하였다. 문양의 세계는 세 곳에 각각 36칸씩, 108칸에 반복과 대칭, 회전을 거듭하면서 막힘없이 양양(洋洋)하다. 에너지로 충만한 넝쿨 영기문이 불보살의 불국토에 신성과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한가운데 우물반자에서는 천정을 뚫고 용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천정 너머에도 신령의 기운이 충만해 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그 표현방식이 파격적이다. 내진주 천정에 베푼 문양은 두 가지다. 붉은 꽃잎으로 만개한 것과 덜 핀 검은 꽃잎의 일부를 가진 두 형태다. 대위법(對位法)적인 표현이 눈에 띈다. 한 틀에 대비되는 색과 형태를 동시에 구현하여 표현의 풍부함과 생동감을 갖추게 했다.

문양은 고도로 세련되었으며 놀라울만큼 현대적이다. 〈중국의 산수화〉의 저자 마이클 설리반이 한국미술을 평가하면서 한국미술에 깃든 ‘현대성’의 인상을 강력히 피력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현대조형미술이 지향하는 원초적 생명력의 묘사에 부합하는 까닭이다. 비정형적이며 자유로운 정신, 내면에의 관조와 잘 맞아떨어진다. 사실 엄격히 따지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숨겨져 있던 것을 드러낼 뿐이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새로운 것은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형예술에서도 ‘오래된 미래’의 가치는 유효하다. 10분합의 꽃살문에서, 우물천정의 영기문 넝쿨에서 오래된 고전이 간직한 미래의 길과 지혜를 관(觀)한다. 백낙천이 〈노자〉라는 시에서,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 법”이라 하였으니, 논산 쌍계사 꽃살문 앞에서 언어도단의 벙어리 신세다.

대웅전 내부장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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