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 불교언론의 나아갈 길

전법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 ‘언론’
해방 이후 매체 다변화 흐름
2000년대 인터넷 매체 폭발증가
“불교언론의 몫은 ‘힐링 매체’”

신문 방송 인터넷언론 등 매스 미디어의 급격한 발전으로 세계는 그야말로 한가족인 시대를 맞았다. 인간은 한시도 이러한 매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특히 스마트 미디어의 발달로 매순간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불교언론은 오래 전부터 변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불교 언론의 태동

사실 현대의 포교에 있어 불교의 가르침을 신문과 잡지, 라디오, TV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부처님께서 1250명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설법한 경전의 표현보다 수백 배나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의 대중매체를 통한 포교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그 발자취를 더듬으면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12월 원종(圓宗) 종무원이 잡지 〈원종〉을 펴낸 것이 최초의 시도로 보인다.

일제시대 출판물에 대한 단속은 엄격했다. 국내에 발행된 잡지는 대부분이 종교잡지였다. 신문으로는 이에 앞서 1902년 일본불교 정토종이 당시 서울에 설치한 동양교보사에서 펴낸 〈동양교보〉가 최초의 종교신문으로 기록돼 있다.

해방 직후 불교계는 친일잔재 청산에 나섰다. 언론 분야도 마찬가지로 1946년 3월 1일 〈신생〉이 새롭게 태어났다. 신생은 같은 해 10월 종간됐지만 당시 몇 안 되는 불교잡지 중 하나였다.

1946년 5월 1일에는 월간 〈불교신보〉가 창간됐다. 〈불교신보〉는 해방공간에서 활약한 혁신운동을 알려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1950년 4월 〈동대신문〉, 1951년 후반기에는 주간 〈불교신문〉, 1957년 종합잡지 〈녹원〉과 〈불교세계〉 등이 창간됐다.

이후 1960년대는 불교언론사에서 일대 전기가 됐다. 현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가 창간되며 월간 단위였던 불교계 매체가 대거 주간으로 전환한다.

종교매체란 전문성으로 1980년대 중반까지는 잡지가 불교언론의 중심이었다. 1959년 잡지 〈현대불교〉에 이어 1962년 〈불교사상〉 1964년 〈불교생활〉 1966년 〈백련〉 1967년 〈불교계〉 1969년 〈불교문화〉 등이 이어진다.

1982년에는 사보의 큰아버지 격인 〈해인〉이 창간됐으며 1985년 천태종이 〈금강〉 등을 펴냈다.

1986년 5월에는 격주간 신문 〈불교회보〉가 〈주간불교〉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됐으며, 1988년 〈법보신문〉이 창간된다. 1989년 10월에는 〈제주불교〉 등 지역 불교계 신문도 발행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불교언론계는 많은 잡지와 사보, 신문들이 창간됐지만 재정 영세성이 발목을 잡았다. 이에 불교언론계의 힘이 모여 탄생한 것이 한국불교기자협회다.

1989년 11월 출범한 한국불교기자협회는 기자들의 상호 자질향상과 권익옹호를 통해 언론발전의 초석이 되고자했다.

1990년대 불교계는 방송을 통해 포교를 시작했다. 1990년 5월 라디오방송인 BBS불교방송이 개국했다. 서울경기 일대를 가청권으로 방송을 시작한 이후 1994년 부산과 광주 등으로 가청권을 넓혀갔다.

1994년에는 조계종 한마음선원이 출자해 주식회사로 출범한 〈현대불교신문〉이 1994년 10월 15일 창간호를 내고 신행·포교 전문지로의 첫발을 디뎠다. 불법의 현대화·생활화·세계화를 위해 창간된 〈현대불교〉는 1997년 4월 20면, 1997년 10월 24면, 2002년 10월 28면 및 섹션 도입, 2011년 32면 등으로 증면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인터넷 시대는 위기이자 기회

2000년대에는 인터넷이 보급되며 다양화됐다. 〈불교닷컴〉, 〈불교포커스〉 등 전문 인터넷 매체를 비롯해 현대불교신문(www. hyunbulnews.com), 불교신문, 법보신문 등 불교계 신문들은 주간신문의 한계를 넘어 일간 또는 실시간 체제로 뉴스를 서비스하고 포털 사이트 검색서비스를 통해 불교 언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현불뉴스는 불교계 인터넷 언론과 방송들은 기사와 동영상, PDF 서비스, 실시간 방송 등 고품질 콘텐츠를 제공하며 어느 때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불교TV, BBS불교방송 등의 불교 방송 매체들은 기존의 방송 서비스에서 뉴스 서비스를 강화하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종이신문 방식으로는 한계에 맞닿은 결과이기도 하다. 잡지와 신문은 그동안 텔레비전과 함께 균형적인 언론영역의 발전을 도모해 왔으나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언론의 급속한 성장으로 새로운 생존방식을 요구받고 있다.

신문은 사양산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영향력을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을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시대를 맞고 있다. 따라서 기존 언론의 사명과 기능자체도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러한 급격한 매체환경의 변화는 앞으로 더욱 더 가속화하면했지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매체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은 불교언론에도 변신을 요구하여 새로운 정체성 모색에 나설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패 막는 소금, 신심 고취의 중도점 찾아야

그동안 불교계 언론은 양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현재 인터넷 매체를 제외하고서도 한국불교기자협회에 가입한 언론매체는 총 16개에 달한다. 단위사찰이 운영하는 회보나 메거진의 형태에서 신문매체와 공중파 라디오방송, 케이블 텔레비전방송까지 다양한 형태의 매체 등이 불교언론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언론은 양적인 발전에 비해 내실을 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다.

하춘생前불교기자협회 회장은 “전문언론매체로서 정확성과 심층성을 띈 기획기사와 해설성의 보도를 지향해야 함에도 예전에 비해 최근에는 이러한 기사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의 발달 속에 종이신문의 미래에 대해서는 하 前회장은 “불교계 신문은 아직 그 가치가 유효하다. 장년층 신도가 많은 점 등을 감안할 때 신문이 주는 메시지는 앞으로도 포교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문제는 속보성 등에서 인터넷과 경쟁이 되지 않음에도 이에 따라가고 있는 점이다. 보다 유익하고 감동적이며 전문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기능과 전법 포교매체로서의 기능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 불교언론이 향후 지향해야할 과제라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기자정신을 새롭게 함과 동시에 재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불교계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고언도 이어졌다.

이학종 미디어붓다 대표는 “작금의 불교매체를 살펴보면 영세함으로 인한 투자결여와 별개로 개별기자들의 전문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불교계 언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중심에 있는 만큼 불교계 기자 개개인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어 “현재 불교언론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예전에 비해 좋은 인재가 부족하며 이러한 인적자원의 부족은 불교언론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자들의 노력과 함께 건전한 불교언론의 발전을 위한 불교계의 아낌없는 관심과 후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비판기능과 신심증강의 양단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북 스님은 “불교언론은 불교계 부패를 막는 소금같은 역할을 해야한다, 이러한 날카로운 비판기능이 살아있을 때 발전할 수 있다”며 “불교계의 썩은 곳을 드러냄과 동시에 반대로 신심을 증강시키기 위해서는 감동을 주는 기사가 필요하다. 이 두 방향의 중도점을 찾는 묘미를 각 불교언론사가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제 언] 사회의 목탁으로 향도적 역할 기대

 자성과 참회 수반할 때 진정한 포교
불교의 지혜 보시하고 불국토 불사 이끌어야

   
 이은윤 전 중앙일보 종교전문 대기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언론에 월계관을 씌워 미화할 때 흔히 ‘사회의 목탁’ ‘무관의 제왕’ ‘제4부’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국가에서는 언론을 국가 권력의 중추인 입법·사법·행정부와 대등한 역할을 하는 ‘제4부’라고 치켜 세운다. 구차한 설명이 없어도 민주사회를 실현하는데서 언론이 담당하는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불교언론도 분명히 언론이다. 비록 세속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제를 다루지 않고 불교문제에 국한하는 전문적 한계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기능과 사명은 언론학적인 원론을 벗어나지 않는다. 불교언론은 세속을 정화하고 앞서 이끄는 공령(空靈)한 정신과 도덕적 사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차원 높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대불교신문〉 창간 20주년을 맞아 오늘의 한국불교 언론 현실을 자성해 보는 두가지 고언을 하고자 한다.

‘사회의 목탁’이라는 언론의 월계관은 목탁이라는 용어부터가 불교에서 유래했다. 오늘의 한국불교 언론은 ‘목탁’이라는 비판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목어(木魚)에서 유래한 불교집안의 목탁은 불가의 법도와 정신을 상징하는 법구다. 불가의 모든 법요식은 목탁소리를 따라 진행된다.

목탁이 본래 물고기 모향을 취했던 것은 물고기가 잠을 잘 때도 항상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언제나 성성적적하게 깨어있고 혼침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는 좁게 보면 선방납자들의 수행을 독려하는 것이지만 불교언론을 비롯한 불가의 모든 작법(作法)에 적용되는 경책이다.

목탁소리는 불가에서 인간 생존의 기본이 되는 공양과 수행의 기본인 예불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고, 대중 운력(運力)을 이끄는 향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백장청규〉에 따르면 아침·저녁 공양에는 2번, 대중운력에는 1번을 친다고 했다.

불교언론은 불가의 가장 큰 목탁이다. 가운데의 긴 구멍과 바로 옆의 두 구멍이 각각 물고기의 입과 눈을 상징하고 있는 목탁은 바로 불교언론의 매체들이고 불교언론인의 두 눈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목탁인 불교언론인 등이 과연 불교를 인류 최고의 고등종교로 자리하게 하는 향도적인 비판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불교언론은 대체로 종단 배경의 포교목적을 가진 기관지 성격을 띄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포교는 자신의 뼈를 깍고 살을 베는 자성과 참회를 수반할 때 중생구제의 원력에 진정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승려의 품위나 자질을 손상시키고 세속 평균을 훨씬 밑도는 저질스러운 일부 승려의 작법과 세속 상업주의를 무색케 하는 세속화 등에는 가차없는 비판을 가해야 한다. 일반언론에 이같은 비판기능을 떠 넘기는 자세는 옳지 않다. 내부적인 비판과 참회가 훨씬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

불교언론은 불교의 예언자적 사명과 향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불교언론은 인류의 보편윤리에 반하는 탐욕을 선지자적 입장에서 경고하고 그 재앙을 알리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불교언론인의 실력이 미치지 못하면 불교학자, 경제학자들의 식견이나 세계적 석학들의 지혜를 빌릴 수 있다.

가쉽성 기사와 추잡한 종권다툼을 대서특필하는 것이 불교언론의 비판 기능이 아니다. 영험이나 공덕을 신화화하고, 선전하는 것이 불교언론의 포교역할도 아니다. 시대가 인구하는 불교적 지혜를 보시하고 현세적 불국토를 건설하는 불사를 앞서 이끄는 것이 불교언론의 나갈 길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